Day-8, 티탄 국립공원의 하이라이트 'Inspiration point' 티탄 국립공원의 하이라이트 중에서도 꼭짓점은 Inspiration point라고 불리는 조망지점이다. 캠프에서 만난 청년이 아침 일찍 가지 않으면 디즈니랜드처럼 바글거린다고 알려주어 일찍 출발했다. 제니 호수 건너편으로 가기 위하여, 어제는 발품으로 간 길을 오늘은 배로 건너니 순식간이다. 오늘의 목적지까지는 호수 건너편 선착장에서 1.2마일(2km) 떨어진 곳이라고 하여 30분 정도면 도착할 줄 알았는데, 길이 가팔라서 한 시간 가까이 걸렸다. 오르는 길목 그늘마다 가다가 쉬고 있는 관광객들이 자리하고 있다. 목적지에 가까워져 오는 지점에서 부모와 아들, 그리고 할아버지로 구성된듯한 한 가족을 만났다. 앞을 보지 못하는 10대 후반 정도의 손주가 할아버지 바로 뒤에서 할아버지의 한쪽 어깨에 자기 손을 얹고 그 길을 따라가고 있다. 할아버지는 손주에게 지형물을 설명하며 친절히 천천히 걷는다. 여기서 나는, inspiration point에 다다르기도 전에 이미 충분히 inspire(감동) 되고 있다고 느낀다. 가족의 의미, 인내심, 그럼에도 불구하고( in spite of...), 포
▲티탄으로 가는 길에 성채처럼 솟아있는 자연의 위용. Day-6, Keep Wyoming Wild 지금도 여전히 서부시대로 살아가는 와이오밍주 Riverton의 숙소를 아침 8시에 출발, 세 시간 가까이 계속되는 scenic drive를 달려 Grand Teton으로 향한다. 사람이 사는 흔적이 드문 아름다운 황무지가 펼쳐지자, 여기까지 달려온 보람으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 고속도로에서도 가끔 보이던 캐슬이 떠오르면서, 자연이 세운 아름다운 성채 같은 풍경들을 감상한다. 니들이 castle이 뭔지 알어? 라고 인간에게 말하고 있는 듯, 우뚝 솟아있는 자연의 건축물이 장대하고 아름답다. 먼지 속에서 죽을 고생 하며 서부로 가던 개척자들은 이 경치가 아름답다기보다 넘어야 할 고난과 두려움의 대상이었을 거라고 상상해본다. 2시간쯤 달리니 Duboise라는 이름의, 서부영화 세트장 같은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인구 900여 명 사는 이마을의 원래 이름은 건조하고 시원한 날씨로 인해 오랜 세월동안 Never sweat(땀이 안 나는 마을)이라고 불렸다. 우체국이 세워지며, 그 이름은 도저히 안 되겠다 하여 그 당시 아이오와 상원의원을 지낸 프랑스계
▲세계 최고의 부자 중 한 사람인 워렌 버핏이 사는 집 앞에서 포즈를 취한 필자.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그의 집은 너무나 소박해서 유명하다. Day-4, 나의 버전으로 "Nebraska" 영화를 찍다. 오늘은 7시간 동안 네브래스카 땅만 달렸다. 7시간 달려야 겨우 횡단하는 넓은 땅에, 인구 180만 명이 사니까 인구밀도 희박함이 에베레스트 산소 수준 동네다. Nebraska는 인디언 언어로, 평평한 물, Omaha는 절벽 위에 사는 사람들이란 뜻으로 부족의 이름이라고 한다. 작년에 너무 재미있게 본 영화, Nebraska를 생각나게 하는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며, 오늘은 내 버전으로, 영화 Nebraska를 머릿속으로 찍었다. 이 주에서 가장 큰 도시 Omaha에서 유숙한 호텔을 나서는데, 아침부터 90도 찍고도 사정없이 올라가는 불볕더위다. 짐 가지고 먼저 내려간 남편이, 왜 안 내려오나 하고 기다릴 것 같아서 샴푸 한 머리가 젖은 채로 로비로 내려오니 호텔 정문 앞 명당에 주차해놨던, 꽃바구니 머리에 인 우리 차가 안 보인다. 효율적으로 시간 쓰려고 혼자 주유소에 갔나 하며, 젖은 머리를 더운 바깥 공기로 말리며 느긋하게 기다렸다. 그러나 주유소
D-day, 7월 9일 2015년, 펜실베니아 D-day는 군사용어로 작전 결행의 날이다. 역사적으로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가장 센 유명세를 가진 D-day라고 한다. 그리고 오늘, 우리도 작전을 결행하고 드디어 긴 여정을 나섰다. 거의 두 달간의 여행을 위해 의식주와 오락거리까지 계획하고 준비해 나가는 과정도 군사 작전급이었다. 막상 워싱턴DC의 집을 떠나 북으로 운전하며 자동차 dash board에서 좔좔 하강 중인 바깥 기온을 보니 성공리에 진행 중인 작전인 것 같았다. 우리 동네는 오늘 90도라고 기상예보에서 들었는데, 오늘 숙박할 오하이오 털리도는 67도였다. 무려 450마일, 7시간을 달렸다. Maryland, Pennsylvania, Ohio로 달리는 동안은 주위에는 푸른 초장과 Alleghany mountain 푸른 숲만 내내 이어졌다. 고속도로변 휴게소에서 맥반석 오징어, 닭꼬치, 비빔 국시를 먹어줬음 좋았겠지만, 허접한 햄버거로 허기를 때우고 숙소에 도착하여 집에서 챙겨온 밑반찬에 누룽지를 전자 오븐에 끓여 먹으니 너무 행복하다. 제주도에서 친구가 가져다준 김자반, 내 텃밭에서 따온 풋고추, 볶은 고추장, 오이, 아보카도, 멸치볶음 등등.
최근 한국도 코로나19의 창궐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2.5 단계로 격상됐다. 올해 초 전세계로 퍼지기 시작한 코로나 바이러스. 첫 감염자 발생 후 1년도 채 되지 않은 12월 7일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전세계에서 무려 6천6백만 명을 넘어섰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국가 간의 여행은 물론 국내 여행도 힘들다.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다녔던 적이 언제였나 싶을 정도로 아련한 기억으로만 남아있다. 여행 관련 산업은 거의 모두 부도 일보 직전까지 갔다. 필자 김은성은 5년 전 2015년 7월 미대륙 자동차 횡단 여행을 떠났고 7주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 꿈꾸는 '미대륙 횡단여행'. 포천좋은신문은 오늘부터 약 10회에 걸쳐 김은성의 '미대륙 횡단 자동차 여행기'를 싣는다. 상상에서나마 여행을 떠나고 싶은 사람들에게 대리 만족(?)이라도 주고 싶은 것이 이 글을 연재하는 이유의 하나다. [편집자 주] ▲필자가 워싱턴DC를 출발해 7주만에 '미대륙 횡단 자동차 여행'을 다녀온 경로를 지도에 표시해 보았다. 여행 전문가들이 죽기 전에 가봐야 할 곳들로 세계의 여러 명승지를 들면서, '미국 자동차 여행'을 그중에
대부분의 사람은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부귀영화를 누려보고 싶어서 노력하며 산다.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물질이 확보되면 그 후엔 성취와 행복의 상관관계가 그다지 비례하지 않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계속 증명되어 왔지만, 자족하는 선을 긋는 것 또한 쉽지 않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다 보면 쉽게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잃을 수도 있다. 성공이나 성취란 개념에 속하는 것 중엔 명예도 있겠고 권력이나 부의 축적 등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 어느 것도 이루기 쉽지 않고, 주어진 것을 유지해 나가는 것은 더 어렵다고 생각된다. 사회지도층은 아무래도 세간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으니 하자가 들통나면, 더 준엄하게 대중의 비판을 받게 되는 것도 “유지비”가 비싸기 떄문이다. 그러나 만석꾼은 만 가지 걱정이라는 속담은 있어도, 만 가지 걱정이 싫어서 만석을 포기할 사람은 흔치 않을 거다. 미국의 부자들 중엔 자신들이 살던 고대광실을 박물관으로 남기고 간 사람들이 적지 않아서 굳이 찾아서 가진 않더라도 자동차 여행을 하다가 근처로 지나가면 들려볼 기회가 많다. 한적하고 풍광이 아름다운 동네에 숨어있는, 유럽에서 본듯한 캐슬 같은 저택들도 구경해볼
미국에 와서 산 지 40년이 되었고 투표권을 행사해온 지도 30여 년이 지났으나, 올해처럼 전국적인 관심과 열기를 체감한 대선은 처음이다. 완벽한 시력을 뜻하는 영어 표현으로 20/20 vision이라고 하는데, 2020년은 팬데믹과 함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전쟁 같은 대선으로도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최근 미국의 대통령 중, 재임 동안에도 막강한 지지를 받고, 그를 기억하는 국민들이 아직도 제일 그리워하는 대통령은 로널드 레이건이다. 특히 경쟁자인 먼데일의 고향이던 미네소타와 꿋꿋한 민주당 텃밭인 워싱턴DC를 제외한 모든 주에서 승리한 그의 재선 성적표는 역대급 완승으로 기록된다. 믿고 따르고 존경하는 자랑스러운 지도자를 갖는 것은 모든 국민들의 바램일 것이다. 2016년, 정치판의 인지도가 굳건한 힐러리의 상대로 텔레비전 예능 프로에서나 보던 장사치 트럼프가, 레이건 대통령 이후부터 더욱 전통적인 가치관을 상징하게 된 공화당의 대선주자로 나왔을 때 나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아연실색했다. 대부분의 여론은 힐러리의 승리를 예견했고, 트럼프처럼 점잖은 척도 안 하는 인물이 미국 대통령이 될 줄은 예상치 못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국민들이 입 밖에 내보고 싶어
▲150cm보다 작은 키의 프랑스 출신의 미국작가 루이스 브루즈아.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의 예술은 스페인 독감과 관계가 있다. 루이즈 브루즈아(Louise Brougeois)는 프랑스 파리에서 1911년에 태어나, 1938년 미국인 남편과 결혼하여 뉴욕으로 이주해서 2010년 98세로 사망할 때까지, 주로 초현실주의로 분류되는 설치미술로 활발한 작품활동을 한 아티스트다. 2018년 늦여름 우연히 내가 사는 동네에 신흥 부자가 새로 지은 미술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자들이 사후에 자신이 살던 저택을 박물관으로 기부하여 소장품을 대중에게 공개하는 미술관은 많이 가봤다. 한적한 주택가에 거의 숨어있듯 위치한 것만으로도 그 정도의 규모일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글렌스톤(Glenstone)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현대미술관은 그 규모와 건축의 아름다움과 소장품들이 세계적으로 손꼽힐 수준이다. 명실공히 워싱턴 DC 근교의 숨은 보석이다. 부자들의 여우 사냥터로 남겨져 있던 230에이커(1에이커는 1200평 정도)의 넓은 땅을 구입하여 아름답게 조경하고, 건물 자체로도 예술품인 현대식 건축물의 미술관을 지었다. 설립자는 1956년생으로 우리 동네 출신의 사업가였다.
대한민국에서 나랏돈으로 교육받은 인재(?)가 미국의 성실한 시민으로 이 나라의 한 구석에서 열심히 공헌했다는 자부심으로 퉁칠 수도 있겠으나, 굴러온 돌에게 박힐 곳을 내어준 이 나라가 고마운 것도 사실이다. 미국의 구호물자를 받던 나라였으나 이제는 세계 무대에 입지를 세운 대한민국 자손의 자긍심은, 세계인들이 모여 사는 이 나라의 중앙무대에서도 돌려주고 나눌 때 완성된다는 생각도 있었다. 미국에서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니 미국 주류 사회에서 평생 일했어도 나도 직장에서 퇴근하면 항상 한국으로 돌아와 살아온 듯하다. 다른 문화권 사람들과 개인적으로 삶을 나누고 친분을 쌓으며 살지 못한 것은, 언어와 문화가 다른 사람들과 친분을 나누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인들이 비교적 많은 지역에 정착한 덕분에, 나에게 편안한 문화 가운데에서만 살아올 수 있었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퇴직을 결심한 후, 미국 사회에 뭔가를 돌려줄 수 있는 기회가 허락되었으면 하는 막연한 바램을 갖게 되었다. 이 나라에서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아왔으나, 유리 지갑이라서 꼼짝없이 세금 열심히 낸 거 말고는, 한인사회에서만 나누고 주류사회에 돌려준 것이 별로 없다는 나의 결산 장부 때문이
지구를 덮친 팬데믹으로 지난봄에 시작된 집콕이 계속되는 가운데 2020년을 마감해 가고 있다. 하늘도 맑고 공기는 청명한데, 2021년에도 예전의 일상은 쉽게 돌아올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중국에서 시작된 사스나 메르스가 태평양을 건너오지 않았던 전례로, 코비드 사태에 방심했던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는 바다 건너 불구경하다가 무차별 융탄폭격을 받았다. 지난 2월 말, 엎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행한 그리스 여행을 떠날 때만 해도 그리스나 미국은 조용했다. 3월 초에 집에 돌아와서, 여행 중 환승으로 들린 파리나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혹시라도 바이러스를 묻혀왔을까 봐 2주간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그러나 2주가 끝나갈 무렵, 미국이 문을 닫기 시작하며 나의 집콕은 남들보다 2주 먼저 시작되었다. 처음엔 한 달 정도면 팬데믹이 끝날 거라고 생각하여, 집에 있는 양식으로 그 정도는 버틸 수 있겠다 싶었다. 냉장고 파먹기 신공이 뭔지 보여주며, 아예 시장도 안 가고 철저한 집콕으로 바이러스 퇴치에 동참해야겠다는 투지를 불태웠다. 뉴욕 맨해튼 응급실에 근무하는 친구 딸은, 자신은 코비드를 앓고 지나가게 될 테니 각오하라는 연락을 부모에게 해왔고, 다른 수많은 의료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