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성 칼럼]워싱턴發 종이비행기

미국의 슬기로운 집콕생활

필자 김은성은 79년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이민갔다. 메릴랜드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80년부터 96년까지 미국 소아과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다. 97년부터 병원 관리직과 소아산부인과 이사로 근무하다가 퇴직했다.


지구를 덮친 팬데믹으로 지난봄에 시작된 집콕이 계속되는 가운데 2020년을 마감해 가고 있다.  하늘도 맑고 공기는 청명한데, 2021년에도 예전의 일상은 쉽게 돌아올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중국에서 시작된 사스나 메르스가 태평양을 건너오지 않았던 전례로, 코비드 사태에 방심했던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는 바다 건너 불구경하다가 무차별 융탄폭격을 받았다. 지난 2월 말, 엎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행한 그리스 여행을 떠날 때만 해도 그리스나 미국은 조용했다. 3월 초에 집에 돌아와서, 여행 중 환승으로 들린 파리나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혹시라도 바이러스를 묻혀왔을까 봐 2주간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그러나 2주가 끝나갈 무렵, 미국이 문을 닫기 시작하며 나의 집콕은 남들보다 2주 먼저 시작되었다. 


처음엔 한 달 정도면 팬데믹이 끝날 거라고 생각하여, 집에 있는 양식으로 그 정도는 버틸 수 있겠다 싶었다. 냉장고 파먹기 신공이 뭔지 보여주며, 아예 시장도 안 가고 철저한 집콕으로 바이러스 퇴치에 동참해야겠다는 투지를 불태웠다. 


뉴욕 맨해튼 응급실에 근무하는 친구 딸은, 자신은 코비드를 앓고 지나가게 될 테니 각오하라는 연락을 부모에게 해왔고, 다른 수많은 의료진처럼 코비드를 앓고 일어나, 다시 최전방으로 복귀하여 일한다. 나는 전직 간호사로서, 일선에서 결사항전하는 의료인들을 더욱 절실한 맘으로 응원하며 그들의 안전을 기도했다.

 

목숨을 건 전장에 나가 있지만, 이 위기에 인류를 위하여 가장 보람있는 공헌을 하게 된 그들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내 나이가 감염 위험군에 속하고, 현역에서 떠난 지 오래 되어 간호사 라이센스도 없으니 현장으로 돌아갈 수는 없으나, 이때는 나의 후배들이 빛날 때라 여겨진다.


준비 없이 맹공격을 당하는 전쟁에서 엄청난 사상자를 내듯, 맨해튼과 그 주변의 여러  주들은 전쟁 같은 사상자를 냈다. 팬데믹이 무섭게 휘몰아치며 그 피크가 지나가는가 싶더니, 초기에 조용하던 주들이 더 엄청난 숫자의 확진자를 기록하며 바이러스는 아직도 시퍼렇게 승승장구 중이다.


대한민국은 미국에 비하면 감염자가 아주 적은데, 여기 기준으로 거의 호들갑 수준이라 여겨지는 언론보도를 접하면서 호들갑을 떨어서 방역에 성공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사는 동네를 예로 들면, 인구 6백만인 메릴랜드주에서  매일 확진자 오륙백 명을 꾸준히 기록하고 있으나, 그것도 처음보다는 줄었다면서 슬슬 문을 열고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다만, 지구는 이제 촘촘히 얽혀서 바다 건너 불구경할 수 없이 다 같이 재난을 이겨내야 하는 공동체가 되어 있기에, 미국의 악전고투는 세계적인 난제인 것이다. 


냉장고가 텅텅 비도록 파먹어도 끝나지 않는 팬데믹은 장기전으로 돌입하여, 우리도 할 수 없이 식료품을 사러 밖으로 나가기 시작한 지 한참 되었다. 이제는 고립과 불편함에 지친 많은 사람이 친지들과 거리 두기를 무시한 모임도 재개하고, 불편한 마스크를 벗어 던지고 나오고 있으니 방역은 더욱 난항 중이다. 


밖으로 나가는 것은 3주 만에 한번 가는 식료품 쇼핑과 매일 걷는 동네 한 바퀴가 전부인 집콕 생활은 새로운 경험이다. 초기에는 '슬기로운 감방생활'이라고 자조하던 집콕 생활이 몇 달이 지나도 끝날 것 같지 않아지자, '안락한 수도원 생활'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몇 해 전, 남프랑스 산골에 있는 천 년 된 수도원 세낭끄에 라벤다꽃을 보러 갔을 때가 떠올랐다. 천 년 전 사람들이 자의로 걸어들어와, 묵상과 노동으로 살아가던 석조건물 안에서 느꼈던 평온과 성스러움을 되돌아봤다. 그들은 자의로 수도원으로 갔으나, 에어컨 쌩쌩 도는 안락한 내 집에서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묵상의 고요와 침잠이 주어졌으니, 나의 집콕은 고행이나 불편이 없는 안락한 수도원 생활인 거다. 

 

▲남프랑스 산골에 있는 천 년 된 세낭끄 수도원과 그 앞에 핀 라벤다꽃.

 

이탈리아는 초기에 엄청난 피해를 입고, 이동 금지령으로 국민들이 집에 감금된 생활까지 해야 했다. 부활절 아침, 안드레이 보첼리가 텅 빈 밀라노 대성당 앞에서 'Amazing Grace'를 부르는 유튜브 영상이 이탈리아에서 전 세계로 보내진 것을 보며 온몸으로 울었다.

 

슬퍼서라기 보다, 영상 속의 파리, 런던, 로마, 맨해튼 등 텅 빈 도시의 거리가,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로 인하여 멈춰진 지구를 보여주니, 인간 존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절감하게 되는 '깨달음과 치유의 눈물'이었다. 전능자 앞에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골수로부터 인정하고 나니,  재난 가운데 온전한 평안함으로 몇 달을 지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을 오래 기억하며 묵상하고자 한다. 

 

▲세낭끄 수도원 그림과 정원에서 핀 꽃으로 방 안을 꾸미면서 집콕생활을 즐긴다.


손바닥만 한 텃밭에서 화초인 듯 재미 삼아 키우던 채소를 올봄에는 비장한 마음으로 심었다. 식물의 안위를 염려하고 수확에 연연하는, '농사를 처음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신선한 야채가 자급되면 시장에 덜 가도 된다는, 식량 조달과 맞물린 방역의 차원이다. 잔디나 가꾸고, 채소는 이웃에게 안 보이는 구석진 땅에서 키우던지 말던지 하던 동네 사람들 중에도 텃밭 농사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을 보게 된다. 모처럼 일구고 있는 텃밭이, 식물이 자라지 않는다는 소나무 아래 그늘이라든지, 모종을 너무 빼곡히 심어 놓은 걸 보면 밭농사 초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바이러스는 도시의 주민들을 자연으로, 그리고 땅으로 돌려보내고 있다.


예년엔 여름 동안 집을 비우는 경우가 많아서, 미처 소모 못 하는 잉여 야채를 갈무리해야 하는 과정이 부담될 때도 있었다. 올여름엔 애호박 한 그루에서 호박잎도 열심히 따서 쪄먹고, 남으면 냉동 보관하고, 귀한 애호박을 오래 두고 먹기 위해 만두로 빚어 냉동실에 저장해 가면서 땅의 소출을 소중히 모시고 있다.

 

조선오이 세 그루가 안겨준 오이 한 접으로 오이지도 담고, 오래 보관하려고 소금물을 여러 번 다려 붇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서리태 콩 서너 그루도 처음 심어보았다. 서리가 내릴 때쯤 서리태콩이 진짜 열려줄 건지 기대하며 지켜보고 있다.

 


▲코로나 덕(?)에 주로 집밥을 먹게 되어 '외식하듯 식사하기'를 실천 중이다.


배달이나 픽업으로 아주 가끔 사 먹기도 하지만, 우리 입맛에 맞는 먹거리가 흔치 않은 타향이라 굳이 멀리 나가느니 주로 집밥을 먹게 되어, '외식하듯 식사하기!'를 실천하려고 한다. 손님이 와야 꺼내던 테이블보를 늘 펼치고, 찬장이나 장식하던 예쁜 그릇들도 꺼내서 일상으로 사용하고, 정원의 꽃으로 식탁을 항상 장식하고, 식당에선 최소 한 잔에 10불이나 음식값에 추가되니 망설여지던 와인도 어울리는 음식이 있으면 곁들여 마시면서 집콕생활에 작은 행복을 추구한다. 음식에 어울리는 다양한 주류를 구비하고, 평소엔 잘 집어오지 않는 비싼 식재료로 가장 잘 먹는 외식처럼 호사를 부려도 집에서 해 먹으면 훨씬 저렴하다. 나를 비롯한 친지들이, 집콕으로 인하여 뜻하지 않게 요리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는 듯하다.

 

▲코로나가 유행인 요즘 미국에서는 집집마다 텃밭 가꾸기가 유행이다.

우리집 텃밭에도 애호박을 심었는데 벌써 먹음직스럽게 자랐다.


서로 만나지는 못해도, 그리운 사람들과 전화나 인터넷으로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여겨진다. 온라인으로 멀리 있는 친지들의 그리운 얼굴을 더 적극적으로 만나게 되기도 한다. 모두 행동반경이 줄다 보니, 돈 쓸 곳이 없어진 미국사람들의 가계 빚이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내려 갔다고 한다. 온라인 동문 모임 등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기금모금을 하면, 평소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 쉽게 걷히는 것을 보게 된다. 집콕으로 인하여 소비는 줄어들고, 서로를 그리워 하는 마음들은 커졌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소상인들은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여 문 닫고 있고, 재택근무하는 젊은 부부들은 학교에 못 가는 자녀들과 함께 힘들게 지내고, 장애 자녀가 있는 가정들은 도움의 손길 없이 외롭게 자녀를 돌봐야 하는 등,  코비드에 걸려 고생하거나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았다 하더라도 대다수의 사람에게 참으로 힘든 고난의 세월이다. 


생존의 전장터에서 후방으로 후송 조치된 은퇴자로서 내가 할일은, 고립의 불편을 잘 이기고, 함께 모이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절제하며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는 데 동참해주는 거라고 믿는다. 팬데믹을 빨리 종식하려면 모두가 집 밖으로 나오지 않고 한 달간 참으면 될 듯한데, 그것이 가능하지 않으니 미국은 매일 수만 명의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 힘들지만 최선을 다해 집콕을 사수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적극적인 방역인지라, 이 재난을 지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슬기로운' 공헌은, 바로 '집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스스로는 누를 수 없는 'pause'  버튼이 눌러진 기막힌 세월이다. 지구별은 여전히 태양의 궤도를 달리며, 손가락 사이로 물이 주르륵 빠져나가듯  2020년이 흘러가 버리고 있는 듯 하나, 분명히 우리에겐 많은 귀한 것들이 퇴적물로 쌓이고 있음을 믿는다. 다시 일상이 회복된다면 이 어려운 시절이 우리에게 남겨준 교훈들을 오래 기억하며 우리에게 허락되는 평범한 모든 것들을 새롭게 감사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