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성 칼럼]워싱턴發 종이비행기

미대륙 횡단 여행기-세 번째

필자 김은성은 79년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이민갔다. 메릴랜드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80년부터 96년까지 미국 소아과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다. 97년부터 병원 관리직과 소아산부인과 이사로 근무하다가 퇴직했다.

▲세계 최고의 부자 중 한 사람인 워렌 버핏이 사는 집 앞에서 포즈를 취한 필자.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그의 집은 너무나 소박해서 유명하다.

 

Day-4, 나의 버전으로 "Nebraska" 영화를 찍다.

 

오늘은 7시간 동안 네브래스카 땅만 달렸다. 7시간 달려야 겨우 횡단하는 넓은 땅에, 인구 180만 명이 사니까 인구밀도 희박함이 에베레스트 산소 수준 동네다.  Nebraska는 인디언 언어로, 평평한 물, Omaha는 절벽 위에 사는 사람들이란 뜻으로 부족의 이름이라고 한다. 작년에 너무 재미있게 본 영화, Nebraska를 생각나게 하는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며, 오늘은 내 버전으로, 영화 Nebraska를 머릿속으로 찍었다.  

 

이 주에서 가장 큰 도시 Omaha에서 유숙한 호텔을 나서는데, 아침부터 90도 찍고도 사정없이 올라가는 불볕더위다. 짐 가지고 먼저 내려간 남편이, 왜 안 내려오나 하고 기다릴 것 같아서 샴푸 한 머리가 젖은 채로 로비로 내려오니 호텔 정문 앞 명당에 주차해놨던, 꽃바구니 머리에 인 우리 차가 안 보인다. 효율적으로 시간 쓰려고 혼자 주유소에 갔나 하며, 젖은 머리를 더운 바깥 공기로 말리며 느긋하게 기다렸다.

 

그러나 주유소에 갔다 온다 해도 돌아올 시간이 한참이나 지나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고, 전화도 안 받는다. 어떻게 된 시나리오인지 계산이 안 되는 가운데, 그동안 많이 본 미국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들이 떠오른다. 네브래스카에서 실종된 남편...,울상이 되어있는 나에게 front desk 아저씨가 '뭘 도와줄까' 묻는다. '남편이 없어졌다우.' '무슨 차 타구 왔니?' 'Honda Odyssey.' '꽃바구니 이고 있던?' '맞아!' '남편이 뒤쪽 주차장으로 몰고 갔어.'

 

바로 그때, 땀으로 목욕한 남편 등장한다. 뭐 했어? 왜 전화 안 받았냐고 바가지도 못 긁었다. 자동차 뒤에 실은 짐 다시 정리하느라고 무더위에 땀을 폭포처럼 흘리다가 온 거다. 전화는 묵음이라 못 듣고. 그동안 영화 너무 많이 보며 살아온 죄로, 30분 남짓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 오지게 찍고, 이 동네에 산다는 Warren Buffett 할아버지 댁으로 운전해 간다.

 

깔끔하고 널찍하고 쾌적한 도시, 숙소에서 5분 정도 거리에 주립대학 캠퍼스가 있고, 대학 뒤에 자리 잡은 조용한 주택가에 세계 최고 부자가 살고 있다. 1957년에 3만여 불 주고 산 Stucco house(치장용 벽토로 외벽을 바른 집)는 요즘 시세 70만 불로 추정된다고 한다. 깔끔하게 정돈된 drive way에 평범한 GM 미국 차 두 대가 주차되어 있다.

 

▲네브래스카를 상징하는 굴뚝같이 생긴 바위 Chimney rock.

 

동네는 0.5에이커 이하의 주택들로 이루어져 있으나 관리 상태와 분위기로 봐서, 이 도시에선 비교적 부자 동네일 거라고 보인다.  미디어에서 보는 모습으로 미루어, 그는 아마도 구슬치기나 딱지 놀이하듯, 놀이 삼아 돈을 벌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의 집에 가서 보고,  네브래스카 평원을 달리는 무료함을 달래느라 스마트폰으로 그에 대한 정보들을 검색하며 나의 짐작이 맞았다는 걸 확인했다. 그는 부를 누리려고 돈을 버는 것이 아니고 어릴 때부터 거의 취미 삼아 돈을 벌어오며 오늘에 이른 거다. 열심히 하는 넘 위에 즐기며 일하는 넘이 있다는 말처럼, 게임을 하듯 돈을 벌어왔으니 게임의 승리로 모아놓은 구슬과 딱지는 사회로 환원하는 거다.

 

구슬과 딱지로, 요즘 재벌들처럼 로열패밀리 dynasty를 세우거나, 휘황찬란한 life style을 누리겠는가.... 그의 아버지가 4선 하원의원이라 임기 중엔 워싱턴DC 근방 우리 동네에서 고등학교(한국 애들 많이 다니는, 북버지니아의 Woodrow Wilson high school)를 다녔다.  아버지가 일류학교 가야 한다고 등 떠밀어서 그 유명한 Wharton business school에 입학했으나, 중도에 그만두고 고향으로 가서 Nebraska 주립대를 졸업했다고 한다.

 

돈의 가성비를 일찍 터득한지라, 비싼 아이비 대학 등록금이 아까웠을까? Harvard business school은  낙방하고 Columbia 대학원으로 경영대학원을 갔다니, 하버드는 두고두고 써먹을 자랑거리 한 건수 놓치는 큰 실수한 거다.

 

그에 관한 책은 미국 대통령들에 관한 것들보다 더 많다고 하고, 연례행사로 열리는 그의 회사 주주총회에서는 전 세계에서 2만 명이 오마하에 모여 그의 연설을 듣는다고 하여, Woodstock of Capitalism(자본주의의 대축제?)이라고 부른다니, 그의 명성은 가히 이 시대의 전설이다. 참고로 Woodstock은 1969년, 40만 명의 인파가 뉴욕주의 시골에 몰려들었던 전설의 록 페스티벌이다.

 

실제로도 게임을 좋아하는 그는 딱지치기에 해당하는 브릿지 카드 게임을 12시간 내내 하기도 하고, 빌 게이츠와도 종종 게임을 한다고 한다. 3명의 룸메이트와 브릿지 할 수만 있다면 감옥에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말한 이야기도 읽었다. 그의 어록은 명석한 미국 사람들의 공통점인 유머가 가득하고 그만의 철학이 있어서, 재테크에 무지한 나에게도 너무 재미있다.  

 

가도 가도 이하 동문인 네브래스카주의 초장을 달려가며, 스마트폰 구글이 펼쳐주는 '인물탐구 내지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정보들을 찾아서 운전하는 남편에게 낭송해주며 5시간을 달려가서, Ogallala라는 타운을 만나자, 시카고에서부터 타고 온 80번 고속도로 빠져나와 26번 국도로 갈아탔다.

 

주유소에 딸린 작은 상점 안에 유료 샤워장이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밖의 기온이 95도를 가리키고 있었고 지열이 더 뜨거워지자 아스팔트엔 신기루가 보인다. 여름에 사정없이 쏟아지는 태양으로부터도, 겨울의 맹렬한 한파로부터도 보호막이 되어줄 지형 조건이 없는 곳, 하늘로부터 내리는 자연을 고스란히 당해야 하는 무방비 지역이라서, 위도상 매우 북쪽인데도 여름 날씨가 이 지경이다.

 

유럽인들이 개척해놓은 이 나라에 뒤늦게 온 우리는 골라잡아 여건이 좋은 데서만 사는데, 조상 대대로 살아온 이들은 뿌리가 깊으니 여전히 이곳을 지킨다. 목초지가 넓어 소 떼들이 많이 보이는데, 걔들도 뜨거운 날씨가 괴롭다고 웅덩이에 들어가서 발 담그고 있는 걸 보니 날씨 험한 이 동네에서 사는 가축들도 괴로운 거 같다.

 

여름은 그렇다 치고, 겨울이라도 덜 추운 텍사스에 사는 소들이 부러울 듯하다. 정말 열악한 날씨의 황량한 땅이다.  국도로 접어드니 간혹 인가를 지나가기도 하여 덜 황량하다. 우리 애들 어릴 때도 많이 입힌 Oshkosh 아동복과 같은 동네명이 보여 잠시 들러본다. 우리가 아는 Oshkosh는 위스콘신주에 있고, 인구 800여 명 산다는 여긴, 그 이름을 따왔을 뿐이라고 한다.

 

시청도 있고, 호텔도 있고 제법 예쁜 가게들도 있는데 주일이라 문 닫았고, 영업시간도 월요일에서 목요일까지만 한다고 쓰여 있다. Slow life의 진수다.  26번 국도엔, Nebraska의 상징인 Chimney rock이 있다. 평지만 계속되던 scenery에 고도가 올라가게 되면서 보이기 시작하는 로키산맥 부스러기들, 로키가 화산 폭발할 때 날려 보낸 돌덩이가 침식되며 형성된 저 지형물은, 이 길을 따라 서부로 가던 수많은 개척자에게 landmark가 되었다고 한다. 나도 그 시절의 모자, bonnet을 사서 쓰고 마차의 모형 옆에서 서부개척시대를 생각해보며 사진 찍었다.  

 

26번 국도로 2시간 달려온 지점, Scots bluff라고 불리는 마을에 여장을 푼다. Mountain time zone으로 들어와 한 시간 더 뒤로 갔다. 같은 주 안에서도 시간대가 다른 넓은 땅, 네브래스카. 인구 15,000명 사는 이곳이 근처에서 제일 큰 도시에 속한다고 하고, 2011년엔 miss America를 배출했다고도 한다. 밖은 아직 환하지만, 시차로 인하여 우리 체감 시간으로는 11시, 온종일 찍은 my own version의  Nebraska movie의 막을 내린다.

 

▲서부로 가는 길. Scotts Bluff national monument.

 

Day-5, 서부로 가는 길 

 

어제 유숙한 마을은 Scots bluff national monument.  지형학적으로 역사적으로 의미깊은 장소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로키산맥에서 모피를 가져와 팔던 사람들 중 Scot이라는 사람이 인디언들과의 전투에서 부상당해 일행에서 낙오되었는데, 동료들이 다시 돌아와 그의 유골을 여기서 발견하여 그를 기리며 동료들에 의해 부쳐진 지명이라고 한다.  

 

아침에 눈 뜨니 이곳 시간 5시, 우리 동네 시간 7시다. 아침 먹고 짐 챙겨 나오니 8시. 75도 정도의 청량한 날씨에 하늘이 높고 맑다. 낮엔 다시 90도로 올라간다니 부지런히 national monument로 향한다.  자동차로 끝도 없는 평원을 달려온 여정도 만만찮은데, 마차 타고 온 개척시대 사람들에게, 로키산맥의 흔적 같은 이 지점은,  꿈꾸던 서부의 그림자라도 밟는 성취감을 선사했다고 한다.

 

그들이 고생길에서 예까지 살아남았다는 안도와 성취감에 숨을 고르던 지점이었음을 에어컨 장착된 자동차에 편안히 실려왔어도, 어렴풋하게나마 공감할 수 있다. 추위와 더위에 시달리고, 콜레라 같은 전염병으로 죽고, 심지어 마차 끄는 소에게 깔려 죽기도 하고, 무법천지에서 서로 총질하다 죽기도 하면서 서부로 서부로 달려간 개척자들 덕분에 오늘의 미국이 있다고 한다.

 

서부영화와는 달리 인디언들에 의해 죽은 사람들은 소수였고, 오히려 인디언들이 서부로 이동하는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었다고 한다. 나중에 유럽인들이 너무 몰려오니 자신들의 사냥터가 위협받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정부에 화가 나서 부닥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마차가 이 길을 오갔는지, 바퀴 자국이 200년 동안이나 땅에 남아 있었다고 한다.  

 

부를 향한 유럽인들의 열망이, 아무 욕심 없이 자연과 벗하며 이 땅에서 살아온 원주민들을 밀어내어 황량한 보호구역에 가둔 결과가 된 거다. 어제 묵은 시골 동네 부동산 가격이 예상보다 비싸서 갸우뚱했는데, 저 monument 위에 올라가서 마을을 내려다보니, 네브래스카에서 흔치 않은 경관과, 잘 계획된 고급스러운주택단지들이 그 가격을 말해주고 있었다.  아무리 구석진 동네라도 경관이 좋은 곳엔 돈 있는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네브래스카를 국도로 빠져나와 와이오밍으로 들어선다. 네브래스카의 인구밀도는 이곳에 비하면 바글바글 수준인 것이,  미국에서 10번째로 넓은 주, 와이오밍의 인구는 60만 명이 안된다고 한다. 네브래스카 평원엔 농지도 있고 가축도 키우더만, 이 동네는 진짜 아무 것도 없는 빈 땅이다.

 

구글 검색도 잘 안 되는 황량한 벌판을 몇 시간 달려왔다. 광물과 관광으로 먹고살며, 주 정부는 개인들에겐 소득세도 안 걷고 개인이 사용하는 부동산도 세금 안 낸다니, 거주하는 집 부동산 보유세만도 집값 시세의 1% 이상 매년 걷는 우리 동네에 비하면 공짜로 사는 셈이다. 인구밀도 제일 높다는 뉴저지가 스퀘어 마일당 1,200명인 거에 비해 여긴 6명 이하인 텅 빈 땅이다. 아직도 wild wild west인 곳이다. 알래스카에 이어 인구 희박 주 2위에 올라있다.  

 

오늘은 내일로 예정된 이번 여행의 첫 번째 기착지인 Grand Teton에 들어가기 위해 가볍게 300마일만 움직이고, 티탄에서 2시간 거리의 소도시 Riverton에서 여장을 푼다. 근처에 Wind river라는 인디언 보호구역이 있다고 하여, 평화로운 인디언 마을을 상상하며 들러보고 싶었다. 그러나 검색해보니, 그곳은 범죄가 난무하는 험악하고 위험한 곳이니 가지 말라고 쓰여 있다.

 

연방정부에서 주는 음식과 돈으로 살아가는 인디언 마을은 마약에 찌들어있고, 대학에 가는 애들은 거의 없다고 한다. 혹여 열심히 해서 마을을 떠나고 싶어 하는 눈치를 보이는 애들은 Apple, 즉 겉모습은 홍인종인 인디언이고 속은 하얀 백인이라며 경원시 된다고 하는 슬픈 이야기기 있다. 그래도 그 마을에 성당이 있고,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이 있다는 기사도 있다. 내일 드디어 자연으로 들어간다. 그동안 유숙하며 때로는 꿉꿉하다며 투덜거린 호텔 생활도 4주 동안 야영하며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

 

▲서부가 목전이다! 마차들이 달려가던 길을 내려다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