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성 칼럼]워싱턴發 종이비행기

미국에 돌려주기

필자 김은성은 79년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이민갔다. 메릴랜드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80년부터 96년까지 미국 소아과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다. 97년부터 병원 관리직과 소아산부인과 이사로 근무하다가 퇴직했다.

대한민국에서 나랏돈으로 교육받은 인재(?)가

미국의 성실한 시민으로 이 나라의 한 구석에서 열심히

공헌했다는 자부심으로 퉁칠 수도 있겠으나,

굴러온 돌에게 박힐 곳을 내어준 이 나라가 고마운 것도 사실이다.

미국의 구호물자를 받던 나라였으나

이제는 세계 무대에 입지를 세운 대한민국 자손의 자긍심은,

세계인들이 모여 사는 이 나라의 중앙무대에서도

돌려주고 나눌 때 완성된다는 생각도 있었다.

 

미국에서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니 미국 주류 사회에서  평생 일했어도 나도 직장에서 퇴근하면 항상 한국으로 돌아와 살아온 듯하다. 다른 문화권 사람들과 개인적으로 삶을 나누고 친분을 쌓으며 살지 못한 것은, 언어와 문화가 다른 사람들과 친분을 나누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인들이 비교적 많은 지역에 정착한 덕분에, 나에게 편안한 문화 가운데에서만 살아올 수 있었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퇴직을 결심한 후, 미국 사회에 뭔가를 돌려줄 수 있는 기회가 허락되었으면 하는 막연한 바램을 갖게 되었다. 이 나라에서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아왔으나, 유리 지갑이라서 꼼짝없이 세금 열심히 낸 거 말고는, 한인사회에서만 나누고 주류사회에 돌려준 것이 별로 없다는 나의 결산 장부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나랏돈으로 교육받은 인재(?)가 미국의 성실한 시민으로 이 나라의 한 구석에서 열심히 공헌했다는 자부심으로 퉁칠 수도 있겠으나, 굴러온 돌에게 박힐 곳을 내어준 이 나라가 고마운 것도 사실이다. 미국의 구호물자를 받던 나라였으나 이제는 세계 무대에 입지를 세운 대한민국 자손의 자긍심은, 세계인들이 모여 사는 이 나라의 중앙무대에서도 돌려주고 나눌 때 완성된다는 생각도 있었다.

 

▲언론의 역사를 보여주는 박물관 뉴지엄 전경 사진.

 

내 이익을 채우겠다는 동기에서 근거하지 않은 소원은 기다릴 필요도 없이 턱! 이루어지는 건지,  동네 주민센터에서노인들을 위한 근육운동 교실의 강사로 봉사할 기회가 곧 주어졌다. 이미 가르치던 강사들에 합류하여 시작하게 되었는데, 자원봉사로 섬기는 동료 강사들의 성실함과 열정이 너무 놀라웠다. 내가 돈 받고 일할 때도 이렇게 열심히 안 했던 거 같아서 부끄러웠다.

 

강사들 중의 한 명은, 전 캔사스 주지사의 영부인이었는데, 주지사 임기가 끝나고 오바마 행정부의 요직으로 온 남편을 따라 워싱턴 근교로 이사 온 전직 여판사 스테이시였다. 판사로 재직할 당시, 서류에 사인을 너무 많이 해서 손가락에 관절염이 생겼다는 스테이시는, 아는 사람 별로 없는 이 동네에 정착하는 방법으로 자원봉사를 택한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지사 관저에 사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어항 안에서 사는 거 같아서, 남편에게 주지사 재선에 도전하려면 이혼하고 가라고 결사반대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남편이 트로피처럼 자랑스러워할 아내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운동한다며,  듣는 내가 당황될 정도로 자신의 개인사를 솔직하게 얘기한다.

 

오바마 대통령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나와 정치적인 견해는 달랐으나, 알찬 대화도 많이 나누고 감명 깊었던 책도 추천하고 빌려줘서 읽는, 좋은 친분을 가질 수 있었다. 성실함과 솔직함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던 그녀가 워싱턴 DC에 있는 뉴스 뮤지엄( Newseum이라고 부른다)의 tour guide (‘도슨트’라고도 한다)로 자원봉사를 옮겨가며, 나에게도 같이 해보자고 권했다. 그러나 일주일에 한 번 지하철로 워싱턴 DC까지 나가야 하는 것이 부담되어 그때는 사양했다.

 

그 후 일 년쯤이 지난 겨울, 일상이 느슨하게 느껴지던 중 스테이시가 얘기하던 뉴지엄에 가보고 싶어져서 그녀에게 연락했다. 스테이시는 그즈음엔 뉴스뮤지엄 일을 그만두고, 미국 시민권을 위한 시험을 준비하는 이민자들을 도와주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녀가 연결해준 뉴지엄의 자원봉사 책임자와의 이메일로 시작하여, 일반 직장같이 이력서 심사와  면접을 거쳐, 투어가이드로  채용(?)되었다.

 

수년 만에, 퇴직하며 반납했던 사진 박힌 사원증을 목에 걸게 되니, 다시 사회초년생이 된 듯 설레기도 했다. 두어 달간의 훈련을 거쳐, DC에서 가장 멋있게 지어진 현대식 건물이라고 하는 뮤지엄의 도슨트가 되었다. 언론의 역사를 보여주는 뮤지엄이라서, 다른 도슨트들은 주로 저널리스트 출신이거나,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 헌법에 보장된 언론의 자유를 주제로 하는 투어이다 보니 법조계 출신들이 많았다. 나는 그런 배경이 없으나, 단지 미국 사회에 나의 재능이나 시간을 돌려줄 기회로 여겨 무작정 도전해 본 거다.

 

▲뉴지엄에서 바라본 워싱턴DC의 국회의사당 사진.

 

나랏돈으로 관리되는 수준 높은 박물관들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곳이 워싱턴DC인데, 굳이 비싼 입장료(25불)를 받는뮤지엄에서, 1시간 투어를 듣기 위해 10불을 더 내는 관람객들의 기대치에 만족을 주어야 하는 일은 적잖이 부담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자원봉사자에겐 대부분 단순노동이나,  책임질 일이 별로 없는 일이 주어지는 것에 비하여 수준 높은 일이라며 동료들은 좋아했다.  

 

나와 같은 날 일하던 파트너는 변호사 출신 유태인 아줌마였는데, 그녀도 근무가 시작되기 전 고객들에게 강의할 내용을 매번 다시 숙지한다는 얘길 들으니 긴장하기는 영어권 전문인도 마찬가지인 듯 하여 위로가 되었다.

 

뉴스 뮤지엄의 투어는 방대한 전시물 중에 하이라이트로 몇 개를 소개하면서 미국의 헌법에 보장된 언론, 결사, 청원, 종교, 표현의 자유가 미국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주며 흘러 왔는가를 관람객들에게 강의한다. 가장 잘 배우는 것은 가르치는 일이다. 가르치기 위하여 공부하고 숙지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미국의 역사와 언론의 역할 등을  새롭게 공부하며,  부담의 무게만큼  보람된 날들이기도 했다. 학교 다닐 때, 공부가 빛으로 인도하는 기쁨을 준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았을텐데… 싶기도 했다.

 

▲뉴지엄에 전시된 베를린 장벽 사진.

 

급여 받고 일하는 직장과 똑같이 엄선해서 자원봉사자를 뽑는다는 것,  뽑힌 사람들의 긍지가 높고, 그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책임자에게 잘보이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내가 알던 자원봉사 문화와 다르게 보였다. 미국에서 낳고 자란 나의 딸은, 내가 미국에서 거쳤던 어떤 전문 직업보다, 엄마가 뉴스 뮤지엄의 도슨트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이민 1세대와  많이 다른 가치관과 사고를 가진 우리 2세들은, 한 집안에 공존하는 또 다른 인류들이다. 우리 세대는 뭐든 돈 되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잘 해내야 칭찬받았던 것 같다.

 

국회의사당과 이웃하고 국립미술관 건너편에 자리 잡은 뉴스 뮤지엄은, 언론사들이 합자하여 만든 비영리 단체가 세운 뮤지엄이었다. 많은 비영리 단체들의 문제점 중 하나는, 주인의식이 결여된 운영진들이 방만한 관리를 하다가 망한다는 거다. 뉴스 뮤지엄도, 어마어마하게 비싸고 멋진 건물을 미국 수도의 심장부, 최고의 위치에 새로 지은 지 불과 10년 만에, 경제적으로 더 버틸 수 없어져서 문을 닫고 말았다. DC의  많은 뮤지엄들처럼 국가에게 관리를 넘길 수 없었던 이유는, 정부를 견제해야 하는 언론의 성격상 언론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재단이 정부에 의하여  운영될 수 없기 때문이다.

 

▲9.11 테러 다음날 세계의 모든 신문은 1면에 똑같이 전면기사를 실었다. 뉴지엄에는 9.11 당시 전세계 신문들을 전시해 놓았는데, 한국의 조선일보도 보인다. 앞쪽에 전시된 구조물은 테러로 무너진 쌍둥이 빌딩위의 송신탑이다.

 

뉴스 뮤지엄은 운영난으로 문 닫고, 그동안 계속해오던 주민센터 운동 교실도 팬데믹으로 인하여 문 닫았다. 모든 일상이 멈춘 요즘 돌아보니 미국에 돌려주기(Return)로 시작한 자원봉사를 통해, 내가 들인 시간이나 노력과는 비교할 수 없이 커다란 보람과 배움으로 나의 지평이 넓어진 것을 발견한다.

 

받은 것을 조금 돌려주려다가 더 많이 받은 느낌이다. 공기나 햇살처럼, 가장 귀한 것들은 공짜이듯 공짜로 자원해서 일할 때 더 열심히 일할 수도 있다는것을 배웠다. 그리고 부담됨을 참고 거저 퍼줄 때,  더욱 채워지는 비밀을 발견한 듯도 하다.

 

▲뉴지엄에는 매일 아침 세계의 2000개 신문 중 80개를 전시한다. 한국의 매일경제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