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사람들

포천의 땅과 사람들의 이야기

이지상이 쓴 '대한민국 도슨트-포천'을 읽고

 

고단한 사람들의 일상에 희망의 언어를 들려주고

늘 깊이 있는 글과 음악의 메시지를 통해

성찰적 삶의 좌표를 만들어가는 자세로

회한과 그리움으로 포천을 써 가다

 

고향 포천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이 자신의 삶을 지탱해 준 버팀목이라는 사람이 있다. '포천 촌놈 도슨트 이지상'이다. 노래마을의 음악 감독으로 '사람이 사는 마을', '나의 늙은 애인아' 등의 음반과 작가로 '여행자를 위한 에세이' 등이 그의 작품이다. 

 

공상하는 일 말고는 다른 일을 해 본 적이 없다는 이 사람. 노래를 만들고, 문학인으로 살아가는 이지상이 젊은 시절 흔적, 추억, 그리움으로 써 내려간 포천의 명소와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역 토박이의 감성과 역사를 생생하게 기록한 것으로 사람의 흔적이 있는 곳, 세월의 연륜이 있는 곳 중 스물다섯 곳을 골랐다.

 

문헌에 기록된 포천의 최초 지명은 마홀(馬忽)로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붙인 것으로 추정된다. '마'는 흐르는 물, '홀'은 마을을 뜻한다. 물이 흐르는 마을. 지금의 포천이다. 축석령에서 발원해 북쪽으로 흐르는 '큰물'로 불렸던 포천천과 이동 광덕산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영평천이 포천의 두 개의 큰 물줄기이다.

 

포천천 굽이굽이 80리 물길 따라 마을이 생겼고, 마을을 잇는 길을 닦았다. 이 길을 경흥대로라 불렀다. 함경도 경흥까지 가는 가장 빠른 길로 조선시대 6대로 중 하나였다. 천의 왼쪽에는 신라 도선국사가 도를 닦을 때 헌강왕이 친히 행차했다 해서 붙여진 왕방산이고 오른쪽은 맑은 물을 쏟아낸다는 수원산이 있다. 

 

특히, 영중 영송리와 일동 사직리 등에서는 구석기 시대의 유물이 발굴되고 있으며, 가산 금현리, 선단 자작동 등에서는 고인돌이 발견되는 고대 유적지를 안고 있는 태곳적 역사의 고장이다.

 

한국전쟁으로 남북이 갈리는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채 삶을 영위하는 최전방 지역이다. 현재도 대규모 훈련장이 있고 군 전투부대도 각 지역 곳곳에 있다. 지금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1960년대 이후 많은 군인이 이 지역에서 근무했다. 엄격하고 고된 병영생활의 영내를 벗어나 한 사발 마신 '이동 막걸리'라는 추억의 맛을 군 제대와 함께 고향으로 들고 갔다.

 

또한, 그 당시 군대에 간 귀한 아들을 위해 첩첩산중이었던 포천에 부모들이 면회 오면서 귀한 음식인 '이동갈비'를 먹이는 것이 부모의 사랑이었다. 젊은 시절 힘든 군 생활을 이곳에서 보낸 이들의 추억은 '이동막걸리'와 '이동갈비'였다. 70~80년대 들어 사회적으로 안정된 이들이 등산 등으로 포천을 찾으면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러한 포천이 역사와 새로운 관광명소로 주목받고 있다. 포천 신북면 금동리 '지동 산천마을'의 천년 은행나무가 그 주인공이다. 맞은편 850년, 650년, 500년 된 동생 은행나무도 나란히 있다. 먼저 나무에 기댄 채 조용히 눈을 감고 천년 시간과 속삭여도 좋을 듯싶다. 나의 뿌리는 어디에서 왔을까 물어보자. 

 

영북면 대회산리와 관인면 중리는 잇는 '한탄강 하늘다리'에 서면 남들은 절세 절경이니 한국의 그랜드캐니언이니 하는데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면 오금이 저리고 심장이 쫄깃해진다. 27만 년의 세월을 담은 한탄강 협곡의 바람이 전설로 내 몸을 휘감는다.  

 

주변에 천연기념물 제537호로 용암이 흘러 한탄강 주상절리 협곡에 형성된 폭포로 흰 비둘기 수백 마리가 둥지를 틀었다는 '비둘기 낭'이 은밀한 에메랄드빛을 머금고 있다. 천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슬픔 도망자의 은신처가 되기도 하고 한국전쟁 때는 폭격을 피해 모였던 피난처였고 아이들에겐 신나는 물놀이터였다.  드라마의 추노, 선덕여왕 등 사극의 단골 촬영지로도 이름난 곳이기도 하다.

 

칼의 반대말은 방패가 아니라 꽃이라는 말이 있다. 한탄강 꽃 정원은 '한탄강 지질공원' 안 30여만 평의 개활지에 유채 꽃밭으로 조성돼 6월 초에 절정을 맞이한다. 사람이 꽃이 되고 나비가 되어 보자. 꽃 멍하기 더없이 좋은 시간을 즐겨보면 어떨까 싶다.

 

삶의 대부분이 일상이고 익숙한 것들이다. 때로는 진솔한 나를 찾아가는 것처럼 진흙에 물들지 않고 피어나는 고고한 연꽃에 맺힌 물방울을 궁글어 보자. 당신의 손에 담아 그 물로 당신의 마음을 씻어 보면 어떨까. 나를 담아보는 군내면 명산리 울미마을 연꽃이다. 인근 직두리에는 300여 년간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 '부부송'이 있다.

 

아이들과 함께 가볼 만한 군내면 하성북리 '코버월드 화폐박물관'에는 전 세계 200여 개국이 넘는 나라의 돈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데 그 방대한 양의 절반 이상은 주화다. 흔히 엽전이라 부르는 굴곡진 역사를 가진 '상평통보'는 물론 세계에서 가장 큰 액수의 지폐 짐바브웨 100조 달러짜리 등이 전시돼 있다.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고'하는 '어부의 시'를 쓴 김종삼 시인의 시비가 있는 '고모리 호수공원'은 소담스러운 풍경을 끼고 2.6㎞여 호수 변 둘레길을 시와 함께 걷노라면 내면의 기쁨으로 발걸음조차 가볍다. 차 한잔 상념의 시간도 괜찮다.

 

이 밖에도 관인 종자산 줄기 아래 수확한 밀로 갓 구운 빵 맛이 좋은 '평화 나무농장'이 있고, 성남 모란장 다음으로 규모가 크다는 '포천 오일장'은 다양한 먹거리로 오가는 이를 유혹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마음의 변화를 추구하고 갈망하는 이들은 있다면 창수면 주원리에 '김광우 평화 조각공원'을 찾아봄 직하다. 조각가는 '자연과 인간'이라는 독립적이고 슬기로운 공존을 세상에 외쳤다. 작품 세계를 알려고 하기보다 그냥 느낌으로 받아들이라는 작가의 마음으로 감상하면 더할 나위 없다.

 

이 밖에도 나무와 풀들의 천국인 국립수목원, 궁예의 애환이 깃든 산정호수, 기우제를 지낸 바위의 화적연, 자연을 벗 삼은 풍류의 너른 바위 '금수정'과 명필가의 글씨가 새겨진 인근 암각, 화강암 폐석장이 빚은 예술 골짜기 포천 아트밸리 등이 발길을 재촉한다.

 

5월 어느 날, 따스한 햇살과 바람의 길이 정겨운 포천에서 내 마음을 위로하고 멍때리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