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은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부귀영화를 누려보고 싶어서 노력하며 산다.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물질이 확보되면 그 후엔 성취와 행복의 상관관계가 그다지 비례하지 않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계속 증명되어 왔지만, 자족하는 선을 긋는 것 또한 쉽지 않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다 보면 쉽게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잃을 수도 있다. 성공이나 성취란 개념에 속하는 것 중엔 명예도 있겠고 권력이나 부의 축적 등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 어느 것도 이루기 쉽지 않고, 주어진 것을 유지해 나가는 것은 더 어렵다고 생각된다. 사회지도층은 아무래도 세간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으니 하자가 들통나면, 더 준엄하게 대중의 비판을 받게 되는 것도 “유지비”가 비싸기 떄문이다. 그러나 만석꾼은 만 가지 걱정이라는 속담은 있어도, 만 가지 걱정이 싫어서 만석을 포기할 사람은 흔치 않을 거다. 미국의 부자들 중엔 자신들이 살던 고대광실을 박물관으로 남기고 간 사람들이 적지 않아서 굳이 찾아서 가진 않더라도 자동차 여행을 하다가 근처로 지나가면 들려볼 기회가 많다. 한적하고 풍광이 아름다운 동네에 숨어있는, 유럽에서 본듯한 캐슬 같은 저택들도 구경해볼
미국에 와서 산 지 40년이 되었고 투표권을 행사해온 지도 30여 년이 지났으나, 올해처럼 전국적인 관심과 열기를 체감한 대선은 처음이다. 완벽한 시력을 뜻하는 영어 표현으로 20/20 vision이라고 하는데, 2020년은 팬데믹과 함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전쟁 같은 대선으로도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최근 미국의 대통령 중, 재임 동안에도 막강한 지지를 받고, 그를 기억하는 국민들이 아직도 제일 그리워하는 대통령은 로널드 레이건이다. 특히 경쟁자인 먼데일의 고향이던 미네소타와 꿋꿋한 민주당 텃밭인 워싱턴DC를 제외한 모든 주에서 승리한 그의 재선 성적표는 역대급 완승으로 기록된다. 믿고 따르고 존경하는 자랑스러운 지도자를 갖는 것은 모든 국민들의 바램일 것이다. 2016년, 정치판의 인지도가 굳건한 힐러리의 상대로 텔레비전 예능 프로에서나 보던 장사치 트럼프가, 레이건 대통령 이후부터 더욱 전통적인 가치관을 상징하게 된 공화당의 대선주자로 나왔을 때 나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아연실색했다. 대부분의 여론은 힐러리의 승리를 예견했고, 트럼프처럼 점잖은 척도 안 하는 인물이 미국 대통령이 될 줄은 예상치 못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국민들이 입 밖에 내보고 싶어
▲150cm보다 작은 키의 프랑스 출신의 미국작가 루이스 브루즈아.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의 예술은 스페인 독감과 관계가 있다. 루이즈 브루즈아(Louise Brougeois)는 프랑스 파리에서 1911년에 태어나, 1938년 미국인 남편과 결혼하여 뉴욕으로 이주해서 2010년 98세로 사망할 때까지, 주로 초현실주의로 분류되는 설치미술로 활발한 작품활동을 한 아티스트다. 2018년 늦여름 우연히 내가 사는 동네에 신흥 부자가 새로 지은 미술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자들이 사후에 자신이 살던 저택을 박물관으로 기부하여 소장품을 대중에게 공개하는 미술관은 많이 가봤다. 한적한 주택가에 거의 숨어있듯 위치한 것만으로도 그 정도의 규모일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글렌스톤(Glenstone)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현대미술관은 그 규모와 건축의 아름다움과 소장품들이 세계적으로 손꼽힐 수준이다. 명실공히 워싱턴 DC 근교의 숨은 보석이다. 부자들의 여우 사냥터로 남겨져 있던 230에이커(1에이커는 1200평 정도)의 넓은 땅을 구입하여 아름답게 조경하고, 건물 자체로도 예술품인 현대식 건축물의 미술관을 지었다. 설립자는 1956년생으로 우리 동네 출신의 사업가였다.
대한민국에서 나랏돈으로 교육받은 인재(?)가 미국의 성실한 시민으로 이 나라의 한 구석에서 열심히 공헌했다는 자부심으로 퉁칠 수도 있겠으나, 굴러온 돌에게 박힐 곳을 내어준 이 나라가 고마운 것도 사실이다. 미국의 구호물자를 받던 나라였으나 이제는 세계 무대에 입지를 세운 대한민국 자손의 자긍심은, 세계인들이 모여 사는 이 나라의 중앙무대에서도 돌려주고 나눌 때 완성된다는 생각도 있었다. 미국에서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니 미국 주류 사회에서 평생 일했어도 나도 직장에서 퇴근하면 항상 한국으로 돌아와 살아온 듯하다. 다른 문화권 사람들과 개인적으로 삶을 나누고 친분을 쌓으며 살지 못한 것은, 언어와 문화가 다른 사람들과 친분을 나누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인들이 비교적 많은 지역에 정착한 덕분에, 나에게 편안한 문화 가운데에서만 살아올 수 있었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퇴직을 결심한 후, 미국 사회에 뭔가를 돌려줄 수 있는 기회가 허락되었으면 하는 막연한 바램을 갖게 되었다. 이 나라에서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아왔으나, 유리 지갑이라서 꼼짝없이 세금 열심히 낸 거 말고는, 한인사회에서만 나누고 주류사회에 돌려준 것이 별로 없다는 나의 결산 장부 때문이
지구를 덮친 팬데믹으로 지난봄에 시작된 집콕이 계속되는 가운데 2020년을 마감해 가고 있다. 하늘도 맑고 공기는 청명한데, 2021년에도 예전의 일상은 쉽게 돌아올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중국에서 시작된 사스나 메르스가 태평양을 건너오지 않았던 전례로, 코비드 사태에 방심했던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는 바다 건너 불구경하다가 무차별 융탄폭격을 받았다. 지난 2월 말, 엎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행한 그리스 여행을 떠날 때만 해도 그리스나 미국은 조용했다. 3월 초에 집에 돌아와서, 여행 중 환승으로 들린 파리나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혹시라도 바이러스를 묻혀왔을까 봐 2주간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그러나 2주가 끝나갈 무렵, 미국이 문을 닫기 시작하며 나의 집콕은 남들보다 2주 먼저 시작되었다. 처음엔 한 달 정도면 팬데믹이 끝날 거라고 생각하여, 집에 있는 양식으로 그 정도는 버틸 수 있겠다 싶었다. 냉장고 파먹기 신공이 뭔지 보여주며, 아예 시장도 안 가고 철저한 집콕으로 바이러스 퇴치에 동참해야겠다는 투지를 불태웠다. 뉴욕 맨해튼 응급실에 근무하는 친구 딸은, 자신은 코비드를 앓고 지나가게 될 테니 각오하라는 연락을 부모에게 해왔고, 다른 수많은 의료진처럼
▲존 덴버의 컨츄리 음악 'Take me home country road' 가사 첫 부분에 나오는 가사 '...블루리즈 마운틴 셰난도아 리버..."에도 셰난도아 국립공원의 이름이 등장한다. 미국엔 수백 개의 국립공원이 있다. 사진 한 장만으로도 동공이 확 열릴만한 진기한 풍광으로 인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소들이 많지만, 장거리를 불사하고 가볼 만하다기보다는, 자연환경 보존의 목적으로 지정되어 보호, 관리하는 곳들도 있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DC에서 자동차로 두세 시간 떨어진 버지니아주, 애팔래치아 산맥 가운데 블루리지 마운트에 위치한 셰난도아는, 사진 한 장으로 먼곳의 방문객을 불러들일 풍광은 없는 국립공원이다. 미국의 자연이라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장엄한 대자연의 그랜드캐니언, 옐로스토운, 브라이스캐니언 등을, 예전에 서부에서부터 동부로 자동차 타고 이사 오면서 이미 섭렵한 우리에게도, 셰난도아는 경관이 대단할 것은 없는 수준이다. 가볼 만한 곳이 너무 많던, 신묘막측한 풍광이 펼쳐진 칼리포니아에 살다가 이곳으로 이주해온 이후엔, 타지에서 손님이 오셔도 마땅히 구경시켜 드릴만한 곳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10여 년 전 쯤, 한국에서 오신 손님
건국한 지 300년이 채 안 된 신생국 미국이 현대사의 주인공이 되어 버티고 서있는데, 그 나라 연방정부의 행정수도 외곽에서 35년째 살면서도 서울 사람들이 남산 안 가듯, 위싱턴DC 도심에는 관공서에 볼일이 있거나 외지에서 오는 손님 접대차 원이 아니면 별로 드나들지 않고 살아왔다. 오래된 도시라서 우선 주차가 불편하고 이민자로 살아내느라 급급하여 미국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숨 가쁘던 일상이 은퇴로 인해 여유가 생기게 되니 역사와 문화 등 인문학에도 관심을 두게 되고, 바로 옆에 너무나 아름답고 멋진 도시가 있다는 것도 요즈음 알게 되었다. 굳이 비행기 타고 시간대가 다른 곳으로 날아가 비싼 여행경비 들여가며 구경하러 가는 도시들에 비해 조금도 손색이 없는, 많은 면에선 오히려 파리, 런던, 뉴욕 등의 도시들보다 훨씬 우월한 관광지임을 절감하며 코로나가 오기 전까지 이 아름다운 도시를 재발견하는 중이었다. 역사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일정 지역에 영웅이나 천재들이 모여 있으면, 역사는 커다란 전환점을 돌게 되는 것 같다. 삼국지는 고대의 이야기지만 군웅이 활거하며 중원의 역사를 주무른 이야기로 수천 년 지난 요즘도 필독서로 자리하고 있
▲세계 최고의 강대국 미국이지만, 팬더믹 초기에는 진짜 마스크는 의료인들에 게 양보하고., 각자 집에서 만든 마스크를 쓰라고 권장하던 초라한 시절도 있었다. 미국에서 살아온 세월이 고국에서 낳고 자란 23년의 두 배 가까이 되는데도, 나에게 시민권을 주고 미국의 백성으로서의 특권과 의무를 부여해준 이 나라에 앉아서 나는 망설임 없이 '타향'이라고 부른다. 인생의 2/3되는 시간을 사용해온 영어보다, 아직도 모국어가 편안할뿐 아니라 그동안 뿌리를 옮겨 내리며 살아내느라 바빠서 미국의 실체를 너무 모르고 살아왔다는 것을, 요즘 코비드 재난을 지나며 절감하며 내가 살아온 이곳은 '타향'이란 생각이 더욱 진하게 다가온다. 지난봄, 지구는 다 같이 끙끙 앓아누웠고, 일상을 멈췄으나 공권력이 얼마나 깊숙이, 효과적으로 투입되었는가에 따라서 팬데믹의 피크를 빨리 극복하고 회복기로 접어든 국가들이 많은 것에 비하여 미국은 지금 세계 최대의 확진자 수를 기록하면서 남북전쟁 이후 최대의 재난을 지나고 있다. 1975년, 작고 가난한 나라 베트남에서 수많은 젊은이의 목숨과 국력의 소모는 물론, 국론의 분열이라는 손실만 안고 패전의 오명을 감수한 것처럼, 지금은 팬데믹 바이러스에
대한민국 서울에서 나고 자라 종로구에 주소를 둔 학교들만 내내 다니다가, 대학을 졸업한 후 결혼해서 바로 미국으로 온 나는, 고향에서 키워졌을 뿐 어른으로는 한국에서 살아보지 못하고 태평양을 건너온 지 올해로 40년째다. 포토맥강은 미국의 수도 워싱턴디시를 흐르는 강으로, 내가 사는 동네 이름도 포토맥인데 이곳 한인들에게는 '부뚜막'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포토맥은 이 지역에 살던 인디언 부족의 언어로는 "백조의 강”이라는 뜻으로, 포토맥은 강둑에 있던 원주민 마을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현재 종로구청 자리에 있던 국민학교(초등학교 아닌, 국민학교 나온 것이 구세대란 증거라니, 그런데도 나의 정체성을 확실히 하기 위해선 굳이 이렇게 써야 할 것 같다)를 같이 다녔던 포천좋은신문사의 김승태 편집국장의 초대로, 미국의 행정수도인 워싱턴디시 근교에서 숨어(?) 살던 아낙이, 불특정 다수에게 처음으로 편지를 써보기로 어렵사리 마음을 먹었다. 편지는 친근함이 이미 깊어졌거나, 친밀함을 쌓아가고 싶은 상대를 향해 띄우는 소통인데,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딛고 불특정 다수에게 편지를 쓸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포천에서 발행되는 지방(지방=시골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