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성 칼럼]워싱턴發 종이비행기

​​​​​타향에서 코로나 재난을 겪으며

필자 김은성은 79년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이민갔다. 메릴랜드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80년부터 96년까지 미국 소아과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고, 97년부터 병원 관리직과 소아산부인과 이사로 근무하다가 퇴직했다.

▲세계 최고의 강대국 미국이지만,  팬더믹 초기에는 진짜 마스크는 의료인들에

게 양보하고., 각자 집에서 만든 마스크를 쓰라고 권장하던 초라한 시절도 있었다.

 

미국에서 살아온 세월이 고국에서 낳고 자란 23년의 두 배 가까이 되는데도, 나에게 시민권을 주고 미국의 백성으로서의 특권과 의무를 부여해준 이 나라에 앉아서 나는 망설임 없이 '타향'이라고 부른다. 인생의 2/3되는 시간을 사용해온 영어보다, 아직도 모국어가 편안할뿐 아니라 그동안 뿌리를 옮겨 내리며 살아내느라 바빠서 미국의 실체를 너무 모르고 살아왔다는 것을, 요즘 코비드 재난을 지나며 절감하며 내가 살아온 이곳은 '타향'이란 생각이 더욱 진하게 다가온다.

 

지난봄, 지구는 다 같이 끙끙 앓아누웠고, 일상을 멈췄으나 공권력이 얼마나 깊숙이, 효과적으로 투입되었는가에 따라서 팬데믹의 피크를 빨리 극복하고 회복기로 접어든 국가들이 많은 것에 비하여 미국은 지금 세계 최대의 확진자 수를 기록하면서 남북전쟁 이후 최대의 재난을 지나고 있다.

 

1975년, 작고 가난한 나라 베트남에서 수많은 젊은이의 목숨과 국력의 소모는 물론, 국론의 분열이라는 손실만 안고 패전의 오명을 감수한 것처럼, 지금은 팬데믹 바이러스에 꼼짝 못 하고 수많은 인명을 잃어가며 더 많은 사람들이 앓아누워 고통받으며 국론의 분열과 패배감으로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여기서 40년을 살아왔어도 나의 사고의 동력은 어릴 때 받은 교육으로 작동되는데, 이 황당한 상황을 이해하고, 스스로에게 설명해 보려고 애써왔다. 뉴욕에서 들풀처럼 확진자들이 쏟아져 나오던 팬데믹 초기, 비교적 감염 숫자가 낮던 캘리포니아에 사는 친구가, 코비드는 가난한 빈민가에서나 퍼지는 거 아니냐고 하던 말이, 감염병을 바라보던 대부분 지구인의 시선이었는지도 모른다.

 

1918년에 지구를 덥쳐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를(확실한 통계는 어렵지만 1천만 명가량이라고 한다) 기록한 스페인독감이 언론에 의해 조명되기 시작한 것도 스페인의 왕녀가 감염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1차대전 중이라서 군사들의 사기에 영향을 준다며 언론통제로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다가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스페인에서 터트려서 스페인독감이라는, 스페인 입장에선 억울한 이름이 붙여진 거다. 3.1 운동이 일어난 즈음엔 한반도에도 스페인독감이 창궐 중이었다는데, '대한독립만세!'를 불렀을 무렵에도 사회적 거리두기는 없었을 것이고, 마스크는 당연히 안썼을 거라는 상상도 해본다.

 

코비드도 사회경제적인 수준과 관계없이 모든 계층을 공격하고 있으나 미국의 사망자 통계를 보면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취약한 집단이 더 많은 희생자들을 내고 있음이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강대국, 농사지을 수 있는 옥토가 너무 많아서 그 땅에 농사 안 지으면 나라에서 고맙다며 돈 주는 나라, 중동이 석유로 으스대면 셰일가스 퍼 올려서 묵사발 만들 수 있는 나라, 우주를 무대로 하는 과학기술과 지구를 다 파괴해 버릴만한 무력을 가진 나라 미국이,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로 인해 휘청이고 있다.

 

서방 세계의 눈으로는 한국이란 나라는 특이한 결집력을 지닌 나라다. 전체주의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정서를 다분히 지닌 나라로, 함께 '으샤으샤!'가 당연한 한국 국민들은 감염병 퇴치를 위해 감염자들을 추적해가는 동안 침해할 수도 있는 인권은 좀 희생해도 그다지 반감이 없고, 황사로 인해 열악한 환경을 겪느라고 마스크가 생활화되어 있었다. 이렇게 대한민국은 팬데믹 대처의 우등생이 될 수 있는 여건이 준비돼 있었던 것에 반해 미국은 그렇지 못했다. 미국을 세우고 유지해온 기본적인 질서와 정서와 문화는 감염병의 확산에 맞설 수 있는 많은 방법에 정면으로 벽이 되어 버티고 서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난 수십 년간 미국 의료 시스템에서 중점적으로 노력하던 환자 병력의 비밀보장이다. 본인의 허락 없이는 가족에게도 공개할 수 없는 환자의 병력을 보호하면서 감염자들을 추적해 나갈 방법이 없다. 그런 거 다 필요 없으니 어떡하든 환자 추적 좀 해달라고 아우성치는 목소리도 없다. 피 흘려 얻고 지켜온 자유, 인권을 누리는 데는 대가가 있기 때문인 것을 누구나 인정하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바이러스 들풀이 훨훨 타오를 때, 이탈리아처럼 국민 이동 금지령을 내릴 만도 한데, 여기선 그랬다간 주민들이 총을 들고 나설 거다. 정조대왕이 조선을 다스리던 시절인 1789년 반포된 후, 개헌된 적이 없는 미국 헌법에 국민들이 무기를 들 권리가 보장되어있다는 것은 타국인들에겐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다. 지금이 18세기 황야의 무법천지도 아닌데도 이 법은 여전히 존재한다.

 

미국을 여행하다 보면 너무나 넓은 땅에서 띄엄띄엄 사는 주민들을 보게 되고, 그곳에서 경찰이 나를 보호해주길 바랄 수는 없는 환경임을 인정하게 되고, 정부가 무기를 들고 있는 국민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국가의 권력으로부터도 인권을 사수하기 위한 방어 장치 역할도 한다는 것도 이해하게 된다. 요즘도 총기 규제에 대한 공방은 있어도 총기를 아예 못 들게 하자고 말하는 목소리는 없다. 미국의 국민들에게, 건국 초기부터 존재한 헌법에 도전하는 것은 옵션이 아닌 거다.

 

감염병의 확산에 결정적인 방어가 되어주는 마스크 착용도 이곳에선 아직도 논란의 쟁점이다. 오랜 세월 깊이 뿌리박힌 문화적, 정서적인 장벽은 이성으로 극복하기 힘든 장애물이다. 사람들은 이성으로 설득하기보다 감성으로 설득하는 것이 훨씬 쉬운 존재들이라는 학설의 좋은 예를 요즘에서야 경험하고 있다. 손에 무기를 들고 있지 않다는 증거로 악수를 한다는 서양인들이, 얼굴을 가리고 맞대면하는 것은 곧바로 심적인 안전을 위협받게 되는 상황이 된다.

 

마스크 착용으로 인해 호흡이 불편한 것도, 쾌적하지 않은 환경을 견디며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에겐 견디기 매우 힘든 고난이다. 유럽사람들이 미국인들을 우습게 보는 이유 중 하나가, 에너지에 대한 절약 정신이 아예 없는 사람들이란 것도 들어간다. 여름에 유럽을 여행해보면 에어컨 팡팡 틀은 식당은 거의 없고, 뙤약볕 아래 야외에서 식사하는데, 미국의 쾌적한 환경에 익숙해진 우리에게도 적잖이 불편했으나, 불편을 견디며 자연과 상생해가는 유럽인들의 강인함이 우월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대중들이 마스크를 쓸 일이 없던 이 나라에서 없던 마스크가 갑자기 몇억 개 생겨날 수도 없는데 정부에서 팬데믹 초기대응으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할 수 없는 입장이기도 했다. 마스크 안 써도 된다는 초기 지침은, 물량확보 안된 정부와, 마스크 같은 건 쓰고 싶지 않은 국민들에겐 모두 받아들이기에 편한 방향이었던 거다. 그러나 코비드가 공기전염이라는 학설에 무게가 실려 가기 시작하고 마스크 착용을 피할 수 없는 시점으로 가니, 안 그래도 쓰기 싫은 국민들에게 마스크 쓰라고 하니, 일관성 잃은 정부의 지침이 힘을 잃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인간의 본성인 ‘사회성’을 억누르며 지낸 시간이 길게 늘어져 버린 시점에서, 돌아버리느니 코비드에 걸려도 일상으로 돌아가야겠다며 뛰쳐나오는 젊은이들이 요사이 미국 확진자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마스크도 안 쓰려고 버티고, 일시적인 고립을 못 참고 튀어나오는 사람들이 한심하기도 했으나, 요즘엔, 그렇게도 쓰기 싫던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이 엄청난 재난의 무게가 느껴져서 가슴이 아프고, 오죽했으면 못 참고 튀어나왔나 싶어서 철딱서니 없는 청춘들이 안쓰럽기도 하다.

 

암도 정복 중이고, 에이즈도 정복하고, 많은 난치병도 치료한 현대의학이 조만간 백신을 만들고 팬데믹을 극복해낼 것을 의심할 사람들은 없다. 꽃들이 눈부시고 녹음이 흐드러진 아름다운 자연과, 아직은 공급에 문제가 없어 보이는 풍족한 식량과 에어컨으로 안락하기 짝이 없는 가운데 바이러스가 퍼트린 정서적, 정신적인 고통의 재난으로 지금 미국은 끙끙 앓고 있다. 사람들의 동기부여를 앗아가는 공산주의에 비하여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자본주의 자유경제에도 인간의 탐욕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구멍이 많아서 문제점투성이듯이, 피 흘려 싸워 획득해온 인권과 자유와 안락한 환경은 팬데믹을 이겨내는데 가장 큰 장애로 존재하고 있다.

 

‘In God we trust’라고 쓰인 화폐가 통용되는 미국이, 아픔을 딛고 일어나 더 건강하고 겸손하고 반듯한 나라로 회복될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 열심히 마스크를 쓰고 열심히 집콕하면서 나의 입양조국에 애국하며 이 재난을 견디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