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성 칼럼]워싱턴發 종이비행기

셰난도아 국립공원

필자 김은성은 79년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이민갔다. 메릴랜드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80년부터 96년까지 미국 소아과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다. 97년부터 병원 관리직과 소아산부인과 이사로 근무하다가 퇴직했다.

▲존 덴버의 컨츄리 음악 'Take me home country road' 가사 첫 부분에 나오는 가사  '...블루리즈 마운틴 셰난도아 리버..."에도 셰난도아 국립공원의 이름이 등장한다.

 

미국엔 수백 개의 국립공원이 있다.  사진 한 장만으로도 동공이 확 열릴만한 진기한 풍광으로 인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소들이 많지만, 장거리를 불사하고 가볼 만하다기보다는, 자연환경 보존의 목적으로 지정되어 보호, 관리하는 곳들도 있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DC에서 자동차로 두세 시간 떨어진 버지니아주, 애팔래치아 산맥 가운데 블루리지 마운트에 위치한 셰난도아는, 사진 한 장으로 먼곳의 방문객을 불러들일 풍광은 없는 국립공원이다. 미국의 자연이라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장엄한 대자연의 그랜드캐니언, 옐로스토운, 브라이스캐니언 등을, 예전에 서부에서부터 동부로 자동차 타고 이사 오면서 이미 섭렵한 우리에게도, 셰난도아는 경관이 대단할 것은 없는 수준이다.

 

가볼 만한 곳이 너무 많던, 신묘막측한 풍광이 펼쳐진 칼리포니아에 살다가 이곳으로 이주해온 이후엔, 타지에서 손님이 오셔도 마땅히 구경시켜 드릴만한 곳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10여 년 전 쯤, 한국에서 오신 손님들을 모시고 아쉬운 대로 다시 찾은 셰난도아에서, 지리산을 닮은 듯 느껴지는 그곳과 다시 깊숙이 만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미대륙의 동부를 가로지르는 애팔래치아 산맥은 남쪽에서는 조지아주에서 시작하여 북쪽으로는 메인주까지 뻗어있다.  2천여 마일 산맥 중에 산등성이를 타고 가는 100마일 정도의 드라이브 코스인 스카이라인 주변만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백두대간처럼 산맥을 따라 걷는 애팔래치안 트레일은 평균 6개월이 걸리는데 많은 산악인들의 버킷리스트이다.  3월에 남쪽에서 시작하여 9월에 메인주에서 끝나는 여정이라, 5, 6월쯤엔 그 여정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셰난도아에서 많이 만나게 된다. 


▲셰난도아 국립공원 내에 있는 캠핑장.

 

▲온몸과 영으로 자연과 만나 그 품에 안겨도 될 것 같은 귀한 경험을 하게 해준

셰난도아는 유명하다는 미국의 국립공원들을 다 가본 필자가 가장 사랑하는 곳이다.


셰난도아는 현지 인디언들의 언어로는 '별들의 아름다운 딸'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곳은 깊은 산속까지 사람들이 농사짓고 사는 지리산과 닮은 환경이어서, 셰난도아도 인디언들은 물론 백인들도 정착하여 농사짓고 살던 곳이었다. 1920년대부터 서부에 국립공원들이 치우쳐있는 듯하니 동부에도 그럴듯한 국립공원을 조성하자는 중론에서 태동되어, 수도인 워싱턴 DC에 근접한 입지 조건으로 인하여 국립공원으로 조성된 거다. 지금은 다른 국립공원들과 마찬가지로 아무도 거주하고 있지 않으나,  등산로를 걷다 보면 초기 정착민들이 살던 흔적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10여 년 전, 문득 셰난도아가 나에게 깊은 감동으로 다가온 이유는 확실히 설명되지 않는다. 100마일 능선을 타고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며 드라이브하다가 숲속에 자리한 소박한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방문으론 여러 번 왔었으나 특별한 감동은 없었다. 서부의 산들처럼 우람하거나 험준하지 않은, 최고봉이 1,200미터 정도의 부드러운 능선과 사이사이 숨어있는 계곡들에서, 한국의 가족들과 그즈음 여러 번 방문한 지리산을 (천왕봉1900미터라니 지리산이 훨씬 높긴 하다) 보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고향에서 그리운 가족들과 함께 했던 시간의 포근한 기억을 소환해 낸 것일지도 모른다. 지리산을 등반해 보진 못했으나, 그 부드럽고 깊은 산세가 신비하다고 느꼈고, 그 숲속엔 산신령님이 살고 있을 것처럼 보였던 기억이 겹쳐진 것 같다. 서부의 장엄하고 험준한 자연이, 범접할 수 없는 두려움을 안겨준 것과 비교하여, 나를 따뜻하게 품어줄 거 같은 포근함이, 시각적으로 자극적이지 않게 나른하게 누워있는 듯한 풍광이, 50줄이던 나의 감성과 맞아떨어진 것 같기도 하다.


그 이후, 한 주간의 힘든 직장 생활을 마치는 금요일 퇴근길엔 셰난도아로 달려가서 텐트 치고 하루나 이틀 밤을 지내고 오곤 했다. 젊은 날엔 숙박비를 아끼려고 텐트를 쳤으나, 50대에 선택한 자연 가운데의 노숙은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행복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물질은 많지 않다는 사실의 확인과, 자연 가운데에서 느끼는 영적인 충만함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었다.


자동차로만 수박 겉핥기로 다녀가던 때와는 달리, 그곳의 캠프장에서 숙박하며 깊숙히 즐기게 된 셰난도아는 직장과 일상에서의 고단함에 엄청난 치유를 선사해주었다. 스카이라인 주변에서 시작하는 트레일 코스는 거의 다 섭렵하면서 체력도 좋아졌을 뿐 아니라, 철 따라 피고 지는 그곳의 야생화의 이름들도 알게 되었고, 19세기엔 산삼이 지천이라 몇 톤씩 청나라로 수출했다는, 생태계의 역사도 배웠다.  현재는 국립공원에선 아무 것도 체취할 수 없고, 청나라로 싹 다 팔려나간 산삼은 휘귀 식물이 되어,  그 당시처럼 풀같이 널려있지 않다. 

 

▲몬타나주의 Glacier national park는 공원의 일부는 캐나다 영토인데, 숲속에 숨어있는 듯 소박한 호텔만 보다가 캐나다 쪽으로는 눈에 확 들어오는 초록 지붕, 빨간 색 벽으로 높은 언덕에 지어진 화려하고 아름다운 호텔이 언덕 위에 우뚝 서 있어서 깜짝 놀란 기억이 있다.

 

5월쯤 산수유가 피며 봄이 시작되면 캠프장이 문을 열고, 뜨거운 워싱턴의 여름을 피하여 셰난도아로 오면 항상 쾌적한 날씨가 맞아주어, 10월 말에 캠프장이 문 닫을 때까지 우리의 주말 별장이 되어준다. 캠프장의 청량한 아침 공기 가운데 셰난도아의 샘물로 만들어 마시는 커피 한잔만으로도 그곳으로 달려갈 가치가 충분하다고 느끼곤 한다.  나무 등걸에 매달은 해먹에 누워, 공중부양된 상태로 바라본 나뭇잎 사이의 파란 하늘빛이 이생의 삶 가운데 누릴 수 있는 가장 화려한 호사라는 생각도 해본다. 

 

국립공원 중 가장 유명한 옐로스톤 캠프장에서도 숙박해 봤으나 하루 사이에도 사계절의 날씨가 오가며 변덕을 부리는 터라 셰난도아같은 안락하고 쾌적한 경험을 주지 못했다. 세시봉 가수 이장희 씨가 수없이 가봤다고 한 네바다주의 데스밸리 국립공원에서는 사막기후라 밤 기온이 많이 내려가지 않아도 건조한 공기로 인해 한기가 뼛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경험하고 나니, 셰난도아의 자연을 더욱 사랑하게 됐다.  텐트에서 자면서 집에서보다 숙면하게 해주는 쾌적하고 안락한 자연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타지에서 온 손님들도 셰난도아 캠프로 모시면, 모두 행복해하며 오래오래 함께 음미하는 추억을 안겨주곤 한다.


최근에는 천적이 없는 흑곰의 개체 수가 너무 늘어나서 캠프장에 출몰하는 것은 물론, 숲을 걸을 때 종종 덩치 큰 애들과 눈을 마추지게 되면, 인간을 공격한 기록이 없다는 데도 불구하고 섬뜩해지기도 한다.  지리산에 방사한 반달곰들이 셰난도아 흑곰처럼 천여 마리가 될 날도 있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1930년대 미국을 덮친 대공황을 극복하는 뉴딜 정책의 일자리 창출 일환으로 루즈벨트 대통령이 만든 젊은 청년들의 조직, Civilian Conservation Corps가 그곳에서 합숙하며, 공부하며, 나랏돈 받으며, 월급은 가족들에게 송금하며, 100마일 산길, sky line drive를 닦은 역사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셰난도아 국립공원은, 대공황의 산물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정작 셰난도아라는 지역을 유명하게 만든 사람은, 대공황에 대한 책임을 뒤집어쓴 후버 대통령이었다.

 

후버 대통령은  셰난도아 숲속에 소박한 별장을 지어놓고 여름에는 그곳으로 내려와서 지냈다. 에어컨이 없는 뜨거운 워싱턴 DC의 여름은 일하기 힘들었을 것 같고, 참모진을 시원한 곳으로 데려와서 나랏일을 했으면 오히려 효율적이었을 것 같은데, 기자들을 싫어했던 후버는 취재에 불친절했다고 한다. 시골까지 따라 내려와서 취재하려는 기자들은, 국가적 위기 가운데 힘들게 일하는 대통령에게 방해만 되는 귀찮은 존재들이라고 여겨져서였을까, 그들에게 자상하게 대해주지 않은 후버는, 무더위를 피해 자연으로 와서 더욱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보도 되는 대신, 나라가 어려운데 숲속에서 낚시만 하고 있는 듯 보도되었다고 한다.


 
▲후버대통령과 그의 별장, Rapidan camp.

 

후버는 스탠포드에서 공부한 수재이며 성공한 엔지니어, 비지니스맨일 뿐 아니라 정부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은 명망있는 사람이었으나, 그의 재임기간 중 대공황이 시작된 것이었다. 대부분의 현직 대통령들이 재선에 성공해온 것과 달리,  후버는 온갖 비난을 다 받으며 물러나 가장 인기없는 대통령으로 남을 뻔했으나, 토목공학의 기념비적인 역사로 남은 후버댐을 완성시킨 것을 비롯한 업적과 함께 최근에는 재평가받고 있다고 한다. 오늘도 그 당시의 가구와 함께 보존되어 숲속에 남아있는 후버 대통령의 별장은, Rapidan camp라는 이름 대신 White house에 대비하여 Brown house로 불리고 있다. 


미국의 국립공원 안에는 자연을 거스르며 튀는 색상이나 디자인으로 된 건물은 없다. 자연 속에 숨어있어서, 잘 찾아보아야 보이는 디자인, 영어로 rustic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건물들을 짓는다. 몬타나주의 Glacier national park는 공원의 일부는 캐나다 영토인데, 숲속에 숨어있는 듯 소박한 호텔들만 보다가 캐나다 쪽으로 가니 눈에 확 들어오는 초록 지붕, 빨간 색 벽으로 높은 언덕에 지어진 화려하고 아름다운 호텔이 언덕 위에 우뚝 서 있어서 깜짝 놀란 기억이 있다.

 

옆집인 캐나다는 신대륙에 있으나 유럽의 정서에 더 가깝다는 것을 여러 번 느끼게 된 경험 중 하나이다. 후버의 별장도 거의 초라하다고 해야 맞을듯한 소박함으로 여러 채의 작은 통나무집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의 삶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박물관으로 보존되고 있다. 

 

엄청나고 신기한 경관은 없으나, 온몸과 영으로 자연과 만나 그 품에 안겨도 될 것 같은 귀한 경험을 하게 해준 셰난도아는, 유명하다는 미국의 국립공원들을 다 가본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