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인의 일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재미있게 여기는 사람들 중 몇몇은 이런 말을 하곤 한다.
'나는 내 일을 하다가 죽고 싶다'
나도 그것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 중 하나이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보면 은근히 부러워지기도 한다.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의 거대한 산맥 중 하나였던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지난 1월 25일, 베트남 호치민에서 민주평통 아태지역회의 운영위원회 참석이라는 자신의 일을 하다 잠이 들었다.
고(故) 이해찬 수석부의장의 삶은 1970년대 유신체제에 맞선 학생운동에서 시작되었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한 그는 1974년 민청학련 사건,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등에 연루되어 투옥되는 등 젊은 시절 대부분을 감옥과 투쟁의 현장에서 보냈다. 이러한 고난 속에서 다져진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은 훗날 그의 정치 인생을 관통하는 단단한 뿌리가 되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그는 제도권 정치에 입문하여 1988년 13대 총선에서 국회에 입성했다. 이때부터 그는 단순히 목소리를 내는 투사가 아닌, 현실 정치에서 민주주의 가치를 실현하는 정책 전문가이자 전략가로 거듭났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신임을 얻으며 정권 창출의 핵심 역할을 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을 이끈 '친노(親盧) 좌장'으로 불리며 '킹메이커'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는 늘 한발 앞서 미래를 내다봤고,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도 원칙을 고수하며 정책을 추진했다. 특히 세종시 건설을 주도한 것은 그의 대표적인 업적으로 꼽힌다.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대의를 위해 정파를 초월한 집념을 보였으며, 이는 오늘날 세종시가 대한민국의 행정 중심복합도시로 자리매김하는 토대가 되었다.
또한, 민주당 대표 시절에는 당의 안정과 단결을 이끌며 정권 재창출의 기반을 다지는 데 주력했다. 문재인, 이재명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민주당의 주요 인사들에게 정치적 멘토 역할을 자처하며 당의 '대부'로서 깊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가 남긴 "정치는 강물과 같다. 고여 있으면 썩는다", "역사는 진보한다. 다만 속도가 더딜 뿐이다', '평화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등의 말을 통해 그가 한 평생 어떤 철학을 가지고 살았는지 알 수 있다.
평생을 민주주의와 국가 발전을 위해 헌신했던 이해찬 수석부의장. 그의 별세 소식에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 전체에서 애도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그가 남긴 발자취가 얼마나 깊고 컸는지를 방증한다.
이제 그는 격동의 현대사를 뒤로하고 영원한 안식에 들어섰다. 그가 꿈꿨던 더 나은 대한민국, 더 평화로운 한반도를 향한 염원은 남아있는 우리들의 몫이 되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 포천좋은신문 문석완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