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드랑이 성경
나는 내 겨드랑이를 믿는다
언젠가는 날개가 돋아날 내 겨드랑이를 믿는다
병아리가 그랬던 것처럼 꺼병이가 그랬던 것처럼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아나려면 빈 팔을 마구 저어야 한다
자꾸만 빈 팔을 저어 허공에 동그라미를 그리다 보면
언젠가 내 겨드랑이에는 날개가 돋아나겠지
그날이 내일일 수도 있고 10년 있다 돋아날 수도 있다
어쩌면 내가 죽어서야 관을 박차고 날아오를 수도 있을 거야
그래도 나는 내 겨드랑이를 믿는다
그래서 오늘도 할머니의 짐을 들어드리고
외국인을 만나면 짧은 영어로 길을 가르쳐준다
마치 여행 왔다가 돈이 떨어진 양 일본말을 써놓고 구걸하는 청년이
수작임을 뻔히 알면서도 만 원짜리 한 장을 건네며 밥을 사 먹으라 한다
병아리가 물 한 모금 먹고 하늘을 쳐다보는 이유는 날고 싶어서일 거야
나도 하늘을 날고 싶어 자주 하늘을 본다
땀이 날 때면 혹시 날개가 돋는 건 아닌가
겨드랑이를 들여다보면 곧 돋아날 것만 같은 날개의 기미가 보인다
나는 내 겨드랑이를 성경 말씀처럼 믿는다
그래서 겨드랑이에 돋아날 그 아름다운 날개를 믿으며
겨드랑이 밑에 감춰진 천사의 날개를 위해 팔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오늘도 나는 마음을 나누고 물질을 나누며 사람의 향기를 나누어
마침내 천사를 꿈꾼다
뭐, 시인은 이미 천사와 동급일 테지만
소금 반도체
문인들의 번개모임에 나갔는데
한 원로 작가께서 저서 두 권과 소금 한 봉지를 주신다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건네니
소금을 선물로 주는 분이 다 있느냐며 신기해한다
술이 깬 새벽 물 먹으러 거실에 나왔다가
식탁 위에 올려진 소금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소금은 파도의 기억을 온몸에 새기고
태양의 뜨거움에 밑줄을 긋고 있었다
분수로 밀어 올린 혹등고래의 산통産痛과
태풍을 잠재운 심연의 슬기가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소금은 하루에도 수만 번을 철썩이며
뭍을 동경하던 파도의 소원이었을까
멸치며 정어리 고등어의 지느러미에 채인
미세한 파도의 떨림이 알알이 기록되어 있다
주꾸미와 오징어 낙지의 많은 발로 주무르고 매만진
물의 포말이 고스란히 정제돼 고형으로 갇혀 있다
넉가래에 밀리고 밀리며 염전을 구르던 바닷물의 기억을
토씨 하나 빼지 않고 저장한 정육면체의 반도체 칩
어느 방향이든 최선이 되는 저 백색 주사위는
궁핍한 인간을 먹이며 간드러지게 했다
봉지를 찢어 한 알갱이를 입에 넣으니
장화 신은 어부의 발자국이 저벅저벅 내 몸을 훑고 지나간다
해는
해는 연기 없이 타는 줄 아니
낮 동안 그을린 하늘은 까만 밤이 되고
해는 소리 없이 타는 줄 아니
마른하늘에 천둥이 치고
해는 눈물 없이 타는 줄 아니
깊은 슬픔 마침내 소나기 뿌리고
해는 날마다 신나게 타는 줄 아니
시큰둥 타다가 겨울이 되고
해는 스스로 타는 줄 아니
기를 뽑아 때기에 사람들은 늙어가고
해는 막무가내 타는 줄 아니
조심조심 불 피워 새싹을 틔우고

김순진 작가
● 1961년 경기도 포천 출생,
포천일고 학생회장 역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수료
● 고려대학교 평생교육원 시창작과정 강사,
계간 <스토리문학> 발행인,
도서출판 문학공원 대표,
한국스토리문인협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이사,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
한국작가교수회 상임이사,
포천문인협회 감사
● 수필춘추문학대상, 박건호문학상, 포천문학대상,
자랑스러운한국인대상, 자랑스러운인물대상 등 수상
● 시집 『광대이야기』, 『복어화석』,
『박살이 나도 좋을 청춘이여』, 『더듬이주식회사』
장편소설 『너, 별똥별 먹어봤니』,
단편소설집 『윌리엄 해밀턴 쇼』, 『대종천의 비밀』
수필집 『리어카 한 대』, 『껌을 나눠주던 여인』, 『천만에 만만만에 콩떡』
장편동화 『태양을 삼킨 고래』, 『정의로운 김성대』
이론서 『자아5, 희망5의 적절한 등식』, 『좋은 시를 쓰려면』,
『효과적인 시창작법』, 『즐기며 받아쓰는 시창작법』
문인탐방기 『시문학파를 만나다』
가곡작시악보집 『깻잎반찬』
편저 『애인』 등 저서 20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