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7월, 한국전쟁은 정전 협정을 체결하여 휴전하고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1950년 시작된 한국전쟁은 종전되지도 못하고 아직도 정전 중인 것이다. 세계 역사상 이러한 전쟁이 있는지가 의문이다.
태어난 나라를 모국이라 말한다. 해외동포들은 모국을 어머니에 비유하며 특히 그리워한다. 육신을 받은 어머니와 역사와 문화, 지리, 환경, 교육의 영향을 받은 모국을 동격으로 여기는 것은 일리가 있는 생각이다.
그래서 어느 수필가는 일제 치하로부터 어렵게 벗어나 걸음마도 하기 전에 한국전쟁을 겪으며 상처투성이가 된 조국, 대한민국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나의 어머니는 문둥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어머니를 클레오파트라와 바꾸지 않겠습니다. 문둥이의 조국! 그러나 내게는 어느 극락정토보다도 더 그리운 어머니의 품입니다.“ 그는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향토는 내 종교였다. 목숨이 다할 때까지 내 가슴에 지닐, 괴로우나 그러나 모면치 못할 십자가입니다.“
8월이 되면 어머니와 같은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난 광복절,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국치일이 함께 있어 깊은 상념에 젖고, 그와 관련한 역사와 서사가 생각난다. 만해 한용훈 시인은 대한제국이 망하여 일제강점기가 시작한 날이고 자신의 생일인 8월 29일, ‘님의 침묵’이라는 시를 완성했다. 그는 그 시에서 잃어버린 대한제국을 ‘님’이라 칭하며 그 슬픔을 이렇게 표현한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만은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한용훈’ 시인이 일제 국권 침탈을 슬퍼하며 쓴 ‘님의 침묵’이 발표된 지 5년 후, 소설 ‘상록수’작가 심훈은 해방이 될 그날을 염원하는 시를 쓴다. 시에서 그는 해방의 그 날을 위해서는 목숨마저 버리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이며 이렇게 절규한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또 뒤집혀 용솟음 그날이
이 목숨이 끊치기 전에 와 주기만 할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올리오리다.
어렵게 국권을 되찾은 우리나라는 한국전쟁을 겪은 후, 많은 시련과 우여곡절 끝에 현재와 같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나라가 되었다. 20세기 후반부, 미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의 지원을 받던 절대 빈국 대한민국이 이제 세계 여러 나라를 지원하는 나라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러나 격화되는 남북 간의 대립, 양극화로 인한 국내 정치 사회 분야의 갈등과 국론 분열, 높아가는 국제 정치 경제 외교의 위기 상황과 급격한 변화 등이 계속 큰 시련으로 다가온다. 과거와 현재, 미래와 관련, 생각이 많아지고 시름이 깊어만 간다. 몇 가지 관점에서 우리를 뒤돌아보고, 간과하고 있는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강한 생명력의 우리나라, 그 뿌리는 무엇일까
지정학적으로 한반도는 동아시아 대륙에서 태평양으로, 태평양에서 유라시아 대륙으로 진출하는 데에 교량 역할을 하는 중요한 거점이다. 그래서 우리 민족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여 세운 나라는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대륙과 해양의 세력으로부터 끊임없이 생존의 위협을 받으며 그들과 전쟁을 벌여왔다.
특히 대륙의 북방 세력인 한나라, 수나라, 당나라, 흉노, 거란, 금나라,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 중국, 소련 등의 직간접적인 침략은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거나 굴종을 강요하였다. 남쪽의 해양 세력인 왜구, 일본은 수시로 한반도를 교량으로 하여 대륙 진출을 노리거나 노략질을 일삼았다.
근거가 있는지는 확인하기 어려우나 우리가 외침을 당한 게 모두 900여 회에 달하는데, 이 숫자는 2년에 한 번꼴이라고 한다. 이러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제 국권 침탈 35년, 병자호란의 치욕적인 굴종을 제외하고는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2,000여 년간 강고한 독립과 자존의 역사를 면면하게 이어왔다.
학자들에 따라 여러 의견이 있으나 그 힘은, 공통된 의견의 첫째는 우리 민족정신 가운데에서 끈기, 끈질김, 인내심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본다. 두 번째로 슬기, 지혜를 꼽는 이가 많다. 그리고 또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절대 놓지 않는 집요함으로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라는 속담에서 찾는다.
우리 역사 속에서 난민, 유랑민이 된 동포들
광주광역시 체험의 거리에서 한 연극이 공연되고 있다.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당한 고려인 이야기이다. 갑작스레 강제 이주 명령을 받은 배우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하루. 하루 안에 가방 하나만을 챙겨 어딘지 모를 곳으로 떠나야 하는데….
개인의 선택이 아닌 국가의 정치 사회적 폭력으로 갑자기 뒤바뀐 삶을 살아가지만, 불안함과 초조 속에서도 꿋꿋하고 강인하게 살아내는 연극 속 배우들의 모습에서 100여 년 전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이주당한 고려인의 역경이 겹쳐 보인다. 연극은 100년이라는 시간 동안, 순환하고 반복되는 이주의 역사와 개인의 삶을 세밀하게 풀어내고 있다.
아아, 잊고 있었다. 난민은 우크라이나 난민, 동티모르의 난민 등과 같은 비운의 일부 외국에서나 발생하는 줄 알았으나, 과거 우리 역사 속에서도 엄청난 수의 동족이 세계 속의 난민, 천대받는 국제 유랑민이 되었다.
20-21세기, 대한제국 말기에서 일본의 국권 침탈기에 수많은 동포는 일본의 핍박을 피해서, 독립운동을 위해서, 빈곤을 탈피하기 위해서, 모국을 떠나야만 하였다. 난민이 되어 일본으로 만주로 연해주로 하와이로 그리고 거기서 다시 쿠바로 멕시코로 중앙아시아로 사할린으로 떠돌았다. 국제 사회의 천대, 특정 국가의 정치적 박해와 폭력 등은 가혹하였다.
국권을 찾고 나라를 세워서 강인한 생명력을 갖고 시련을 극복하며 면면한 역사를 이어오는 사이에 난민이 된 우리 동포들과 그의 후손들은 어찌 되었을까? 그들은 마치 회귀본능의 연어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천형을 받은 것과 같이 절절하게 그리운 모국에 갈 수 없는 비극의 세월 100여 년을 겪어낸 것이다.
대한제국 멸망 원인과 경과를 적확하게 알아야 한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대한제국의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기에 대륙의 열강들과 해양에서 대륙으로 진출하려는 세력이 각축을 벌이고 있었다. 당시 대한제국은 형편없는 리더십의 황제와 관료, 탐관오리들이 권력을 틀어쥐고 정쟁만 일삼고 있어 국력은 허약하였다. 자주독립 의식, 주체 의식은 없었으며 국론은 분열될 대로 분열되어 있었다.
고종은 우리 동학농민운동 진압을 일본군과 청나라군에 요청하였고, 세자와 함께 경복궁을 떠나 러시아 공사관에 도피해 일 년 이상 동안 머물렀다. ‘아관파천’이라는 치욕적인 정치 상황이었다. 일본은 대륙 진출과 대한제국 장악을 위한 전쟁인 소위 청일 전쟁과 러시아와의 전쟁에서도 승리하였다. 이제 나머지 열강인 미국, 영국, 프랑스의 묵인만 있으면 한반도 및 대륙으로의 진출로를 장악할 수 있었다. 결국 미국은 일본의 손을 들어주었다.
가쓰라-태프트 밀약 또는 가쓰라-태프트 협정은 미국의 필리핀에 대한 지배권과 일본 제국의 대한제국에 대한 지배권을 상호 승인하는 문제를 놓고 1905년 7월, 당시 미국 전쟁부 장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와 일본 제국 내각총리대신 가쓰라 다로가 도쿄에서 회담하고, 극비에 상호 승인 각서(memorandum)를 교환하였다. 미국이 일본의 대한제국 지배권을 1905년에 묵인하자, 일본은 거칠 것이 없었다. 을사늑약과 경술국치가 일사천리로 진행되며 대한제국은 멸망하고 한반도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치하에 들어간다.
한반도의 분단과 끝나지 않은 한국전쟁
1945년 초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패망이 전망되던 때에 미국, 영국, 소련의 지도자는 얄타에 모여 일본 패망 시에 한반도의 독립을 미루고 신탁통치를 할 것을 결정하여 한반도 분단의 근거를 제공한다. 일제 패망 후 한반도가 38선을 경계로 미소 양국에 의해 분할, 점령되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당시 스탈린은 일본과의 전쟁 참여를 대가로 1905년에 러일전쟁에서 상실했던 영토인 남사할린 등을 요구했고, 당시까지만 해도 원자폭탄이 개발되기 전이라 소련의 협력이 절실했던 미국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 회담에 따라 미국과 소련은 일본 패망 후 한반도 북위 38도를 경계로 군대를 진주, 각각의 군사령관을 군정 책임자로 한 신탁통치가 3년 동안 실시되었다. 그리고 한반도에서는 남북에 이념을 달리하는 정부가 각각 수립된다. 대만민국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다.
그리고 미국은 신탁통치를 하던 미군이 철수한 뒤 1950년 1월에 공산국에 대한 극동 방어선 ‘에치슨 라인’에서 대한민국을 제외한다. 직후, 소련의 스탈린과 중공의 모택동은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인 1월~5월 사이에 김일성의 남침을 허용(?)하고, 지원을 약속한다. 6월 25일 한국전쟁이 일어난다. 그리고 1953년, 7월 미국과 소련, 북한은 한국전쟁의 정전 협정을 체결하여 전쟁을 휴전하며 멈추고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1950년 시작된 한국전쟁은 종전되지도 못하고 아직도 정전 중인 것이다. 세계 역사상 이러한 전쟁이 있는지가 의문이다.
필자가 이글에서 20-21세기 한반도를 둘러싼 주요한 국제 외교 상황을 소상히 밝히는 이유는 아직도 우리를 둘러싼 세계 열강들의 각축은 끝나지 않고 있으며 그로 인한 우리 위기가 계속되고 있고, 이를 적확히 인식하여 대비하지 않으면 역사의 비극은 되풀이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서재원 교수
● 창수초등학교, 포천중, 포천일고, 서울대 졸업
● 한국방송 KBS 편성국장, 편성센터장(편성책임자)
● 차의과학대학교 교양교육원장, 부총장
● 포천중·일고 총동문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