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 문학산책

서영석 시인의 '탈주 1'외 3편

포천문인협회장

 

탈주‧1 

 

도마뱀은

삶의 언저리에서 실낱같은 구멍을

빠져나가기 위해서 자해를 하며

스스로 꼬리를 자르고

 

시간의 덫 안에

자신의 일부를 저당 잡히고

사유思惟의 경계를 넘어

자유를 차용한다

 

나는 기억의 꼬리를 지우고

아픈 시간을 잘라서

가슴속 저편에 묻고

새로운 시간을 키운다

 

도마뱀은 속박의 시간을 자르고

나는 어두운 길목과 아픔을 자른다

 

 

 

탈주‧2 

 

네가 나에게로 오기위해서

몇 번의 봄을 다시 시작하고

몇 날의 아침을 맞이했는지

알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새싹을 틔우고

꽃이 피기를 기다리며

마음의 밭에서 영혼의 물을

대고 돌아서기를 얼마나 했는지

 

오솔길을 갈아서 넓히고

동화 같은 집을 지으며

노을이 질 때마다, 마음에

등불을 밝히고 툇마루에 앉아서

 

별빛이 쏟아지는 계곡 아래

네 마음의 언덕을 바라만 보며

산모퉁이를 돌아 나오는

그리움을 미처 알지 못했으니

 

몇 번의 언덕을 더 넘어야

너의 향기를 온전하게 담아서

내 안에서 부는 바람을

붙잡을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가슴을 닫고 빗장을 걸은 채

사십년간 묵혔던 씨 간장처럼

사백년을 발효시킨 증오가 농익어서

꽃잎을 터뜨리고 불길을 걸어 나온

당신에 대한 연민으로

딜레마에 빠져버린 속박의 간절기

 

그리고 가을

 

 

 

그곳에 가면 

 

일백년 피고 진 꽃잎이 별 빛처럼 흐르고

붉게 물들던 너의 얼굴이 그림자가 되어 비추며

호반의 물방개처럼 자맥질하는 은빛 파고에 녹아드는

 

응축된 눈물과 이슬이 맺혀 머무는 곳

그 곳에서 꽃비처럼 살고파라

 

삶의 숨결이 일백 년 동안 머물고 있는

호반의 물길을 따라 점점이 물드는 그리움에

소리 없이 피었다가 지는 한줄기 바람꽃

 

삶의 허리를 묶고 한 뼘의 인연을 바느질로 꿰고 또 꿰어서 온갖 그림자로 얼룩진 필연으로 피고 싶어라 한 생명이 자맥질해서 다음 생으로 넘어가는 곳 그곳에 가면 명성산이 쏟아져 백년의 물결아래에서 파닥인다

 

 

 

아지랑이 

 

어느 날 문득 방금 꿈에서 깬 듯

세상은 안개 속의 섬처럼 보이고

거리를 질주하는 발자국 소리가

메아리처럼 굴절되는 그 길에서

섬광처럼 스쳐가는 그리움이 있으니

 

낯선 거리에 홀로 피는 야생화처럼

 

한없이 멀게만 느껴지는 거리를

스쳐가는 사람들이 따뜻하게 보이며

어디에서 본 듯한 미소가 가득한

거리의 햇살이 유난히 정겹던 날에는

내게서 꿈꾸던 그리움이 포물선을 그리며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로 달려가는

나비 같아라

 

 

서영석(徐榮錫)

- 시인

- 아호 : 녹정(鹿井)

- 세례명 : 요셉

 

- (사)한국문인협회 포천시지부 회장

포천문화원 이사

동농이해조선생 기념사업회 이사

한국문예협회 부매니저

한국문인협회 시분과 회원

문학광장 회원

한국스토리문인협회 회원

포천문화예술인협회 회원

마홀문학 회원

시와창작 동인, 청로 동인, 문학공원 동인

 

- 2011 문학광장 시부문 신인문학상,

경기도문학상 공로상,

경기도의회의장상 문학공로상,

2018 프랑스 칸느시화전 칸느문학상

 

- 2016 한국프랑스 수교 130주년 기념 시화부문 초대작가

 

- 시집 『당신에게 부치는 편지』

『물이 되고 공기가 되고 별이 되리』

『시간의 향기』

『낙원의 입구』 외 다수의 동인지 및 잡지에 작품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