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원 칼럼] 살며 생각하며

정치의 계절에 권력을 생각하다

차의과학대학교 교수, 전 KBS프로듀서/아나운서

 

 

‘출세’라는 말이 있다. 일반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르거나 유명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조선 시대에는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등용되거나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사법고시 정도에 합격하면 출세 가도에 올랐다고 말하곤 했다. 요즘은 사회가 다양해져 출세라는 말이 상징하는 의미가 많이 달라졌다. 아무튼 출세의 길에 들어서면 지위와 권력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런데 요는 이 부수적으로 따라 오는 힘 즉 정치적 힘과 돈의 힘 등을 어떻게 행사하느냐, 예를 들면 투명하고 공정하게 행사하느냐, 효율적으로 행사하느냐 등에 따라 출세자의 미래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지위, 권력이 상승하는 과정에서 바람직한 정체성을 확립하며 정직, 공정, 투명한 행위를 함으로써 주위로부터 신뢰를 얻어 출세 가도를 연착륙시키는 이도 있지만, 반면에 탐욕과 성급함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며 비참하게 추락하는 이도 있다.

 

화무십일홍(열흘 붉은 꽃은 없음. 즉 권력이나 부귀영화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한시 구절)이라는 말이 있다. 현란하고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4월 벚꽃의 행렬을 보면 딱 이 말이 생각난다. 출세나 권력이란 말이 주는 여러 이미지 가운데에서 우선하는 것이 ‘무상함’이 아닌가 한다. 권력을 갖고 있거나 그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항상 가면 쓰고 다가오는 권력이라는 놈의 여러 속성을 잘 파악했으면 싶다. 근 현세사에서 권력자들이 무참하게 추락하는 사례들을 우리는 너무 많이 보아 왔다. 타산지석으로 삼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자신의 능력이든, 타인의 힘이든, 요행이든 아무튼 어렵게 거머쥔 ‘권력’이라는 ‘행운’은 보이지 않는‘불행’이라는 놈의 손을 잡고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인생사 새옹지마(변방에 사는 늙은이의 말이란 뜻으로, 세상일의 좋고 나쁨을 미리 예측할 수 없다는 뜻의 고사성어)라고 했던가! 좋지 않은 어둠의 그림자와 함께 오는 ‘놈의 정체’를 잘 파악해야 한다. 그를 가진 사람은 언행 모두 조심해서 그를 행사해야 한다. 어떤 위치에서 일하건 법과 원칙을 따르는 것은 당연하고, 나아가 사람을 대할 때 진정성을 가져야 한다. 진심을 가지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여야 할 것이다.

큰 권력을 갖고, 여러 역할을 수행하려 바쁜 일상을 지내는 높은 분이, 이익을 취하기 위하여 접근하는 사람들에게 일관성 있게 그렇게 대하기란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고단하고 어려워도 그렇게 해야만 한다. 의무이기 때문이다. 권력이라는 요물단지를 ‘물방울’로 비유하여 필자가 지은 한편의‘시’를 소개하며 그의 속성을 함께 생각해보고 경계하여 본다.

 

물방울

 

강에서 바다에서 엄청난 힘을 얻어

단숨에 하늘로 비상해 구름이 되는 너

얼마나 힘들고 두려웠을까?

 

그런데 넌 구름으로 있을 때가 제일 고단해

바람에 쫓겨 동서남북 이동하고

새털구름 양떼구름 뭉게구름 비구름으로

모양을 바꾸기도 하지

 

하늘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부드러움과

세상을 떨게 하는 난폭함을 가진

자유로운 권능 그건 무상한 거야

 

내가 너라면, 난

작은 나무에서 겨울 지내고

내년 봄, 하얀 목련화로 피어날 거야

 

권력이란 요물은 아름답게 포장되어 많은 사람에게 기쁨과 은혜를 준다. 반면에 이면의 폭력성, 잔혹성으로 깊은 피해와 상처를 줄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치유될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아 다시 치명적인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에 유념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전역이 정치 전선으로 변모한 양 혼란하다. 민생도 사라지고, 경제도 사라지고, 문화도 사라지고, 인정도 사라지고 온 세상이 권력 쟁탈을 향한 이전투구의 살벌한 현장이 되어버린 듯하다. 섬뜩한 전쟁 용어들이 난무하고 있다. 벌써부터 2024년 4월 총선거전의 서막이 올라, 중앙.지방 막론하고 권력을 향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정치의 계절, 권력을 향한 무한 질주의 시대에 그 속성을 곱씹어 본다.

 

권력이 함께 하는 높은 지위나 자리는 그것을 감당할 만한 능력과 됨됨이를 가진 자에게만 적합한 것이다. 그래서 겸양지덕을 가진 조선 시대의 선비들 가운데에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음에도 사양하고, 초야에 묻혀 후학을 양성하거나 학문에 전념하는 분이 많았다. 권력의 근처에 너무 가까이 있으면 그로부터 화를 당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어 일부러 그랬을 것이다. 조선 시대 선비의 덕목 가운데 안분지족(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아는 모습. 선비의 절제할 줄 아는 태도를 나타내는 표현의 한자 숙어)이라는 말이 있다. 자기 분수에 만족하여 다른 데에 마음을 두지 아니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우리는 이 말에서 욕심을 내려놓고, 자신에 적합한 일을 찾아 그것에 만족하고, 나아가 행복을 찾고자 했던 조상의 지혜를 읽을 수 있다. 정치 사회적으로 혼란하고 위험한 시기에 욕망을 절제하고, 권력이 따르지는 않지만 보람과 가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 선비의 자존심과 명예를 지키고 아울러 자신과 일가의 안위를 보존하고자 했던 ‘삶의 처세술과 방편’을 유추해 본다.

 

자리나 지위, 권력, 부에 대한 탐욕으로 유명 인사들이 나락으로 떨어져 파멸하는 사례를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는 시대에 원효 스님의 ‘안분 자족’의 말씀이 특히 새록새록 가슴에 와 닿는다.

 

옷을 짓는 데에는

작은 바늘이 필요한 것이니

비록 기다란 창이 있다고 해도

소용이 없고

 

비를 피할 때에도

작은 우산 하나면 충분한 것이니

하늘이 드넓다 하더라도

따로 큰 것을 구할 수고가 필요 없네.

 

그러므로 작고 하찮다 하여

가볍게 여기지 말지니

그 타고난 바와 생김생김에 따라

모두가 다 값진 보배가 되는 것이네.

 

긴 칼, 넓은 우산이 아닌, 작은 바늘과 작은 우산의 역할에서 보람과 가치를 찾으며 안분지족하고 살아가는 삶 또한 좋지 않나 생각한다. 그러한 삶이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과 만족, 의미를 선사할 수도 있다.

 

 

 

 

서재원 교수

. 창수초등학교, 포천중학교, 포천일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졸업

. 한국방송 KBS 편성국장, 편성센터장(편성책임자)

. 차의과학대학교 교양교육원장, 부총장

. 포천중, 포천일고등학교 총동문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