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행복하면 다른 누구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 누구나 행복한 사회는 불가능하겠지만, 그런 한계가 있음에도 행복한 사람이 보다 많은 사회, 경쟁과 갈등이 지금보다 적은 사회가 되기를 갈망한다.
철학은 시대의 진단으로, 이를테면 ‘시대가 제시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라고 했다. 참된 삶은 실존적 경험으로서 그 답을 찾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프랑스 현대 철학의 거장 알랭 바디우가 말한 바에 따른, 대한민국 현 사회가 시대의 진단으로 우리에게 제시하는 물음이 과연 무엇인지 궁금하다.
행복은 다른 무엇의 도구가 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영원한 이유요, 목적이다. 시대 불문, 사회 불문 인간 존재의 근원적 물음과 직결되는 바가 행복 추구라고 생각한다. 행복은 현재 우리에게도 주요 의제임이 틀림없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작동하는 사회라면 경쟁에서 이기면 행복, 패배하면 불행과 직결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대한민국 국민 가운데 다수는 우리 사회를, 잘못되거나 비효율적인 정책 또는 극심한 경쟁으로 각종 불평등과 불만족, 그로 인한 갈등의 격화로 행복감이 매우 떨어지는 사회라고 말한다. 그런데 누군가가 행복하면 다른 누구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사회체제가 자본주의이고, 그러한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사회가 대한민국 사회라고 한다면, 누구나 행복한 사회는 불가능하지 않은가? 그러나 그런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분이 보다 많은 사회, 경쟁과 갈등이 지금보다 적은 사회가 되기를 갈망한다.
행복은 개인·국가·사회의 공동 책임
국어대사전에서는 행복을 ‘복되고 좋은 운수’,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이나 그러한 상태’로 정의하고 있다. 영어사전에서도 행복을 유사하게 정의한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는 행복은 심리적이고 생리적이고 우연히 얻게 되는 개인적인 상태이다.
아주 오랜 기간 인간에 있어 행복, 불행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로 여겨졌다. 그래서 그 시대 그 사회의 철인이나 현자들은 인간이 자신이 처한 환경에 대한 기대를 줄이고 현재 조건에 만족하는 일정의 체념이나 안분지족을 통하여 얻게 되는 만족감 정도가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고 가르치고 마음의 평온, 수양을 권하였다.
그러나 필자는 대한민국 사회에서의 국민의 행복은 위와 같은, 행복에 대한 개인주의자들이나 행복 주관주의자들의 견해에는 전체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행복은 우리 국가 사회의 정책 및 시스템과 직결되는 문제이므로 개인적 문제가 아닌, 국가 사회적인 주요 의제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헌법에서는 국민의 행복 추구권을, 자유권임과 동시에 헌법에 명시되지 않은 기타의 권리들을 모두 포괄하는 양도 불가능한 권리로 명시한다. 미국의 대통령 제퍼슨은 ‘정부의 유일한 정통 목적은 국민에게 가능한 최대한의 행복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정부의 존재 이유가 국민의 행복을 증진하는 것에 있음을 밝히는 것이다.
새 정부가 새로운 정책들을 선보이며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행복 증진을 위한 근본적이고 혁신적인 정책이 있었으면 싶다. 미래에 대한 개인적 탐욕과 허망한 기대는 절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의 환경, 미래에 대하여 좌절하거나 체념하여 스스로 만족하거나 강요당하는 것은, 행복으로 가는 진정한 길이 아님은 인식해야 한다. 헌법에는 정당한 권리로 행복 추구권을 명시하고 있다.
개인적, 주관적, 심리적 차원에서 행복의 요소
행복은 주관적인, 여러 차원의 느낌 감정 생각이다. 그리고 행복은 소유하거나 완전하게 인식할 수 있는 객관적 실체가 아니다. 그래서 인간이 완전한 행복을 향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단지 무한하고 완전한 행복을 최대한 유한하게 갖고자 하는 열망과 순간의 인식과 실존만이 있을 따름이다.
행복을 주관적으로 측정하려는 노력은 사상가, 철학자뿐 아니라 인류의 복지를 확장하려고 노력하는 세계 기구, 여러 나라에서 끊임없이 행해지고 있다. 그 내용을 소개하여 인간이 주관적으로 생각하는 행복에 대한 작은 힌트를 얻고자 한다.
세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사회복지 선진국에서는 행복의 주관적 정도를 측정하기 위한 여러 설문을 만들어 조사하고 있다. 삶의 순간, 일정 기간의 행복 정도를 측정하고자 한 조사이다. 아래와 같이 공통 분모에 해당하는 몇 가지 측정 설문을 소개함으로써 인간이 행복을 심리적, 주관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 최고의 삶과 최악의 삶 사이에서의 자신의 계량적인 자신의 위치
* 완전한 만족스러운 삶과 완전히 불만족스러운 사이의 계량적 위치
* 만족한 행복과 전혀 만족하지 못함 사이의 자신의 계량적 위치
* 내가 한 일을 소중하고 가치 있다고 느끼는 정도의 계량적 위치
* 삶에서 당신이 한 일에 대한 가치에 대한 자신의 계량적 정도
* 삶이 완전히 가치 있다고 느끼는 바와 전혀 가치가 없다 사이의 자신의 계량적 위치
이 설문을 종합하여 분석하면, 공통되는 몇 개의 키워드가 만들어진다. 최고의 삶, 만족스러운 삶, 소중하고 가치 있는 삶, 한 일에 대한 가치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키워드만으로도 인간의 주관적인 행복감의 주요 요소를 알 수 있다.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객관적 요소
행복이란 주관적으로 심리적으로 느끼는 감정이나 정서, 생각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격의 행복감에 영향을 미치는 객관적 요소들이 있다. 세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사회복지 선진국에서는 이 요소들이 개인의 행복감을 증진하기도 하고 떨어뜨리기도 하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이 요소들을 계량적으로 측정하고 국민의 행복감을 증진하는 데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국가.사회적 정책 시행에 역점을 두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 요소를 십여 가지 정도로 꼽는 국가, 기구가 대부분인데 공통되는 요소를 열거하면, ‘생활 수준(소득.재정 등 포함)’, ‘건강’, ‘일·활동·직업(성취, 만족 등 가치 포함)’, ‘안전·환경’, ‘관계’ 등이다. 이와 같은 묶음의 요소가 긍정적 수준, 좋은 수준일 경우 주관적 행복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행복, 불평등에 미치는 요소
행복, 불평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있다. 소득 불평등 등 경제적 불평이 행복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경제적 불평등은 한 국가에만 존재하지 않고 전 세계에 존재하는 현상이다. 이는 특히 자본주의 체제에서 더욱 큰 문제로 부각하고 있으며, 심지어 일부 학자는 자본주의 위기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말한다.
소득 불평등, 가계 부채와 금융 위기 등이 경제적 불평등을 초래하는 요소들인데 이들은 서로 긴밀한 상관관계가 있다. 많은 국가에서 이를 완화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데, 이를테면 누진 과세 정책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소득 불평등 등 경제적 불평등을 감소시키는 등 행복 친화적 환경 조성을 위한 노력은 국민의 행복 증진에 기여하고 있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라는 말이 경제적 불평등을 풍자적으로 표현한다.
경제적 불평등에 이어 사회적 불평등 또한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다. 출생 환경과 신분, 집안의 배경, 유산, 심지어는 유전 인자 등 한 인간으로 태어나면서 갖는 온갖 불평등, 우월적 지위가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성장하고 생활하며 겪게 되는 불편부당함, 정의로움에 반한다고 생각되는 환경, 상대 그리고 삶의 좌절과 불행을 안겨주는,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각종 난관과 저항 요소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각종 영극화 현상, 금수저 논쟁, 이념 갈등, 특혜 논쟁 등이 이에 해당한다.
한국 사회에서 행복감을 떨어뜨리는 요소
국민 소득이 3만6천 달러에 달하는 한국 사회는 더 이상 소득 증대와 같은 경제적 수단만으로는 국민 행복을 보장하기 어려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일반적으로 소득 수준이 2만 달러를 넘으면 이러한 현상이 생긴다고 말한다.
이제는 비경제적인 요소에 주목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다. 2016년 OECD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연간 노동시간 2위, 상대적 빈곤율 8위이다. 삶의 질을 영역별로 나누어 지수 변화를 측정한 결과(통계청 2017년 조사)를 보면 교육, 안전, 소득.소비, 사회복지, 주관적 웰빙, 문화 여가, 환경, 시민참여, 건강, 주거, 고용 임금은 등 11개 영역의 지수는 차이는 있으나 모두 상승하고 있다.
그러나 유일하게 ‘가족/공동체’영역의 지수가 떨어지고 있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가정을 비롯한 혈연 지연의 공동체는 개인이 휴식하며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삶의 재충전 공간이다. 우리 사회는 21세기 들어 여러 이유로 가족/공동체가 옅어지며 성격이 급변하고 있다.
사회 구성원이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소위 '나노 사회'가 되고 있다. 그 결과 안온한 곳이던 가정을 비롯한 혈연·지연 등의 편안한 커뮤니티는 전통적인 모습을 잃어가며 역할을 제대로 수행치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우리 사회 전체 행복감 지수에 큰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서재원 교수
. 창수초등학교, 포천중, 포천일고, 서울대 졸업
. 한국방송 KBS 편성국장, 편성센터장(편성책임자)
. 차의과학대학교 교양교육원장, 부총장
. 포천중·일고 총동문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