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원 칼럼] 살며 생각하며

요동치며 변화하는 생애주기,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차의과학대학교 교수, 전 KBS프로듀서/아나운서)

 

한국 사회는 개인과 가족의 생애주기와 알맞은 발달 과업인 출생, 학습, 결혼, 취업, 독립, 부양 등이 뒤엉키고 그에 대한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개인, 사회, 국가 모두 이에 대하여 문제의식을 느끼고 적극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변화하는 생애주기, 걱정거리가 되고 있다

가정을 비롯한 혈연 지연의 공동체는 개인이 편안한 휴식을 할 수 있고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삶의 재충전 공간이다. 그런데 21세기 들어 우리 사회는 개인주의가 만연하는 등 여러 이유로 이러한 공동체가 옅어지고 성격이 변하고 있다. 그래서 사회 구성원이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소위 '나노 사회'가 되고 있다. 그 결과 안온한 곳이던 가정, 혈연·지연의 편안한 커뮤니티는 점차 전통적인 모습을 잃어가며 본래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치 못하고 있다.

 

인간은 사회의 일원으로, 가족의 구성원으로 그리고 개인으로 삶을 영위하며 살아간다. 개인의 생애주기는 사람의 생애를 개인이나 가족의 생활에서 발생하는 커다란 변화를 기준으로 하여 일정한 단계로 구분한 과정이다. 일반적으로 개인의 발달 단계에 따라 영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 성년기, 중년기, 노년기 등 여섯 단계로 구분된다.

 

한편, 가족 생애주기는 가족의 규모나 생활에 영향을 주는 사건에 따라 가족 형성기(결혼 및 독립), 가족 확대기(자녀 출산, 양육 및 자녀 교육), 가족 축소기(자녀 결혼 및 독립, 노후기)와 같이 3단계로 구분된다. 개인이나 가족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생애주기별 각 단계의 진행 순서는 일반적으로 비슷하다.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은 생애주기를 거치는 동안 단계마다 각각의 역할이 있는데, 이를 발달 과업이라고 한다. 부모 등 가장의 역할 등도 이에 해당한다. 전통적으로는 자녀로서의 구성원은 시기마다 해야 하는 발달 과업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한 단계에서 과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해야 다음 단계에서의 과업 수행이 원활해질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개인과 가족 모두가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되어 왔다.

 

가장은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자녀로서의 가족 구성원은 사회에 잘 적응해 각 생애주기에 따른 단계별 발달 과업을 인식하고 이행하여야 별문제가 없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생애주기의 일반적 모형은 영·유아기와 아동기에는 놀고 배우고, 청년기에는 열심히 일하고, 성년기 혹은 중년기 이후에는 결혼하여 독립하고 출산하여 양육하고 부양하고, 노년기에는 은퇴하여 부양받다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고, 개인의 인생관과 가정에 대한 가치관, 취업·결혼·독립·출산에 대한 보편적 패러다임의 변화 등 사회·경제적 현실 상황으로 인하여 개인과 가정이 생애주기에 따른 역할과 순차적 발달 과업이 뒤엉킴으로써 새로운 걱정거리가 되고 있다.

 

어느 노인의 사연 "하루라도 역할 안 하고 싶어요"

과거에는 은퇴하여 부양받아야 할 65세가 넘는 노인이 더 연로한 부모와 경제적 독립을 하지 못한 자녀를 동시에 부양해야 하는 소위 ’부양의 낀 세대 역할'을 하는 경우가 꽤 있다. 2020년 통계청 노인 실태 조사에 따르면 60~69세의 응답자 중 60.3%가 부모의 생활비를 부담하고 있고, 12.5%가 자녀에게 정기적으로 현금을 지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기를 넘어 성년기의 자녀를 돌보는 부양자 역할을 하는 노년도 늘고 있다.

 

피부양자가 되어야 할 노인이 부모와 자식의 경제적 부담이라는 질곡에 빠지게 된 힘든 상황, 어찌해야 하나 답이 나오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올해로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게 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그리고 청년기, 성년기 자녀의 취업, 결혼, 독립이라는 소위 삶의 과업 등이 순차적으로 이어지지 않아 뒤얽히고 꼬이는 것은 물론 경제 상황 또한 어렵고 가치관의 변화가 심해 개인, 가정, 사회의 걱정이 더욱 커지는 상황이다.

 

한편, 노인이 청년기, 성년기의 미독립 자녀를 부양하는 것은 한국을 포함한 여러 선진국이 공통으로 갖는 사회적 문제인 듯싶다. 부모로부터 부양받는 소위 캥거루족을 일본에서는 패러사이트싱글(기생충 독신), 이탈리아에서는 밤보치오네(큰아기)라고 부른다.

 

미국에서 유행하는 문화적 현상에 따른 웃으갯소리에 ’어른 해 먹기 힘들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아직도 청춘이라고 자칭하며 ’어른 아이‘이고 싶은 소위 ’피터 팬‘의 요즘 노인들은 어른으로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다. 도에 넘치는 체면 차리기와 과한 역할로 스트레스 받는 한 노인이 외치는 말은 ’하루라도 어른 안 하고 싶다‘인지도 모른다. 위성가족으로 손자 손녀를 잠시 돌봐주는 것은 호사스러운 사치일 수도 있다. 오스카의 말로 기억한다. ’노년의 비극은 아직은 젊다‘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생애주기 변화에 따른 사회적 인식의 변화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개인과 가족의 생애주기에 따라 어떤 행위를 하거나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 있었다. 예를 들어 탄생, 성장, 노화, 죽음, 학습(공부), 취업, 결혼, 독립, 출산, 부양, 은퇴 등을 말한다. 이 가운데에서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생로병사를 제외한 개인과 가족의 생애주기에 따른 발달 과업(해야 할 일)은 그것을 해야 하는 적정한 시기가 있다. 행위를 하는 것과 그것의 시기에 대한 우리 사회의 소위 ’보편적 패러다임‘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만약 개인이 생애주기에 적정한 ’특정한 발달 과업(?)‘을 하지 않거나 시기를 놓치면 그 개인이나 가족은 소속한 집단 속의 다른 구성원으로부터 약간은 특별(?)한 대접을 받거나 구설수에 오르는 등 무언의 사회적 압력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제 우리 사회는 여러 발달 과업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꼬이거나 뒤엉키는 게 일반화하고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변화하고 있다. 이제는 그것을 개인적 다양성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타인에게 당사자나 그 가족에게 그 같은 신상 질문을 하는 것은 큰 결례가 되고 있다.

 

생애주기에 걸맞지 않은 정신적 육체적 변화

우리 사회는 영원히 늙지 않으려는 노년기의 젊은 오빠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아동기나 청소년기에 이미 조숙하게 성장한 아이 어른 또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나이보다 어리게 사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노인이 꽤 있다. 피터팬의 소위 ’자라지 않는 아이‘와 ’늙지 않는 샘물‘을 꿈꾸며 젊은 오빠로 살고자 하는 성년기, 노년기의 ’철없는 어른‘이 화제가 된 것은 어제오늘이 아니다.

 

어찌 생각하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온라인 게임에 열을 올리고, 연예인 ’오빠 부대, 삼촌 부대‘에 합류하고, 안티 에이징에 높은 관심을 갖고, 공주 패션에 심취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우리 사회의 즐거운 한 단면이라고 볼 수도 있다. 청년기, 성년기 등에 치열하게 최선을 다해 살아온 분들이 누릴 수 있는 즐거운 보상이라는 생각이다. 반면에 아이 어른이 많아지는 것은 사회적으로 긍정적 측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야기하고 있으며 부정적 측면 또한 많은 듯싶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천재 소년, 창의성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분야에서 나이를 역전시키며 어른을 넘어서는 능력을 보이는 아이 어른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우리 사회의 밝은 미래를 보는 것 같아 기쁘다. 그러나 정신 연령은 그대로면서 잘못된 생활 습관 등으로, 육체적으로 과속 노화를 보이는 청소년이 늘고 있어 보건 사회적 측면에서 문제가 되고 있으니 걱정이다.

 

건강에 문제가 있는 어른이나 관심을 보이는 소위 ’혈당 스파이크’와 고혈압, 고지혈증을 걱정하고, 초고도 비만으로 건강을 위협받는 청소년이 늘고 있다. 최근 소위 '두바이초콜릿', '탕후루' 등과 같은 당이 높은 디저트가 인기를 끌며 청년층 사이에서 새로운 소비 경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이는 당 과다 섭취로 이어져 비만, 당뇨, 고혈압 같은 만성 질환과 그로 인한 합병증 발생 우려를 키운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20~30대 청년층에서 고혈압이나 당뇨병과 같은 성인병 발병률이 꾸준히 증가한다. 청년 비만율 증가도 25%를 넘는다. 이는 단순히 청년의 건강 문제가 아닌, 청년들의 생활 습관과 사회 구조의 문제를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된다. 잘못된 생활 습관과 식습관, 운동 부족, 과도한 스트레스 등이 그 이유이다. 이는 당사자나 부모의 문제를 넘어 국가 사회적 지원과 대책이 적극적으로 필요한 중대한 현안이라는 생각이다.

 

격변의 시대에 가장 위험한 것은 격변 자체가 아니다. 시대 상황에 맞지 않은 사고방식을 고치지 못하고, 대처 방안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그러나 먼 바다에서 엄청난 쓰나미가 밀려올 것이 예상되거나 태풍이 휘몰아칠 것이 예상될 때는 정박했던 항구를 과감하게 벗어나 위기를 모면할 수 있는 새로운 정박지를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쓰나미에 휩쓸리거나 태풍으로 파산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개인과 가족의 생애주기와 알맞은 발달 과업인 출생, 학습(공부), 결혼, 취업, 독립, 부양 등이 뒤엉키고 그에 대한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개인, 사회, 국가 모두 이에 대하여 문제의식을 느끼고 적극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서재원 교수

● 창수초등학교, 포천중, 포천일고, 서울대 졸업

● 한국방송 KBS 편성국장, 편성센터장(편성책임자)

● 차의과학대학교 교양교육원장, 부총장

● 포천중·일고 총동문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