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원 칼럼] 살며 생각하며

8월에 생각해보는 한국의 어머니

차의과학대학교 교수, 전 KBS프로듀서/아나운서니다

 

서재원 교수님은 지난 2월 포천좋은신문 지면 창간과 함께 '살며 생각하며'라는 타이틀로 칼럼을 연재하며 독자들에게 보석처럼 귀한 글을 선물해 왔습니다. 그런 서 교수님께서 9월 새 학기 시작과 함께 바쁜 강의 스케줄로 이번 글을 마지막으로 아쉽지만 당분간 연재를 쉬겠다고 전해왔습니다. 그동안 좋은 글을 보내주신 서 교수님께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편집자 주] 

 

 

어머니와 고구마

 

포천뿐 아니라 산간지역에 많이 재배되는 농작물이 고구마다. 고구마는 물 빠짐이 좋은 산기슭 부식토 밭에 잘 자란다. 내고향 포천의 산촌은 특히 산이 많아서 부식토 밭이 많고 고구마가 잘 재배되고 맛이 아주 좋은 편이다. 그래서 포천의 고구마는 상품 가치가 높아 농가의 쏠쏠한 수입원이 되어 왔다.

 

무더운 여름에서 늦가을까지 우리나라 전역에 재배되는 고마운 농작물-고구마는 감자, 메밀, 호밀 등과 더불어 벼, 밀, 보리 등 곡류가 흉작일 때 대신 허기진 사람들의 배를 채워주는 고마운 구황작물이다. 고구마는 한국의 농촌, 산촌, 어촌의 가난한 사람들의 허기를 채우고 중요한 수입원이 되어주는 농작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의 고향인 포천시 창수면에는 고구마를 많이 재배했다. 땅이 좀 척박해도 물 빠짐이 괜찮으면 두엄을 주며 함께 순을 심어놓고 비가 적당히 와주기만 하면 가을에 튼실하고 맛있는 뿌리를 내려주어 큰 수확을 선사하는 작물이 고구마다.

 

고구마는 재배가 쉽고 수확까지 괜찮으며 보관도 어렵지 않아 겨울철까지 보관하며 가격을 조절하여 필요할 때 내다 팔아 현금을 마련할 수 있는 작물이다. 필자의 초중학교 재학 시절 집에서는 고구마 재배와 판매에 많은 힘을 쏟았다. 그래서 고구마에 얽힌 고생스런 가족 일화가 많은 편이다.

 

천 평 정도의 밭에 고구마를 심어 7월에서 8월까지는 고구마 순, 늦은 여름인 8월 말부터 다음 해 초까지는 고구마를 시장에 내다 팔아 돈을 만들었다. 그러니 집안의 온 식구가 일 년의 태반을 고구마 재배, 고구마 순과 고구마 판매에 매달려 있었다. 당시 농촌, 산촌의 어머니들이 대부분 그랬지만 특히 모친의 고생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어머니는 이른 여름에 시작되는 고구마 순 장사에 이어 늦여름에서 가을까지는 고구마 장사를 하고, 또 겨울 한두 달은 김장 김치를 실어내 한국군, 미군 군속 가족에 팔고, 다시 나머지 기간에는 보관해 두었던 고구마를 내다 파는 장사를 하셨다. 오랜 세월 당시 어머니 인생은 고구마, 김치와 함께 하는 삶이었다.

 

요즘도 그렇지만 당시 농촌에서는 재료가 무엇이든 팔아서 돈을 만드는 일은 대부분 여자의 몫이었다. 모친은 늘 시장에 내다 팔 고구마, 고구마순, 김치 등을 버스에 실어 판매처까지 나른 다음, 아는 상점에 내다 맡겨 놓고 광주리에 조금씩 덜어 가가호호 머리에 이고 방문하며 소매하는 고단한 장사를 아주 오랫동안 해왔다. 당시 읍내에 널리 알려진 ‘광주리 고구마 아주머니’가 어머니였다.

 

지금도 가끔 떠오르는, 묘한 감정이 얽혀 있는 아주 오랜 기억 속의 영상이 있다. 저녁 무렵이면 고향 집 아래 산모롱이를 돌아 장사하러 어머니가 나가신 길이 멀리 바라다뵈는 지점에 서서, 동생들과 함께 어머니가 이제나, 저제나 오시려나 애타게 기다리던 어릴 적 내 모습, 동생들의 모습, 어머니의 모습이 함께 떠오르는 영상이다.

 

같은 동네 친구 엄마가 어머니께서 장사하러 나가신 신작로에서 군부대 차량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다음에는 더욱 그랬다. 멀리서 어둑어둑한 길을 따라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휘적휘적 걸어오는 마흔 남짓의 모친은 당시 나에게 있어 ‘하루의 큰 기쁨’이요, ‘하루를 마감하는 편안함’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의 나에게는 그리움, 애잔함, 고마움의 영상이 되어버렸다. 고구마를 소재로 한 필자의 시를 소개한다.

 

 

고구마

 

돌각밭, 오월 가뭄 간난으로 뿌리내려

무성하게 번창하는 넝쿨들의 힘!

 

무더위 여름 장마 온갖 시련 이겨내며

쉼 없이 뿌리를 키워내고

늦가을 무서리 내리면

훌훌 옷을 벗어버려 늠름한 실체를 보여주는

 

신산에서 열매 만들고

혀를 녹일 듯한 달콤함을 창조하는 위대한 반전

싹 틔워 생명을 만드는 신비!

 

 

7월 말에서 8월 초까지 내내 고구마순을 따던 온 식구는 8월 말 햇고구마가 생산되기 시작하면 고구마를 캐거나 손질하여 내다 팔 준비를 하기 위하여 온 식구가 매달렸다. 일주일에 2∼3일은 늦여름 밤이 이슥하도록 함께 일을 해야만 했다.

 

필자는 동생들과 함께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교 때까지 줄곧 고구마 농사일과 고구마 장사하러 나가는 모친을 돕는 일을 진저리가 나도록 했다. 고구마 철에는 손과 옷에 시커먼 고구마 진액을 달고 사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달콤한 고구마의 맛을 볼 때마다 작고하신 모친의 얼굴이 떠오르며 그 달콤한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가 없다.

 

‘고구마’는 내게 있어 모친뿐 아니라 당신들의 삶 자체가 ‘자식 사랑과 가족을 위한 희생’의 끊임없는 질곡이었던 ‘한국의 어머니’를 상기시키는 농작물이 아닌가 생각된다.

 

나무수국과 한국의 어머니

 

나무수국은 전형적인 여름꽃이라 할 수 있다.

나무수국과 비슷한 꽃으로는 불두화(佛頭花)와 수국이 있다. 불두화(佛頭花)는 꽃의 모양이 부처의 머리처럼 곱슬곱슬하고 부처가 태어난 4월 초파일을 전후해 꽃이 만발하므로 이름하여 불두화라고 한다. 절에 가야 흔히 볼 수 있었으나 이제는 공원에도 많이 자라고 있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꽃으로 5∼6월까지 꽃이 피어난다.

 

처음엔 꽃 빛이 연초록색이나 활짝 피면 흰색이 되고 질 무렵이면 누런빛으로 변하는데 활짝 피면 주먹만 하게 눈을 뭉쳐놓은 것과 같은 모양이다. 불두화를 수국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꽃이 피는 시기는 대체로 불두화와 백당나무가 5∼6월, 수국은 6∼7월, 나무수국과 산수국은 7∼8월이다. 불두화는 ‘우주의 모든 사물은 늘 돌고 변하여 한 모양으로 머물지 않는다’라는 뜻의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의미가 있는 꽃이다.

 

또 수국은 꽃이 피기 시작한 초기에는 녹색이 약간 들어간 흰 꽃이었다가 점차로 밝은 청색으로 변하여 나중엔 붉은 기운이 도는 자색으로 바뀐다. 토양이 강한 산성일 때는 청색을 많이 띠게 되고, 알칼리 토양에서는 붉은색을 띠는 재미있는 꽃이다.

 

여름 수국, 즉 나무수국은 8월경 피기 시작해 가을 무서리가 내릴 때까지 꽃잎이 듣지 않는 특이한 식물이다. 나무수국은 일반적으로 모양으로 본다면 출가 이전의 세속적인 인간, 불두화는 출가한 스님에 비유되기도 한다. 비록 향은 없으나 은근과 끈기로 끊임없이 꽃을 피우는 식물이요 무서리가 내리고 늦가을 추위가 닥쳐 피운 꽃잎이 말라 죽을지언정 스스로 땅 위에 꽃잎을 듣지 않는 특이한 꽃이다.

 

‘곁을 주지 않는 냉정함과 자제력, 은근과 끈기를 가진 나무수국’에서 한국의 어머니 전형을 찾을 수 있다. 나무수국은 더위, 추위 등 온갖 어려운 환경을 강인함으로 극복하며 현실에 적응해나가는 우리 어머니, 아주머니의 근성을 가진 꽃이다. 나무수국을 소재로 한 필자의 시를 소개하며 글을 마감한다.

 

 

나무수국

 

늘어진 가지마다 뭉치뭉치 흰색으로 탐스럽게 피어나는 꽃

곁을 주지 않고 홀로 피어나는 고고한 여인이여

꽃 피우고 또 피워도 향은 내지 않는 무정한 여인이여

 

꽃잎은 시들어 색깔이 바뀌어도 여의지 않는 고집스런 여인

너는 어찌 한여름에 단아하게 피어나 시월 무서리를 견뎌내고 있느냐?

 

온갖 신산 안으로 퇴적하여

꽃잎마저 말리우는 인고의 여인

 

 

 

서재원 교수

. 창수초등학교, 포천중, 포천일고, 서울대 졸업

. 한국방송 KBS 편성국장, 편성센터장(편성책임자)

. 차의과학대학교 교양교육원장, 부총장

. 포천중.일고 총동문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