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에 거주하고 있는 필자 김은성은 현재 본지에 '미국 대륙횡단 여행기'를 절찬리에 연재 중인 작가다. 그가 수년 전, 한 달 이상을 자동차로 미 대륙을 횡단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사진과 함께 담백한 글로 써내려간 여행기는 현재 코로나로 해외 여행을 꿈도 못 꾸는 우리들에게 커다란 위안과 함께 대리만족을 주고 있다. 본지는 필자에게 2회 정도 남은 '미국 대륙횡단 여행기'를 잠시 중단하고, 2020년 봄 지구를 뒤덮어 버린 팬데믹과 백신 개발 이후 미국 사회의 새로운 변화의 물결에 대한 글을 요청했다. 평생 의료계에서 근무해온 그의 직접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실제로 피부에 와닿는 '백신 접종 이후 미국 이야기'에서 그는 "어두운 터널 속에서 빛의 속도로 세상에 나와준 백신이 우리에게 소소하지만 소중한 일상을 되돌려주고 있는 중"이라고 진단했다. 지난 1년간 미국의 코비드 사망자 수는 제주도 인구와 비슷한 60여만 명, 인구 대비해서 남한 인구로 계산한다면 대한민국에서 10만 명이 사망한 거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숫자다. (미국 인구 3억, 남한 인구 5천만에 비례) 코비드로 순직한 간호사(RN)의 숫자도 400명에 달한다. 그 밖의 의료인들의
Day-34, 몬태나에서의 마지막 날 어젯밤엔 별똥별이 쏟아지는 날이라고 해서 오밤중까지 안 자고 버티려 했으나 10시부터 비가 내린다. 이곳의 비는 텐트 지붕에서 후드득 소리를 꽤 오래 내면서 내려도, 아침에 일어나면 땅이 여전히 보송보송한 인색한 비다. 그래도 구름으로 하늘을 덮으니 별을 볼 수가 없고, 그냥 잠든 게 억울해서 새벽 두어 시쯤 밖에 나가보니 비는 그쳤어도 별이 총총하진 않다. 어제 집어온 mountain goat 꽃바구니가 나뿐 아니라 오가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준다. 요즘 재활 중이라 꽃이 달리지 않은 내 꽃들도, 오가는 사람들이 이뻐해 준다. 우리 동네 셰넌도어에는 꽃바구니 데리고 캠핑오는 사람들도 종종 보는데, 여긴 먼 곳에서 오는 사람들이 주를 이르니 나처럼 극성맞게 꽃 들고 온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오늘은 묵직한 사랑으로 내 안에 자리 잡고 앉은 몬태나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Logan pass에서 Highland trail과 continental divide까지 올라갔다 온 남편은, 이제 다른 트레일이 시시해졌는지 별로 연연해하지 않고, 역사박물관에서 공부한 지식에 따라 Flathead Indian reservation과 미
“아니, 그게 말이 됩니까? 못 믿을 게 따로 있지!” “왜 말이 안 됩니까? 짐을 다 내가야 돈 드리는 게 맞지요!” “그렇게만 고집하면 안 되지요. 입장 바꾸어 생각해 보세요.” 손녀를 돌봐주기 위해 2년 전 딸네 집 근처로 전세를 얻어 왔었다. 계약이 만료돼 주인이 비워달라고 했다. 그래서 며칠 전 이사를 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 부부는 지금까지 겪은 적이 없었던 일들로 심한 마음고생을 했다. 그 당혹감은 말할 수 없이 컸다. 같은 사안을 두고 생각과 행동이 그렇게도 다를 수 있음에 놀랐다. 가히 절벽에다 대고 얘기하는 기분이었다. 전세 계약 기간이 석 달쯤 남았던 어느 날 집주인 여자가 연락했다. 우리도 계약연장 여부를 물어보려던 참이라 잘 됐다 싶었다. 그러나 주인 여자는 연장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새집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그 여자는 우리더러 계약 기간 만료 후 3개월만 더 살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자기네가 사는 집의 계약 기간이 우리의 계약 기간 만료일보다 3개월쯤 뒤라는 것이다. 참말로 자기들 생각만 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그렇게는 할 수 없으니 차질 없이 전세
모름지기 사람에게는 사람값이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어린이가 아닌 어른에게는 어른에 해당하는 만큼의 어른 값도 있지 않겠는가. 어른이기가 버거운 까닭은 그 어른값을 다하고 있지 못한 까닭은 아닐까. 그 때문에 '어쩌다 어른'임을 겁내는 것은 아닌지. 시간이 날 때 방송 프로를 돌리다 보니 한 번은 눈에 띄는 제목이 있어 유념해 본 일이 있다. '어쩌다 어른'이라는 공개방송 형식의 1인 토크 프로다. 이즈음의 방송 프로를 보면 한 마디로 수준 미달이랄까,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공중파니, 종편, 케이블방송 등으로 방송국은 수도 없이 늘어났는데 채널마다 똑같은 연예인, 혹은 똑같은 패널들이 나와 온통 먹고 놀고 수다 떨기가 극악을 부리며 경쟁한다. 수다 떨기의 질도 갈수록 저질이다. 방송이 이래도 되는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그런데 내가 지금 하고 싶은 얘기는 방송에 대한 이야기, 혹은 그 내용에 대한 것이 아니라 '어쩌다 어른'이란 제목이 던져주는 포괄적 사고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한 미팅에서의 일이다. 나이 차가 다소 있는 선후배 전직 직장 동료들이 구성원이다. 미팅에선 언제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 건강 얘기들이 흔한 화제로 오른다. 그런데 그날
Day-31, 태양으로 가는 길 오늘은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아늑한 텐트에서 부스스 일어나면 되는 좋은 날이다. 아침으론 집에서 눌려온 누룽지 팔팔 끓여서 아직 멀쩡하게 남은 밑반찬과 먹어준다. 10시 반쯤 느긋하게 집을 나선다. 햇볕이 따스하다. '태양으로 가는 길'을 조금 운전해가서 이 공원에서 손꼽는 5마일짜리 트레일, Avalanche lake로 향한다. 맘 좋은 미국 정부에서 이 멋진 숲의 입구 0.8마일에 마루를 깔아서 휠체어 탄 사람도, 멋진 숲을 즐기고 제일 이쁜 계곡의 물줄기를 볼 수 있게 해놨다. 2.5마일, 수백 년에서 천 년 이상된 향나무와 Hemlock이 주를 이루는 신비로운 숲길을 따라 걷는다. 내가 없던 날들을 이 자리에서 지켜왔고 내가 없는 날에도 이 자리에 서 있을 나무와 바위들을 보고 느끼며,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으나 존재하는 시간이 형체를 갖고 그 숲에 존재한다는 생각이 스친다. 숲에 쓰여 있는 문구에도 모차르트가 유럽의 귀족들을 매료하던 그때, 제퍼슨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던 그때도 이 숲은 이 자리에 있었다... 고 쓰여 있다. 태평양에서 오는 습기 덕분에, 매우 건조한 기후의 공원 동쪽과 사뭇 다른 나무들이 자란다.
▲박윤국 포천시장이 무대 밑에서 휠체어에 앉아 있는 장애인 인권강사 김대준 씨에게 상장을 전달한 뒤 격려하고 있다. ▲손세화 시의장이 "장애인이 주인공이 장애인의 날에 주인공을 무대에 오르지 못하게 해서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나라에서는 1981년부터 이날을 '장애인의 날'로 정하고 매년 기념행사를 해왔다. 올해로 벌써 41회째다.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로 정한 것은 4월이 1년 중 모든 만물이 소생하는 달이어서 장애인의 재활 의지를 부각할 수 있다는 데 큰 의미를 둔 것이고, 20일은 다수의 기념일과 중복을 피해서 이날로 정했다고 했다. 매년 '장애인의 날'이 되면 각 시도와 지방자치 단체에서는 장애인들을 위한 각종 기념식을 준비한다. 기념식은 장애인 인권선언문 낭독과 장애인 복지유공자 포상, 장애인 극복상 시상, 축하공연 등으로 진행된다. 또 이날을 전후해 약 일주일간을 '장애인 주간'으로 정하고 여러 가시 행사를 벌인다. 포천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코로나 시기와 겹쳐 많은 사람을 초대하거나 요란하지는 않았으나, 이날 군내면 반월아트홀 대강당에서는 포천시가 주최하고 포천시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장애인분과에서 주관하는
동네 할아버지들이 책방에 오는 게 나는 참 좋다. 평생 농사만 짓고 산 그분들이 서점을 갔던 적은 먼 옛날일 것이다. 카페야 어쩌다 도시 사는 자식들이 와서 모시고 갈 수는 있지만, 서점이라는 곳을, 더욱이 이런 작은 책방을 모시고 갈 일은 없을 것이다. 한가로운 시골책방의 어느 봄날. 할아버지 세 분이 들어왔다. 막걸리를 한 잔씩 걸쳐 모두 얼굴이 불콰했다. 이곳에서 자라고 평생 이곳을 떠나본 적이 없는 어른들이었다. 한 분은 언젠가 한 번 동창회를 마치고 책방에 들러 차 한 잔씩을 하고 돌아갔고, 한 분은 딸과 손주들을 데리고 온 분들이었다. 처음에는 한 분만 들어왔다. 다른 두 분과 달리 얼굴이 낯설었다. 시골책방에 불콰한 얼굴로 들어온 할아버지를 보고 나도 모르게 경계심이 생겼다. 코로나 19로 방명록 작성이 필수라 먼저 작성을 부탁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난 글씨 몰라. 좀 이따 글씨 잘 쓰는 사람 올 테니 그 사람보고 쓰라고 하면 돼.” 그제야 나는 일행이 있다는 걸 알았다. 잠시 후 글씨를 잘 쓴다는 할아버지와 다른 한 분이 같이 들어왔다. 낯이 익은 분들이었다. 비로소 경계심이 확 풀렸다. “아무거나 그냥 주셔. 맛있는
Day-28, Dream catcher Nomad(유목민)로 살던 인디언들처럼 수요일은 우리가 이동하는 날이다. Glacier park의 동쪽에 터 잡고 산불에 막혀 그쪽에서만 놀다가 예정에 맞추어 서쪽으로 이동한다. 관통하는 도로가 아직도 산불로 막혀서 공원 밖으로 돌아서 두시간 반 걸려서 간다. 공원 밖의 동쪽 벌판은 Blackfeet Indian reservation(인디언 보호구역)이고 우리가 방문했던 Browning은 그 중심지에 속한다. 몬태나주에서 발행한 관광가이드에서 추천한 Blackfeet trading post(서부시대엔 상점을 이렇게 불렀다)에 가서 인디언들이 만든 Dream catcher 귀걸이를 사서 걸었더니 마을에서 만나는 인디언들이, 자기들 물건인 줄 알아보고 이쁘다며 자화자찬이다. 인디언들만 사는 동네에 있는, 입장료 5불 받는 인디언 뮤지엄에 가니, 인디언들의 의식주 artifact(유물)가 많이 전시되어 있다. 16세기까진 미대륙에 말이 없어서 에스키모처럼 개들하고 살며 사냥도 하고 이동도 하며 살다가, Spaniards(스페인 정복자들)가 유럽에서 들여온 말들이 도망 나와 야생마가 되고 그 말들을 길들여 타고 다니게 되며 인
Day-24, 8월 초하루는 이웃 나라 캐나다에서 오늘은 아침 7시 반에 타국을 향해 달리며 얼굴에 분칠도 하고, 호텔 커피숍에서 산 라떼도 홀짝이며 분주한 하루를 연다. 40여 분 먼지 나는 한적한 오지 같은 몬태나 땅을 달려 캐나다의 Alberta 주로 들어섰다. 여권 보여주고 통과한 산길을 1시간쯤 더 달려 캐나다 영토에 속하는 Glacier park에 도착했다. 미국에선 평생권을 끊어서 공짜로 드나들었는데, 입장료로 16불을 내고 캐나다 국립공원에 들어서니 영어와 프랑스어가 같이 쓰여 있는 표지판과, mile 대신 kilometer를 사용하는 등 여긴 딴 나라인 것이 맞다. Visitor center에서 추천한 가벼운 하이킹으로 5마일짜리 산정호수에 오르며 아침 운동을 했다. 내가 들꽃을 보면 이성이 마비되듯이, 남편은 빙하에 열광한다. 수천 년 전에 얼음이 되어 오늘 존재하는 H2O의 거대한 실체가 신비로운 건 나도 이하 동문이다. 우리가 올라가서 바라본 빙하들은 미국 영토에 속한 것들이고, 이 공원 캐나다 땅엔 빙하가 더는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1800년대 말 150개이던 빙하가 25개 남았고, 2020년엔 다 녹아버릴 거라고 하니, 한시적인 것
지난해 심은 명이나물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 갑자기 이것들이 불쑥불쑥 사방에서 튀어나와 있는 걸 발견했다. 가까이 있어 매일 들여다보면서 싹을 기다리는 것들은 쉽게 모습을 안 드러내는데, 오히려 잊고 있던 이것들은 쑥 자라서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있다. 신통방통한 명이나물 새순 앞에서 할 말을 잃고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봤다. 이렇게 불쑥 새순을 내민 명이나물을 보고 문득 어젯밤 아들과 했던 대화가 생각났다. 몇 마디 재촉하는 말을 했더니 아들은 믿고 기다리세요, 그래야 제가 스스로 성장하지요, 라고 말했다. 자식과의 관계야말로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실 쉽지 않다. 눈에 빤히 보이는 것을 보지 않을 수 없고, 다른 집 자식들과 비교를 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다. 보지 않는 게 상책이다. 보지 않고 있다 보면 명이나물이 이렇게 쑥 새순을 내밀듯 달라진, 그래서 성장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듯 몇 마디 재촉하게 된 배경에는 사실 이유가 있다. 가까운 이가 아들 앞에서 아들 걱정을 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황당해하는 아들 앞에서 처음에는 너를 생각해서 그런 거야, 라고 말했다. 계속 봐야 할 사람이라 안
Day-19 & Day-20 Mental bootcamp 여행은 정신력 훈련장 여행은 많은 것을 요구하고 많은 것을 우리에게 채워준다. 여행을 해내기 위해서 필요한 건강, 물질, 동반자, 시간... 등 그 모든 것을 이고 앉은 기본은 우리의 마음에 있다고 본다. 마음에 어두움이 짙어서 즐거워야 할 여행이 무겁고 어두웠던 기억이 몇 번 있었다. 이번 여행도 망설임과 두려움, 그리고 무겁고 어두운 짐도 있어서, 준비하는 동안 그다지 설레고 기대되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매일 글을 쓰며 여행이 풍성해지고, 여기저기 아프려고 하던 몸도 그런대로 3주 가까이 잘 견뎌내고 있었다. 19일째 되는 어제는 비가 오고 추운 날씨였다. 그 전날 Mammoth Hot Springs에서 85도였는데, 우리가 묵는 동네 비 오는 날의 날씨는 45도 정도. 여름과 겨울을 오가며 널뛰는 험한 날씨다. 서로의 시간표에 따라 움직여주지 않음과 서로에게 느껴지는 단점들을 참으며 24시간 같이 움직이는 여행에서의 피곤함이 추운 날씨와 맞물리며 섭섭하게 느껴진 남편의 말 한마디에, 미국식 표현 melt down(멘붕?)이 왔다. 급성 우울증의 증상, 물도 마시고 싶지 않고 손가락도 까딱
설 명절 연휴에도 문을 연다고 하자 아는 사람이 큭큭 댔다. 명절날에도 문을 여는 책방이라니. 그는 아마도 조금 어이가 없었던 듯하다. 사실 책방을 시작하고 명절에 문을 닫은 적이 없다. 이렇게 말하면 마치 책방을 목숨 걸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집과 함께 있으니 사실은 특별히 문 닫을 일이 없다. 집과 함께 있다고 하지만, 책방이 있는 1층과 살림집은 엄연히 구분되어 있다. 나는 매일 아침 가방을 메고 책방으로 출근하고, 저녁이면 가방을 메고 퇴근한다. 중간에 내가 집에 올라가는 때는 점심시간뿐인 경우가 많다. 살림은 아침 출근 전이나 저녁 퇴근 후에 한다. 무엇보다 나에게 책방 문을 여닫는 것이 큰 차이가 없다. 나의 일상은 늘 같다. 명절이라고 해서 나의 일상이 깨지는 것도 아니다. 특히나 코로나로 인해 가족 간 모임도 불가능한 때는 더더욱 그렇다. 명절 아침에도 나는 1층 책방으로 내려와 커피와 빵, 과일로 아침 식사를 하고, 화초에 물을 주고, 청소를 간단히 하고, 내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책방이고 카페지만 이곳은 나의 소중한 작업실이기 때문이다. 작업실이라고 하면 뭐 대단한 걸 하는 것 같지만, 좋은 책을 읽는 것이 대부분이다. 책방을 하
Day-16, 천국과 지옥 누군가 옐로스톤을 천국과 지옥이 공존하는 곳이라고 표현한 것이 기억난다. 미국 국민들이 일 인당 10평 정도의 분깃이 있다고 할 수 있는 어마무시하게 넓은 이 공원을 하루에 한구석씩만 보려고 마음먹었는데, 오늘 만난 어떤 노부부는 매년 와서 한구석만 일주일간 보고 간다고 한다. 땅이 살아서 꿈틀거리며 유황 가스와 지열을 품어 올리고, 지각의 변동과 화산활동과 정체를 알 수 없는 현상들이 계속되고 있는 거대한 화산 분화구에 자리 잡은 광활한 고원이 옐로스톤이다. 오늘은 시간 맞추어 10시에 있는 레인저 프로그램에 갔다. 해안 경비군에서 퇴역한 후 7년째 ranger로 일한다는 61세 아저씨의 깊이 있는 지학적, 역사적, 생물학적, 생태학적인 설명을 들으며 부글거리며 스팀을 품어올리는 진흙 간헐천, 용의 입이라고 이름 붙은 사납게 생긴 연못들을 돌아본다. 이 진흙 가마솥들은, 온도도 뜨겁지만 pH 1.89 정도의 극한 강산성 독극물이라고 한다. 억수로 돈 써가며 전쟁 무기 만들지 말고 이 흙탕물을 물총에 장전해서 쭈악 쏴대면 전쟁 끝! 아냐? 이런 만화도 그려진다. 지열이 땅을 덥혀서 눈이 마구 오는 극한 겨울에도 푸른 초장인 온돌방
비록 프로그램 비중이 경(輕)하다 해도 연 이어져 있는 세 프로(생활의 지혜, 오늘의 요리, 주부 뉴스)를 격일로 방송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으나, 이를 갖고 가타부타 불평할 시스템이 아니었기에 그대로 감수하는 밖에 없었다. 아침 방송이 늘었음에도 여성 PD를 뽑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디지털 세상이 열리면서 세상은 급격하게, 숨 가쁘게 변해왔다. 우리가 사는 환경이나 사회구조, 기계문명의 변화는 하루가 다르게 초고속으로 바뀌고 있어 웬만큼 공부해서는 미처 따라가기도 어렵다. 참으로 억울한 것이 기존의 전통 사회를 살아온 7080세대이다. 디지털이 정착되면서 세상의 소통 수단이 달라진 것이다. 모든 기준이 인터넷으로 축약되고 수 없는 웹사이트들에 넘쳐나는 정보들 하며 이 때문에 까닭도 없이 시대의 뒤편에 밀려나, 인터넷도 제대로 못 하고 스마트폰도 제대로 활용할 줄 모르는 무지 계층으로 치부되어야 하는 일이 어찌 억울하지 않은가. 혹여 컴퓨터를 쓰다 문제가 있는듯해서 손을 놓아야 한다거나, 새로 구입한 스마트폰의 활용이 쉽지 않아 닫아버리는 일을 7080세대는 다반사로 겪고 있다. 그때마다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이, 혹은 속속 알 수 없
그런 행동을 하고 나서 곰곰이 생각하니 내가 공연히 오지랖 넓게 행동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그런 말로 무안을 준다고 그 사람들의 행동이 고쳐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들도 성인인데다 나름대로의 교양이나 상식이 있을 것이다. 그냥 지나갔어도 아무런 잘 못이 아니었다. 굳이 잘난 체 하거나 지적하지 않아도 달라질 게 없을 줄도 알았다. 그런데 나는 그 시간 거기에서 왜 그렇게 말했을까? 그것도 같은 날 아침에 두 번씩이나 그랬다. 내가 교양이 부족해서였는지 어쭙잖게 의협심이 과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두 당사자에게 조금 미안했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잘못된 일은 아닌 것 같다고 스스로 위안도 해본다. 며칠째 계속되던 청명한 날씨가 그날 아침엔 잔뜩 찌푸렸었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처럼 하늘의 구름이 험상궂었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기온도 상당히 서늘했지만 운동하기엔 좋았다. 아침 운동 나가는 길에 음식쓰레기를 수거함에 버리고 나오다 아주머니 한 분을 봤다. 그 여자는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바로 앞 벽에 커다랗게 써서 붙여놓은 안내문이 무안해할 일이었다. ‘이 수도에서는 손만 씻으세요.’ ‘아무리 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