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에서 얼마만큼 기여를 했느냐가 공천 기준이 될 것이다. 대선 기여도는 말로만 해서는 안 된다. 각자 가지고 있는 조직을 최대한 활성화해서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도록 최선을 다한 후보에게 공천을 주겠다." 지난 해 12월 대선 선대위 출범을 하면서 최춘식 국회의원이 당원들에게 약속한 말이다. 국민의힘이 공천 내홍을 겪고 있다. 이 내홍은 8일 공천신청 마감 직전부터 시작됐다. 그때부터 당 내부 여기저기에서는 볼멘소리들이 흘러나왔다. 공천과 관련해서 당 지도부를 향한 불만의 소리다. 이 술렁임은 현재까지 진행형이다. 내홍의 발단은 공천등록 마감 직전에 예고 없이 등장한 두 명의 여성 후보로부터 비롯됐다. 안애경 후보와 손지영 후보가 그들이다. 두 후보는 국민의힘 관계자들의 연락을 받고 급하게 서류를 준비해 등록했다고 말했다. 물론 두 후보의 잘못은 없다. 시의원 출마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던 터에 국민의힘 높은(?) 분들이 갑자기 공천 운운하며 출마하라고 하니, 넝쿨째 굴러들어온 복을 그냥 차버릴 수는 없었으리라. 누구라도 '이게 웬 떡이냐' 하고 덥석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런데 두 사람의 공천신청은 의외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국민의힘 예비후보자
2017년 대선 당시에도 이번 대선과 같이 14개 읍면동 가운데 소흘읍, 선단동 포천동만 더불어민주당이 우세했고 나머지 11개 면에서 모두 자유한국당이 우세했지만, 다음 해 포천시장 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박윤국 시장이 14개 읍면동 전체에서 자유한국당 백영현 후보를 앞서며 압승으로 끝났다.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포천의 표심은 어느 쪽을 향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포천 시민들은 이번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보다 국민의힘에 표를 더 주었다. 포천 시민들은 포천의 총 선거인 수 131,901명 가운데 95,968명이 투표에 참여해 72.8%의 투표율을 보였는데, 민주당보다 국민의힘에 3% 정도 많은 2,985표를 더 준 것으로 드러났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총투표수의 46.2%인 44,320표를 받았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에게는 49.2%인 47,306표가 돌아갔다. 나머지는 정의당 심상정 후보를 비롯해 다른 후보들이 나누어 가졌다. 또 무효표도 905표나 나왔다. 14개 읍면동별로 보면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힘보다 득표수로 우세했던 곳은 도시 지역인 소흘읍과 포천동, 그리고 선단동 등 세 곳뿐이었다. 소흘읍에서는 12,819표(민)와 11,058표(국)
▲필자 김은성 작가. 칸에서 니스까지 지중해 연안(Cote D'Azure ) 여행 아비뇽 숙소에서 3박 4일 짐만 챙겨 들고, 프렌치 리비에라(French Riviera; riviera는 이탈리아어로 해안선)라고도 부르고 혹은 푸른 바다의 해안선이란 뜻의 꼬따쥬르(Cote D'Azure)라고 부르기도 하는 지중해 연안으로 떠난다. ▲매일 아침 눈뜨면 천천히 발길 닿는 곳으로 향하던 프로방스 시골 생활에서, 전 세계 부자들이 동경하는 바닷가 마을들을 구경나서는 길은 미리 짜놓은 여정에 맞추느라 새벽에 출발해야 한다. 시속 130킬로로 고속도로를 2시간 남짓 달려, 전도연 홍상수 박찬욱 등 한국 영화의 별들을 사랑해준 칸(Cannes)에 도착한다. 오전 9시 반인데 거리에 사람들이 가득하다. 무비스타도 안 보이는데 아침 일찍부터 관광객들이 바글대는 낯선 풍경을 만난다. 기차역에, 타고 온 자동차를 주차하고 역전 카페에서 아침 식사로 먹은 커피와 크로상은 최고였다. "이게 바로 크로상!"이라고 외치고 싶었다. 스타들의 수준에 맞춘 동네라 그런가 싶다, 이곳은 프랑스 버전의 말리브(Malibu; 캘리포니아 해변가의 부자마을)이며 베벌리 힐이다. 세계에서 모여든 엄청
▲필자 석인호 작가. 날씨 풀리자 까치들의 합창소리 요란해 동네 공원에서 까치들이 일제히 날며 요란하게 울어댄다. 더러는 둥지를 떠나 다른 나뭇가지에서 울고 어떤 녀석은 땅바닥까지 내려와 논다. 추운 겨우내 한 마리도 안 보였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던 까치들이다. 여러 놈들이 함께 날거나 시끄럽게 울어대 아침의 고요함을 깨뜨린다. 그들이 우는 건지 웃는 건지는 모르겠다.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던 날씨가 불과 며칠 새 영상으로 변했다. 급기야 오늘 아침의 최저기온은 영상 4도까지 올랐다. 갑자기 봄을 향해 한 달가량 건너뛴 듯하다. 나도 털모자와 장갑을 집에 두고 얇은 차림으로 아침 운동에 나섰다. 자주 가서 걷고 달리던 동네공원은 수목이 울창하다. 그중 공원의 외곽을 따라 늘어선 메타세쿼이아들이 일품이다. 위로 높고 곧게 자라 바로 옆 20층 아파트들과 키재기를 할 정도다. 공원 트랙에 표시된 숫자를 보면 한 바퀴 거리는 대략 1,150m쯤 될 것 같다. 오늘 아침 공원에 나가니 평소엔 못 들었던 까치 소리가 요란했다. 한 주의 첫날 아침에 듣는 까치 소리에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예부터 아침에 까치 소리 들으면 반가운 손님이나 소식이 온다고 했으니까.
▲필자 임후남 작가. 가만히 있으라. 이 말은 상당히 폭력적이다. 가만히 있으라고 지시하는 말에는 상대의 생각과 행동을 차단한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무시와 억압과 소외가 따를 수밖에 없다. 그에 따른 결과는 상처와 비극을 초래한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꽃 같은 아이들이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폭력을 우리는 목도하지 않았나. 올해 시부모님은 구순이 됐다. 큰 병이 없으니 건강하다고 하지만 나이는 속일 수 없어 몇 달 만에 만나면 확연히 그 모습이 다르다. 두 분 모두 저 나이가 되기 훨씬 전에는 우리 집에 오시면 살림을 도맡았다. 매월 마감을 하느라 며칠씩 야근을 하는 며느리를 대신해 함께 아이를 돌보며 어머니는 주방을 책임졌고, 아버님은 청소 등 집안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도맡았다. 아침에 나가 밤에 들어오니 주방에 들어갈 일도 없었지만, 어머니가 오시면 나는 거의 주방에 가지 않았다. 아이가 학교 간 사이 두 분은 가까운 백화점도 가고, 남대문시장도 가곤 했다. 지방에 사는 두 분의 정기적인 서울 나들이는 근 10년 남짓 이어졌다. 아이가 크고, 내가 더는 마감 없는 인생을 살게 되자 두 분의 정기적인 서울 나들이도 끝났다. 대신 명절이나 그 외 나의 출
▲필자 김은성 작가. Sous le ciel d'Arles 아를의 하늘 아래서 오늘은 이번 여행에서 첫 번째로 방문하고 싶었던 곳, 아를(Arles)로 간다. 아비뇽의 숙소에서 35km 정도 떨어진 곳인데 미국 기준으로는 옆집이다. '아를의 여인'이란 제목의 희곡(알퐁스 도데), 음악(비제) 그리고 그림(반 고흐)으로 유명해진 이유로 오랫동안 많이 들어온 지명이다.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아를의 여인'. 소박하고 조용한 시골길로 아를을 향해가는 도로변에서는 고흐가 사랑한 해바라기밭들을 만난다. 어디서나 보는 해바라기밭이지만, 인류가 사랑하는 고흐의 그림 속에서 본 그 해바라기라는 감동이 잔잔하게 스며든다. ▲시골길의 해바라기. 아를에 도착하니 오늘은 시골장이 서는 날이다. 프로방스는 프랑스의 농촌인지라, 재래시장이 관광객용이 아니고 일상이다. 엑상프로방스에선, 그 동네 버전으로 샹젤리제에 속하는 미라보 광장, 도시 한복판에 이런 장이 서던데 이곳 시장은 시골 마을이지만 규모가 더 크다. ▲마구 사 가고 싶은 테이블 린넨. 상점보다 아주 싼 값에 현지인들처럼 장을 보았다. 라벤더꿀과 아몬드 가루로 반죽한 이곳 전통 과자 칼리송(calisson), 계란흰자,
▲필자 김은성. Voila! Lavande pour moi 사진 속의 라벤더밭으로 프로방스에 오고 싶다는 바램은, 한 장의 사진에서부터였다. 우연히 보게 된 달력 사진 같은 풍경, 보랏빛 라벤더밭과 중세의 수도원 사진 한 장이 이 여행을 계획한 동기다. 오늘은 그 사진 속으로 가보기로 한다. 아비뇽에서 1시간 정도 자동차로 가면, 산속에 자리 잡은 중세 건물, 세낭크 수도원(Senanque Abbey)이 있다. 오후 1시에 문 닫는 아비뇽 재래시장에 먼저 들러서, 문어 주꾸미 오징어를 식초, 올리브에 절인 것과 도마토, 바케트를 사 들고 가서, 수도원 나무 그늘에서 프랑스 사람들처럼 피크닉으로 점심을 먹었다. ▲아비뇽의 재래시장. 12세기 무렵, 바위 산중에 가난한 수도승들이 오두막을 지어 시작했다는 이 수도원은 바위와 산과 중세건물이 라벤더밭과 어우러져 펼치는 그림으로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어 있다. 높은 지역의 산자락이라 아직 라벤더가 피질 않아서 오늘은 다행히 주차할 곳도 있고 인산인해가 아니었으나, 라벤더가 피면 아침 일찍 오지 않으면 주차할 곳이 없다고 한다. 우리는 2주 후에 다시 와볼 건데, 평일 아침 9시 이전에 도착해야 주차할 수 있다고 한다.
같은 꽃과 풀도 볼 때마다 달라 코로나19 대유행에도 내게는 남다른 즐거움이 하나 있다. 더군다나 그 즐거움엔 건강도 뒤따른다.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는 격’이 아닌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다. 물론 큰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쓰는 말이라 이 비유가 적당하지 않음은 안다. 그래도 나는 코로나가 몰고 온 크나큰 어려움을 탈출하는 심정으로 나만의 그 즐거움을 좇는다. 한동안 따스하던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나는 몸을 움츠리며 옷깃을 세우고 아침 운동을 나섰다. 햇살이 채 퍼지지 않은 이른 시각이라 차갑게 보이는 새파란 하늘엔 흰 구름 한 조각이 외롭게 떠 있다. 그야말로 찬바람에 밀려 곧 흔적 없이 사라질 뜬구름이다. 12월 중순 아침의 뜬구름을 보니 공연히 마음이 허전해진다. 올 한해는 물론이고 지나 온 날들에도 뜬구름처럼 살아 온 내 삶에 대한 회환 때문이리라. 앞으로 올 날들도 또 그렇게 흘려보낼까 걱정이 앞선다. 그런 생각에 잠겨 걷는 동산 길에 뜻밖의 예쁜 임들이 추위를 잊은 채 나를 반겨준다. 서리까지 내린 쌀쌀한 초겨울 추위를 아랑곳 하지 않고 무리 지어 피어난 꽃들이다. 우리 동네에는 야트막한 동산들이 연이어 있다. 그중
▲필자 김은성. [편집자 주] 이미 예고드린 대로 포천좋은신문은 이번 칼럼부터 김은성 작가의 '프로방스 여행기'를 게재합니다. 세계 곳곳으로 독자 여러분을 안내하며, 음악과 미술 해설을 곁들인 유려한 필체로 여행기의 새로운 지평을 펼쳐가는 김은성 작가를 따라, 임인년 새해에 프랑스의 남부지역 프로방스를 감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여행은 은퇴한 사람들의 로망이다. 우선 건강이 허락해야 가능하고, 경제적인 여유와 동반자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동부에서 비행기로 6, 7시간 날아가면 유럽이고 대도시가 아니면 미국보다 물가도 싸지만, 현역일 때는 고국 방문에 모든 휴가를 쓰느라 여유가 없어서 못 가봤다. 퇴직한 후에는 어디로 어떻게 여행을 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다. 그리고 유럽에 진출한 첫 번째 여행은 알프스 계곡 마을, 프랑스 샤모니에서 2주 머무는 거라고 즉흥적으로 정하고 무작정 떠났었다. 우연히 '걸어서 세계 속으로'에서 보고, 그곳에 가보고 싶어져서…라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그 여행에서 유럽에선 경치 좋은 곳에 숙소를 정하고 자동차를 빌리면 두세 시간 반경으로 가볼 만한 곳들이 많고, 자유롭고 느긋하게 그리고 저렴하게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을 배
필자 안훈. 존재감. 무릇 사람은 누구나 존재감으로 살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무얼 하는 사람인가. 인간의 역사는 엄밀히 말하면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역사를 만들어온 수 없는 걸출한 인물들도 밝히고 보면 결국 그 자신의 존재감으로부터 그 모든 것들을 이루어냈고 그것이 하나의 실록으로 인류의 대역사를 만들어 온 것 아닌가. 아들에게는 딸이 둘이 있다. 올해 9세, 6세 된 어여쁜 아이들이다. 늦게 결혼하여 3년 터울 딸을 둘 두었으니 아들의 기꺼움이야 하늘 높은 줄 모른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큰손녀에 대한 사랑이 막강하다 보니 둘째가 태어났을 때 큰손녀 아이가 혹여라도 사랑이 나뉘는 것 때문에 상처를 받을까 걱정돼 그 애 앞에서 작은애를 예뻐라 하는 것을 극도로 자제했다. 그런데 그 작은애가 두 살 되면서부터 설 때만 잠깐씩 와서 보는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무시로 자신의 존재감을 똑 부러지게 인식시키는 것 아닌가. '나도 있다', 혹은 '나 있다'라는 식의 무언의 행동들을 보면서 우리 내외는 열심히 그 아이의 존재감을 은밀하게 인정해주곤 했다. 결혼하면서부터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았다. 30년이다. 그 30년의 가족 관계가 아무리
[편집자 주] '미국횡단 자동차 여행기', '피렌체에서 만난 르네상스; 등을 연재한 작가 김은성은 최근에 읽은 소설 '파친코'를 읽고 오랜만에 눈믈이 흐를 정도로 커다란 감명을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그 감동을 우리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는 뜻을 포천좋은신문에 밝혔고, 편집부는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들여 이번 칼럼에 올렸습니다. 김은성 작가는 2022년 초부터는 또 다른 여행기로 독자들을 찾아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두 번 째 겨울을 지나면서도 사그라들 기미가 없는 팬데믹으로 암울한 요즘, 세계적으로 한국의 문화예술이 국가 브랜드 파워를 높이며 선전하고 있다는 기쁜 소식들을 접할 때 위로가 된다. 특히 미국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넷플릭스에서 한국드라마들이 인기 정상을 차지하니 열심히 챙겨서 보고 있다. 한국 사람들이 만든 문화 콘텐츠들이 세계인의 공감대를 끌어내고 찬사를 받고 있음이 뿌듯하지만, 작품에 늘 공감하거나 개인 취향에 맞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만든 이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깊이 생각하며 보는 편이다. 그 작품들에 열광하는 시대의 흐름을 이해해 보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인기 정상에 오른 많은 작품은 주제와 흐름이 어
▲필자 김은성 작가. Day-10, 명품 아울렛 the Mall Firenze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으나, 전날 밤 천둥소리가 들렸을 뿐 하늘이 파랗다. 왕복 13유로 티켓으로 호사스러운 이층버스가 피렌체 관광의 꽃 중의 하나인 명품 아울렛에 데려다준다. 아름다운 토스카나 구릉들 사이에 아울렛이 현대식 건물로 멋있게 자리 잡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 브랜드들의 모든 매장을 갤러리 보듯 둘러본다. 미국의 아울렛 쇼핑몰에선 만나볼 수 없을 것 같은 식당에서 고급스럽고 맛있는 점심도 사 먹으며 한참을 쉬다가 계속 구경했다. 그러나 총 5시간 동안 관람(?)했는데 집으로 데리고 가고 싶은 물건을 못 만나서 빈손으로 왔다. 미국에 비해서 심하게 싼 가격이어서 유명 디자이너 작품 한 개라도 건져야 하는데, 별로 필요할 것이 없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토스카나의 구릉을 배경으로 앉아있는 현대식 아울렛 몰. Day-11, 피렌체의 중앙시장 오늘은 피렌체 관광 중요 리스트로 꼽히는 중앙시장(Mercato Centrale Firenze)으로 간다. 가죽 제품 파는 길거리 수레에서 한국말로, "언니, 아줌마 싸게 줄게"라면서 호객행위를 한다. 수레에 있는 물건을
▲필자 김은성 작가. Day-8, 두오모 완전정복 피렌체의 상징, 아름다운 이 도시의 꽃인 대성당 탐방은 햇살도 좋은 오늘 드디어 결행한다. 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라는 긴 이름 대신 두오모(Duomo)라고 불리는 이유는, 라틴어로 두오모가 집이라는 뜻인데, 성당을 하나님의 집이라고도 부르기 때문이다. 첫 번 피렌체 방문 당시엔 명동 성당 앞의 길보다 훨씬 좁고, 긴 골목을 걸어가서 만나는 광장에 거대한 성당이 믿을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갑자기 나타나서 깜짝 놀랐다. 이번에는 근처에서 유숙하는 주민이 되어 매일 오가며 눈으로 어루만지고, 감동하며 상당히 친해진 대성당과 깊숙이 만나보기로 한다. ▲피렌체의 상징, 대성당. 피렌체 대성당( 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은 13세기에 고딕 양식으로 지어지기 시작하여, 15세기에 천재 건축가 브루넬레스키에 의해 벽돌로 쌓은 동그란 dome이 얹어지며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의 부와 그들의 pride의 상징이다. 물론 지금의 피렌체 사람들도 자랑스럽기가 그 당시보다 덜하지 않겠지만... 92m 붉은 dome 지붕 위의 전망대
Day-6, 피렌체의 과학 시간 시차에 시달리느라 오늘 아침 눈뜨니 10시. 잃어버린 시간을 아까워하기보다 남아 있는 시간을 기뻐하자! 오늘은 햇살도 숨바꼭질하며, 종종 쨍 하고 볕 들 날, 아니 볕이 내리는 순간들을 선사한다. ▲우피치 뒤쪽 아르노 강변에서 오랜만의 햇살을 즐겨본다. 르네상스 시대는 시간상으로 14세기에서 17세기로 역사에서 그리 긴 연대는 아니지만, 현대인들에게 가장 많이 회자되는 역사적인 시대 개념일 듯하다. 오늘은 그 시대 과학의 역사를 보여주는 갈릴레오 뮤지엄으로 간다. ▲갈릴레오 뮤지엄. 이 뮤지엄은 아르노강을 바라보는 강가에 서 있는 피렌체에서 제일 오래된 건물 중의 하나로, 무려 11세기에 지어졌다고 한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이층집도 호사였건만, 유럽사람들은 천 년 전에도 이렇게 높은 복층에서 살았다는 것은 매일 볼 때마다 경이롭다. 메디치는 예술에만 돈 쓴 것이 아니고 과학의 발전에도 엄청난 투자를 했는데, 요즘 개념으로 R&D(research and development 연구와 개발), 더 많은 부를 얻기 위해서 신기술을 개발해나간 거라고 하면 너무 인색한 평가일까? 지동설로 인해 교황청과 맞선 갈릴레오도 메디치의
어느 날 해가 저물 무렵 귀로(歸路)에서 우연히 문득 손을 펴 보니 손안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눈에 띄는 보석도, 대단한 재물도, 화려한 명예도... 아니 소박한 꽃 한 송이, 보잘것없는 나막신 하나도 제대로 가지고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저 마냥 허탈한 빈손, 허허로운 가슴, 시린 적막감이 묻어 있었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가진 것이 없는 것도 부끄러웠지만 하나하나 떠오르는 지난 시간들, 지난 일들이 나를 더욱더 부끄럽게 했습니다. 나름으로는 열심히 애를 쓰며 최선을 다한다 했지만 이룬 것은 진실로 미미했습니다. 고작 나 한 몸, 내 가족 건사하기에도 헉헉거린 시간들... 그러노라고 아주 가까운 나의 친구의 아픔도 제대로 껴안아 주지 못했고, 이혼의 상처를 안고 신음하는 내 아우의 슬픔도 달래주지 못했습니다. 삶이 너무 고달파 손 내밀던 가까운 이웃에도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또 사랑하는 사람과의 갈등으로 괴로워하는 후배의 깊은 고민에도 마음만큼 동참하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노년을 혼자 보내신 친정어머니, 시어머님의 고적함에 아무런 위로를 드리지 못한 것이 가슴 아픈 일입니다. 의례적인 일상이 아닌, 진심에서 나누는 따듯한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