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원 칼럼] 살며 생각하며

위대한 조상에게 배우다

차의과학대학교 교수, 전 KBS프로듀서/아나운서

 

안정과 평화와는 거리가 먼 고난의 역사, 우리 조상들은 마냥 좌절하지 않았다. 인내와 지혜로 간난과 위기를 극복하고, 웃음과 해학으로 희망을 찾았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는 공자 말씀이 있다. "옛것을 익혀서 새것을 안다면, 스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뜻이다. 우리 조상의 대부분인 일반 서민들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들의 삶은 대체로 안정과 평화, 행복과 풍요와는 거리가 멀었다. 끊임없는 외침과 내전, 부정부패와 빈곤, 가혹한 신분제 등은 어둠과도 같았다. 그래서 좌절과 체념의 질곡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고난의 역사에 마냥 좌절하고 체념하는 삶을 살지 않았다. 인내, 끈기, 지혜로 간난과 위기를 잘 극복했으며, 웃음과 달관, 해학으로 칠흑 같은 삶을 살아내고 극복했다, 함께하는 정으로 슬픔과 간난을 견디고, 희망을 찾으며 승화시켰다. 그 결과가 현재의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한다. 조상들의 강인한 얼과 긍정적인 정서는 지금도 우리 DNA 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 대한민국의 초석이 된 감동적이고 가슴 먹먹한 조상들의 모습과 얼과 정서를 통해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할 지혜를 배우고자 한다.

 

절망적 상황을 넘어 삶을 승화시킨 위대한 조상들

남기신 업적, 행적을 굳이 따져 평가하여 위대함, 존경스러움을 논하지 않더라도 삶 자체가 순교자와 철학자적 삶을 사신 분들이 있다.

 

조선 시대에 걸출한 관료, 실학자, 유학자였던 분들이 정쟁(정치에서의 싸움), 당쟁(당파를 이루어 서로 싸우는 일)에서 미움을 사거나 패하여, 또는 종교적 믿음(천주교 등) 등의 이유로 십수 년의 가혹한 유배형을 받아 극한적 삶을 산 분들의 순교자적인 삶을 말하려 한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추사 김정희 선생, 형제지간인 손암 정약전과 동생 다산 정약용 선생 등 세 분이다. 위대한 업적은 알려져 있으나, 그들의 파란만장한 서사적 삶을 소상히 아는 분은 그리 많지 않은 듯싶다.

 

# 추사 김정희

추사 김정희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서화가다. 그런데 선생이 제주도와 함경도 북청에서 11년 동안의 긴 유배 생활을 한 사실을 아는 분은 그리 많지 않다. 유배 이유는 이글에서 밝히지 않는다. 선생은 절망적인 기나긴 유배 기간의 질곡 속에서 우리 역사 최고의 서체인 ‘추사체’를 완성하였고, 불후의 명작인 ‘세한도’를 남겼다.

 

또한 실사구시, 경세치용의 실학자, 금석학자로서의 연구 업적과 예술성 높은 시, 서. 화 작품은 우리에게 자긍심을 심어준다. 기나긴 유배 기간의 한계 상황을 뛰어넘어 삶을 승화하는 순교자적인 모습, '아이 그림과도 같이 기교를 뺀 서체’로 본 예술혼, 철학자적 풍모는 너무도 경외스럽다. 엄혹한 삶의 질곡, 천형 같은 운명을 극복하고 또 넘어서는 위대한 삶은 우리에게 영원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

 

# 다산 정약용

다산 정약용은 조선 정조 때의 관료로서 개혁적이고 창의적인 업적, 또 행정가로서 탁월한 실적, 면모가 널리 알려져 있다. 선생은 그를 아끼던 조선 최고의 개혁적이고 실용적인 군주, 정조가 세상을 뜨자, 바로 18년간의 기나긴 유배형에 처한다. 본인의 천주교에 대한 종교적 신념과 정약전 등 형제 모두가 천주교 신념을 갖는다는 이유, 당쟁 속에서의 시기 질투, 정조에 대한 반감 등으로 인한 형벌이라 해석된다.

 

다산은 유배 중에 조선의 실상을 현장에서 직접 확인하면서 관료 경험과 개혁적인 생각을 집대성하여 위대한 학문적 업적을 남긴다. 바로 정치·경제·사회·사상 등을 아우르는 ‘경세유표’, ‘흠흠신서’, ‘목민심서’라는 위대한 저서이다. 행정가이자 유학자이자 실학자로서 선생의 삶과 업적은 긴 유배 생활 중 불후의 문화유산을 남기며 더욱 혁혁하게 빛난다.

 

# 손암 정약전

영화 ‘자산어보’를 아십니까? 2021년 제작된 이준익 감독, 설경구 주연의 영화로 백상예술대상 수상, 청룡영화상 5관왕에 등극하였다. 조선 시대 실학자이자 어류학자인 손암 정약전의 유배 생활을 다루었다.

 

선생은 16년 동안 흑산도 유배 생활을 하며 사망할 때까지 근해의 수산물을 조사, 채집하여 어류·패류·해금·충수류 등으로 분류하고 155종의 수산물의 이름과 분포, 형태, 습속을 기록하였다. 그 책이 바로 어류학서 3권 1책의 방대한 ‘자산어보’이다. 정약전 선생은 믿음의 신앙으로 유배 형벌의 슬픔과 억울함을 견디었고, ‘자산어보’라는 위대한 저서로 승화시키었다.

 

조선 후기의 천재라 불리는 ‘정약현, 약전, 약종, 약용 등 정 씨 4형제’는 모두 천주 신앙에 대한 신념을 가졌다. 셋째인 ‘정약종’은 자신을 비롯한 가족 모두가 천주 신앙을 위해 피 흘린 순교자이다. 영화의 주인공 둘째 ‘정약전’은 유배 중 ‘자산어보’를 저술했다. 넷째 ‘정약용’은 앞에서 기술한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대학자이다. 그리고 큰형 ‘정약현’은 부인이 ‘이벽 성조’의 누이이고, 최초의 세례자 ‘이승훈’의 부인이 누이이다. 형제 모두가 천주교와의 깊은 인연 등으로 박해받은 희생자이다.

 

가난과 신분의 굴레, 놀이로 달래던 서민들

가난과 신분제도, 폭압적 정치는 평민들과 하층민 등 기층민중의 삶을 더욱 어렵게 하였다. 체념과 좌절, 간난의 질곡에서 헤어나는 게 힘들었다. 이들에게 잠시나마 웃음과 풍자로 카타르시스를 준 놀이가 있다.

 

안동의 하회탈춤과 양주별산대놀이 등 전통적 탈춤은 탈을 쓴 광대가 양반 등 기득권층의 허례허식과 모순을 비판하고, 서민들의 삶을 유쾌하게 풍자한다.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활달하고 기력이 왕성한 광대가 나사가 하나 빠진 듯한 비정상적 인물로 등장하는 양반 등을 자유분방한 말과 몸짓으로 속 시원하게 공격한다. 이 과정에서 비속어와 재담, 언어유희, 음담패설 등을 거리낌 없이 구사하여 양반 등이 스스로 무식함을 드러내게 하는데, 웃음을 유발하고 풍자의 효과가 극대화된다.

 

그리고 대부분 평민과 노비 등 천민으로 구성된 관람객은 엄혹한 신분제, 가난, 부정부패로 응어리진 가슴을 시원하게 털어낸다. 탈놀이는 단순한 놀이를 넘어 한국 전통 사회의 구조와 가치관,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공동체적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탈놀이는 신라에서 시작되어 조선 시대에는 국가적인 행사로 개최되었다가 인조 때에 폐지되었다. 유학을 숭상하던 사대부들이 놀이 내용이 유학 정신에 어긋나고, 사회 최하층의 광대가 출연하고 연출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것이 근본 원인이다. 우리 조상의 대부분에 해당하는 기층민중의 체념적 삶을 어루만져 달래고, 웃음을 선사한 놀이가 탈놀이이다.

 

절망적 삶에서 인내와 끈기로 희망을 찾다

생명을 보존하고 재산을 지켜야만 하는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 국권 침탈, 한국전쟁’ 시에는 인내와 끈기, 지혜로 삶을 살아야만 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다”와 같은 속담을 주문 삼아 외치며 살아왔다. 그래서 이 속담이 지금까지도 너무나도 익숙하게 다가온다. 조상들은 마냥 슬퍼하고 좌절할 수만은 없었다. 한 줄기 빛, 한 올의 지푸라기라도 움켜잡아야 했다.

 

그래서 청록파 시인 박두진은 ‘해야’라는 시에서“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너머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너머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앳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라고 노래했다.

 

그리고 소설 ‘상록수’ 작가 ‘심훈’은 해방이 될 그날을 염원하는 시에서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 중략 - 이 목숨이 끊치기 전에 와 주기만 할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올리오리다“라고 울부짖었다.

 

한편, 음악가 현제명은 일제 강점기가 절정에 다다르고 있을 때인 1931년에 ‘희망의 나라로’에서 ‘배를 저어가자 험한 바다 물결 건너 저편 언덕에 산천경개 좋고 바람 시원한 곳 희망의 나라로 -중략- 자유 평등 평화 행복 가득 찬 곳 희망의 나라로’라고 직설적으로 소망을 노래한다. 조상들은 가혹한 시련을 인내와 끈기, 지혜로 극복하며 희망을 찾으며 처절한 삶을 살아왔다.

 

함께 하기에 덜 어렵고 덜 슬펐던 삶

우리나라에서 어떤 사람이나 사물, 인연 있는 대상에 대한 애착, 애정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를 ‘정나미 떨어진다’라고 말한다. 오래 함께한 사이에 쌓인 신뢰(?)와 사랑을 ‘미운 정 고운 정’이라 말한다. 또 외롭고 어려울 때 우리는‘이웃사촌이 좋다’라고 한다.

 

‘나’와 ‘동네의 이웃’을 끈끈하게 연결하는 게 ‘정’이다. 그래서 ‘정들면 고향’이라는 말이 있고, 그 말을 위안 삼아 새로운 곳에서 정착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조상들의 어렵고 힘든 삶을 덜 어렵게 하고 한 줄기 희망을 준 게 ‘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라는 아리랑의 노랫말,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중략-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와 같은 김소월의 진달래꽃 시구에 흐르는 정서의 실체도 함께하는 ‘미운 정 고운 정’이라는 생각이다. 이 미운 정 고운 정이 있었기에 우리는 덜 외롭고 덜 슬프고 덜 힘들었다.

 

 

 

서재원 교수

● 창수초등학교, 포천중, 포천일고, 서울대 졸업

● 한국방송 KBS 편성국장, 편성센터장(편성책임자)

● 차의과학대학교 교양교육원장, 부총장

● 포천중·일고 총동문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