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 문학산책

민천식 작가의 수필 '회상'

포천문인협회 자문위원, 전 포천시 부시장

 

 

회상

 

 

오늘은 현실의 일들을 모두 내려놓고 조용히 지난날을 뒤돌아본다. 고향마을은 신북천과 함께 어깨동무하며 수많은 세월을 흘렀건만 변함없이 옛 모습 그대로의 얼굴을 하며 반갑게 맞아주어 정겹기만 하다. 신북천 맑은 물은 갈평 하늘재에서 발원하여 당포를 지나 마을 앞에 펼쳐진 요성들을 휘어 감고 흐르는 물소리는 마을에 부딪쳐 되돌아가길 반복한다. 많은 세월을 이겨낸 지금의 고향마을은 옛 모습 그대로인데 사람들의 모습은 옛 모습 찾을 길 없어 쓸쓸하기만 하다. 지금은 시내라 해도 시골이라 그리 크지 않아 장날이 아니면 사람들을 어쩌다 만날 수 있어 한산하다 못해 조용하기만 하다.

 

고향마을은 수정처럼 맑은 시냇물과 아름다운 비경을 품고 있는 산들이 병풍 모양을 하고 있다. 그 옛날 선비들이 과거 보러 가는 길목으로 경상도와 충청도를 연결하는 지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지역이기도 하다. 이곳은 당시 국가의 주요 자원 중 하나인 무연탄이 많이 생산된 지역으로 초등학교 사회책을 통해 외부로 많이 알려진 곳이다.

 

무연탄의 역사는 일제강점기부터 이곳에서 광산개발이 시작되어 우리나라 근대화와 함께해 왔다. 그 당시부터 있던 규모가 큰 봉명과 은성광업소가 대표적인 이 지역 광산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이들 광산의 규모는 광부 수가 한때는 수천 명이나 되었다고 하니 그 규모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광산은 갱도 사고와 진폐증으로 수많은 광부의 소중한 목숨을 빼앗아 갔다. 예나 지금이나 권리는 힘 있는 자의 것이다. 힘없는 국민은 의무만 있을 뿐 권리가 없는 불쌍한 존재일 뿐이다.

 

어릴 적 이 지역에는 크고 작은 수많은 광산이 산재하여 온산이 검게 물들어 있었으며 사람들의 얼굴까지도 검은빛을 띠고 있었다. 일자리가 부족해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시절이라 광산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지만 일자리를 찾아 이곳으로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시간 속에서 거리에는 사람들로 넘쳐났고, 선술집에는 광부와 술집 여인의 웃음소리 들려오고 거리마다 활기가 넘쳐났다.

 

고향마을은 동쪽으로 단산과 운달산, 서쪽에는 조령산, 남쪽에는 봉명산, 북쪽에는 병풍바위가 품고 있는 주흘산이 자리 잡고 있어 포근한 여인의 품속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1989년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무연탄 광산은 사양 산업이 되어 이 지역의 광산도 하나둘씩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갔다. 지금은 광산이 있던 그 자리 바위틈에도 생물이 살아나 자리를 잡고,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시사철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산은 옛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다.

 

지금은 관광지로 자리매김한 불정역이 있던 진남교로 발길을 향한다. 진남교 아래로 연옥같이 맑은 시냇물 영강은 진남교를 받치고 있는 교각을 휘어 감고 유유자적 정처 없이 길을 떠난다. 주변에 그 옛날 신라시대 축성한 오정산 고모산성이 영강을 밤낮으로 지키고 있고 신들은 주변에 기암괴석을 모아 아름다운 공원을 만들어 놓았다. 시내에서 마을로 가는 길은 평일이라 조용하여 풀벌레 소리 더욱 크게 들리어 온다. 호젓한 시골길을 거닐며 지난날의 추억에 잠긴다.

 

그 옛날 시내에서 고향마을 쪽 도로를 따라 선술집이 두 줄로 열병식을 하고 있었다. 화장을 짙게 한 선술집 마담과 아가씨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광부들의 옷소매를 부여잡고 애교를 부리곤 하였다. 광부들은 하루 종일 광산에서 고된 노동의 피곤함에 지쳐 돌아오는 길에 선술집 막걸리로 피곤을 달래곤 하였다. 선술집은 매일 같이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넘쳐 났고, 술 취한 사람들의 싸움하는 소리로 술집 골목을 가득 채우곤 하였다. 가난에 희망을 잃은 광부들은 술과 도박에 빠져 세월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선을 넘나드는 노동에서 받는 월급을 술과 도박으로 탕진하는 광부들의 모습에 당시에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어 답답한 가슴을 억눌러야 했다. 광부들의 작업환경은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 그들은 칼날 위에 서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숙명이었다. 그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잊고자 해서인지도 모른다. 오랜 광산 일로 석탄가루가 폐로 들어가 쌓여 폐가 굳어지는 진폐증으로 수많은 광부가 조용히 죽음을 맞았다.

 

당시에는 진폐증에 대한 제대로 된 치료도 치료제도 없던 시절이었다. 정부에서 산업역군이라고 치켜세우던 광부들은 자신들이 무슨 병에 걸렸는지도 모른 채 안타깝게도 그들은 조용히 죽어갔다. 아버지도 가족의 생계를 위해 오랫동안 광산에서 일을 하였다. 오십 중반까지 씨름판을 누비시던 그런 아버지는 가슴 아프게도 진폐증으로 고통받다 천수를 다하지 못한 채 우리의 곁을 떠나셨다. 그 당시는 산업재해임에도 그에 대한 보상도 노동자의 권리도 광부들에겐 그 어느 것도 주어지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풍요로움은 아버지 삼촌 세대의 수많은 사람의 고귀한 희생으로 얻어진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저런 생각에 그동안 까맣게 잊고 살았던, 자신 모습을 조용히 거울에 비추어 본다. 그 모습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처럼 변해버려 매우 놀라고 말았다. 무엇을 위해 무엇 때문에 그렇게 허둥지둥 살았는지 자신에게 물어본다. 세월은 인간의 갈길 막지 못해 볼품없이 변해버린 자기 모습을 고향마을 신북천에 씻어버리고 정신없이 세월만 쫒다 보니 모든 것을 잃어버린 지금 깊은 상념에 잠긴다. 거울에 자신의 모습 비추어 볼 시간도 없이 정신없이 살다 보니 어느새 머리엔 흰 눈이 내려 자신도 모르게 깜짝 놀라고 만다.

 

나는 작고 미세한 바람소리에도 귀를 열고 살아온 지난날 자신의 삶은 앞만 보고 달려왔다. 지난날의 자신의 삶은 참으로 초라하고 보잘것없어 깊은 상념에 빠진다. 자신에게는 한없이 인색했으며, 정작 자신의 삶은 구름 속에 숨겨놓고 허둥지둥 살아온 지난 세월을 되새겨 본다. 오늘 지난 날의 일들을 생각하며 긴 한숨과 함께 회상에 잠긴다.

 

고향에서 만났던 광부들에 대한 이야기와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모습이 오늘따라 생각나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그 시절 일들이 구름에 머리를 스치듯 코흘리개 시절 함께 놀던, 소꿉친구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모두들 너희들이 꿈꾸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 궁금증만 더해간다.

 

이웃집 오삼이, 진태, 복길이, 성태, 춘성이, 길자, 정옥이, 점순이 등 고향마을 친구들이 그리워진다. 너희들도 지금쯤 어릴 적 옛 모습은 간데없고, 낙엽 진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의 심장소리는 높아만 간다. 나는 세상의 모든 번뇌를 온몸으로 저항하며 바보처럼 살아온, 지난 세월에 많은 번민과 회한을 남긴다. 진정으로 나의 삶에 단풍이 절정기에 몸부림치며 저항하듯 지난날을 회상해 본다.

 

 

 

작가 약력

호 운암, 연세대학교 도시공학박사 .수필가. 시인. 소설가

전) 포천부시장, 전) 포천시장 권한대행, 전) 포천시 체육회장

한국작가, 에세이문예, 소설, 시, 수필 등단.

포천문인협회 자문위원

2017, 2018년 한국작가. 에세이문예 신인작가상 수상

제7회양주서예대전 입선. 21회 신춘은평서예대전 특선(한문부문)

제37회 반월문화제 봉래전국휘호대회 입선(한문부문)

홍조근정훈장(2018), 저서: 희망스토리『함께 꿈꾸다!』

『달포수필』. 『구절초 향기』 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