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원 칼럼] 살며 생각하며

상식과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

차의과학대학교 교수, 전 KBS프로듀서/아나운서

 

정치적 이유가 상식과 원칙보다 앞선 기준이되어서는 안 된다. 높은 자리에 있는 분들이 상식과 원칙을 내팽개치면 그야말로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국가가 무너지고 국민의 억장이 무너진다.

 

 

정치인 최고 이미지 메이킹 도구 ‘상식과 원칙’

국가 지도자와 정치인들이 좋아하는 말이 상식과 원칙이다. 이들은 정치적 수사에서 “상식에 어긋나지 않게 생각하고 판단하겠습니다. 원칙대로 그 일을 처리하겠습니다. 원칙이 우선입니다”와 같이 폼(?)나게 활용한다.

 

대통령 선거에서 상식과 원칙을 공약으로 내건 분이 한두 분이 아니다. 그런데 임기 중에 상식과 원칙에 따라 소임을 다하지 못해 중도 하차하거나 퇴임 후에 역사의 심판을 받은 이가 있다. 그리고 ‘상식과 원칙의 칼’을 다른 정치인 또는 특정 세력을 비방하는 선전 선동의 방편으로 사용하다 슬며시 사라져간 이도 있다.

 

‘상식과 원칙’이라는 말은 스스로 수양하고 자신을 엄격히 다스리는 잣대로 사용하면 가치가 더욱 빛난다. 그러나 타인을 비난하거나, 자신을 포장하고, 미화하고, 과장하기 위해 사용하면 싸구려로 퇴색한다. 자신에게는 느슨한 잣대의 ‘상식과 원칙’을, 타인에게는 가혹한 잣대로 들이대면, 그야말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다.

 

문제는 상식과 원칙이라는 말이 의미와 개념 등이 쉽고 분명하지 않다는 데에 있다. 각각의 의미와 개념은 물론, 내용, 형식, 사용할 때 기준이 다소 철학적이고 추상적이어서 이해하기가 어렵고 헛갈린다. 그러나 수사적 표현으로는 명분이 있고 폼(?) 나는 말이다. 이 글에서는 그런 “상식과 원칙”의 말의 의미와 사용법에 대하여 알아보고, 정치 지도자가 가져야 하는 덕목으로서의 필요성, 국가와 사회 조직에서 필요로 하는 그 수준 등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로 한다.

 

상식이란 무엇인가

상식(常識 ; common sense)은 일반적인 사람, 다시 말하면 정상적인 사람이 보통 가지고 있거나 가지고 있어야 할 지식이나 판단력, 이해력, 사리 분별 능력을 말한다. ‘상식’의 의미를 좀 더 분명하게 하려면, '일반적인 사람, 정상적인 사람’의 의미와 ‘지식과 판단력, 이해력’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야 한다.

 

‘일반적 정상적인 사람’은 ‘전문적 비정상적 사람’이라는 말과 대가 되는 말이다. 그리고 ‘상식에서의 지식’은 정신적인 장애를 가지지 아니한 일반적, 정상적인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태어나 초·중·고등학교 수준의 학력을 가지고 습득한 지식을 의미한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의무교육이고 고등학교 교육은 거의 모든 적령기 젊은이가 그 혜택을 받는다. 따라서 최소한 이 기간에 배운 지식은 '그 사회에 공통된 지식'이 맞기 때문에 상식의 척도가 될 수 있다. 또 특정 국가, 지역, 사회에 속하는 구성원이면 모두가 알만한 정보 역시 상식에 준하는 취급을 받을 수 있는데, 이를 소위 기본 교양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판단력과 이해력은 말뜻대로 이해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상식은 그 수준, 척도가 절대적이지 않고, 주관적이고 상대적이어서 다소 문제가 된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대통령은 선거로 뽑고 초등학교, 중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이고, 국민은 납세의 의무가 있고 자녀가 초등학교 입학 적령기일 때는 초등학교에 입학시켜야 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전혀 없는 ‘절대적인 상식’이라고 할 수 있다.

 

상식 중 지식이 모자라면, 비상식적인 사람이라고 욕먹으면 끝 나지만, 상식적 판단력과 사리 분별 능력이 일반 눈높이에 못 미치면 무개념의 사람이라고 비난을 받는다. 이 때문에 일부 정치인이 지식은 풍부하지만, 비상식적인 사람으로 비난을 받는다.

 

원칙이란 무엇인가

원칙(原則 ; rule)은 '많은 경우에 두루 적용되는 기본적인 규칙이나 법칙'이다. 어떤 행동이나 이론 따위에서 일관되게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규칙 등이 원칙에 해당한다. 국가의 강제력을 수반하는 사회 규범 중 하나가 법인데 원칙에 해당한다. 또, 도덕이나 인륜은 인간이 사고하고 행동하고 타인과 교류하는 데에서 인간의 본성, 양심적 측면에서 지켜야 할 도리로 일종의 원칙에 해당하고, 내면적, 자발적, 상대적 성격을 가진다.

 

일하는 방식으로 어떠한 일을 할 때 규칙, 원리 또는 원칙에 충실한지, 그리고 그것이 공평하고 논리적인지 따지는 것도 원칙에 해당한다. 원칙에 있어서 '공정성'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치인, 사회 지도자에는 '자기 자신의 원칙'이 있어야 한다. 자신에게 더욱 엄격하게 적용되는 원칙이 있어야 함을 이르는 말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가혹하게 적용하고, 자신에게는 느슨하게 적용하는 사례를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인사청문회에서 벌어지는 정당, 정권의 내로남불 행태가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상식과 원칙’- 정치 지도자, 공직자에게는 금과옥조

금과옥조(金科玉條)라는 말이 있다. 금이나 옥처럼 귀중히 여겨 꼭 지켜야 할 법칙이나 규정을 이르는 말이다. 법, 규정, 규칙은 법치국가에서 국가 사회 질서 유지,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 정의 실현 등 공익적 필요성에 의해서 만들어 놓은 절대적 성격을 가진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선거에서 후보 요건 가운데 ‘결격 사유’만을 따지는 데에 익숙하다. 그것이 선출직의 필요충분조건으로 잘못 알고 있다. 결격 사유란 선출직 공직자 행위가 국가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력이 중대하므로 후보자가 되어서는 안 되는 최소한의 요건을 명시한 것이다. 최선은 결격 사유가 일절 없는 것은 물론이고‘ 상식과 원칙’에 따라 공적 행위를 보다 잘 할 수 있는 후보를 당선인으로 뽑는 것이다.

 

공직자는 법은 물론이고 ‘상식과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공직자나 공공적 행위를 해야 하는 기업, 개인이 ‘상식과 원칙’에 따라 판단하고 따르지 않으면 국가 사회적으로 엄청난 비극이 벌어질 수 있음을 무수히 보아 왔다. ‘삼풍백화점 붕괴 및 성수대교 붕괴 참사, 세월호 참사’가 그렇다.

 

1997년에 발생한‘한국의 IMF 외환 위기’도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1997년 12월 3일부터 2001년 8월 23일까지 지속되어 국민 모두를 고통 속으로 몰아 넣고, 치유되지 않을 상처를 준 ‘IMF 외환 위기’(외환 보유고는 급감하는데 비밀에 부치고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우지 않아‘ 아시아 금융위기’를 맞은, 국가부도 위기)도 상식과 원칙에 따르지 않아 발생했다.

 

IMF로부터 195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빌고, 범국민적 금 모으기 운동, 경제 구조 조정 등 전 국민의 출혈과 헌신을 통하여 국가부도는 간신히 막았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상식과 원칙’에 어긋난 행위로 엄청난 국가의 위기, 불행을 만들고 나라의 험한 모습을 세계에 보여주었다.

 

공직자가 주어진 일을‘상식과 원칙’대로 처리하면 어이없는 실수나 사고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일이 안전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있고, 결과물을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상식과 원칙’에 어긋나면 국민이 용서치 않는다

조선시대에 지방에 파견되어 지방관의 감찰과 백성의 사정을 조사하는 일을 비밀리에 수행했던 국왕 직속 임시 관리가 암행어사이다. 암행어사 일 가운데에서 제일 중요한 일은, 백성의 재물을 탐내어 빼앗는 등 행실이 깨끗하지 못한 관리 즉 탐관오리의 부정부패를 단속하는 일이다.

 

사극에서 주인공이 탐관오리에 핍박당하는 결정적인 순간, 암행어사가 마패를 번쩍 들고 자신의 신분을 밝히면, 육모방망이를 든 역졸들이 "암행어사 출도야!" 를 외치고 몰려들어 탐관오리를 포박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극의 갈등이 해소된다. 그럴 때 관람객, 시청자는 속히 시원해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암행어사 박문수, 춘향전 등 사극에서 많이 보아왔다.

 

우리 민족은 얼마나 오랜 세월 탐관오리의 ‘상식과 원칙’에 어긋나는 부정부패에 시달렸기에 “암행어사 출두야!” 장면만 나오면, 자동으로 물개박수를 치며 속이 후련해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는 불과 50-60년 전만 해도 국가 지방 민원 행정 분야 등에서 부정부패와 편법, 비상식적이고 무원칙인 일이 다반사로 행해졌다. 지금은 낯선 용어가 된 ‘사바사바, 뒷돈’은 부정부패를 상징하는 말로, 어린아이도 다 아는 말이었다. 비공식적이고 불법적인 금전 거래, 부정한 방법으로 이득을 취하는 행위를 지칭하는 말이다.

 

지금의 읍면동 주민센터에 해당하는 동사무소, 면사무소에서 인허가 관련 일, 호적, 병무 등 행정 신고 등을 하려면, 공무원들이 핑계 저 핑계로 일을 지연시켜 어쩔 수 없이 일종의 통행료(일종의 뒷돈에 해당하는 뇌물)를 주곤 했다. 당시에는 쌀 세 가마를 병사 업무 담당자에게 뇌물로 주고 자식의 병역 의무를 면제 당하거나 변경시켰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나돌 정도로 부정부패가 심했다. 그래서 암행어사 출두에 속 시원해하고 박수를 보냈다.

 

그렇다면, 지금은 우리 사회가 ‘상식과 원칙’을 잘 지키는 정의로운 사회가 되었을까? 부정부패가 만연하던 때와 비교하면 월등하게 투명하고 ‘상식과 원칙’에 충실한 사회로 변화했다. 그러나 지금도 화재 등 대형 안전사고, 장마.폭설 등 천재지변 때면 어이없이 발생하는 인명사고의 원인은 항상 부실 공사 등 상식과 원칙에 어긋나는 행위다.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는 주요 정책 결정, 시행에 있어 원칙은 뒤로 밀리고 정치적 판단, 실용적 계산을 앞세우는 개념 없는 몰상식, 무원칙의 행태가 자행되고 있다.탐관오리, 부정부패는 줄었다고 하지만, 중요한 나랏일에서 ‘상식과 원칙’에 따르지 않으니 걱정이다. 원칙에 따라 상식적으로 공명정대하게 판단하고 행위를 해야만 한다.

 

높은 자리에 있는 분들이 상식과 원칙을 내팽개치면 그야말로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국가가 무너지고 국민의 억장이 무너진다. 국가적으로 주요한 공적 행위에 있어 추진력과 속도, 목전의 이익, 융통성 없음, 고지식함 등을 이유로 원칙과 상식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 특히 여론, 지지율, 잘못된 공약 등 정치적 이유가 상식과 원칙에 앞선 판단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서재원 교수

. 창수초등학교, 포천중, 포천일고, 서울대 졸업

. 한국방송 KBS 편성국장, 편성센터장(편성책임자)

. 차의과학대학교 교양교육원장, 부총장

. 포천중·일고 총동문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