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하늘에서 내리는 폭우와 폭염조차 부유한 이에게는 안전한 지붕 아래의 자연이지만, 가난한 이에게는 찢어진 우산조차 되지 못한다. 우리는 인권을 무시한 차별로 다가오는 기후 위기를 ‘나의 일’이 아니라고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기후정의란 무엇일까?
‘밝고 맑은 세상’을 바라는 사람들의 간절함이 모여 세상을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변화시킨다. 그 밝고 맑은 세상을 위한 변화에 함께 연대하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기후정의라고 믿는다.
지난 9월 20일부터 24일까지 포천나눔의집 장애인자립센터가 주최한 제6회 포천 인권문화제가 개최되었다. 장애인 인권침해와 탈시설을 위한 토론회, 퀴어 토론회, 흥미와 재미가 어우러진 댄스 대회, 인권 공모전 시상식, 인간 vs AI 토론 등 다양한 주제로 구성된 축제가 진행되었다. 나는 기후 위기 영화 '바로 지금 여기' 상영 후 감독과의 대화 시간에 기후 활동가로 초대되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화는 청년 환경 활동가들이 석탄발전소를 건설하는 대기업에 맞서 반대 운동을 벌이다가, 대기업으로부터 명예훼손을 이유로 법적 소송을 당한다. 이는 합법적 괴롭힘이라는 방식으로 이어졌고, 포천 석탄발전소 건설 당시 상황과도 매우 흡사했다. 비록 포천 석탄발전소 반대하던 시민들은 기업 측으로부터 소송을 당하며 활동력을 잃었지만, 그 청년 활동가들은 최종적으로 승소했다.
영화는 이어서 쪽방촌에서 홀로 살아가는 어르신들이 폭염을 견디는 이야기, 농촌 마을이 기후 온난화로 인해 폭염과 폭우에 시달리며 농작물 수확이 줄어드는 현실을 다루었다.
감독과의 대화 중 "기후 위기를 다룬 영화를 찾기 어렵다"는 질문이 있었다. 아마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우리 삶 속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외면하거나 부정하고 싶기 때문은 아닐까. '누군가는 하겠지',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회피 심리가 더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추석을 앞두고 지인들과 영중면에 홀로 사시는 어르신을 찾아뵈었다. 작은 컨테이너에 냉장고와 세탁기 같은 기본적인 가전제품조차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폭염이 기승을 부릴 때, 뜨거운 열기로 달궈진 컨테이너 안에서 선풍기와 에어컨 없이 여름을 견디셨고,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난방이 어려운 가운데, 혹한의 겨울을 또 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함께한 지인은 어떻게 도와드려야 하나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했다. 영화 속에서만 보던 가난은 우리 주변에도 분명히, 그리고 조용히 존재하고 있었다.
모든 인간이 같은 환경에서 같은 삶을 살아갈 수는 없겠지만, 기후 위기를 불평등하게 감당해야 하는 현실은 너무나 가혹하다. 누구도 가난을 선택하지 않았고, 누구도 기후 위기를 선택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의 모든 권리를 평등하게 보장한다”는 구절이 무색하게 느껴졌다.

영화 '기생충' 속 부유층 가족은 집안에서 밤새 내리는 폭우에 운치를 느낀다. 잔디가 깔린 앞마당에 비가 새지 않는 텐트 안에서 잠든 아이를 지켜보았고 다음 날 아침 맑은 햇살을 맞는다. 반면, 같은 날 그 가족의 운전기사는 반지하에 살며 집 안으로 들이닥친 빗물과 오물이 목까지 차올라 가족 모두 수재민이 된다. 수십 명의 수재민과 함께 체육관에서 뜬눈으로 지새운 밤은 상실감을 느낄 틈도 없이 아수라장을 연상케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평등은 기후 위기 속에서 ‘어떤 환경에 살고 있는가’에 따라 체감하는 정도를 다르게 만든다. 같은 하늘에서 내리는 폭우와 폭염조차, 부유한 이들에게는 안전한 지붕 아래서 느끼는 자연이지만, 가난한 이들에게는 찢어진 우산조차 되지 못하고 그 모든 것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한다. 우리는 인권을 무시한 구체적인 차별로 다가오는 기후 위기를 ‘나의 일’이 아니라고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불과 5년 전만 해도 ‘기후 위기’나 ‘탄소중립’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낯설었다. 지금은 익숙해진 만큼 조바심 내는 활동가들에게 “세상은 그런 유난으로 바뀌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맞다. 기후 위기 대응은 나 한 사람만의 실천으로는 거대한 사회 구조를 바꾸기 어렵다. 그러나 그 변화를 바라는 민주시민들이 모이면 정치가 바뀌고, 정치가 예산이 수반된 정책을 만들면, 차별 없는 인권이 평등한 사회로 이어질 수 있다. 나비의 날갯짓 같은 미시적 실천이 결국 거시적 차원의 근본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포천햇빛조합은 탄소배출 없는 재생에너지(태양광) 전환 활동으로 탄소중립을 실현하고 조합원의 이익 공유와 공익적 목적을 추구한다. 더 깊게는 지구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태계를 위하여 환경운동과 인권에 중심을 두고 있다. 아직은 미약한 활동이지만, 기후 위기에 맞서 부끄럽지 않은 양심과 ‘밝고 맑은 세상을 위해’ 우리의 인권을 지켜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