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社說]신읍동에서

백내장 수술에 대해서

본지 발행인 겸 편집인

 

"세상이 온통 환하게 보여요"

백내장 수술은 최근 내가 나에게 해준

가장 빛나는 선물

 

 

“엄마, 세상이 온통 환하게 보여요.”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었다. 수업 시간에 아무리 눈을 찡그리며 바라보아도 칠판에 쓴 선생님의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았다. 칠판 가까이 앞자리로 옮겨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님은 부모님과 안경원에 한번 가보라고 권했다. 처음 안경을 맞춰 썼을 때, 침침했던 세상이 온통 환하게 보였던 그 감동은 지금도 생생하다. 

 

내가 얼마나 흥분하고 들떴는지, 그 모습을 보던 어머니는 돌아서서 옷고름으로 연신 눈시울을 찍어 내렸다. 그리 여유롭지 못한 생활 탓에, 네 형제를 뒷바라지하느라 막내에게 빨리해 주었어야 했을 일을 너무 늦게 해주었다는 미안함에서였을까.

 

중학교에 진학해서는 고도 근시에 난시까지 겹쳐 안경만으로는 도수가 잘 나오지 않았다. 그 무렵 콘택트렌즈가 처음 나오기 시작했는데, 나는 각막이 매끄럽지 못하고 불규칙적으로 울퉁불퉁한 난시를 효과적으로 교정해 준다는 콘택트렌즈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안경이나 렌즈의 불편함은 사용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결코 느끼지 못한다. 특히 길거리에서나 버스 안에서 갑자기 빠져버린 렌즈 때문에 겪은 당혹감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침저녁으로 렌즈를 끼고 빼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세면대에서 렌즈를 씻다가 개수대 구멍으로 물과 함께 렌즈가 쓸려 내려갔을 때의 황당함이란 겪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 모를 것이다.

 

그런 불편함을 숙명으로 알고 살아갔어야만 했던 나의 시력은 얼마나 될까. 군대 입소를 위해 신체검사를 했는데, 방위병으로 빠지는 보충역도 아니고 아예 군대 근처에는 얼씬거리지도 말라는 징집면제 판정을 받을 정도였다. 

 

알아듣기 쉬운 이야기로 하면 시력 검사 때 맨 위에 있는 제일 큰 글씨가 보이지 않는다. 0.1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 이들에게는 렌즈를 착용해서 생기는 불편함이란 당연히 감수해야만 하는 일상이다. 우선 앞이 보여야 하니까. 난 그렇게 50여 년을 렌즈와 함께 살아왔다.

 

그런데 나이가 한 살 한 살 더 드니까 그렇게도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해야만 하는 렌즈조차 더 이상 착용하기가 힘들어졌다. 렌즈가 닿는 각막이 쓰리고,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할 수 없이 렌즈를 빼고 안경을 껴보지만, 시력이 제대로 나올 리가 없었다. 안경을 쓰고 측정한 시력이 0.2 정도였다. 거기에 백내장까지 있다는 의사의 진단이었다.

 

고도 근시에 고도 난시, 그리고 노안에 백내장까지. 그야말로 내 눈은 최악의 상태였다. 그동안 백내장 수술을 받은 선배들의 조언도 무수히 들었고, 유명하다는 안과 병원도 여러 곳을 찾아다니며 검사도 수도 없이 했다. 1년여의 고민 끝에 올해 한 안과 병원에서 왼쪽 눈 수술을 받았다. 다음 날은 오른쪽 눈을 수술했다. 단초점과 다초점 인공 수정체를 넣는 두 가지 수술 방법이 있는데 난 후자를 선택했다.

 

수술 직후 받은 시력 검사에서 0.2가 나왔다. 그다음 날에는 0.4, 그리고 그다음에는 0.7. 이렇게  매일매일 시력이 밝아졌다. 수술한 지 꼭 1주일이 지나고 다시 병원을 찾았다. 양쪽 눈 시력이 모두 0.9가 나왔다. 수술했던 의사는 앞으로 1.0까지 볼 수 있단다. 노안이어서 돋보기를 껴야 보였던 가까운 곳에 있는 글씨도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또렷하게 보이게 됐다. 가까운 데 있는 글이 돋보기 없이도 잘 보이는 것이 신기했다.

 

그전에는 거실 등이 침침해 보여서 조만간 전구를 갈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새것처럼 환하게 보였다. 낮에 길거리를 다닐 때는 눈이 부실 정도로 세상이 너무 밝아 선글라스까지 쓰고 다닌다. 그러고 보니 도수 없는 선글라스를 쓰는 것도 태어나서 처음이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처음 안경을 맞춰 썼을 때, 침침했던 세상이 온통 환하게 보였던 그 생생했던 감동이 또다시 폭풍처럼 내게 몰려온다. 백내장 수술은 최근 들어 내가 내게 해준 가장 빛나는 선물이었다.

 

“세상이 온통 환하게 보여!”

아내가 걱정스러운 듯 수술 경과가 어떠냐고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나는 엄지손가락을 번쩍 치켜들고 활짝 웃었다. 조금은 흥분하고 들떠 보이는 내 모습에, 그 옛날 초등학교 시절 돌아서서 옷고름으로 연신 눈시울을 찍어 누르던 지금은 돌아가신 어머니처럼, 이번에는 아내가 돌아서서 눈시울을 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