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원 칼럼] 살며 생각하며

효율 우선 사회에서 나만의 개성 만들기

차의과학대학교 교수, 전 KBS프로듀서/아나운서

 

최근 전 세계 대중음악 시장을 휩쓸고 있는 흐름 중 하나가 '스페드 업(Sped Up)'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편히 숨 쉴 휴식 공간이 필요한 요즘은 긍정적인 사고로 순수한 마음으로 조금은 느리게 사는 것도 한 방편이 된다.

 

 

요즘 가정이나 직장 등 생활이 팍팍하다고 말하는 이가 많다. 그 이유를 곰곰 생각해 보면 경제가 제일 문제인 듯싶고, 인간관계가 편치 않은 듯싶다. 경제 상황이 좋지 않으면 미래를 위해서라도 여유 있는 생활이 힘들다. 절약하고 효율적으로 경제생활을 하는 수밖에 없다. 아무튼 생활이 편치 않다.

 

돈을 효율적으로 써야 하니(절약을 포함하여) 가성비를 따지고, 심지어 시간의 효율성을 따지는 시성비(時性比)라는 말까지 생겨나 시간까지 아껴 쓰자고 한다. 돈은 물론이고 시간, 노동력, 노력, 열정 등 모든 자원을 효율적으로 써야 하니 피곤하기 짝이 없다. 효율성 최우선 사회가 되어버렸다.

 

일을 빨리빨리 해야 함은 물론 두세 가지 행위를 동시에 해야 하니 힘이 든다. 다른 사람보다 빨라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우리 사회 안전마저 위협하고 있다. 걸으며 스마트폰 하는 것은 물론이고,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며 스마트폰 하는가 하면, 어느 노인분은 뭐가 그리 급하신지 버스 승차하시며 한 손으로는 스마트폰 통화를 하고 한 손으로 교통카드를 터치하다 버스 기사에게서 걱정을 듣는다. 운전대를 잡고 흡연하며 스마트폰 통화하는 분들은 안전을 위해서도 삼가야 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정이나 사랑 등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 즉 혈연 지연의 게마인샤프트 공동체가 옅어지거나 해체되는 단계에 있고, 사회는 계속 파편화한다. 따라서 개인화, 경쟁화, 이기주의 경향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안온한 휴식과 위로의 공간, 편히 숨 쉴 숨구멍 역할을 하는 편하고 평화스러운 공간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좀 더 느리게 살기

모 방송국에서 만든 방송 자연 다큐멘터리 '증도 인생'이 해외 다큐멘터리 페스티벌에서 수상하는 등 좋은 평가를 받았다. 방송 영상의 변화와 발전을 주도하는 미국과 서구의 전문 방송인들은 전남 신안 앞바다의 작은 섬, 증도의 이야기를 다룬 자연 다큐멘터리에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부(富)에 욕심 없는 사람들이 살고 있고, 하늘과 땅, 햇볕과 바람, 자연이 주는 혜택만을 온전히 누리며 사는 사람들의 질박한 인생 이야기에 호평을 내리고 극찬한 것이다. 제작 기법, 영상 표현력을 보고 시상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증도 사람들의 느리게 사는 삶, 자연과 함께 욕심 없이 사는 삶에 박수를 보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삐삐 꽃이 핀 느릿느릿한 소금 마을에는 천일염 채취가 한창이다. 바닷물을 끌어들여 소금을 만들려면 절차가 복잡하고 많은 시간이 든다. 저수지로 바닷물을 끌어들였다가 증발지로 보내 태양열과 바람으로 수분을 증발시키니 그럴 만도 하다. 거의 한 달을 거쳐 바닥에 하얗게 꽃을 피운 소금을 거둬들이고 창고에서 1년 이상 간수를 뺀 뒤 출하하는 것이 천일염이다. 증도에서는 모든 게 느리다. 소금 만들기만 느린 것이 아니라 개펄의 짱뚱어도, 농게도, 사람의 일상도, 변화도 느리다.

 

빠르고 편리함, 효율을 중시하는 세태에 ‘슬로시티 증도’의 삶은 아니더라도 속도를 늦춰 사는 것이 좋지 않은지 생각한다. 그러면 나와 주위의 모습이 좀 더 잘 보이기에 관심과 사랑을 더 갖고 편안하고 차분하고 여유 있는 삶을 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느리고 비효율적으로 사는 것이 윤택하고 풍요로운 삶의 한 방편이 될 수도 있다.

 

최근 전 세계 대중음악 시장을 휩쓸고 있는 흐름 중 하나가 '스페드 업(Sped Up)'이다. 이는 '가속하다'는 뜻을 가진 '스피드 업(Speed Up)'의 과거형 표현으로 주로 특정 곡의 속도를 원곡보다 125~150% 빠르게 바꾼 '2차 창작물'을 일컫는다.

 

또한 영화, 드라마도 가속하여 빠르게 보는 것을 선호하는 이가 많다고 한다. 음악 듣는 이의 입장에서는 곡의 템포가 바뀌고 가수의 목소리, 음높이까지 달라지기 때문에 처음 발표된 곡에서 느끼지 못한 분위기를 느껴보는 색다른 점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영화, 드라마의 구성, 전개, 결말을 빨리 알게 되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감상법(?)은 창작 작품의 감상까지 효율과 속도를 통한 일로 접근하는, 본말이 전도된 감상이라는 생각이다. 시간의 가속화는 그런 방법으로 시간을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충실한 삶을 산다는 생각을 줄 수는 있으나, 착각일 수도 있고 그 결과는 허무와 상실, 고독일 수도 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기업에서 새로운 일을 추진하기 전에 관련 부서 또는 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하고, 효율적으로 추진하는 방안을 협의하는 회의가 있다. 회의에 참석하는 사람의 의견은 대체로 너덧 가지로 갈린다. 새로운 일이 문제나 단점이 있어도 긍정적인 시각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단점을 보완하여 일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반면에 이와는 정반대의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있다. 문제와 단점을 확대하고, 그것을 빌미로 새로운 일의 추진을 반대하는 사람이다. 한편, 새로운 일에는 반대하지만, 다른 대안을 마련하여 제시하는 사람도 있다. 마지막은 방관자나 동조자들이다.

 

이같이 새로운 일을 보는 관점은 어떠한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입장이 나뉜다. 대상에 대하여 사고하는 방법에는 일반적으로 긍정적 사고, 부정적 사고 두 가지가 있다. 긍정적 사고는 태양이요, 물이요, 공기이다. 대상에 대하여 장점, 밝은 측면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추진해야 할 타당성을 찾는다. 최종적으로 추진할 방법을 찾고, 단점 및 문제점을 보완하려 한다. 기쁨, 사랑, 즐거움의 씨앗은 긍정적 사고에서 성장한다. 긍정적 사고의 기본 인프라는 사랑, 희망, 인내, 도전 의식 등이다. 반면에 부정적 사고는 포기, 비관, 짜증으로 절망의 씨앗을 싹 틔우고 배양한다.

 

긍정적 사고를 하는 사람은 상황을 인식하는 관점 또한 긍정적이다. 그런 사람은 어려운 일이나 상황도 시작이 있었으니 반드시 끝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인내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다. ‘한술 더 떠서’ 어려운 상황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차원을 넘어 즐기겠다고 생각하는 이는 ‘그 어떠한 상황’도 웃으며 받아들이는 초월적 긍정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나’만의 ‘순수, 동심, 진정’의 ‘시그니처 만들기

경쟁의 시대, 효율성 최고의 사회에서는 어떤 현상이나 개념에 대해 반대로 생각하는, 즉 역발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다.

 

영악하고 똑똑하고, 언변도 좋고, 행동이 민첩하고 빠른, 똑 부러진 사람도 좋지만 좀 어눌하지만 순수해 보이고, 아이같이 천진난만하지만 제 역할을 하는 사람이 진정성 있어 보여 인기와 신뢰성이 높다. 좀 넉넉하고 허술해 보여 사람들의 인기도 좋다.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면서 전기 고문을 당한 탓에 이후 30여 년의 세월 동안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해 고통받다 돌아가신 천재 시인이자 평론가, 천상병이 있다. 지금까지 오래오래 많은 사람이 그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가 순수한 마음으로 인생을 노래한 <귀천〉 등 여러 명시를 남겼지만 시에 걸맞게 ’어린이처럼 천진난만하고 순진무구한 성격의 소유자‘로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들국화‘라는 시에서 아이 같은 마음을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산등성 외따른 데/애기 들국화.//바람도 없는데/괜히 몸을 뒤뉘인다.//가을은/다시 올테지. 다시 올까?//나와 네 외로운 마음이/지금처럼 순하게 겹친 이 순간이......‘

 

한편, 천재 화가 이중섭의 서귀포 시절에 그린 아이들과 게, 물고기, 닭, 가족을 다룬 그림, 특히 어른 손바닥 남짓한 은박지에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을 새겨 그린 그림과 한국인에게 각별한 대상인 소를 선하면서도 우직하게 묘사한 소(牛) 그림 등은 지금도 누구나 사랑하는 불후의 명작이다.

 

추사 김정희는 말년에 기교와 힘을 뺀 순박한 글씨를 선보였다. 그 글이 마치 아이의 글씨와 같다 하여 일명 동체라고 불린다. 평론가들은 추사는 제주 귀양살이 후부터 글씨가 ’아이들 그림처럼 자유분방해졌고, 거칠 것 없이 활달하고 천진난만하고 창의력이 넘치고 그대로 현대 회화와 공통되는 조형미를 갖추게 되었다’고 평한다.

 

우리 동요 ‘파란 마음 하얀 마음’에서는 동심을 이렇게 노래한다.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겨울엔 겨울엔 하얄 거여요/산도 들도 지붕도 하얀 눈으로/하얗게 하얗게 덮인 속에서 깨끗한 마음으로 자라니까요’.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말이 있다. 어린이가 어른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교훈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어른이 어린이의 모습을 보면 뭔가 배울 게 있다는 의미이다. 어린이는 어른들의 영원한 동경의 대상이자 원초적 마음의 고향이다. 그래서 사람은 모두 동심을 사랑한다.

 

사람이든 작품이든 아이 같은 마음 즉 동심과 천진난만, 순수함이 있을 때 은 호감을 준다. 이러한 순수함에 덧붙여 일(?)을 처리하는 기본적 마음, 자세, 내용, 방향에서 진정성이 있고 그것을 그대로 보여준다면 주위에 있는 사람과의 신뢰가 더욱 돈독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시그니처, 즉 개성 있고 창의력 있는 특성, 특징이 큰 영향력이 있으며 그것이 사람들의 주목과 인기를 얻는 요인이 된다고 한다. 여러분께 개성의 시그니처로 다른 사람과는 좀 색다른 ‘순수, 동심, 진정’를 권하고자 한다.

 

 

서재원 교수

· 창수초등학교, 포천중, 포천일고, 서울대 졸업

· 한국방송 KBS 편성국장, 편성센터장(편성책임자)

· 차의과학대학교 교양교육원장, 부총장

· 포천중·일고 총동문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