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책방의 즐거움

시인 임후남은 중앙일보와 경향신문사, 웅진씽크빅 등에서 글을 쓰고 책을 만들었다. 2018년부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에서 시골책방 '생각을담는집'을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펴낸 책으로는 '시골책방입니다', '아들과 클래식을 듣다', '아이와 여행하다 놀다 공부하다', '아이와 길을 걷다 제주올레'가 있고, 시집 '내 몸에 길 하나 생긴 후'가 있다.

동네 할아버지들이 책방에 오는 게 나는 참 좋다.

평생 농사만 짓고 산 그분들이 서점을 갔던 적은 먼 옛날일 것이다.

카페야 어쩌다 도시 사는 자식들이 와서 모시고 갈 수는 있지만,

서점이라는 곳을, 더욱이 이런 작은 책방을

모시고 갈 일은 없을 것이다.

 

 

한가로운 시골책방의 어느 봄날. 할아버지 세 분이 들어왔다. 막걸리를 한 잔씩 걸쳐 모두 얼굴이 불콰했다. 이곳에서 자라고 평생 이곳을 떠나본 적이 없는 어른들이었다. 한 분은 언젠가 한 번 동창회를 마치고 책방에 들러 차 한 잔씩을 하고 돌아갔고, 한 분은 딸과 손주들을 데리고 온 분들이었다.

 

처음에는 한 분만 들어왔다. 다른 두 분과 달리 얼굴이 낯설었다. 시골책방에 불콰한 얼굴로 들어온 할아버지를 보고 나도 모르게 경계심이 생겼다. 코로나 19로 방명록 작성이 필수라 먼저 작성을 부탁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난 글씨 몰라. 좀 이따 글씨 잘 쓰는 사람 올 테니 그 사람보고 쓰라고 하면 돼.”

그제야 나는 일행이 있다는 걸 알았다. 잠시 후 글씨를 잘 쓴다는 할아버지와 다른 한 분이 같이 들어왔다. 낯이 익은 분들이었다. 비로소 경계심이 확 풀렸다.

 

“아무거나 그냥 주셔. 맛있는 걸루다.”

할아버지들은 뭘 마실지 메뉴도 잘 정하지 못했다. 나는 일단 시원한 걸 드시겠냐, 뜨거운 걸 드시겠냐 물어보고 커피냐, 다른 음료냐 물어봤다. 그런데도 할아버지들은 쉽게 결정을 하지 못했다. 결국 할아버지들은 커피는 다 똑같다, 그래도 커피는 뜨거운 걸 마셔야 한다, 설탕은 알아서 타 먹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책방에 손님이라곤 할아버지 세 분이 전부. 할아버지들은 이야기를 나누고, 나는 한쪽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중 한 할아버지가 유난히 큰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데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안 어울려! 아, 이렇게 공기 좋고. 더이상 좋을 수가 없는데 말이야. 도시 사람들은 이런 데 오면 좋다고들 하지. 그런데 우리는 맨날 이렇게 공기 좋은 데 사니 좋은 줄 몰라. 그리고 이렇게 책이 있고 하니 얼마나 좋아. 그런데 우린 안 어울려. 너, 송충이는 뭘 먹고 사는지 말해봐. 저 소나무에 사는 송충이 말이야. 우린 평생 땅 파먹고 살았잖아. 그러니 이런 책이 있는 곳에 오면 좋긴 한데 말이야, 이런 게 우리하곤 안 어울린단 말이지.”

 

“송...충...이? 소나무 잎? 누우에? 난 당연히 밥을 먹지!”

목소리 큰 할아버지가 순박하기 이를 데 없는 목소리를 가진 글씨를 잘 모른다는 할아버지와 나누는 대화가 재미있어 나는 혼자 배실배실 웃음이 났다.

 

그러다 글씨를 잘 쓴다는 할아버지가 일어나서 책들을 둘러봤다. 언젠가 딸과 함께 들렀던 그 할아버지는 당신은 글씨를 쓰는 게 좋다고 했었다. 그래서 매일 기록을 한다고 했다. 퇴비를 얼마큼 샀다, 마늘밭에 몇 포를 뿌렸다, 막걸리 한 병을 샀다, 강아지가 새끼를 낳다 등등 당신 생활을 기록한다고 했었다. 그때 그 할아버지 말을 듣고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할아버지들 글쓰기 수업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우리 손주가 책을 좋아해.”

그 할아버지는 그림책 서가에 가서 몇 권을 뒤적이시더니 한 권을 고르곤 말씀하셨다. 얼굴에는 내내 웃음이 가득했다.

 

“아, 이런 데가 얼마나 좋아! 공기 좋지, 책 있지, 커피 있지. 우리 동네에 이런 게 있다는 게 얼마나 좋아!”

그러다 갑자기 글씨를 쓸 줄 모른다는 할아버지가 갑자기 큰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그런데 여기 손님이 와요? 솔직히 말해 보셔.”

할아버지들의 말에 내내 귀를 기울이고 있던 나는 그래서 큰 목소리로 말했다.

“어르신들도 오셨잖아요.”

 

동네 할아버지들이 책방에 오는 게 나는 참 좋다. 평생 농사만 짓고 산 그분들이 서점을 갔던 적은 먼 옛날일 것이다. 카페야 어쩌다 도시 사는 자식들이 와서 모시고 갈 수는 있지만, 서점이라는 곳을, 더욱이 이런 작은 책방을 모시고 갈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카페든 책방이든 그분들이 다니기에는 아무래도 쉽지 않다. 당신들이 읽을 책을 사는 일도 그렇고, 막걸리 한 병 값보다 비싼 커피를 돈 내고 사드실 일이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침 막걸리도 한잔 걸쳤겠다, 까짓것 한번 가자 하고 오셨을 것이다.

 

할아버지들의 이야기가 나는 너무 재미있어 내내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저 할아버지 나이 때쯤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다. 아버지도 만약 이 책방에 오셨다면 저 할아버지들과 똑같은 대화를 나눴을 것이다.

 

시골책방이 농부의 신발을 따라 여기저기 씨앗을 옮기는 냉이가 됐으면 좋겠다. 그들 마음에 책의 씨앗이 전해져 꽃처럼 피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할아버지들이 돌아간 후 내게 시 한 편이 남았다.

 

▲냉이꽃.

 

할아버지와 냉이꽃

 

송충이는 뭘 먹지?

송. 충. 이...? 송.. 충.. 이?

그래, 송충이!

소나무.... 잎?

그렇지, 솔잎

 

그럼 누에는 뭘 먹지?

누에, 누우에?

그래. 누에! 누에!

누우에는 뽕잎을 먹지.

 

그래! 우리는 누구야?

우리는 우리지. 너랑 나랑.

그래, 너랑 나랑. 우린 뭘 먹지?

우린 밥을 먹지.

 

아냐, 우린 땅을 파먹지. 우린 못 배우고 땅을 파먹었지.

난 밥 먹는데.

그러니까 우리가 이런 책 다방이 안 어울리는 거야.

그래도... 난 좋은데. 읽지 못해도 책이 있으니까. 좋다!

 

글씨를 모른다는 한 할아버지가 친구와 막걸리 한 잔을 마시고 왔다.

얼굴 벌건 할아버지,

손주 그림책 한 권 사 들고 더 벌게진 얼굴로 말했다.

 

이렇게 좋은 데가 어딨어!

솔직히 말해 보셔. 손님이 하루에 얼마나 와요?

 

할아버지들 떠난 자리에 떨어진 흙부스러기들.

냉이꽃 피어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