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에 쓰는 서재원의 사람이야기]

화려한 봄날, 어느 여인의 슬픔

차의과학대학교 교수, 전 KBS 프로듀서· 아나운서

 


슬픔의 힌트

이상한 느낌에 눈을 떴다. 잠이 덜 깬 눈으로 윗목을 바라보니 엄마가 벽에 기대 숨죽여 흐느낀다. 민호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며 와락 겁이 난다. “팔자가 그거밖에 안 되는 걸 어떡하나. 그만 해!” 볼멘소리로 아버지는 엄마를 달래고 있다. 뭔가 있구나, 생각하니 불안하다. 다시 잠으로 빠져들었다.

 

모내기 철이다. 논에 물을 미리 대고, 바닥을 뒤집어 무르게 만들고 평평하게 해두면, 벼 아주 심기가 좋다. 느티나무 밑 고래 논에서 ‘워-워-, 워디 워디, 이랴-이럇.’ 황소를 어르고 달래며 써레질하는 민호 아버지. 봄인데도 구슬땀을 흘린다. 바닥을 뒤집어 놓으니 동면하던 곤충 유충 등 벌레와 식물 등 새들의 먹거리가 많다.

 

강남 갔다 돌아온 제비가 활강하듯 논으로 내려와 먹이를 낚아채려다 써레질하는 황소의 워낭 소리에 화들짝 놀라 하늘로 ‘쌩’하고 오른다. '짤랑짤랑 짤랑짤랑’, 경쾌한 워낭소리가 동네를 꽉 채우며 흐르고 있었다. 멀리서 ‘뻐꾹, 뻐꾹, 뻑뻐꾹', 뻐꾸기 소리가 메아리 되어 돌아온다.

 

하릴없이 툇마루에서 꾸벅꾸벅 졸고 앉아 있던 여섯 살 민호. 내일이 모내기 날이라는 엄마 말씀에 신바람이 났다. “옥순아, 나물하러 가자. 반찬 몇 가지는 해놓아야지. 민호도 함께 가자꾸나.” 엄마는 겨드랑이에 가래톳이 설 정도로 젖멍울이 아프다. 몸도 마음도 무겁다. 그렇지만 모내기 준비를 해야 한다.

 

여섯 살 민호와 열아홉 옥순이는 나물하러 갈 준비에 바쁘다. 다래끼와 조그만 종댕이, 창칼, 가위가 있어야 한다. 민호 허리에 질끈 종댕이를 묶어주던 엄마. 허리에 대롱대롱 매달린 종댕이, 씰룩대는 궁둥이 모습에 모처럼 배시시 웃고 있었다.

 

이야기 속으로

나물이 많은 애기능성이를 가려면, 구불구불 휘어진 가파른 산길을 올라야 한다. 옆구리에 다래끼를 낀 엄마와 옥순이는 뒤뚱뒤뚱, 조그만 종댕이를 허리에 찬 민호가 자박자박 산길을 간다. 어린 민호는 엄마와 누나 걸음을 따르자니 힘들다. 때 이른 후끈한 땅 기운에 숨이 턱턱 막힌다. 신갈나무 그루터기에 다리를 포개 털썩 주저앉는 민호, 엄마도 따라 앉는다.

 

노오란 민들레꽃, 자주색 제비꽃이 황톳길 옆에 듬성듬성 피어있었다. 엄마는 생각한다. ‘이 예쁜 꽃들도 금방 지겠지. 사람들은 순식간에 피었다 지는 꽃과 풀 등에는 아무 관심을 두지 않아. 그런 건 사람 일과 관계없고, 사람들은 또 바쁘니까. 난 민들레꽃, 제비꽃이 피었다 금방 지는 게 슬퍼! 이름도 알고, 눈인사도 하며 지내는 사이고, 관심이 있고 사랑스러워서. 그렇다고 절망하지는 않아. 좀 있으면 패랭이꽃도 지천으로 피어날거야.’

 

꽃은 이어서 열매를 맺고 내년에 더 많은 꽃을 피울 것이다. 사람들은 꽃이 수명이 짧다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 사람 사는 세계와 비슷하다. 기다리고 인내하면 새로운 시간이 오고, 새 생명이 오고, 생명의 순환을 볼 수 있다.

 

슬픔의 짐작

“작은엄마, 갓난쟁이가 홍역으로 멀리 떠나 슬퍼요.” 갑자기 사촌 옥순이 누나가 엄마를 보며 중얼거린다. 민호는 엊그제 일이 떠오른다. 친구하고 놀다 방에 들어가 보니 이제 갓 백일밖에 안 되는 여동생이 없어졌다. 안방이 휑하다. 아버지께 물으니 그냥 멀리 놀러 갔단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걷지도 못하는 갓난쟁이가 놀러가다니.....’

조카 말에 먼 산만 물끄러미 쳐다보는 엄마. 자식을 떠나보낸 마음이 조팝나무꽃같이 갈래 갈래다. 신갈나무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물색 하늘에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간다. ‘애기능성이’는 산 능성이에 ‘애기 묘’가 많아서 그런 이름이 붙었단다.

 

‘갓난쟁이 여동생도 애기능성이 어딘가에 있을지 몰라.’

엉뚱한 생각을 해보는 민호. 그때 상수리 가지 위에 앉아 있는 꾀꼬리 한 쌍이 ‘꾀꼴 꾀꼴, 히여 히요' 시끄럽게 울어댄다. 그러다가 둥지에 낳아놓은 알이 해코지 당할까 봐 두려웠는지 ‘푸두득, 푸드득’ 하늘로 날아올라 모두의 머리를 쪼을 듯이 맴돌고 있었다.

 

“민호야, 이제 나물 뜯으러 가자.”

꾀꼬리 소리에 정신이 든 듯 엄마가 재촉한다. 산철쭉꽃 옆으로 보라색 뻐꾹채꽃, 엉겅퀴꽃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걷기에 목이 탔던지, 민호가 뻐꾹채꽃 밑둥을 툭 잘라 껍질을 까내리고 입에 쏙 넣는다. 달착지근하고 부드러운 육즙이 좋다. 때맞춰 바람까지 분다. 시원하다. 애기능성이에 도착했다.

 

“원추리나물 발 앞에 있다. 뜯어야지. 그리고 홑잎나물도… 새순이 엄청나게 많다.”

엄마 말에 창칼을 움켜쥔 손가락에 야무지게 힘을 주어 원추리나물 뿌리 쪽으로 엇비슷하게 찔러 넣는 민호. 창칼이 뿌리를 자르는 순간 왼손으로 나물 순을 익숙하게 들어 올려 뿌리에 묻은 흙을 툭툭 털고 종댕이에 쏙 집어넣는다. 홑잎은 새순을 훑어서 뜯으면 된다. 산마늘, 취나물, 고비, 고사리, 우산나물, 다래순, 잔데순, 오이순, 두릅, 엄나무순, 으아리 등 나물이 지천이었다.

 

 

민호는 엊그제 일이 떠오른다. 

갓 백일밖에 안 된 여동생이 없어졌다.

안방이 휑하다. 아버지께 물으니 

그냥 멀리 놀러갔단다. 

 

 

 

슬픔의 이해

마을에 있는 벚나무는 꽃이 진 지 한 달이 넘었다. 그런데 애기능성이 산벚나무는 이제야 한창이다. 민호는 벚꽃 중에는 산벚꽃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보통 평지의 벚나무는 잎이 돋기 전에 꽃이 한꺼번에 화려하게 피었다가 순식간에 떨어진다. 꽃이 모두 떨어진 후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벚나무는 허망하고 슬프다.

 

그런데 산벚은 햇빛 드는 정도에 따라서 적갈색의 움과 연록, 진록 등 형형색색 다채로운 이파리 사이 사이에서 알토란 같은 작은 꽃이 하양과 연분홍으로 피었다 지고, 또 피어난다. 꽃이 잎과 조화를 잘 이뤄 좋고 생명이 길어 더욱 좋다.

 

꽃과 이파리가 기다란 주렴처럼 잘 어우러져 예쁘고 가냘픈 산벚나무 가지가 바람에 휘청인다. ‘획’ 바람이 세게 부니 떨어지는 꽃잎이 ‘우수수’ 눈보라처럼 흩날린다. 엄마 머리, 얼굴, 어깨, 가슴, 팔 - 온통 꽃잎이다.

 

엄마가 꽃잎이 되었다. 실눈을 가늘게 뜨고 웃고 있는 엄마, 눈빛이 슬프다고 민호는 생각한다. 엄마가 엄지와 검지로 벚꽃을 살짝 집어 민호의 오므린 작은 손 우물에 살포시 놓고 꼬옥 껴안는다.

 

엄마 품에서 무명 적삼 옷고름을 꽉 움켜쥔 채, 옷 속을 헤집어 젖무덤에 얼굴을 묻는 민호. 퉁퉁 불어버린 찌찌에서 젖이 뚝뚝 떨어져 흐를 듯 짙은 젖 내음과 살 내음이 훅 다가온다. 놀러 갔다고 하는 동생 생각이 난다. ‘어린 게 놀러 가기는 어딜 놀러가? ’민호는 슬펐다.

 

옥순이가 갑자기 중얼거린다.

“작은엄마, 젖몸살이 심해요? 짜내면 덜 아프다 하는데......”

 

응달진 산기슭, 산목련과 골 아래의 찔레가 하얀 꽃을 피우고 있다. 코티 분보다 더 진한 향기가 바람결에 다가와 코를 간질인다. 저만치 무너질 듯 주저앉은 이름 모를 묘지 풀 섶에서 할미새 한 마리가 ‘찌찌찌’울며 날아오르고 있다.

 

엄마가 한 손으로 민호 등을 살포시 두들기며 자장가를 부른다.

“어정어정 할미새, 할금할금 할미새, 눈치만 슬슬 할미새, 고달프다 할미새, 슬프구나 할미새. 자장자장 우리 민호, 잘 자거라 우리 민호, 잘 크거라 우리 민호.”

 

붉은색 할미꽃, 선홍색 병꽃이 유달리 화사하던 그해 봄이 엄마 가슴에 슬픔을 남기고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에필로그

그녀는 대하드라마의 역사적 배경이 됨직한 삶을 살았다. 전환기적 상황의 남존여비, 희생을 강요하는 불편부당한 가족제도, 빈한한 환경 속에서 온갖 고초를 겪고, 여인으로서는 인내하기 어려운 정서적 슬픔을 안고 살았다.

 

그러나 민호씨는 엄마의 속내를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곡절 많은 삶을 살아왔기에 그 복잡한 감정과 이야기의 실타래를 스스로 풀기가 어려웠고, 말로 표현하기란 더욱 힘들지 않았나 싶다. 아니면 속내를 드러내는 게 득보다는 실이 많았던 지나온 경험이 몸과 마음에 체화되어 있었기 때문은 아닐지......

 

가끔 드러내는 정서, 은근한 표현, 그리고 함께 살아온 느낌 등을 통해서만 엄마의 속내를 어렴풋이 짐작할 따름이었다.

 

 

서재원

● 창수초등학교, 포천중, 포천일고, 서울대 졸업

● 전 한국방송 KBS 편성국장, 편성센터장(편성책임자)

● 차의과학대학교 교양교육원장, 부총장

● 포천중·일고 총동문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