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사가 끝난 지 벌써 스무날이 지났다. 그런데도 아직 포천시에서는 시민들의 불만에 대해 묵묵부답이다. '이만하면 잘하지 않았느냐'는 자화자찬 소리만 들린다. 특히 시의 최고 책임자인 백영현 시장이 사과했다는 소리는 어느 곳에서도 들을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와 잘못을 하고 사과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자기 행동과 말로 인해 타인을 불편하게 했거나 기분을 상하게 했을 때, 또 고의는 아니었더라도 약속을 지키지 못했거나 상대방에게 금전적인 손해를 입혔을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 그리고 한 도시의 수장인 시장과 군수 등 선출직 정치인들은 그런 순간을 더욱 자주 접하게 된다.
한국의 정치인들, 특히 역대 대통령은 사과에 매우 인색했다. 여론이 들끓고 나서야 떠밀리듯이 사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대부분 선출직은 사과하면 권위와 리더십이 훼손되고 상대방으로부터 공격의 빌미를 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두환 대통령은 사과를 거의 하지 않기로 유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전두환 대통령은 광주사태 빼고는전라도에서도 인정하는 훌륭한 지도자"라고 말했다가 호남 여론이 크게 나빠졌다. 며칠 후 유감을 표명하며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했지만, 더욱 큰 역풍이 불자 결국 사과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형수 욕설'에 대해서는 머리 숙여 사과했다. 그러나 성남 시장 시절 측근의 비리 연루 의혹에 대해서는 유감이라고 했다가 지지율이 폭락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도 자신과 가족의 잘못에 대해 아직까지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2012년 박근혜 대선 후보는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5·16, 유신, 민혁당사건 등 생전의 과오에 대해 사과한 뒤 대통령에 당선됐다.
정치인들은 어쩔 수 없이 사과해야 할 경우에도 직접적인 사과 대신 '유감'이라는 말을 쓰는 것을 선호한다. 대부분의 정치인은 유감 표명하는 것이 곧 사과라고 생각한다. 유감은 사전적으로는 '마음에 차지 않아 섭섭하거나 불만스러운 느낌'을 뜻하는 말이다. 맥락에 따라 '안타깝다'나 '안 됐네'라는 위로의 의미로 사용된다. '미안하다'는 사과의 의미가 전혀 없음에도 정치인들은 유감을 사과와 혼용해서 사용한다.
정치인의 사과가 인정받기 위해서는 다음 네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자신의 책임과 과오를 명확히 인지하고 표현해야 한다. 둘째, 누구에게 사과하는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 셋째, 정치적 계산이 아니라 내면의 반성과 진정성이 담겨야 한다. 넷째, 사과의 시기가 중요하다. 일이 벌어졌을 때 바로 사과해야 효과가 크다.
최근 포천 한탄강에서 세계드론제전 행사가 열렸다가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 30억 원의 혈세를 단 16분 동안 날렸다느니, 교통지옥이 따로 없었다느니 시민들의 불만이 크다. 첫날 교통대란이 일어나자, 관인의 한 이장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본사로 전화했다. 왜 주차장을 없애고 왜 텐트촌이 됐는지에 대한 자세한 취재도 요구했다. 이날 포천 주민들은 물론, 외부에서 행사를 구경 왔던 사람들까지 포천시를 향해 엄청난 비난을 해댔다.
행사가 끝난 지 벌써 스무날이 지났다. 그런데도 아직 포천시에서는 시민들의 불만에 대한 반응이 없다. '이만하면 잘하지 않았느냐'는 자화자찬 소리만 들린다. 특히 시의 최고 책임자인 백영현 시장이 사과했다는 소리는 어느 곳에서도 들을 수 없다. 행사 다음날 과장들을 모아놓고 질책했다는 이야기는 들렸다.
때를 놓치면 사과는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이런 물의를 일으키고도 사과 없이 어물쩍 지나간다면 더욱 큰 후폭풍을 당할 수 있다. ‘늦은 사과’는 오히려 여론을 악화시킨다. 진심 어린 사과만이 정치인의 자격을 증명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