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社說]신읍동에서

광암 이벽은 포천의 소중한 자산이다

본지 발행인 겸 편집인

 

포천 화현면 출신인 광암 이벽은 1785년에 순교한 우리나라 최초의 순교자다. 현재 한국 천주교회는 광암 이벽의 시복을 추진 중인데, 그가 시복되는 그날은 한국 천주교회 역사의 새날이 되고, 새 역사가 시작될 것이다. 광암 이벽은 현재 우리 포천이 가지고 있는 무형자산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는 브랜드 파워이며 소중한 자산이다.

 

한국 천주교 춘천 교구에서 발간한 8월 27일자 주보에 보면, 2021년 9월에 한국 천주교에서는 한국 교회 첫 순교자 유해를 230년 만에 찾았다고 보도했다.

 

그 며칠 뒤 '19세기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를 연구하는 조범현 한국중앙연구원이 "천주교회를 위해 사망한 김범우 토마스와 이벽 요한 세례자는 순교자로 부를 수 없는 것인가"라는 의미심장한 글을 예수회 인권연대 연구센터 웹진 '인연'에 소개했다. 천주교회 언론에 광암 이벽이 한국의 첫 순교자 반열에 등장하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러면 그 이전까지 한국 천주교 춘천교구(포천은 춘천교구에 포함된다)에서는 누가 우리나라 최초의 순교자로 알려져 있을까. 1992년 발간한 '포천 본당 36년사'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첫 순교자로 김범우 토마스로 기록하고 있다. 2017년 발간한 '철원 성당 60년사'에도 첫 순교자를 똑같은 김범우 토마스로 기록했다. 또 2020년 발간한 '죽림동 예수성심 주교좌 본당 100년사'(1920년~2020년)에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한국 천주교회 안에서 신앙 때문에 목숨을 잃은 첫 순교자는 김범우 토마스이다."

 

그런데 서울 서소문 성지역사박물관에서는 김범우 토마스를 '한국 천주교회의 첫 희생자'로 기록하고 있고, 첫 순교자로는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현 야고보의 이름이 올라가 있다. 그러나 천주교 부산교구 홈페이지를 보면 다시 김범우 토마스를 한국의 첫 순교자로 소개하고 있다. 

 

이처럼 발간된 책마다 한국 최초의 순교자 이름이 다르게 기록되고 있는 것은 한국 천주교회에는 교구마다 교회사연구소가 있고 각각 독립적으로 연구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자료들이 꾸준히 나오는 것에 비해, 현실적으로 그 자료들을 즉시 업데이트하기 어렵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이미 교구에서 발행된 '포천 본당 36년사'나 '철원 사성당 60년사', '죽림동 본당 100년사' 등은 몇십 년 만에 한 번 만들까 말까 하는 방대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현재 우리나라 최초의 순교자는 바로 광암 이벽이다. 그가 순교한 해는 1785년이고, 지금까지 첫 순교자로 널리 알려졌던 김범우 토마스는 1786년(1787년으로 기록된 문헌도 있다)으로 기록돼 있으니 광암 이벽이 김범우 토마스보다 대략 1년은 앞서 순교했다는 것이 정설이 됐다. 서소문 성지 역사박물관에서 첫 순교자라고 기록한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현 야고보는 두 사람 모두 1791년에 순교했으니 광암 이벽과는 6년이라는 시간 차이가 있다.    

 

그 광암 이벽 세례자가 바로 우리 포천 화현면 출생이다. 포천시는 지난 5월 20일 화현면 화동로 일원에 광암의 생가터, 기념관, 야외공연장 시설을 만들고 '광암 이벽 유적지' 개관식을 했다. 천주교회에서는 이곳에 성당을 짓고 성지로 지정했다. 그리고 광암 이벽 세례자를 시복(신앙의 모범으로 살다가 순교한 인물에게 교황이 '복자' 칭호를 수여해 특정 교구나 지역, 국가에서 공경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을 위해 꾸준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한국의 첫 순교자 광암 이벽이 시복되는 그날은 한국 천주교회 역사의 새날이 되고, 새 역사가 시작될 것이다. 광암 이벽은 현재 우리 포천이 가지고 있는 무형자산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는 브랜드 파워이며 소중한 자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