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성 칼럼]워싱턴發 종이비행기

5천 년을 열흘에 본 이집트 여행 2

필자 김은성은 79년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이민갔다. 메릴랜드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80년부터 96년까지 미국 소아과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다. 97년부터 병원 관리직과 소아산부인과 이사로 근무하다가 퇴직했다.

 

보수 중인 모스크들도 아름답고 휘황찬란하나 지난 세월 동안 유지 관리가 안 된지라 빛바랜 상태로 서 있다. 선진국에 속하는 이탈리아도 너무나 많은 유적을 관리하느라 막대한 인력과 자원을 동원하며 애쓰는 것을 보고 왔었다. 유적과 유물에 신경 쓸 여유가 없던 이집트도 근래 들어서며 세계인들의 지원 가운데 벅차도록 많은 양의 문화재의 보수 관리에 나섰으나 갈 길이 하염없이 멀어 보인다. 

 

 

얼핏 보면 남루하지만 자세히 보면 아름다운 건물 중에 특히 인상 깊은 건물은 물을 공급하는 집, 사빌(Sabil은 아랍어로 공짜라는 뜻이라고 한다. 공짜로 공급받는 물)이다. 대리석으로 정교하게 지은 집이 골목마다 있는데 부자들이 동네 사람들을 위해서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공동 수도라는 기능을 넘어 아름답게 지어서 동네 사람들에게 사용하게 해준 부자들의 넉넉한 마음을 좀 더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이 나라에서는 부자들이 항상 이웃에게 베풀고 나누는 사람들로 존경받는다고 한다니 자본주의 나라에서 온 나에게 사뭇 낯선 정서이다. 경주의 최부잣집이 늘 이야기되는 이유는 그렇게 풍성히 나누는 부자들은 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이집트는 빈부의 차이가 매우 크다고 하는데 부자들이 존경받는 사회라는 것은 이집트인 가이드 개인적인 생각인지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관광이 중요한 수입원인지라 관광객들의 안전을 위하여 이집트에는 어디를 가나 안전요원들이 보인다. 대부분은 별로 열심히 하지 않고 대충대충 형식적으로 일하고 있는 듯한 잉여 인력으로 보이기도 한다. 인건비가 비싸지 않으니 많은 일자리를 만들려는 노력이라고도 생각되었다. 


4천 마일을 흐르는, 세계에서 제일 긴 강 나일강 위에 떠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이집트를 대표하는 박물관으로 간다. 프랑스 건축가 마르셀 두르뇽에 의해 19세기 말에 지어진 이집트 박물관은 핑크빛의 유럽식 건물이다. 2023년에 오픈하는 새로운 박물관(Grand Egyptian Museum)이 이집트를 대표하는 박물관이 될 때까지는 이곳이 이집트 고대 문화재의 집결지라고 볼 수 있다. 

 

 

뉴욕, 런던, 파리의 박물관에 있는 이집트 유물만 해도 어마어마하니, 그 본거지 전시물의 방대함에 압도되는데 새로 지은 박물관으로 이전 중이라서 그런지 전시가 어수선하다고 느껴진다.


미술관을 방문할 때마다, 미학적인 즐거움을 넘어 사진이 없던 시절의 사람 사는 모습들과 그 시절의 풍경화를 보며 우리가 모르는 수백 년 전의 시간을 시각 예술로 남겨준 예술가들에게 감사함을 느끼곤 한다. 심지어 이집트 박물관에 가득한 전시물들은 수백 년이 아닌 5천 년 전의 시간을 보여준다. 요즘 기준으로도 엄청난 그들의 풍요와 미학적 수준과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내세를 향한 신앙심 그리고 기형이나 질병으로 인한 신체의 모습까지 사실적으로 표현된 인물들의 조각상이 이집트에 와봐야 하는 이유를 확인해주고 있다. 

 

 

알렉산더 대왕 이후 그리스인들이 들어와 이집트의 마지막 왕조(클레오파트라로 대표되는 프톨레미 왕조)를 세운 후, 엄청난 유물과 유적을 남기고 간 고대 이집트는 사라진 왕조가 되었다. 현재의 이집트와는 수천 년 전에 접점이 끊겨 그들은 외계인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많이 언급되었는데 이집트 현지 가이드는 제발 고대 이집트인들이 외계인이라는 말을 믿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도 실제의 모습과 똑같이 만들어졌다는 조각상이나 죽은 자의 마스크로 만나는 고대 이집트인들에게서 요즘의 이집트와 연결 고리를 느끼기 어려웠다. 


전시물이 너무나 방대하여 자세히 보려면 학교 다니듯이 몇 학기는 다녀야 하겠으나 이 박물관의 최고의 보물은 서양인들이 애칭처럼 킹 툿(King Tut)이라고 부르는 소년 파라오, 투탕카멘(Tutankhamun)의 유물들이다.

 

 

금은보화로 가득한 파라오의 무덤들은 이미 무덤이 조성되던 동시대부터 도굴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기원전 14세기경(BC 1332~1323) 아홉 살쯤 왕위에 올라 10년쯤 이집트를 치리하다 죽은 소년 왕의 무덤은 1922년까지 온전히 남아 있다가 이집트학을 연구하던 영국 사람 하워드 카터에 의하여 발굴되었다. 어린 나이에 사망한지라 무덤을 깊이 파고 들어갈 시간도 없었는지 비좁은 공간에 5천 점의 휘황찬란한 보물을 빼곡하게 채워 넣었고, 3천여 년 동안 비밀로 남아 있던 무덤이 열렸을 때의, 전 세계 인류의 열광은 100년이 지난 오늘도 절대 식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현대 과학의 유전자 분석으로 3,500년 전의 소년 파라오가 근친 결혼(그의 부모는 남매였다)의 자손인 것도 알고 금빛 가면으로 그의 외모도 대면하게 되다니 요즘 기준으로 개인 신상 정보가 낱낱이 털려버린 것을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아름답고 정교하고 휘황찬란한 5천여 점의 유물들이 손상 없이 3,500년의 시간 동안 남아 있다가 우리에게 나타난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수천 년이나 돌이켜준 어마어마한 사건이기에 충분하다. 


심장만 남기고 다른 뇌와 장기들은 제거해 완성되는 미라는 바부슈카(Babushka)라고 부르는 러시아 인형처럼 여러 겹으로 만들어진 화려한 관에 보관했고, 장기는 4개의 아름답게 장식된 옥합에 담아 화려한 나무 상자에 보관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홀수가 좋은 숫자인 듯 7첩반상, 9첩반상, 오방색 등이 있고 기독교에서도 3이나 7등을 완전 숫자로 보는 것과 달리 고대 이집트인들은 4라는 숫자를 귀하게 여긴 듯하다. 피라미드의 밑도 사각형이고 신전의 신상들도 넷이고 신전 앞에 오벨리스크도 두 개 서 있는 등 짝수를 좋아했던 것으로 보인다.

 

 

수천 년의 시간 여행의 출발은 이렇게 이집트 박물관에서 맛보기로 시작하고 무덤에서 잠자고 있던 고대 이집트의 휘황찬란함의 잔상 같은 호텔로 돌아와 휴식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