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학의 심장병 전문의 허버트 벤슨 교수의 《약 없이 고혈압 이겨내기》와, 워싱턴대학의 당뇨병 전문의 닐 버나드 교수의 《약 없이 당뇨병 이겨내기》 등을 통해서 고혈압, 당뇨, 심장병 등이 평생 약을 써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절식, 운동과 휴식, 스트레스 조절과 같은 단순한 생활요법만으로도 완치될 수 있다는 것을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를 지낸 유태우 박사의 저서 《질병 완치》의 표지에는 “평생 약을 먹겠는가? 질병을 완치하겠는가?” 라는 부제목이 쓰여 있다. 일평생 약을 먹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많은 환자, 그리고 평생 약을 끊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는 의사들은 이 물음을 놓고 한 번쯤 잘 생각해 보면 좋겠다. 유 박사는 서울대학교병원에서 몇십 년 동안 많은 환자에게 약을 쓰는 치료를 해 오면서 병이 낫지 않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보아 왔다. 왜 낫지 않는지 살펴보았더니, 약물치료가 병의 원인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병의 결과(증상)만 치료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유 박사는 “건강진단을 믿지 말라. 병원을 믿지 말라. 병의 원인을 치료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대구의료원 신경외과장을 지낸 황성수 박사의 저서 《고혈
Tara, Home! I’ll go back home!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 내 고향, 타라로 가자 결국,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테니 남북전쟁 이야기를 듣고 자란 미국의 여류작가 마거릿 미첼(Margaret Mitchell)은 1936년 불후의 명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를 펴낸다. 그녀의 나이 36살 나던 해이다. 25세의 무명작가가 10여 년에 걸쳐 쓴 이 소설은 출간되자마자 미국에서만 150만 부가 팔린 당시 초 베스트셀러다. 역사소설로 퓰리처상을 받기도 했다. 한때 이 소설은 미국인에게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혔다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특히 여성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던 이유는, 영화에서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타라(Tara)’역을 멋지게 해낸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Scarlett O’Hara)의 덕도 많이 봤다. 이 작품은 1939년 영화로 제작되어 작품, 감독, 여우주연상 등 아카데미 9개 부문의 상을 휩쓸면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그 당시에도 한국어 번역판이 나오긴 했지만, 소
참 곱기도 했다. 그 어떤 홍보석보다도 더 굵고 아름다웠다. 그것도 하나둘이 아니고 여러 개가 무리 지어 뽐내고 있었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나 말고도 몇 사람이 더 그 홍보석들을 넋 놓고 보고 있었다. 그것은 주택가 담장 밖까지 나와 익어가는 새빨간 석류였다. 가지가 휘어져 늘어질 정도로 주렁주렁 매달린 모습이 마치 붉은 꽃다발처럼 느껴졌다. 그 중의 몇 개는 알밤처럼 껍질이 벌어져 속에 있는 석류알들이 루비처럼 보였다.삭막한 서울 도심의 주택가에서 그처럼 귀한 보석들을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며칠 전 남산자락의 후암동 주택가를 지나다 그 석류들을 보았다. 그곳은 아직도 일본식 목조가옥들이 많이 남아있다. 남산으로 이어지는 상당히 경사진 주택가의 골목은 매우 좁아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다. 그 경사진 골목길을 지나다 빨간 석류들이 주렁주렁 달린 집을 본 것이다. 넓지 않은 마당에서 자란 석류나무는 수령이 매우 오래된 것 같았다. 밑 둥이 굵은 데다 무성한 가지가 높이 자라 지붕 위까지 뻗어있었다. 그 중 한 가지는 담장 너머 밖에까지 나와 있었다. 정말 아름다운 꽃나무처럼 보였다. 우리나라 기온이 높아지면서 추위에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홀연히 내 곁을 떠났다. 그때부터 내 안에 든 생각이 있다. 모름지기 나와 인연이 된 모든 이들이 적어도 떠난다는 기미(幾微)만이라도 느낄 수 있는 시간, 이별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란 것은. 나는 웬만큼 아파서는 병원을 가지 않는다. 개인 병원이든 종합병원이든 병원에 들어서면, 언제나 온갖 만감이 교차하여 몸과 마음을 어지럽혀 신경이 곤두서고 예민해져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친구들 가운데는 유난히 병원 출입이 잦은 친구가 있는데, 나의 이런 병원 기피증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고 빈축을 하는 일이 만만찮게 있다. 10년 전쯤인가, 내가 매우 위태로운 상태(심장 압박)였는데도 병원을 가지 않는 것에 혀를 차던 나의 친구가 그가 다니던 병원에 예약(심혈관 내과)해놓고 갑자기 나를 불러 진료를 시킨 일이 있었다. 그때의 의사가 나를 보고 너무 위험하여 당장에 심혈관 시술을 해야 한다 했는데, 그날이 금요일 오후 병원이 끝날 무렵이어서 월요일 오전 입원해 시술 일정을 잡아 스텐트 시술을 한 일이 있다. 그때 한꺼번에 3개를 한다고 했는데 나중에 X-ray 사진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포천시민 여러분! 올해도 어김없이 추석 연휴는 다가왔지만, 우리의 마음은 마냥 기쁘지만은 않습니다. 세계적으로 코로나 누적 확진자가 3,000만 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는 100만 명을 앞두고 있으며 다행히 우리나라는 정부와 온 국민이 힘을 모아 방역의 모범을 보이며 경제의 회복을 위한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만, 그 그늘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또 금년에는 돼지 열병과 사상 유례없는 길고 긴 장마로 인명손실과 농작물 피해 등 재산상의 피해를 겪었습니다. 이 기회를 통하여 직접 피해를 보신 분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유명을 달리 하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존경하는 시민 여러분! 그러나 우리는 이 위기를 통해 우리가 믿어왔던 것들의 실체를 다시 확인하고 있습니다. 먼저, 평범한 일상의 중요성입니다. 그저 가고 싶은 곳을 가고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고 하고 싶은 일을 아무 제재 없이 하는 그런 평범한 생활의 모습이 참으로 소중하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하루 빨리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로 회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는 이웃의 중요성입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노인회관 등은 막혀있고 모든 모임 자체도 제한되고 심지어는 개인 간의
현대 의학의 많은 의사가 오해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고혈압이라는 증세를 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고혈압이란 병이 아니고 생체의 자기치료법이다. 피가 맑고 혈관이 깨끗하여 탄력성이 있으면 혈압을 높일 필요가 없을 텐데, 피가 탁해지고 혈관 통로가 좁아지면 어쩔 수 없이 심장과 혈관은 피를 전신에 흐르게 하기 위해 혈압을 높이는 자기치료법을 써야만 한다 현대 서양의학이 오해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증세를 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설사나 열, 통증 같은 증세들을 병이라고 생각하니까 이 증세를 없애는 것을 치료라고 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설사에는 지사제를, 열이 나면 해열제를, 통증에는 진통제를 쓰는 것과 같은 처치를 당연한 치료법으로 여기고 있다. 그렇지만 증세라는 것이 참으로 무엇인지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부패한 음식을 먹게 되면 복통이나 구역질, 설사 같은 증세가 나타난다. 설사란 부패한 음식이 위장관으로 들어오면 세균이나 독성으로 우리 몸이 피해를 보기 때문에 그런 부패한 음식물을 빨리 몸 밖으로 배출시켜 우리 몸을 보호하려고 조물주가 만들어 놓은 치료법인 것이다. 대부분의 증세란 스스로를 치료하고 있는 과정이므로 그것을 바로 알고 그 증
추위를 견디지 못해 서로 몸을 기대 온기를 나누려 한 고슴도치는 너무 가까워지면 서로의 가시에 찔리고, 그렇다고 떨어져 있으면 추워지는 딜레마에 빠진다. 이처럼 가까이 다가갈 수도 그렇다고 떨어질 수도 없는 곤란한 상황을 ‘고슴도치 딜레마(Hedgehog's Dilemma)’라고 이름 붙였다. 추운 겨울날 고슴도치들은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 달라붙어 한 덩어리가 된다. 그러나 그들은 곧 자신들의 가시가 동료들을 서로 찌르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너무나 아파 곧 흩어지지만, 추위를 견딜 수 없어 다시 모여든다. 가시가 서로를 찌르면 금방 흩어졌다가 또 모이고 흩어지고를 반복하다 마침내 그들은 상대방의 가시에 찔리지 않을 적당한 거리를 알아낸 것이다. 추위를 견디지 못해 서로 몸을 기대 온기를 나누려 한 고슴도치는 너무 가까워지면 서로의 가시에 찔리고, 그렇다고 떨어져 있으면 추워지는 딜레마에 빠진다. 이처럼 가까이 다가갈 수도 그렇다고 떨어질 수도 없는 곤란한 상황을 ‘고슴도치 딜레마(Hedgehog's Dilemma)’라고 이름 붙였다. 고슴도치들은 결국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최적의 거리(Optimum distance)’를 찾아낸 것이다. 이 과정에
5년 전 내 딸의 결혼식 때 나는 친구에게 청첩장을 보냈다. 그는 그날 식장에서 반갑게 인사하며 딸의 결혼을 축하해주었다. 그후 두어 차례 안부 전화가 오갔고, 다른 사람의 길흉사 자리에서 만나곤 했다. 그 때문에 나는 당연히 그의 길흉사엔 성의를 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일일이 부고를 하기가 어려운 흉사와는 달리 결혼식은 꼭 청첩장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는 청첩장을 보내주지 않았다. “그래? 그날이 언제인데?” “다음 주일이니 열흘 남았는데!”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일종의 서운함 같은 것을 느꼈다. 그에게 나라는 존재는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런 중요한 일에 초대할 대상도 안 되는 ‘그저 그렇고 그럴 뿐인 사람’이었단 말인가? 갑자기 오래전 젊었던 때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그 스쳐 가는 일들 속에 나는 항상 그와 함께 있었다. 그때의 나와 오늘의 나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은근히 화가 치민다. 며칠 전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했다. 남자들끼리의 모임이었으니 당연히 술잔들이 오갔다. 그러던 와중에 지난날 정말 친하게(?) 지냈던 친구의 아
아버지의 서거(逝去)로 내가 받은 충격은 무슨 말로도 표현하기 어렵다. 그때의 일기를 보면 지금도 가슴이 막힌다. 어찌해서 그다음 날도 해가 뜨는지, 어찌해서 세상이 그대로 존재하는지, 납득할 수 없기에 내 가슴은 무너지고 또 무너졌다. 이것이 말이 되는가. 아버지의 급서(急逝) 비보를 접한 것은 대학 2학년을 막 올라와서였다. 3교시 수업을 하던 중 학생과로 연락이 왔는데 급히 달려가 전화를 받았더니, 사환 학생(아버지가 고교 공부를 시키던)이 울먹이면서 아버지의 부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믿기지 않아서 벌컥 장난하지 말라고 화를 냈더니 그 아이가 엉엉 우는 것이었다. 이것이 말이 되는가. 아침에, 나의 등교와 거의 같은 시간에 아버지는 병원(당시는 아버지 병원이 종로5가에 있었음)으로 가셨는데 불과 몇 시간 만에 돌아가셨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었다. 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아버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이것이 말이 되는가. 병원에는 간호사도 있었고 급할 때 쓰는 구급약도 있었는데 이것이 말이 되는가. 내가 알기로는 아드레날린(당시 일반 병원에는 주어지지 않았으나 아버지는 의사협회 총무였기 때문에 우리 병원에는 이 약이 구
하늘이 파랗다. 너무 맑아 좀처럼 실감이 나지 않는다. 40일이 넘는 긴 장마가 끝나니 태풍이 연이어 왔다. 장마 때 폭우로 부서진 집을 수리하는 중인데 자꾸 멈춘다. 바로 어제도 폭우가 쏟아졌다. 집 공사는 그래서 자꾸 멈춘다. 코로나19와 긴 장마, 폭우, 태풍. 어느 것 하나 예사롭지 않다. 수도권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되자 그나마 뜸하던 책방의 발길은 뚝 끊겼다. 코로나19 감염 걱정으로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손님이 없어서 어떻게 하나 걱정도 된다. 오늘 오전에는 갑자기 성인 남성 4명이 들어왔다. 나는 깜짝 놀라 물었다. “저, 어떻게 오셨어요?”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그들 역시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보더니 말했다. “지금 커피 되나요?” 이런! 한동안 손님이 없다 보니 그만 내가 책방과 카페를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었던 것이다. 근처에 볼일을 보러 왔다는 그들은 책을 둘러보고는 말했다. “책은 읽기 싫은데 책 있는 데 오니까 좋네.” 이 책 저 책 열심히 살펴보길래 나는 기대에 차서 그들 중 하나라도 책 한 권을 집어 계산대로 갖고 오기만을 기다렸다. “저희 밖에서 커피 마시고 갈게요.” 흠! 결국
참 어리석고 어리석은 것이 인간이 아닌가 싶다. 나를 생각하면 그렇다는 얘기다. 세상에는 현명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지혜롭고 영명(英明)하여 우러르게 되는 많은 이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든지 있으니 모두의 나의 발언은 자칫 어폐가 있는 얘기가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나는 그 말을 바꾸고 싶지 않다. 흔히 드라마나 영화 같은 데서 갑자기 암이나 회복 불능의 치명적 병에 걸린 이들이 “왜 나냐”고 비탄의 원망을 하는 것을 볼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나는 그 말이 다소는 공소하게 느껴졌다. “왜 나”라니, 그런 상황에 처할 사람이 따로 있다는 말인가? 그 ‘누구도…’ 일 수 있으니 그 말처럼 싱거운 표현이 어디 있는가. (물론 그 정황이 극단의 심사를 드러내려 함인 것을 모르진 않지만) 얼마 전 나는 왼쪽 다리가 갑자기 아파서 보행이 어려웠다. 정말 갑자기여서 그 어느 것도 인정할 수 없었다. 가까운 친구 몇 사람이 퇴행성관절염 같다고 했지만 내 스스로는 퇴행성관절염은 뭘…? 그냥 이러다 낫겠지…, 하면서 두 달 가까이를 흘려보냈다. 그런데 웬걸? 별스럽지 않게 소염진통제를 먹으면서 두 달을 버티어도 좀체 나을 기미가 안보여 병원을 찾고 치료를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물리적 무게나 부피가 없다고 하지만 스마트 폰의 사이버 공간에 저장할 수 있는 디지털 데이터 양은 한계가 있다. 마구 찍어 둔 사진들이 쌓이다 보니 그 한계에 육박하고 말았다. 뒷날 좋은 추억거리가 되리라 여기며 지우지 않고 남겨둔 탓이다. 차곡차곡 쌓으며 지내왔다. 뒷날 언젠가 아주 귀하게 쓰일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아니 멋진 추억까지도 고스란히 상기시켜주리란 믿음 때문이라 해야겠다. 또 어느 때는 필요한 것을 끄집어내 멋지게 사용하리라 생각했다. 그런저런 이유로 하나하나 모우고 저장한 지 어언 5년이 가까워졌다. 열심히 노력한 덕에 좁은 공간에 참 많이도 쌓아두었다. 그렇게 많이 쌓였을 줄 정말 몰랐다. 그런데 그 분량을 알고 나니 이를 어쩌지 하는 부담감이 엄습했다. 그래서 결단을 내렸다. 버리지 못하는 것도 마음의 병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 건 아니다. 오래된 것들은 버리면서 살아야 된다는 선험자(先驗者)의 충고를 들어서도 아니다. 비우지 않으면 새것을 들여놓을 수가 없겠다는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처음엔 귀하게 생각됐던 것들도 차츰 뒷 구석에다 쌓아두게 되고 새것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오래된 것들을
인신매매와 포르노 금지법 위반 혐의로 벌금 50만 엔(円)의 약식 명령을 받은 한 남성의 이름과 주소가 3년 동안이나 인터넷에 계속 떴다. 이 40대 일본인 남성은 법원에 개인정보 삭제를 요청했다. 일본 사이타마(埼玉) 지방법원은 자신에게 불리한 기사의 삭제를 요구한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처럼 특정인에게 불리한 개인정보의 삭제 요구에 대해 '잊힐 권리'를 명시하고 삭제를 인정한 것은 일본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법원은 “범죄의 성격에 따라 다르지만, 어느 정도의 기간이 지나면 과거의 범죄사실이 사회에서 잊힐 권리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남성의 가처분 신청에 대해 사이타마 지방법원이 "갱생에 방해받지 않을 이익을 침해받고 있다"며 삭제를 명령했고, 검색사이트 ‘구글(Google)’ 측은 ‘알 권리’를 내세워 법원에 결정 취소를 요구한 상태다. 구글의 가처분 신청과는 상관없이 현재 남성의 체포 기록은 검색에서 더 이상 나오지는 않고 있다. 유럽사법재판소의 경우 '온라인상에서의 잊힐 권리'를 인정하고 피해가 우려되는 개인정보의 삭제를 명령했으나 구글 측은 58%의 삭제 요청을 거부했다. 아동 성폭행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은 프랑스 사제(司祭)도 자신의
▲세계 최고의 강대국 미국이지만, 팬더믹 초기에는 진짜 마스크는 의료인들에 게 양보하고., 각자 집에서 만든 마스크를 쓰라고 권장하던 초라한 시절도 있었다. 미국에서 살아온 세월이 고국에서 낳고 자란 23년의 두 배 가까이 되는데도, 나에게 시민권을 주고 미국의 백성으로서의 특권과 의무를 부여해준 이 나라에 앉아서 나는 망설임 없이 '타향'이라고 부른다. 인생의 2/3되는 시간을 사용해온 영어보다, 아직도 모국어가 편안할뿐 아니라 그동안 뿌리를 옮겨 내리며 살아내느라 바빠서 미국의 실체를 너무 모르고 살아왔다는 것을, 요즘 코비드 재난을 지나며 절감하며 내가 살아온 이곳은 '타향'이란 생각이 더욱 진하게 다가온다. 지난봄, 지구는 다 같이 끙끙 앓아누웠고, 일상을 멈췄으나 공권력이 얼마나 깊숙이, 효과적으로 투입되었는가에 따라서 팬데믹의 피크를 빨리 극복하고 회복기로 접어든 국가들이 많은 것에 비하여 미국은 지금 세계 최대의 확진자 수를 기록하면서 남북전쟁 이후 최대의 재난을 지나고 있다. 1975년, 작고 가난한 나라 베트남에서 수많은 젊은이의 목숨과 국력의 소모는 물론, 국론의 분열이라는 손실만 안고 패전의 오명을 감수한 것처럼, 지금은 팬데믹 바이러스에
만병일독(萬病一毒)이라는 말이 있다. 만 가지 병이 하나의 독, 곧 피의 오염에서 생긴다는 뜻이다. 지나친 스트레스, 과로, 과식 등 무리한 생활을 하면 교감신경이 긴장되고 스트레스 호르몬이 과다 분비되어 혈관이 수축하게 된다. 또한 이런 생활 습관은 핏속에 콜레스테롤, 중성지방, 적혈구, 혈소판 등을 많이 생성시켜 과잉 영양분, 중간대사 산물과 함께 피를 혼탁하게 만든다. 이런 혼탁한 피가 혈관 속을 흘러가려면 콜레스테롤이나 지방 성분처럼 점액도가 높은 찌꺼기들이 혈관 벽 쪽으로 밀려나야만 하는데, 이런 노폐물들이 혈관 내벽에 달라붙게 되는 것이 고지혈증이고, 이것이 심해져서 혈관의 탄력성이 떨어져 딱딱해지면 동맥경화증이 된다. 고지혈증, 동맥경화증이란 오염된 혼탁한 피가 좁아진 혈관을 효율적으로 흐르도록 하기 위해 노폐물은 혈관 벽에 달라붙게 하고, 비교적 맑은 피는 혈관 중앙 통로로 흘러가도록 생체 스스로가 자구책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탄력성이 떨어지고 좁아진 혈관을 통해서 탁한 피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신에 골고루 보내려면 심장과 혈관이 불가피하게 압력을 높일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 고혈압이다. 그러므로 혈압이 올라간 것이 잘못된 게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