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영 자일4리 이장은 요즘 마을 입구 공터에 꽃밭 꾸미기 재미에 흠뻑 빠져 시간가는 줄 모른다.
▲꽃밭에 장식으로 띄운 배는 실제 판매 중인 보트로 윤숭재 영북면장이 협찬을 받아왔다.
영북면 자일4리 이화영 이장(57세)은 요즘 국도 큰길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의 널찍한 공터에 꽃을 심고 화단을 꾸미는 작업으로 바쁘다. 지난 10월 17일 토요일에도 종일 마을 주민들과 꽃밭 일구기로 바쁘게 시간을 보냈다. 이날은 김우석 경기도의원과 연제창 시의원, 그리고 윤숭재 영북면장까지 나와서 이화영 이장을 도와 비지땀을 흘리며 꽃밭을 일궜다.
이화영 이장은 자일4리 이장으로 취임한 지 아직 2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는 영북면 북원로에서 싱크대 사업을 하고 있는데, 이장 일을 맡은 뒤부터는 생업은 뒷전이 돼버렸다. 최근 이 이장은 눈만 뜨면 온 마을을 돌아다니며 나무 심기와 꽃밭 만들기에 온통 정신이 빠져있다.
19일 월요일에도 이른 아침부터 마을 입구에 나와 꽃밭 일구기에 여념이 없었다. 엊그제 꾸민 꽃밭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수북이 쌓아놓은 조형석과 장식용 조각배를 들어서 이리 놓았다가 저리 놓았다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은 연신 울려댔다.
이화영 이장은 기자를 힐끗 쳐다보다가 “조금 전부터 싱크대 견적을 보러 오라고 전화가 빗발치는데 아직 못 가고 있습니다”며 “일이 빨리 끝나야 할 텐데....”라고 혼잣말을 하면서 본인도 계면쩍은 듯 말꼬리를 흐린다.
이화영 이장은 원래 꽃과 나무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마을에서 본격적으로 나무 심기와 꽃밭 가꾸기를 한 것은 지난 4월부터였다. 그는 마을 길 주변을 지나가다가 길 위에 잡초만 무성한 것을 보게 됐다. 그래서 식목일에 잡초를 모두 뽑아버리고 나무를 심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무를 사려면 돈이 필요했다. 그는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며 모금 운동에 나섰다. 처음에 마을 주민들은 ‘엄한 돈을 들여가면서 무슨 나무를 사서까지 길거리에 심으려고 하느냐’며 반대하는 사람도 여럿 있었지만, 이 이장의 끈질긴 설득에 주민들의 마음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작 66가구에 불과한 이 마을에서 모금한 액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이 이장은 여기에서 포기하지 않았다. 마을에 살고 있지는 않지만, 이곳에 땅을 가지고 있는 외지인과 마을 주변에 있는 기업 사장님들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마침내 500만 원이 넘는 큰돈이 모였다.
이 이장은 이 돈으로 단풍과에 속하는 복자기나무 100그루를 샀다. 1그루에 6만 원씩 달라는 것을 무려 절반이나 깎아서 3만 원에 샀다. 매일이다시피 마을 사람들을 동원했고, 포크레인도 세 차례나 불러서 마을 주변을 빙 둘러가며 정성껏 나무를 심었다.
▲연제창 시의원과 김우석 도의원이 자일4리 꽃밭 일구기에 나와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이화영 이장이 지난 5월 마을을 빙 둘러서 심은 복자기 나무. 박윤국 시장의 이름이 붙어있는 나무도 있다.
이 이장은 나무를 다 심은 뒤에 이 나무 하나하나에 이름표를 붙여놓았다. 그리고 나무 하나에 한 사람씩 66가구의 마을 어르신들 이름을 빼놓지 않고 모두 써넣었다. 나머지 나무에는 이 마을에 도움을 준 고마운 사람들의 이름을 한 분 한 분 기억해내서 이름표에 적어넣었다. 박윤국 나무, 조용춘 나무, 임종훈 나무, 연제창 나무, 박혜옥 나무, 이상용 나무...등은 이렇게 탄생했다. 이렇게 이름 붙여진 나무는 마치 자일 4리 마을을 빙 둘러서서 지키듯이 나란히 줄지어 서 있게 되었고 오늘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이 이장은 나무를 심고 각 나무에 이름이 붙여지자 동네 어르신들은 매일이다시피 자신의 이름이 붙어있는 나무에 물을 주러 나온다고 설명한다. 그는 “특히, 이상용 농협 조합장은 본인의 이름이 붙여진 나무에 가장 자주 찾아오시는데, 오실 때마다 물도 흠뻑 뿌려주면서 정성껏 키운다. 또 조합장 나무 바로 곁에 있는 나무가 박 시장님 나무인데 조합장께서 시장님 나무에도 물을 듬뿍 주시고 가신다”고 귀뜸했다.
이화영 이장은 마을 주변에 나무를 심고 나니 뿌듯했다. 비록 아직은 어린나무지만 몇 년 뒤면 아름드리로 자라 자일4리를 든든하게 지킬 훌륭한 버팀목이 되리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나무를 심고 나니 모금한 돈이 16만 원 정도 남았다. 이 이장은 또 몸과 마음이 근질거렸다. 이 돈으로 꽃을 사서 마을 입구 공터를 예쁘게 꾸미고 싶었다. 그런데 꽃값은 예상외로 비쌌다.
이 무렵 운천에서 ‘꽃길 네비게이션’이라는 이름의 ‘영북 꿈의 학교’를 운영하는 생태경관 디자이너 김효향 선생이 자신이 매주 토요일마다 가르치는 학생들과 함께 이 꽃밭을 만드는 데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영북 꿈의 학교'를 운영하는 화훼 경관 디자이너 김효향 선생이 마을 꽃밭 만들기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꿈의 학교 ‘꽃길 네비게이션’ 초중생 20여 명이 '마을 정원' 만드는 과정에 참여해 애향심과 협동심을 배우고 있다.
꿈의 학교 ‘꽃길 네비게이션’은 아이들에게 꽃으로 길을 만들고 정원을 꾸미는 것을 가르치는 화훼 디자인 학교로, 영북면 초등학생부터 중학생까지 20명이 매주 토요일에 모여 김효향 선생에게 수업을 듣는다. 김 선생은 마침 학생들과 마을을 연계한 프로그램을 찾던 중이었는데, 학생들에게 ‘마을 정원’을 만드는 과정을 가르치는 일은 애향심과 협동심을 함께 키워줄 수 있는 최적의 프로그램이라고 판단했다.
두 사람의 좋은 생각과 뜻이 합쳐졌고, 자일4리 마을 꽃밭 꾸미기는 큰 어려움 없이 완성될 수 있었다. 오늘도 이 이장은 완성된 꽃밭을 보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마을 입구 공터에 나와 꽃밭 손질에 여념이 없다. 그는 나무를 심고, 꽃밭까지 일궈 예뻐진 마을을 둘러보면서 흐뭇한 표정에 미소가 절로 피어난다.
마지막으로 이화영 이장의 꿈이 무엇인지 물었다.
“우리 마을을 꽃과 나무로 예쁘게 꾸며 꽃동네로 만들어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로 만들고 싶다. 마을 주변에 화적연과 무당소, 그리고 새로 만들어질 출렁다리 등 아름답고 구경거리가 많이 있다. 또 출렁다리가 만들어지는 곳 옆에는 평평한 국유지 땅이 있는데, 이곳에 캠핑장 시설을 지어서 마을 어르신들이 용돈이라도 벌어 쓰시게 하고 싶은 것이 저의 꿈"이라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