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원 칼럼] 살며 생각하며

마음에 미움 대신 사랑의 꽃을 심읍시다

차의과학대학교 교수, 전 KBS프로듀서/아나운서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 교통수단을 주로 이용하는데, 갑자기 거친 언어나 행동으로 분노를 표현하여 다른 승객들을 불쾌하게 하거나 놀라게 하는 이를 볼 수 있다. 우리 사회, 정치 현상을 싸잡아 고성으로 거칠게 비난하는 분, 일행 간에 심하게 다투는 분들, 다른 승객이나 운전자에게 시비를 거는 분, 그리고 이유는 모르겠으나 지하철 플랫폼 벽을 주먹으로 두드리며 소리를 지르는 분 등......

 

필자도 나이가 들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으니 고집이 세어지고, 서운하게 느껴지는 적이 있어 심술이 시퍼렇게 날을 세우거나 이유 없는 분노가 슬며시 고개를 드는 일이 있어 자제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런 마음속 이상 현상 또는 감정상의 분노 이유를 가만히 생각하면 외로움, 서운함 또는 다른 사람과 비교함에서 비롯되는 엉뚱한 열등감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는 생각이다.

 

마음에 분노를 일으키게 하는 요인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큰 것이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는 다른 대상과 비교하여 권리나 자격 등 당연히 자신에게 있어야 할 어떤 것을 빼앗긴 듯한 느낌, 즉 자신은 실제로 잃은 것이 없지만 다른 분이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을 때, 상대적으로 자신이 무엇을 잃은 듯한 기분을 느끼는 감정을 말한다.

 

이와 같은 감정을 잘 표현하는 속담으로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라는 속담과 현대에 들어 누군가 지어낸 듯한 ‘배가 고픈 건 참아도 아픈 건 못 참는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유형의 분노가 우리 사회에서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감정은 가끔 자율적으로 잘 조절되지 않고 행동으로 폭발하는 등 병적 증세로 나타난다고 한다. 흔히‘분노조절 장애’라고 말하는 이 증세의 의학적 명칭은 '간헐적 폭발 장애'인데 분노와 관련된 감정 조절을 이성적으로 할 수 없는 상태로 공격 충동이 억제되지 않아 실제 주어진 자극의 정도를 넘어선 파괴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더욱 다양하고 복잡해가는 인적 네트워크와 사회 구조, 늘어가는 욕구, 그리고 이익 충돌과 그에 따라 심화하는 갈등, 평균이 실종되며 양극화하는 경제, 사회 구조 속에서 극단이 아니면 설 곳이 없는 상황, 승자 독식의 세태 속에서 느끼게 되는 여러 유형의 상대적 박탈감은 우리 사회 많은 구성원에게 분노나 슬픔을 안겨주고 있다. 평균과 중용, 합리가 설 자리가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관점과 성정에서 쓴소리를 하는 어른이 점차 줄어만 가는 세상이 되었다.

 

나는 심리적으로 사람의 평화롭고 안정된 상태, 즉 평정심(감정의 기복이 없이 평안하고 고요한 마음)을 깨버리는 계기인, 감정 변화의 이유와 파동을 ‘마음의 바람’이라 부르고 싶다. 마음의 바람은 그 성격과 세기에 따라 기분이 다르고, 행동 또한 다르게 나타난다. 내 경우는 수양이 부족한 탓이라 생각한다.

 

마음에 부는 바람이 있다면, 잘 들여다보고 연유를 파악하여 근원을 잘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심술궂은 ‘마음의 바람’의 모습을 노래한 필자의 시를 소개한다.

 

 

바람

 

눈을 가만히 감으면 바람이 보인다 느껴진다.

기쁜 얼굴 화난 얼굴 사랑하는 얼굴 슬픈 얼굴,

분홍 연녹 보라 하양,

날씨 따라 계절 따라 얼굴도 색도 다르다.

 

마음에도 바람이 인다, 얼굴도 색도 다르다.

개구쟁이 아이가 심통을 부리면

돌개바람을 일으켜 큰 변덕을 부린다.

 

이놈을 잠재우고

바람 없는 고요한 바다에서 살고 싶다.

 

 

마음의 바람을 일으키는 요인을 더 근원적으로 분석하여 그 기저를 살펴 보면 거기에는 여럿의 욕심과 그에 따른 감정이 있다. 불교나 유학에서는 통상적으로 이를 오욕칠정, 즉 다섯 가지 욕망과 일곱 가지 감정이라고 이른다. 오욕은 식욕, 색욕, 수면욕, 재물욕, 명예욕을 말한다. 가히 마음에 풍파를 일으킬 만한 것들이다.

 

이들이 바람을 일으킬 때 우리 마음의 감정은 일곱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칠 정이라 말하는데, ‘ 희(喜) : 기쁨’, '노(怒) : 노여움, 화냄’, ‘애(哀) : 슬픔’, ‘락(樂, 즐거움), 또는 두려움’, ‘오(惡) : 미움’, ‘욕(欲) : 욕망’, ‘ 애(愛) : 사랑, 이기적인 욕망이나 미움으로 인해 어떤 대상에 집착하는 것’이다. 유교, 불교 등에서는 이 일곱 가지 감정을 잘 다스려야 할 것으로 본다. 그런데 그게 일상생활 속에서 어디 쉬운 노릇일까? 부정적인 찌꺼기에 해당하는 감정, 예를 들면 미움, 노여움, 욕망, 두려움 등을 잠재워 마음의 평정심을 잘 유지해야 하는데......

 

불교에서는 마음의 평화와 평안을 깨뜨리고, 어지럽히는 주범이며 심신을 혼돈케 하고 이상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번뇌’를 들고 있다. 이 번뇌는 근본적으로 자신에 대한 집착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갈등, 괴로움으로 근본 원인이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이다. 이 셋은 우리의 인식기관인 눈·귀·코·혀·몸·뜻이라는 여섯 가지 감각의 문을 통해서 생기는데 그것에 의해 마음이 산란 되고 갈등이 일어난다고 한다. 여섯 가지 감각을 중심으로 생기는 이 번뇌들을 극복하는 것이 불교의 이상이요, 그것을 통해서 평온한 열반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본다.

 

조선 시대 선비들이 추구하던 마음의 이상적인 상태로 명경지수를 들 수 있다. 밝은 거울과 정지된 물이라는 뜻으로 마음이 가장 고요하고 안정된 상태를 가리킨다. 잡념과 가식과 헛된 욕심 없이 맑고 깨끗한 마음이 명경지수와 같은 마음이다. 선현들은 일상 속에서 평안하고 고요한 마음의 상태인 이 명경지수를 실현하려 노력하였다.

 

나와 같은 범인이 오욕칠정을 잘 다스리고 백팔 가지 번뇌를 극복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단지 일상 속에서 정신적 수양을 게을리하지 않고, 강고한 정신을 갖춰 노력하는 수밖에...... 내 안에서 일어나는 부정한 욕심, 불순한 감정 등으로 인한‘마음의 바람’을 잠재우고 싶다.

 

오욕칠정이나 번뇌가 마음속에 불순한 바람을 일으키고 부조화한 찌꺼기를 만드는 요소임에 틀림이 없다. 그래서 슬픈 마음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미워하는 마음은 용서와 배려와 화해로, 욕망은 소유와 집착에서 자유로 극복해야 한다. 그리고 오감에서 시작되는 온갖 번뇌는 쉼 없는 마음의 다스림으로 줄이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의 시인 정호승은 미움과 욕망의 바람이 없는 아름다운 마음, 사랑의 마음을 위한 힘든 노력을 아래와 같은 시로 노래한다.

 

 

 

마음속에 박힌 못을 뽑아

그 자리에 꽃을 심는다

마음속에 박힌 말뚝을 뽑아

그 자리에 꽃을 심는다

꽃이 인간의 눈물이라면

인간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꽃이 인간의 꿈이라면

인간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정호승 시인 시선집 ‘수선화에게서’의 ‘꽃’)

 

 

 

서재원 이력

. 창수초등학교, 포천중학교, 포천일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졸업

. 한국방송 KBS 편성국장, 편성센터장(편성책임자)

. 차의과학대학교 교양교육원장, 부총장

. 포천중·일고등학교 총동문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