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굿판
오늘은 이른 아침부터 새들이 방문까지 날아와 지지배배 하며, 시끄럽게 목청 높여 지저귀는 소리에 단잠을 깨운다. 창문 앞뜰에는 꽃들이 화사하게 얼굴 내미는 계절의 발걸음을 잊은 듯 어린 시절 기억들이 엊그제 일처럼 되살아난다.
뒷동산에 진달래꽃, 할미꽃, 벚꽃, 목련이 온산을 뒤덮어 흰 물결에 붉은 점 수놓고, 아지랑이 춤추는 어느 날 오후였다. 내가 살던 마을에서 바라보면 서쪽에는 야트막한 산이 시내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서 있다. 봉수골에서 바라본 발아래 펼쳐진 마을은 만개한 꽃으로 덮여 있어 한층 더 아름다움을 더한다.
서쪽 야산에 시내로 가는 지름길을 따라 우리는 학교를 오가곤 하였다. 어느 날인가 여느 때처럼 동네 친구들과 함께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지름길을 따라 가쁜 숨을 몰아쉬면 봉수골 언덕에 도착했을 무렵이었다.
어디선가 징. 장구. 꽹과리 소리가 요란스럽게 요동쳐 우리의 귀를 자극했다. 온 동네에 울려 퍼지는 그 소리를 따라가다 보니 오영(가명)이네 집에서 들려오는 소리로 마당에서 굿판이 한바탕 벌어지고 있었다. 그 시절은 문명이 발달하지 않은 시절이라 동네 사람들은 아프거나 집안의 길흉화복이 있을 때면 용한 무속인을 수소문하여 찾곤 하였다. 당시 너나 할 것 없이 미신에 의지하는 일이 흔한 일이었다.
동네에서 굿을 하는 광경을 가끔 본 적이 있어 생소한 일은 아니었다. 나는 그날 친구들과 함께 호기심이 발동하여 책 보따리를 어깨에 멘 채 굿판이 벌어지고 있는 오영이네 집으로 급한 마음으로 한 걸음에 달려갔다.
신내림을 받아 신을 섬기며 굿을 하는 여성 무속인을 무당이라 한다. 무당은 앞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과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귀신을 불러들여 치성을 드리는 의식을 진행하고 있었다. 한편 새끼 무당은 북과 징을 신명 나게 치며, 장단을 맞추어 굿판의 분위기를 한껏 돋웠다. 오영이 어머니는 무당 앞에서 합장을 하고 쉬지 않고 정신 줄이 나가도록 절을 하며 무슨 큰 죄라도 지었는지 빌고 또 빌었다. 그는 작년 봄부터 원인 모를 병이 들어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없는 살림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굿을 하게 되었다.
굿판은 시퍼런 작두와 빨강. 흰색. 검정 등으로 장식한 신들의 놀이터가 앞에 차려져 있어 오싹한 기운과 함께 두려움이 우리의 마음을 삼켰다. 무당은 주문과 칼을 휘두르며 시퍼런 작두의 칼날 위에 올라가 위태롭게 춤을 추는 것으로 굿판은 절정을 맞이하였다.
무당의 신기는 극에 달해 보는 이는 무서움을 불러 왔고 절을 하던 오영이 어머니는 실성한 사람처럼 평상시와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무당은 무슨 영문인지 노여움에 찬 목소리로 호통을 치며 그를 크게 꾸짖고 있었다. 무당은 그의 과거의 행적을 신기가 더해 마치 본 것처럼 그의 입에서 누에가 실을 토해내듯 말하였다. 그는 큰 잘못을 했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울부짖으며 후회의 눈물을 흘리었다. 그가 오랫동안 가슴속 깊이 묻고 살아온 지난날의 일 중 가장 숨기고 싶었던 비밀의 문이 열리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무속인들이 말하는 미신을 믿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날의 일은 믿기 힘든 광경이라 지금도 그때의 기억들이 너무나 생생하게 나의 뇌리에 남아있다. 그가 지금까지 가슴속에 묻어둔 채 혹여 누가 알까 봐 가슴 조이면서 죄인의 심정으로 살아온 지난날의 그 비밀이 무당의 입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해지게 된 것이다. 참으로 신기한 일로 다가와 신은 존재하는 것인가 하는 강한 의문을 던져본다.
무당의 입을 통해 알게 된 그의 비밀은 우리나라 근대사의 굴곡진 역사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오영이 어머니는 재혼이고 그의 남편은 초혼으로 거기에는 말 못 할 사연이 숨어있다. 오영이는 위로 형이 한 명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형과 오영의 얼굴 생김새가 전혀 닮지 않았다는 말과 함께 궁금증이 더하였다. 농담 삼아 "오영이 형은 어디서 주어왔어? 얼굴이 동생들과 닮은 구석이 없어"라고 말하며, 그는 평상시 온화한 모습과는 다르게 화를 내며 과민반응을 보이곤 하였다.
그동안 굳게 잠겨있던 비밀의 문이 신기가 오른 무당의 입을 통해 열리게 된 것이었다. 참으로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서 파노라마처럼 전개되었다. 그는 첫 번째 결혼하여 오영이 형을 낳았다. 그러나 신혼의 달콤한 행복도 잠시 남편은 우리나라 근대사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집을 떠난 후 수년이 지나도록 생사를 확인 할 길이 없었다. 남편은 사랑하는 부인과 아들이 있는 고향 집으로 끝내 돌아오지 못하였다. 그의 죽은 남편의 혼령이 무당에게 들어와 자기 부인과 아들을 두고 편히 눈을 감을 수 없었다면 서럽게 우는 모습이 동네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었다. 그일 이후 그의 병은 신기하게도 씻은 듯이 물려갔다.
우리가 아는 그는 한문, 일본말 등 학식에 있어 막힘이 없었다. 모르는 것이 없는 그가 시골에 묻혀있기 아까운 인물이라고 동네 사람들은 말하곤 하였다. 그는 일제 시절 여학교를 졸업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는 시골에서 가난하게 살았지만, 항상 단정하고 온화한 기품을 잊지 않았다.
그에 비해 그의 남편은 순박한 시골 농사꾼에 문맹이라 그동안 동네 사람들은 두 사람이 어울리지 않는 부부라는 생각과 의문을 가져왔다. 그는 지주의 딸로 유복하게 자랐다. 그의 부모님은 자신의 딸이 청상과부가 되었으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지금은 시대가 크게 변해 재혼하는 것이 큰 흉이 아니지만 당시는 재혼을 터부시하였으며, 흉이 되는 시절이었다. 그의 부모님 댁에서 부리던 머슴과 바람이 난 것인지, 아니면 부모님이 짝을 지어주었는지 그 옛날 머슴과 집을 떠났다. 그는 아무도 모르는 먼 지역으로 들어와 이방인으로 살아가게 된 아픈 사연이 숨어 있다. 그의 남편은 자신이 모시던 아씨와 결혼해서도 상전처럼 모시면 살아갔다. 두 사람은 가난했지만, 행복했고 항상 부인을 존경하며 살아갔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해가 바뀐 어느 해 봄 오영이네는 먼 곳으로 이사를 갔다. 오영이는 내게 말하지 않았지만 오영이 어머니 고향 집으로 이사 갔다는 소문이 있었다. 고향을 떠난 오영이는 그 후 우리가 그때 오영이 어머니 나이보다 훨씬 많은 세월이 흘러갔다. 오영이를 지금까지 만나지 못한 것이 내겐 아쉬움으로 남는다.
오영이는 지금쯤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을까?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 세월을 이기지 못해 주름진 얼굴과 흰머리를 하고 있겠지. 하는 의문을 가져본다. 그 시절의 추억과 함께 오영이 대한 소식이 참으로 궁금해지는 것은 나도 늙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에우리피데스는 “고생했던 추억도 지나고 보니 상쾌하다”라고 하였다. 우리도 지난날의 추억을 거울삼아 인생의 후반부를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한다. 행복은 결코 돈으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자신의 마음 먹기에 따라 그것을 얻을 수 있다.
민천식 작가
호 운암, 연세대학교 도시공학박사
전) 포천부시장, 전) 포천시장 권한대행, 전) 포천시 체육회장
한국작가, 에세이문예, 소설, 시, 수필 등단.
포천문인협회 자문위원
2017, 2018년 한국작가. 에세이문예 신인작가상 수상
제7회양주서예대전 입선(한문부문)
제21회 신춘은평서예대전 특선(한문부문)
홍조근정훈장(2018),
저서 : 희망스토리『함께 꿈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