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 문학산책

이천희 수필 '자반고등어'

포천문인협회 수석부회장, 한국작가회 시인이며 수필 작가

 

포천좋은신문의 '포천 문학산책'은 글쓰기를 좋아하시는 포천 분들이라면 누구나 이 란에 자신이 쓴 시와 산문, 수필 등을 자유룝게 발표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자신의 작품을 독자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포천 문학 산책'에 문학을 사랑하시는 분들의 큰 호응을 부탁합니다. 이번 주는 이천희 포천문인협회 부회장의 수필 ''자반고등어'를 감상합니다.

 

 

 

 

 

자반고등어 

 

 

이천희 

 

육십 년 전 초 여름의 따스한 기운을 안고 나를 낳던 어머니는 지난해 영영 내 곁을 떠나셨다. 내겐 분명 복이었으니 쉰아홉 해를 지척에서 늘 어머니와 함께였다. 돌아가시기 전 어머니에게는 영원한 품 안에 자식이었지만, 어머니도 없는 장수 시대가 뭐 그리 대수라고 회갑 축하가 이어져 민망해진다. 내 배 아파 낳은 자식들과 이런저런 이유로 건사한 조카들까지 예외 없이 한통속이 되어 모종의 파티를 구상하는 것 같다. 짐짓 모르는 체 아이들 하는 양을 지켜볼 뿐이다.

 

생일이 다가왔다. 작은 봉사단체지만 단체장을 챙기려는 회원들의 마음을 모르지 않지만 민망한 건 어쩔 수 없다. 생일 이틀 전 워크숍을 겸한 회의가 끝나고 겸사겸사 생일 축하 이벤트가 이어져 봉사의 지친 대원들을 잠시 위로해 주었다. 식사하고 짧은 여흥시간이지만 모두가 새 기운을 충전할 만하지 않았을까. 이 나이 되도록 고향을 떠나 본 적 없으니 주변 지인들과 조촐하나마 생일날을 보냈다. 그런데도 아직 가족들의 축하가 남아있다. 주말이 되자 고만고만한 손자 손녀, 조카손자 손녀들까지 온 가족들이 총출동하여 북새통이 이어져 난생처음 거창한 생일잔치가 이어졌다. 고마운 이 시간은 평생 지울 수 없는 시간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다들 건강하고 무탈하니 고마울 뿐이다.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보면, 가족 중 누군가의 생일이 되면 제일 먼저 고등어자반 구이 냄새가 진동했다. 부엌 바닥에 놓인 화롯불에 구리로 만든 석쇠 위에서 지글지글 기름이 흘러나오며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자반 구이와 연탄 화덕에서는 모락모락 수증기가 올라오며 끓는 미역국 냄새가 번져 후각이 먼저 행복해졌다. 식구들 누구이건 생일을 준비하는 엄마의 바쁜 손길을 나는 늘 경이롭게 바라보았다. 훌륭한 요리사도 어머니를 따라갈 수는 없을 것이다. 자반 구이가 끝나면 어느새 다른 석쇠를 바꿔, 간밤에 들기름 발라 소금을 솔솔 얹힌 재래 김을 구워낸다. 고소하고 바삭한 김은 여섯 조각으로 나뉘어 접시에 올라앉아 생일상을 빛내주었다. 모든 물자가 귀하던 시절의 풍경이다.

 

온 가족이 방안에 둘러앉으면 맨 아랫목에 앉아계신 할아버지 할머니 밥상이 먼저 들어온다. 밥상 위에는 하얀 쌀밥에 미역국, 삼색나물에 나박김치, 고등어자반 구이와 반듯하게 잘린 김이 오르면 훌륭한 생일상이다. 다음은 아버지와 큰오빠 앞으로 또 하나의 밥상이 들어온다. 큰오빠는 늘 무릎을 꿇고 앉아야 하지만 우리는 어른과 겸상하는 오빠가 무척 부러웠다. 맨 마지막으로 도란도란 앉아있는 나머지 네 남매와 엄마가 둘러앉을 커다란 두레 밥상이 들어온다. 밥상 나르는 심부름은 늘 둘째 셋째 오빠들이 담당했다. 밥상에 올라앉은 반찬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어머니는 양손에 구운 고등어 대가리 접시와 또 한 손에는 김을 구워 잘랐던 김 쟁반을 가지고 들어오신다. 너무 바삭해서 부스러진 잔해들이다.

 

엄마는 대체 왜 그런 것만 드실까, 물어본 적이 있다. ‘아무 소리 마라’ 하시며 김 부스러기와 고등어 대가리가 제일 맛있는 거라고 하시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의 깊은 뜻을 알 리가 없는 어린 꼬맹이도 나이를 먹고 가정을 이루어 가족들의 밥상을 차리면서 어머니의 희생을 알게 되었다. 좋은 것 예쁜 것은 남편과 아이들 몫으로 먼저 챙기게 되니 세대가 바뀌어도 주부들의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막내 오빠와 나는 어머니 차지가 될 김 쟁반마저 서로 쟁탈전을 벌였던 기억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후다닥 일어나 김 부스러기에 밥을 돌돌 말아서 먹으면 짭조름한 주먹밥이 만들어져, 김 가루를 입가에 묻히며 먹던 그날의 쟁반투쟁이 마치 어제 일만 같다.

세월이 흐르고 어른이 되어서야 가슴 깊이 새겨진 어머니의 아픈 사랑을 깨닫는다. 손끝으로 만들어 나오던 예전에 생일상과는 달리 요즘은 식탁 위에 제일 먼저 케이크가 중심을 잡고 올라앉는다. 피자와 치킨, 햄버거와 콜라와 사이다로 아이들 생일 파티를 해준다. 최고의 생일파티라고 당당해하는 요즘 시대 엄마들은, 어린 날 자신이 받았던 생일상을 잊었던 걸까. 삼신할머니가 열 살까지는 지켜준다고 굳게 믿고 수수팥떡을 만들어 이른 아침 아이들 머리맡에 놓아두고 두 손을 비비시던 할머니 모습도 아스라이 잊혀간다. 그렇다고 지금의 어머니들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하다고는 감히 말할 수 없다. 아이들의 생일상을 차리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기뻐하던 시절과 시대와 세태가 만들어 낸 화려한 생일파티 문화가 다를 뿐이다.  

가족들의 생일상은 대가족 시대 층층시하 가족들이 우선이고 배불리 먹는 것만으로도 가슴 뿌듯하게 바라보던 어머니의 사랑 표현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소금기가 절반이요, 지저분하게만 여겨지는 그것마저도 빼앗아 먹던 철없던 딸이었다. 고등어 대가리 김 부스러기가 아닌, 노릇한 자반 구이 살 많은 가운데 토막과 반듯하게 잘린 김이 놓인 생신상을 차려 어머니께 드리고 싶은데 어머니는 이미 계시지 않는다. 어머니와 헤어진 지 불과 1년도 안 되었지만, 또 남들은 이제껏 지척에서 어리광과 보살핌으로 살아온 세월을 부러워하지만 안타깝기는 매한가지다.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어찌 어머니의 흔적을 지울 수 있단 말인가.

큰 어려움 없이 아이들이 모두 제때 출가를 했다. 그 아이들도 제 자식들을 앞세워 외갓집이라고 들어서면 할머니 마음이 되어 맛난 음식만 해 먹이고 싶은 마음을 숨길 수 없다. 예전에 내 어머니도 이런 마음으로 자식들을 기르고 가르쳤겠지, 지금은 흔하디흔한 먹거리 앞에서도 어머니가 해주던 자반고등어 구이가 눈앞에 삼삼하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흰 쌀밥에 김 서린 미역국으로 생일을 맞던 그때의 그리운 얼굴, 잊혀 가는 그리운 풍경을 그리며 잠이 든다.

 

 

 

 

이천희

아호 : 자운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마전3길 6

경기도 포천출생

1961년5월19일

 

포천문인협회 수석부회장, 한국작가회 시, 수필작가

포천예총 이사, 포천문화원 이사

면암 최익현 선생 숭모사업회 여성위원장

성균관 유도회 가산지회 부회장

산앙단 숭모회 총무  

태사모봉시회 대표

마홀 민속문화예술보존회 대표

 

2014년   포천예술인 동우회 작가전 시 부문 전시

2013년   6.25전사중국군 합동위령제 및 추모 시 낭송

2014년  제18대 대통령1주년 축헌 시 낭송-세종문화회관 별관

2015년  제7회 남북통일 문화예술대전 시 부문 우수상 수상

2016년  제45회 한국작가 신인문학상 수상, 제2회 포천시여성기예전, 제7회 남북통일문화예술대전 시 부문  특선

2017년  포천글사랑 백일장 시 부문 우수상 수상, 제9회 남북통일 문화예술대전  우수상, 제3회 포천시여성 기ㆍ예경진대회  시 부문 우수상 수상

2016~2022 현충일 기념식 추모 헌시 5회 낭송(제62, 63, 64, 65, 67회-청성역사공원)

2017~2022 제1회, 제2회, 제3회 면암문화제 추모식 추모 시 낭송-중앙시립도서관

2013~2022 포천문인협회 소속, 시화전 다수 전시

2014~2023 포천문학 출판기념회  시ㆍ수필  다수 수록

한국작가, 경기문학- 시, 수필 다수 수록

2018년 대한민국 사회공헌대상 수상

2021년 포천시민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