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 문학산책

채현기 작가의 隨筆 '한탄강'

포천문인협회 사무국장과 포천예술인동우회 사무국장 역임, 시집 '백여시들 수다를 떨며' (공저) 출간

 

▲채현기 작가.

 

 

이번 주는 채현기 작가의 수필 '한탄강' (부제 : 강물은 시간을 품는다)을 감상합니다. 채현기 작가는 2015년 현대시선 시 부문으로, 2019년 에세이문예 가을호 수필 부문으로 등단했습니다. 사)포천문인협회 사무국장과 포천예술인동우회 사무국장 역임했고, 시집 '백여시들 수다를 떨며' (공저)를 출간했습니다. 

 

 

 

 

 

한탄강 

부제 : 강물은 시간을 품는다

 

 

시원에서 시작한 강물은 바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굴곡의 시간을 품으며 흐른다. 주상절리 협곡을 굽이치는 한탄강은 그 시간을 몸에 새기느라 저리도 몸서리치고 있는가.

 

오랜만의 나들이다. 3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야속하게 흐르는 시간을 붙잡을 새도 없이 각자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을 지켜왔다. 팔십 중반을 힘겹게 넘어서는 엄마와 함께 먼 걸음 해준 대구 형님네, 조카 둘을 훌륭하게 키워 출가시키고 이제는 손자까지 본 젊은 할머니 누나네, 그리고 대학 졸업반 딸 하나를 둔 우리 식구까지 합쳐서 열네 명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잘 버텨내고 귀한 시간을 함께 하기 위해 한탄강이 유유히 흐르는 오토캠핑장으로 향했다.

 

 

4代

이제 태어난 지 반년 조금 지났다. 먹고 싸고 잠자는 것이 살아 있음을 알리는 적극적인 표현이다. 배고프거나, 어딘가 불편하거나, 놀아 달라고 보채거나, 싫어하는 마음을 울음소리로 말한다. 그동안 아기가 울면 배가 고파서 그런 줄 알았다. 조카 부부는 알아챈다. 앵~~ 하고 우는 소리에도 다른 뜻이 있다는 것을. 잠시 자리에 내려놓고 쉬려 하면 그새를 못 참고 앵~~ 하고 운다. 부모의 품을 벗어나기 싫어 우는 거짓 울음이다. 지금까지는 속아주며 살았지만 이제 부모의 품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려준다. 보행기에 앉히고 포대기에 눕혀 토닥토닥 쓰다듬듯 달래며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친다.

 

 

3代

취업을 앞둔 조카에게는 바늘구멍 같은 취업관문도 문제지만, 직장 내 인간관계, 알게 모르게 존재하는 차별 문제, 자율이란 가면 뒤에 숨은 과중한 업무강도. 평생직장은 이제 옛말이다. 이제 이직에 대한 인식이 변화했다. 이직은 자신의 능력을 평가하는 척도이다. 대이직의 시대가 도래한 만큼 각자 노동시장에서의 자신의 몸값을 높이기 위해 퇴근 이후에도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한다. 수시로 이직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 또 다른 조카는 청년을 위한 임대주택에 운 좋게 당첨되어 신혼살림을 시작했지만, 내 집 마련을 위한 고난은 언제까지 이어질지 짐작하기 어렵다. 청춘의 황금기를 주택마련에 쏟아붓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2代

정년퇴직이 다가오면서 퇴직 후의 삶에 대한 고민과 준비에 더 바쁜 시간을 보낸다. 자동차 정비만으로 30여 년 사회생활을 해왔지만 퇴직 후의 편안한 삶을 꿈꾸지 못한다. 걱정이 커지면서 퇴근 후, 그리고 주말을 고스란히 자격증 공부에 매달린다. 이러한 노력의 시간은 노후생활에 대한 안도감을 준다.

먹고살 걱정으로 바쁘게 살다 보니 언제나 쫓기면서 살아왔다. 그동안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늘 뒷전으로 밀어놓았다. 이제는 은퇴를 앞두고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이제부터 나를 위한 공부를 시작한다. 철학과 문학을 배우고 역사를 통해 나를 바라본다.

 

 

1代

두해 전, 마지막까지 쥐고 있던 집 한 채를 자식에게 물려줬다. 꼬깃꼬깃 여민 속곳 쌈짓돈마저 손자들에게 내어주신다. 엄마는 이제 가진 게 없다. 살면서 아껴 쓰고 모았던 당신의 모든 것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스스로 가벼워지셨다. 또각또각 지팡이를 짚으며 기웃대며 위태로운 걸음을 걸으시는 엄마의 손을 꼭 잡고 함께 걸었다. 이제 자식은 엄마의 지팡이가 된다. 세월의 풍파에 힘을 잃고 부스러져 흘러내리는 감나무집 담벼락 같은 엄마의 손을 힘주어 꼭 잡았다.

 

 

우리는 태어남과 죽음 사이를 살아가고 있다. 어느 누구는 60년쯤 살 것이라 하고, 다른 누구는 100년은 살 것이라 하고 혹자는 120년을 살 것이라고 한다. 그 시간을 2代 혹은 3代가 함께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5代가 공존하기도 한다. 우리는 살아가는 그 시간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빈틈없이 꽉꽉 채워가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 시간 속에 서로 다른 문화가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다. 세상에 첫발을 내디딘 4代, 홀로 서기를 하고 있는 3代, 무대에서 물러나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2代, 무거웠던 짐을 내려놓는 1代. 우리는 캠핑장을 휘감고 흐르는 저마다의 한탄강을 보았다. 오늘만큼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어우러진 하나의 한탄강을 보고 있지 않을까. 세대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닌 따스하게 손잡는 그런 것이 아닐까.

 

 

 

 

 

 

채현기

 

●문학 경력

2015년 현대시선 시 부문 등단

2019년 에세이문예 가을호 수필 부문 등단

2015년~ 포천문학, 마홀문학, 계간 에세이문예 동인 활동 중

사)포천문인협회 사무국장 역임

포천예술인동우회 사무국장 역임

brunch.co.kr (카카오 브런치) 작가 활동 중

시집 '백여시들 수다를 떨며' 공저

 

●수상 경력

2016년 반월문화제 운문 특선

2017년 포천사랑백일장 운문 차상

2019년 경기도 독서문화 유공표창 경기도지사상

2019년 사)포천문인협회 공로상

2022년 서울지하철 창작 시 공모전 당선

2022년 포천시 전국 독후감 공모전 수상(장려)

 

 

 

[ 포천좋은신문 김승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