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성 칼럼]워싱턴發 종이비행기

프로방스, 바람과 햇살 2

필자 김은성은 79년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이민갔다. 메릴랜드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80년부터 96년까지 미국 소아과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다. 97년부터 병원 관리직과 소아산부인과 이사로 근무하다가 퇴직했다.

▲필자 김은성.

 

 

Voila! Lavande pour moi 

사진 속의 라벤더밭으로
 
프로방스에 오고 싶다는 바램은, 한 장의 사진에서부터였다. 우연히 보게 된 달력 사진 같은 풍경, 보랏빛 라벤더밭과 중세의 수도원 사진 한 장이 이 여행을 계획한 동기다.


오늘은 그 사진 속으로 가보기로 한다. 아비뇽에서 1시간 정도 자동차로 가면, 산속에 자리 잡은 중세 건물, 세낭크 수도원(Senanque Abbey)이 있다.


오후 1시에 문 닫는 아비뇽 재래시장에 먼저 들러서, 문어 주꾸미 오징어를 식초, 올리브에 절인 것과 도마토, 바케트를 사 들고 가서, 수도원 나무 그늘에서 프랑스 사람들처럼 피크닉으로 점심을 먹었다.

 


▲아비뇽의 재래시장.

 

12세기 무렵, 바위 산중에 가난한 수도승들이 오두막을 지어 시작했다는 이 수도원은 바위와 산과 중세건물이 라벤더밭과 어우러져 펼치는 그림으로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어 있다. 


높은 지역의 산자락이라 아직 라벤더가 피질 않아서 오늘은 다행히 주차할 곳도 있고 인산인해가 아니었으나, 라벤더가 피면 아침 일찍 오지 않으면 주차할 곳이 없다고 한다. 우리는 2주 후에 다시 와볼 건데, 평일 아침 9시 이전에 도착해야 주차할 수 있다고 한다.

 


▲수도원 앞에서.

 

라벤더는 아직 없고, 돌로 지어 시원한 수도원 내부를 탐방한다. 천 년 전 사람들의 끌과 정 자국이 남아있는 돌기둥들이 품고 있는 시간이 성스럽게 느껴진다. 수도원은 화려한 성당들과 달리 장식이 별로 없다. 하나님께 마구마구 바치고 싶은 듯 꾸며놓고 발라놓은 예술품이 없어서 오히려  하늘에 가깝게 느껴진다.

 


▲아무런 장식이 없는 수도원 채플 안에서.

 

수도원은 산꼭대기에 마을을 이룬 루브롱(Luberon ) 지역의 '예쁜 마을들'로 꼽히는 마을 중의 하나인, 고르드(Gordes) 근처라서(자동차로 10분거리), 수도원 답사 후 그곳으로 간다.


이탈리아 마을들처럼 산꼭대기 절벽에, 어마어마하게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며 깜짝 놀랄 절경을 선사한다. 천 년 전부터 단체로, 마을 단위로 이렇게 이쁘게 살았다니! 그리고 그 모습이 아직도 남아있고 주민들이 거주지로 유지하고 있다니! 유럽 여행에서 받는다는 문화충격이 이런 놀라움일까?

 


▲절벽 위에 지은 마을 고르드.

 

마을 전체가 단체로 아름다움을 구성한다는 개념을 그 옛날부터 알고 계속 그렇게 살아올 수 있었던 이 나라의 역사와 풍요로움에, 부러움으로 자지러질 것만 같다. 중세마을의 운치와 절벽이 펼쳐준 아름다움에, 지구 방방곡곡에서 소문 듣고 몰려든 부자들이 돈을 덧칠해서 지금의 모습을 이룬 곳이라고, 좀 더 수긍이  되는 설명이 가이드북에 쓰여 있다.


기차역도 있고 공항도 있는 아비뇽 성곽 밖의 신도시는 한국의 7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초라한 모습이고 부동산 시세도 헐한데, 구석진 산골이라도 이쁜 동네 고르드는 엄청 비싸다. 대도시에서의 접근성과 상관없이 경관이 부동산 가격을 높이고, 높아진 가격으로 그들만의 리그가 형성된다는 것은, 광활하게 넓은 땅이 펼쳐있는 미국에서도 보았다.


허허벌판 같은 미국의 서부, 외진 와이오밍 구석에도 맨해튼 수준의 비싼 부촌이 있는 걸 보며, 편리한 교통 조건보다, 경치 좋은 동네가 부동산의 윗급이라는 걸 배웠다.

 
이 작은 부자 마을 절벽에 앉아있는 카페에서 바람을 맞으며 맥주 한잔하고 거나해진 우리는, 그 마을 화랑에서 전시 중인 작품 중에 세낭크 수도원의 라벤더 그림을 기념품 삼아 샀다. 여행 가면 늘 그림을 사고 싶어 하다가, 풍경에 취해서 이 언덕의 바람이 담긴 맥주 한잔에 취해서 오늘 저지른 거다! 

 


▲고르드에서 사 들고 온 그림, 두고두고 가장 잘 쓴 돈이라고 생각된다.
 
남편은 이곳으로 출동하며 이리저리 들르려고 스케줄 준비해왔다는데, 즉흥적인 난 알딸딸한 채로 내가 탐독 중인 가이드북을 들이대며, 루브롱의 다른 이쁜 마을 루시용(Roussillon)으로 가자고 했다.


가는 길에 좀 더 핀 라벤더밭을 보았다. 아, 너희들 보려고 내가 여길 왔잖니... 드디어 보랏빛, 향기로운 라벤더와 감격스럽게 만났다.  이런 빛의 벌판을 보려고 심었을까, 아니면 수익성이 높아서 심었을까? 무엇을 해도 이쁘게 해야 하는 프랑스 사람들의 특별한 미학적인 유전자 때문일 듯하다.  

 


▲이곳엔 라벤더가 많이 피었다. 우리 동네에서 100달러쯤 되는 라벤더 한 아름을 4유로에 샀다.
 
고르드가 절벽의 하얀 돌집들로 깜짝 놀라게 하더니, 루시용은 핑크빛 돌과 흙으로 지은 마을이 산꼭대기에 말도 못 하게 예쁜 그림을 펼친다. 아무 데서나 사진 찍어도 다 화보인 조그만 동네. 영화 세트장 내지는 미대생들이나 사진작가들을 위해 조성된 마을 같다.


단지 매우 낡아 보이는 집들도 개발에 제한이 되어 개보수가 힘들 것 같아서, 우리가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주민들은 불편을 감수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은 들었다. 

 


▲붉은 흙이라는 뜻의 루시용.

 

구석구석 가볼 곳이 너무 많은 프로방스, 집으로 데리고 가고 싶은 애들이 너무 많은 상점에서 아무것도 못 집어 드는 것처럼, 맛있는 거 너무 많아서 뭐부터 먹어야 할지 고민되는 뷔페처럼, 어디부터 봐야 할지 행복한 고민 중이다.

 

Nimes... Pax Romana (Roman peace)

님, 로마제국의 평화 시대
 
아침에 눈 뜨니 9시다. 밤새워 뒤척이다가 잠시 잠들고, 우리 시간으론 새벽 3시인데 또다시 '늦잠' 잔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은 느긋하게 아비뇽 '주민' 노릇이나 할까 하다가, 거리도 가깝고 볼거리가 그다지 많진 않을듯한, 덜 유명한 도시, 님으로 가본다. 어제는 중세 마을, 오늘은 고대의 흔적을 보러 간다.


님은 인구 15만 정도의 도시인데, 이탈리아보다 훨씬 잘 보존된 엄청난 로마의 유적들이 있다. 관광지로 유명해야 맞는데, 이곳 사람들이 그런 거 싫다고 해서 자기들끼리 조용히 살아간다고 한다. 유네스코에서 아는 척하는 것도 싫다니, 그런 콧대는 아주 오랫동안 먹고살 만했던 사람들이라 가능한 거란 생각이 든다.


님은 예수님 탄생 시기 전후해서 로마의 도시로 엄청난 부와 번영을 누린 흔적이 잘 보존되어 있다. 코린트 양식으로 지어진 신전, 메죵 카르(Maison Carre, 네모난 집이란 뜻), 가장 잘 보존된 로마 원형 경기장,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마뉴탑 (la Tour Magne)과 다이애나 신전(Temple de Diane)이 있는 분수공원(Jardin de la Fontaine) 등 모두 예수님 탄생 전후에 지어진 2000년 된 건축물들이다.

 

우선 이렇게만 보는데도, 더운 날씨에 발품을 엄청나게 팔았다. 상대적으로 유명하지 않아서 볼 것이 별로 없을 거라는 예상은 뜨거운 햇살 아래 제대로 빗나갔다. 체력이 받쳐줘야 하는 게 여행이다. 
 
로마 시대에 종교적인 목적으로 지어진 듯한 메죵 카르(Maison Carre)에선, 님의 역사에 대한 영화를 보여준다. 로마제국을 위해 25년간 전쟁터에서 잘 싸워준 이곳 출신 용병대장이 오거스틴 황제에게 받은 금은보화와 로마제국 안에서의 평화 시대('팍스로마나'라고 한다)가 이곳의 번영을 이룩해 주었다는 역사 총정리다. 프랑스도 로마제국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 또한 이 도시에선 너무 적나라하여 프랑스 정부는 님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개인적인 의심도 해본다.

 

▲메종카르의 계단에서 뜨거운 햇살과 바람을 느껴본다.
 
잔인한 경기로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관람하며 오락으로 삼은 로마인들의 잔인한 취향을 역사에 남긴 원형경기장의 보존상태는 님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25,000명이나 들어와서 즐길 수 있는 건축물을 곳곳에 지어서, 귀족들만이 아니고 온 백성에게 매우 자극적인 오락을 제공한 로마의 정책이, 그 제국을 유지한 원동력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보존상태가 너무나 훌륭한 님의 원형경기장.
 
고대에 지어졌다고 보기엔 너무 아름다운 정원 뒤 언덕을 헉헉대며 올라가면 서 있는 탑을 만난다. 12세기에 한 욕심 많은 왕과 고고학자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믿어 이 탑 밑에 보물이 있을 거라고 파헤치는 바람에 그때까지 온전하던 탑이 일부 무너지고 내부에 구조물을 받쳐서 보수해놨다고 한다. 

 


▲거대한 탑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Tour Magne는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에 지은 성벽의 한 부분이었다.

 

청바지 데'님'은  바바리아(현재 독일의 남부)에서 이민 온 리바이 스트라우스가 미국에서 청색 물감으로 청바지를 만들며 그 이름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님에는 17세기부터 직물 산업이 발달해서 파랑 물감을 많이 사용해왔다고 한다. 주차장 운영하는 회사 이름도 파란색이라는 뜻의 indigo이다. 


 
▲고대 로마인들이 만들어놓은 호수정원엔 백조도 예쁘게 날개를 세우고 떠다닌다. 깨끗한 식수도 귀한 시절에 물을 끌어들여 사치하는 데까지 쓴 로마인들의 남다른 부의 스케일을 본다. 
 
탑을 보고 내려오는 길에, 한국말로 우리에게 한국에서 왔냐고 묻는 이쁜 아가씨를 만났다.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는 마리(Marie)는 곧 한 달 예정으로 한국 여행을 떠날 거란다. 우연히 한국어를 들었는데 아름다워서 배우기 시작했다니, 와 이런 일이!

 

프랑스 사람이 한국말이 아름다운 언어란다! 김광석, 박찬욱, 드라마 도깨비 등 한국의 대중 예술을 마구 읊어대며 한국 음악, 영화, 드라마를 진짜 사랑한다고 말한다. 살짝 수줍고 상냥하고 똘똘한 사랑스러운 아가씨다. 

 


▲참한 프랑스 아가씨 마리. 연락처라도 받아놓을 걸 그랬다.
 
유적의 스케일이나 역사적인 비중에 비하여 님은 아비뇽보다 훨씬 조용하고 물가도 싸다. 먹어보니 엄청 맛있는 디저트도 우리 동네 기준으로 30% 이상 저렴하다.

 


▲우리 동네로 통째로 들고 가고 싶은 페이스트리 가게.

 

님을 돌아보며 여기가 이탈리아인지 프랑스인지 애매한 느낌인데, 가이드북에서도 여긴 이탈리아의 연장선이라고 보면 된다고 쓰여 있다. 
 
지금 기준으로도 엄청난 로마의 부귀영화의 흔적을 보며, 이제는 역사에만 존재하는 그 제국에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께서 그런 힘을 허락하신 거라고 생각된다. 넓은 영토 가운데 전쟁이 없는 평화 시대와 잘 닦인 길(군대 이동 목적으로 열심히 길을 닦았다고 한다), 그리고 통일된 언어까지 초기 기독교를 전할 수 있는 무대를 로마제국을 통하여 역사에 펼쳐주신 거라는 견해에 공감한다.

 

같은 맥락으로, 엎치락뒤치락하는 가운데에도, 프랑스 시골 아가씨도 동경하는, 기적이라 불리는 고국의 번영도, 하나님께서 펼쳐주신 계획 가운데 있다는 믿음에 확인 도장이 찍힌다. 
 
우리에겐 뜨거운 날씨인데 프랑스 사람들은 식당마다 에어컨이 완비된 실내 말고 굳이 밖에 나와서 먹는 걸 보며, 자연과 어우러져 사는 여유와 강인함을 본다. 미국 사람들이 자원을 낭비하고 펑펑 쓰는 걸 품격 없다며 싫어한다는 프랑스인들의 삶을 느낀다.


엑상프로방스, 그리고 세잔 
 
고등학교때 프랑스어를 열심히 공부한 기억이 아련하다. 그당시 막연히 엑상프로방스로 어학 연수오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이 교육도시라고 하니 어디선가 주워 들은 바가 있었나 보다. 이제 내가 이 도시에 와보고 너무 좋아서 언어연수를 버킷리스트라고 법썩 떨며, 결행하면 어쩌나 살짝 걱정하며 그곳으로 향한다.


고속도로 피해서 한 시간 남짓 국도로 가니 프로방스 시골 마을들을 계속 만나고, 영어 한마디 못 하는 농부의 가판대에서 채소와 과일도 사며 엑상프로방스로 간다.


님과 비슷한 크기의 도시 엑상프로방스는, 여기서 낳고 자라고 그림 그린 세잔으로 강력한 관광 테마를 삼고 있는데, 정작 그의 작품은 이 도시에  한점도 없고  대부분은  미국에 있다고 한다.

 


▲세잔의 의복들.

 

세잔의 아틀리에에 가 보니 그의 정물화에 등장하는 올리브 병 등 소품들의 진품과 그의 작업복 코트,  그가 쓰던 물건들이 화실 벽의 오리지날 페인트칠과 함께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아버지에게 상당한 유산을 받은 부잣집 자손 세잔이 직접 지은 건물이다. 그가 남긴 작품들은 미국의 미술상이 사가고, 그밖에는 값나가는 물건이 없어 오랜 세월 이곳을 방치해 놓은 그의  아들과, 건물을 나중에 구입한 미국의 미술애호가 덕분에 이렇게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세잔의 정물화에 등장하는 소품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담백하고 검소한 화실 중앙에 십자가가 걸려 있다. 세잔의 일생을 그린 영화에서, 본인이 종교적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영성이 없다면 어찌 그림을 그리냐고 답했다는 장면이 떠오른다. 아틀리에의 도슨트는, 세잔의 가문은 이탈리아 계통이라서 아무래도 더 종교적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고 말한다.

 

이탈리아엔 교황님이 계셔서 그들은 더 종교적이라는, 프랑스 가이드의 말이 기억에 오래 남을 거 같다. '교황님이 안계신' 프랑스는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성당들과 대비, 신앙적으로 매우 냉냉한 곳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14세기에 교황이 70년 유수하던 아비뇽에 계속 남아 계셨다면 달라졌을까?

 


▲세잔이 그린 정물화를 자세히 보면, 원근법이 무시되고 작가의 시선이 여러 곳에서 바라본 모습이 한 화면에 있음을 알게 된다. 피카소를 비롯한 현대미술가들에게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이유이다. 

 

진열장이 아닌, 손이 닿는 공간에 그의 작품 속 소품들이 전시된 것을 보며 여기서 그림 그리던 세잔을 상상해본다. 아버지의 유산 덕분에 작품을 팔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었던 세잔은 마치 연구실에 틀어박힌 학자처럼 연구하며 그림을 그렸다. 그는 화가의 시선이 여러 방향에서 본 그림을 한 화면에 담아내기 시작하여 서양 미술사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현대 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천재화가와 진하게 만난 듯 느껴진다.

 

▲세잔이 자주 갔다는, 1792년부터 있는 식당에서 식사도 했다.

 

엑상프로방스는 소도시지만 상당히 복잡하여, 서울의 강북 좁은 골목길 같은데, 시장 골목 가운데 있는 13세기 성당도 규모와 아름다움이 이거 한 개만 있어도 도시가 먹고 살 거 같은 수준이다. 다른  도시에도 널린 게 성당이니 여기서는 세잔을 관광의 테마로 밀어보기로 한 거 같다. 세잔의 작품은 한 개도 없는 도시에서 그의 흔적만으로 홍보하는 것을 보며, 박수근 작가의 작품이 없는 박수근 생가가 떠오른다.


님에서 만난 아가씨 마리가 님보다 엑상이 아름답다고 했는데, 나에겐 님이 더 깨끗하고 조용해서 맘에 든다. 즉흥적인 성향의 내가, 여기 연수오려고 다 정리하겠다고 나설 일은 없을 거 같아 다행이다!

 

귀족들의 놀이터였던 호텔 박물관에서 인상주의 화가 시슬리(Alfred Sisley) 특별전이라고 해서 14유로 내고 들어갔는데, 우리 동네에서 공짜로 보던 작품들이 많다. 관람 후 들렀던 프랑스 귀족 취향의 카페가 우리 동네에선 볼 수 없는 곳이라  더 인상적이다. (계속)



▲프랑스풍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으로 도배된 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