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성 칼럼]워싱턴發 종이비행기

백신이 돌려주는 소중한 일상

필자 김은성은 79년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이민갔다. 메릴랜드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80년부터 96년까지 미국 소아과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다. 97년부터 병원 관리직과 소아산부인과 이사로 근무하다가 퇴직했다.

 

미국 워싱턴에 거주하고 있는 필자 김은성은 현재 본지에 '미국 대륙횡단 여행기'를 절찬리에 연재 중인 작가다. 그가 수년 전, 한 달 이상을 자동차로 미 대륙을 횡단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사진과 함께 담백한 글로 써내려간 여행기는 현재 코로나로 해외 여행을 꿈도 못 꾸는 우리들에게 커다란 위안과 함께 대리만족을 주고 있다.

 

본지는 필자에게  2회 정도 남은 '미국 대륙횡단 여행기'를 잠시 중단하고, 2020년 봄 지구를 뒤덮어 버린 팬데믹과 백신 개발 이후 미국 사회의 새로운 변화의 물결에 대한 글을 요청했다. 평생 의료계에서 근무해온 그의 직접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실제로 피부에 와닿는 '백신 접종 이후 미국 이야기'에서 그는 "어두운 터널 속에서 빛의 속도로 세상에 나와준 백신이 우리에게 소소하지만 소중한 일상을 되돌려주고 있는 중"이라고 진단했다.

 

 


 
지난 1년간 미국의 코비드 사망자 수는 제주도 인구와 비슷한 60여만 명, 인구 대비해서 남한 인구로 계산한다면 대한민국에서 10만 명이 사망한 거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숫자다. (미국 인구 3억, 남한 인구 5천만에 비례) 코비드로 순직한 간호사(RN)의 숫자도 400명에 달한다. 그 밖의 의료인들의 희생자 통계는 아직 못 봤으나 코비드를 앓고 지나간 의료인들의 숫자까지 합하면 엄청날 것이 확실하다.

 

미국의 사상자의 숫자는, 재난 상황의 통계일 뿐이 아니고, 가까운 가족과 지인들의 투병 소식과 사망 소식을 동반한, 개인적으로도 체감이 엄중하고 비장한 재난의 숫자이다. 지난 일 년간 가까운 지인들의 장례식에도 참석할 수 없어서, 애도와 상실의 과정이 심리적으로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해 체증처럼 얹혀 있다.


건국 이후부터 자유로움에 익숙하게 살아온 신생국 미국의 국민들이, 방역 지침을 잘 따르지 않고 개인의 일상을 고집한 결과로 인한 엄청난 피해라고 비칠 수 있는 감염통계이다. 그러나  바이러스가 비껴간 사람들도, 잃어버린 일상으로 인한 정서적인 피폐함이 경제적인 피해보다 더 심각한 듯하다. 


작년부터 백신 개발 상황이 스포츠 경기 중계되듯 언론에 자세히 보도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지금까지 백신 개발을 하려면 오랜 기간이 걸리는 임상시험들이 필요했던 것에 비하여, 코비드 백신은 초고속으로 개발되고 있는듯하여 백신을 기다리는 마음과 급조되는듯한 백신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함께 있었다.


내가 사는 Maryland 주의 주력 산업은 면역학과 제약회사 등 바이오산업이다 보니, 이곳에는 요즘 언론에 많이 회자하는 유명 제약회사가 다 모여 있고, 그곳에서 일하는 과학자들도 많이 살고 있다. 백신이 개발되고 있는 과정에서, 이 지역 한인 면역학 전문가에게 화상을 통하여 강의를 듣고 질의응답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 만남 이후 초고속으로 진행되는 듯 보이는 백신에 대한 큰 우려를 잠재울 수 있었고, 백신이 나왔을 때 망설임 없이 맞을 수 있었다.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천천히 발전되어 오던 과학이 산업혁명 이후 급속도로 탄력을 받아 발전해 왔다. 최근에는 컴퓨터 공학과 인터넷을 바탕으로, 그동안의 속도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모든 과학이 빠르게 발전해 오고 있다.

 

면역학도 유전자 분석 기술 이후 그 발전속도는 빛의 속도 수준이라고 한다. 이미 준비되어 있던 mRNA 기술로 만든 혁신적이고 안전한 새로운 백신이 화이자와 모더나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전형적인 백신은, 바이러스를 약하게 하거나 죽여서 몸에 주입해 항체를 만들게 한다. 그러나  mRNA라는 바이러스 유전자의 정보만 몸에 넣어주면, 그 정보가 바이러스의 병증을 유발하는 돌기 세포를 만들고, 우리 몸은 그 항체를 만들게 되므로, 병원균이 몸에 들어가는 기존의 백신보다 훨씬 안전하다고 한다. 


영국의 옥스퍼드에서 개발한 아스트라 제네카(AZ)는, 흔한 감기 바이러스 종류(아데노 바이러스)에 코비드 바이러스의 유전자 정보를 심어서 주입하는 기술이다. 모더나와 화이자와는 좀 다른 방법으로 개발된 백신이지만, 이 또한 기존의 백신보다 혁신적으로 발전된 신기술이라고 볼 수 있다. 영국에서는 국민 모두가 AZ 백신을 맞고, 엄청난 감염률의 난국을 헤쳐 나오고 있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국의 확진자 현황. 작년 9월 이후 코비드 감염자가 증가하기 시작해 올해 1월 최고조를 이루다가 아스트라 제네카 백신 접종 이후 감염자가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팬데믹 상황이 워낙 언론에 집중적으로 보도되고 있어서 백만 명에 하나 나올 수 있는 백신의 부작용들도 낱낱이 보도되고 있다. 그러나 백신의 부작용으로 인한 사망 가능성은 코비드로 인한 사망률에 비하면 극히 미미하다.

 

그동안 고국을 방문했던 지인들로부터 코비드 감염률이 현저히 낮은 대한민국은 미국에 비하면 일상이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고 전해 들었다. 미국인들의 시각으로는 대한민국은 코비드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 중 하나이며, 이 재난에 비교적 안전하게 대처하고 있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감염도 두렵지만, 백신의 부작용에 대한 염려와 백신 공급의 형평성과 정치 이슈화 등, 불안함과 갈등이 심화하는 것이 현재진행형인 팬데믹의 지구촌 전반적 상황이다. 올 초부터 백신이 보급되기 시작해 먼저 맞고 싶어 애타던 사람들이 다 맞고 나자, 이제는 제발 백신을 맞아달라고 애걸복걸하는 상황인 미국은 오늘도 하루 확진자 2만 명 이상을 기록하는 중이다.

 

최근 질병 관리센터(CDC)는 백신 맞은 사람들끼리는 

조심스럽게 소그룹으로 모여도 좋다는 지침을 발표했고,

라일락이 피는 5월에 우리 부부는 

펜데믹 이후 처음으로 지인 한 커플을 초대해

식사를 나누는 기쁨을 맛보았다. 

어두운 터널 속에서 빛의 속도로 세상에 나와준 백신이

우리에게 소소하지만 소중한 일상을

되돌려주고 있는 중이었다.

 

미국의 코비드 감염자 숫자가 작년엔 하루에 30만 명도 넘었으니 요즘은 아주 좋은 상황이라 여길 수도 있다. 인구대비로 보면 미국의 1/6에 불과한 5천만 명의 대한민국은 하루에 3, 4천 명의 확진자가 나와야 하는데, 만약 대한민국에서 하루 수천 명의 확진자가 나오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백신을 이미 40%나 접종했지만, 미국은 여전히 '바이러스가 창궐' 하는 나라이다. 상대적으로 바이러스 청정지역인 대한민국은 비록 백신 공급은 늦어지고 있지만, 지금처럼 방역을 잘 유지하면서 백신 접종에 참여하게 되면 팬데믹을 무사히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도 요즘은 SNS로 인하여 사실확인을 거치지 않는 뉴스의 확산이 봇물과 같다. 당장 괜찮다고 해도 먼 미래에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두려움, 음모론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거저 준다는 백신을 안 맞겠다는 사람들이 상당하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미국인의 40% 이상이 이미 접종을 마쳤지만, 그 이후 접종률이 별로 늘어나지 않아서 펜데믹 종식을 선언할 집단면역의 날은 아직 먼 훗날의 일로 보인다.

 

그래도 두껍게 내려쳐 있던 일상으로부터의 격리 장막이 빠끔히 열린 것만도 숨통이 트이는 요즘이다. 시장에 가는 것조차 최소한으로 줄이려고, 3주 동안 냉장고에 있는 식자재만으로 외식도 없는 식생활을 유지해왔으나, 백신 접종 후 필요할 때마다 시장에 드나들게 된 것만도 엄청난 자유를 다시 찾은 느낌이다.


팬데믹을 지나며 영웅이 된 앤서니 파우치 박사(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는, 백신을 맞았어도 무증상 감염이 가능하므로 실내에서 불특정 다수 앞에서는 마스크 쓰라고 권하고 있다. 전 직원과 환자가 모두 백신 맞은 양로원에선 매주 코비드 검사를 계속해오고 있는데, 예외 없이 매번 양성반응이 나온다고 한다.

 

백신을 맞았으나 무증상이지만 다시 코비드에 감염되어 양성인 내가 아직 백신 맞지 않은 사람들에게 나도 모르게 바이러스를 전해줄 수도 있다. 그러나 백신을 맞으면, 감염이 된다고 해도 중환자로 진행되거나 사망할 확률이 현저히 낮아지니, 백신접종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미국의 침체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서 백신 맞은 사람들은 마스크 벗어도 좋다는 주 정부도 늘어나고 있으나, 변이 바이러스와 아직 백신을 맞지 않은 다수로 인해, 초기엔 안 쓰겠다고 버티던 마스크를 이제는 벗지 않겠다고 버티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매스컴은 보도하고 있다.

 
최근 질병 관리센터(CDC)는 백신 맞은 사람들끼리는 조심스럽게 소그룹으로 모여도 좋다는 지침을 발표했다. 감염경로에 대한 정부의 역학조사가 전혀 없는 이곳 미국에서 그동안 들은 감염 소식들 중 제일 많은 경우가 함께 모여 식사한 사람들의 집단 감염이다. 이로 인해 노년층들 사이에서 자제하던 식사 모임이 다시 시작되고 있는 상황에서의 발표다. 


우리도 조심스레 한 커플을 초대하여 라일락 향기가 가득한 정원에서 식사하며, 굳게 닫혀있던 대문을 다시 열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위하여 테이블의 양쪽 끝에 떨어져 앉아서 식사했으나, 두 가정 모두 가슴 설레며 그 만남을 기다리다 함께 했다.

 

정원의 라일락도 같이 즐기면 기쁨이 배가 된다. 매년 라일락이 피는 즈음엔 꼭 우리 정원에서 함께 식사하자고 그 커플과 약속했다. 좋은 것들을 함께 나누는 것이 우리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해주는지 다시 느껴며 감사하고 있다.

 
우리를 첫 손님으로 초대해준 지인도 정원에서 식사 자리를 마련했지만, 그날은 장대비가 내렸다. 예년보다 유난히 비가 인색한 이번 5월이라 불청객 같은 단비를 반가워하며, 우리는 실내에서 조심스러운 맘으로 테이블 양쪽 끝에 나누어 앉은 후 저녁을 먹고, 밤이 깊은 줄도 모르고 와인을 마시며 담소의 시간을 가졌다.

 

이 댁은 이미 1년 전에 우리를 초대했으나 팬데믹으로 취소되었다. 그러다가 백신의 덕분으로 1년도 더 지난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재택근무 중인 주인장도 이 귀한 만남이 너무 설레어, 오전에 온라인으로 참석할 중요한 미팅도 까맣게 잊어버리면서 그 저녁을 준비했다고 들었다. 


팬데믹 이후에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아직도 예측불허의 불안과 사회 전반적인 문제들이 산재해 있으나, 어두운 터널 가운데서 빛의 속도로 세상에 나와준 백신이 우리에게 소소하지만 소중한 일상을 되돌려주고 있는 중이다.

 


▲최근 질병 관리센터(CDC)는 백신 맞은 사람들끼리는 조심스럽게 소그룹으로 모여도 좋다는 지침을 발표했고, 라일락이 피는 5월에 우리 부부는 펜데믹 이후 처음으로 지인 한 커플을 초대해 식사를 나누는 기쁨을 맛보았다. 어두운 터널 속에서 빛의 속도로 세상에 나와준 백신이 우리에게 소소하지만 소중한 일상을 되돌려주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