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성 칼럼]워싱턴發 종이비행기

미국 대륙횡단 여행기-열세 번째

필자 김은성은 79년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이민갔다. 메릴랜드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80년부터 96년까지 미국 소아과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다. 97년부터 병원 관리직과 소아산부인과 이사로 근무하다가 퇴직했다.

Day-34, 몬태나에서의 마지막 날 
 
어젯밤엔 별똥별이 쏟아지는 날이라고 해서 오밤중까지 안 자고 버티려 했으나 10시부터 비가 내린다. 이곳의 비는 텐트 지붕에서 후드득 소리를 꽤 오래 내면서 내려도, 아침에 일어나면 땅이 여전히 보송보송한 인색한 비다. 그래도 구름으로 하늘을 덮으니 별을 볼 수가 없고, 그냥 잠든 게 억울해서 새벽 두어 시쯤 밖에 나가보니 비는 그쳤어도 별이 총총하진 않다.


어제 집어온 mountain goat 꽃바구니가 나뿐 아니라 오가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준다. 요즘 재활 중이라 꽃이 달리지 않은 내 꽃들도, 오가는 사람들이 이뻐해 준다. 우리 동네 셰넌도어에는 꽃바구니 데리고 캠핑오는 사람들도 종종 보는데, 여긴 먼 곳에서 오는 사람들이 주를 이르니 나처럼 극성맞게 꽃 들고 온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오늘은 묵직한 사랑으로 내 안에 자리 잡고 앉은 몬태나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Logan pass에서 Highland trail과 continental divide까지 올라갔다 온 남편은, 이제 다른 트레일이 시시해졌는지 별로 연연해하지 않고, 역사박물관에서 공부한 지식에 따라 Flathead Indian reservation과 미주리강 서쪽에서는 제일 크다는 호수, Flathead lake를 가보고 싶다고 한다. 공원의 동쪽엔 Blackfeet nation, 서쪽은 Flathead nation이 자리하고 있다. 예전에 보호구역(reservation)이라고 불리던 지역은 요즘은 나라(nation)라고 불린다. 


주변을 돌면 160마일이나 되는 커다란 빙하호수 Flathead lake는, 초기 정착민들이 기차 타고 와서 다시 배 타고 호수를 건너서 천신만고 고생 끝에 Kalispell로 오게 된, 역사적으로 중요한 호수라고 한다. 우리 숙소에서 80마일은 운전해 가야 호수의 남쪽 끝 마을 Polson까지 가는데, 가는 길에 너무 예쁜 호숫가 마을 Bigfork에 들러본다. Artist들이 많이 모여 사는지 갤러리와  감각있는 진열 솜씨를 선보이는 선물점이 즐비하다. 개성 만점 art gallery들을 둘러보는 즐거움에 많은 시간을 여기서 보낸다. 
 

 

더 머물고 싶으나 다음 행선지를 향해 달려서, 호수 남쪽에 자리한 인구 4천 정도의 Polson으로 달리는 길. 들은 대로 체리 과수원들이 호숫가에 즐비하고 체리 파는 가판대가 계속 있는데, 철이 지나 대부분 철시되고 한 집에서 체리를 판다길래 들어간다. 값도 싸고 너무 달고 맛있는 체리가 끝물로 조금 남아서 잔뜩 사서 싣고 간다. 
 

 

폴슨에 도착해서 늦은 점심을 먹는다.
시카고에서 13년 전 이곳으로 이사와 살고 있다는 이탈리아계 부부가 야생 berry로 만든, 색도 이쁘고 달달한 home made fruit soda와 오늘 구운 맛있는 이탈리아식 브래드, 그리고 roasted vegetable 얹은 kale salad를, 이탈리아 시골 마을에 앉아 있는듯한 느낌이 나게 맛깔스럽게 내온다.

 


 

남편은 이곳의 자연을 사진 찍어서 식당에 걸어놓고 판다. 여기선 식당을 cafe라고 부르고, 장식해놓은 안틱은 팔기도 한다는 공통점이 이 집에도 있다. 식탁의 꽃꽂이도 감각 있게 해놓았다. 이 아름다운 미국 시골 몬태나엔 미학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민의 97%가 인디언이던 Blackfeet nation의 중심지 Browning과 달리 Polson은 인디언 영토이지만 인구의 17% 정도만 인디언이고 니머진 백인들이다.  물놀이 하기 좋은 호숫가에 많은 사람이 좋은 집을 짓고 살고 있고, 동네 전체가 버젓하고 깔끔하다. 이곳 인디언들도 동쪽 마을보다 좀 부유한듯한데, 백인사회에 잘 적응해서 살수록 인디언들의 정체성은 희석되어 버린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멀리 로키산맥을 바라보는 Flathead 호수는, 하늘과 물의 경계가 희미한 아름답고 드넓은 호수다. 160마일 호수를 죽 돌아보고, 마지막 밤을 보낼 캠프를 향해 돌아온다. 
 
작년에 프랑스의 산골 마을 샤모니에서 2주 묵었더니 여행 갔다기 보다, 거기서 살다 온 듯 느껴졌듯이, 몬태나 구석에서 2주간 살다가 정든 집을 떠나 이사하는 느낌이다. 밴프는 두 번째라서 어떤 곳일까 하는 미지에 대한 설렘은 없다. 샤모니에 다시 가게 된다면 느끼게 될 것 같은, 그리운 친구와의 해후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밴프로 간다. 
 
국경을 넘으면 물가가 비싸지겠으나, 미국에서 노숙하며 아낀 달러를 그동안 Alberta 주 visitor center에서 착하고 친절하게 와이파이 제공해준 캐나다에서 쓰고 와야겠다. 여행 중 미국에서 거저이다시피 누린 것들은, 우리가 유리 지갑 열어서 평생 이 나라에 갖다 바친 세금으로 대신해도 되니까... 이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는 금전적인 대가도 만만치는 않다고 생각하며, 국경을 넘어가서 물가 비싼 나라의 손님으로 지내는 한주로 이 여행을 마무리하게 될 거다.

 

Day-35, Canada로 이사 온 날 
 
이제 익숙해져서 마냥 아늑하고 편안한 텐트에서 몬태나의 마지막 아침을 맞는다. 꼼꼼한 남편이 두 시간 반에 걸쳐 한 땀 한 땀 이삿짐을 꾸리고 나서 다시 Going to the sun road를 지나 캐나다로 향한다.


마지막 인사차, McDonald 호숫가의 호텔에서 오랜만에 거나한 뷔페로 기름진 아침 식사를 하고 Logan pass로 오르는데, 워싱턴주인지 오리건주에서 난 산불에서 왔다는 연기가 계곡에 자욱해서 시야가 흐리다. 연기가 바람에 실려 와서 여기에 갇혀 있나 보다. 이 공원의 동쪽, 산불이 끝난 곳은 새카맣게 그을려서 좀비 나무(레인저들은 타서 죽었으나 쓰러지지 않고 서 있는 나무를 그리 부른다)들이 가득하다. 시커멓게 타버린 땅은 비옥한 영양으로 새로운 숲을 키워낼 거라고 한다. 
 
다시 캐나다 국경, 까칠한 캐나다 직원이 우리 차에 식물은 없냐고 묻는다. 없다고 거짓말하고 내 꽃들을 밀반입한다. 서울 다녀오며 오만가지 음식을 이고 지고 오면서도 음식 없다고 거짓말하는 것이 늘 맘에 걸렸구먼. 국경을 넘을 때마다 범죄자가 되곤 한다. 이런 죄인이 천국 시민이라니, 쯧쯧.
 
앨버타주로 넘어와 국립공원을 벗어나니, 대부분 헐렁하게 활용되는 듯 보이는 미국영토 몬태나와 달리, 이 나라의 최남단 황금 영토라 그런가, 알뜰히 활용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국경 지나 첫 번째로 만난 마을 Pincher creek이라는 곳에서 주유소에 들렀는데, 뜻밖에 한국 부부가 운영한다. 너무 반가워서 인사하니 아이스크림을 듬뿍 주시며 그분들도 반가워한다. 이런 곳에까지 와서 열심히 사는 배달 자손들..  
 

 
소박하고 정겹지만, 촌티가 펄펄 나는(그래서 사랑하는) 몬태나의 목축지와 달리,  깔끔하고 덜 시골 같은 앨버타주의 농경, 목축지를 달려서,  Alberta visitor center에서 가르쳐준 scenic drive로 접어드니, 잘생겨도 너~무 잘생기기 짝이 없는 캐나다 로키산맥이 등장한다. 아, 너무도 화려해서 마치 모델들이 runway를 걷고 있는 가운데를 달리는듯한 느낌이다. 계속 셔터 눌러가며 창밖의 풍경을 찍고 또 찍는다.
 

 

자동차 여행은 둘이서 해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뒷자리에 앉아가면, 가는 동안의 풍경은 아무래도 반타작 이하이고, 목적지에 가야 즐기게 되니까. 직선거리 대신, 경치 중심으로 선택해 먼 길로 와도 Glacier 출구에서  떠난지 6시간이면 도착하는 밴프, Glacier 국립공원에서 가깝다는 것을 알고 나중에 끼워 넣은 여정이다. 
 

 
2012년 직장을 그만두고 나 자신에 주는 선물로 이곳에 와서 일주일 보낸 후, 너무 아쉬워서 꼭 다시 오고 싶었는데 이렇게 일찍 그날이 올 줄 몰랐다. 
 
캠핑 4주 해낸 다음엔 호텔가야 할 것 같다고 내가 결정하고 온라인에서 예약했다. 명성보다 Banff엔 숙박시설이 부족하여 5개월 전에도 빈방이 없어서, 20분 떨어진 Canmore에 예약하며 좀 떨어져 있으니 가격 대비 밴프보다 훌륭한 시설이지 않을까 기대했으나, 와본 적이 없으니 막상 와보면 엉터리일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있었다. 
 
그런데 6시쯤 도착한 숙소는 기대 이상의 초호화판이라서 적응이 안 되는 중이다. 내가 여태껏 가본 적이 없는 호화판이라서 깜짝 놀라고 있다. 벽난로가 구비된 침실 두 개, 욕조 완비된 목욕탕 두 개, 우리 집 부엌보다 훨씬 좋은 가전제품과 그릇들이 준비된 부엌, 고급가구와 벽난로 완비된 운동장 같은 거실, 바비큐 그릴이 있는 넓은 발코니... 밀반입된 내 꽃들도 로키가 펼쳐진 전망 좋은 발코니에서 호강한다. 
 

 
4주간 캠핑하며, 국립공원 안에 있는 호텔에  빈방도 하루나 이틀은 있었으나, 한 번도 호텔에서 자고 싶다고 생각 안 하고 잘 지냈더니 갑자기 궁궐이다. 국립공원의 코딱지만 한 유서 깊은 호텔에 묵는 방값밖에 안 줬는데 물가 비싸기로 소문난 캐나다에서 이런 호강을 하다니 완전 어안이 벙벙하다.

 

국립공원에서 자동차로 20분 떨어진 값이 이렇게 차이가 나다니, 환불이 안 되는 결재 했다고 이렇게 좋은 방을 주다니... 호강할 것을 추구한 여행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 놀라는 중이다. 침대만 있는 호텔인 줄 알고. 매끼 밥도 사 먹어가며 달러를 쓰려고 했는데, 저 호화판 부엌을 써보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조금 적응한 다음에 감사하게 횡재를 누려볼 생각이다. 


 
Day-36, 다시 만나는 Banff, Canada 
 
인구 9천 명의 밴프에서 20분 거리에, 인구 12,000명의 Canmore가 있다. 워낙 이 지역이 넓어서 밴프에서 바로 옆 국립공원인 재스퍼까지는 4시간이나 걸리는데, Banff에서 20분 거리는 별로 불편하지 않다는 것을 지난번에 왔을 때 알게 되어 Canmore에 숙소 정하는데 망설임은 없었다. 더구나 캔모어에서만 놀아도 부족할 것이 없는 경관인 것도 알았기에 아예 이번엔 이 동네에서 편히 쉬려고 마음먹고 이곳을 찍었다. 
 

 
일기 예보에 의하니 내일부터 연일 비 소식이다. 여기 왔으니 그래도 밴프 국립공원의 꽃인 루이지 호수에게 인사는 해야 할 거 같다. 라면 사리 넣은 부대찌개와 맥주로 호화스러운 부엌을 시운전해서 준비한 점심까지 챙겨 먹고 오후에야 루이지 호수로 간다. 국립공원 입구, 투박한 미국에선 못 보는 산뜻하고 이쁜 매표소에서 거의 공짜로 드나들던 미국 국립공원에서와 달리 거금 90불을 바친다. 
 
Banff village를 지나 루이지 village까지 운전해 가는 1시간 정도의 highway를 주악 장식하며 늘어선 캐나다 로키의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위용과 아름다움을 보며, 다시 한번 엄청난 찬탄으로 감동의 물결이 출렁인다. 물빛까지도 믿을 수 없이 아름답게 그 곁을 흐르는 것을 보며, 이래서 하나님을 뵈면 죽는 거구나 싶다.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성스러움과 아름다움과 정결함. 그 모든 것의 주재자를 뵌다면 너무 벅차서 죽어버릴 수밖에 없을 거 같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두오모 성당의 대리석을 레이스처럼 깎은 화려함과 정교함의 극치를 떠올리고,  어느 누구의 피와 땀도 없이 혼자 빚으신 저 산과 물줄기의 신묘막측한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대비해보며, 이 엄청난 작품을 지으신 이를 경배하고 찬양한다. 
 

 
숲의 가운데에 고속도로를 내면서 야생동물들이 건너다닐 수 있게 육교를 만들어 놓은 걸 지난번에 와보고 캐나다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미국 공원에서도 다른 모습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레인저 프로그램에서 배웠다. 
 

 
7월이 제일 좋지만, 관광객이 너무 많아서 온 동네가 주차장이라는 관광 가이드를 책에서 읽었다. 저번엔 6월 말에 왔더니 그리 붐비지 않았는데, 8월도 중순에 접어드는 오늘 루이지 호숫가는 디즈니랜드 수준의 인파로 붐빈다. 에메랄드빛 페인트를 풀어놓은 물이 오후 햇살에 반짝이는데, 인디언이 전통 의상을 입고 호숫가에 서서 기념사진 찍으면서 모델료를 받고 있다.
 

 

호숫가에 있는 화려한 호텔 Chateau Fairmont도 미국에선 볼 수 없는 취향이다. 미국의 호텔들은 자연 속에 묻혀있고 튀지 않게 짓는다. 이런 데 와서 사치스러운 걸 찾는 취향도 부끄럽게 여기는 듯하다. 캐나다는 영국 연방이고, 빅토리아 여왕도 여기에 와봤다고 하고, 여러모로 카우보이 미국과는 사뭇 다른 문화가 바로 이웃 나라에 뿌리내렸음이 흥미롭다. 
 

 
최고급 호텔 로비 안에도 에어컨을 안 트는지 미국에서 온 우리 기준으로는 매우 덥다. 관광객이 너무 많이 와서 그런지 라운지에도 식사해야 seating이 된다고 해서 커피와 디저트만 먹으려다가 와인과 가벼운 점심을 또 먹으며 호텔에서 바라보이는 루이지 호수를 즐긴다.


떠나기 전날 high tea도 예약해 놓는다. 지난번에 눈이 안 녹아서 미처 다 올라가지 못한 루이지 호숫가 trail을 해보고, 세계 최고의 전망에서 afternoon tea time을 하고 떠나야 할 거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방값이 비싼 이 호텔에 일본 단체 관광객들이 투숙하는 걸 지난번에 봤는데 이번에도 또 보게 된다. 우리나라 관광은 여기서 한 시간 이상 떨어진 숙소에서 재우던데, 캐나다 달러가 미국 돈에 비하여 약세인 야음을 틈타서 나도 여기서 숙박해보려고 했으나 이미 빈방이 없다고 해서 Canmore에 있는 대궐에서 묵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잘생긴 산이 마을의 중심에 떡 버티고 있는 아름다운 Banff village downtown에 다시 가본다. 지난번에 갔던 곳들을 차로 둘러보고 다운타운을 걸어 다니며 상가들을 기웃거려본다. 명동처럼 사람들이 바글거린다.
 


지난번에 좋았던 Banff hot spring 노천 온천에 다시 가볼 예정이었는데 Yellowstone에서 흐르는 강물에서 온천을 해보고 나니 풀장 같은 온천은 시시해져서 별로 가고 싶지 않다.
 
지난번에 왔던 6월엔 연일 추워서, 이번에는 마냥 시원한 여름을 기대했는데 여기도 낮엔 80도 이상이다. 내일부턴 비가 오고 춥다고 한다. Teton부터 시작해서 로키산맥 쪽은 다 해가 나면 덥고 해가 가리면 당장 추운 날씨인 것 같다. 
 
문득 비행기 타고도 종일 날아와야 하는 멀고 먼 곳을 우리 차로 와있다는 생각이 들자, 지나온 길들을 돌아보며 뭉클해졌다. 긴 여정을 감당할 수 있었음도 감사하고 뿌듯하다. 여기에서 일주일은 꼭 보고 가야 할 진도를 이미 다 끝내고 들른 곳이니 여유로운 관광객 내지 휴양객으로 쉬다가 갈 예정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