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성 칼럼]워싱턴發 종이비행기

미국 대륙횡단 여행기-열두 번째

필자 김은성은 79년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이민갔다. 메릴랜드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80년부터 96년까지 미국 소아과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다. 97년부터 병원 관리직과 소아산부인과 이사로 근무하다가 퇴직했다.


Day-31, 태양으로 가는 길 
 
오늘은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아늑한 텐트에서 부스스 일어나면 되는 좋은 날이다. 아침으론 집에서 눌려온 누룽지 팔팔 끓여서 아직 멀쩡하게 남은 밑반찬과 먹어준다. 10시 반쯤 느긋하게 집을 나선다. 햇볕이 따스하다.


'태양으로 가는 길'을 조금 운전해가서 이 공원에서 손꼽는 5마일짜리 트레일, Avalanche lake로 향한다. 맘 좋은 미국 정부에서 이 멋진 숲의 입구 0.8마일에 마루를 깔아서 휠체어 탄 사람도, 멋진 숲을 즐기고 제일 이쁜 계곡의 물줄기를 볼 수 있게 해놨다.
 

 

2.5마일, 수백 년에서 천 년 이상된  향나무와 Hemlock이 주를 이루는 신비로운 숲길을 따라 걷는다.  내가 없던 날들을 이 자리에서 지켜왔고 내가 없는 날에도 이 자리에 서 있을 나무와 바위들을 보고 느끼며,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으나 존재하는 시간이 형체를 갖고 그 숲에 존재한다는 생각이 스친다. 숲에 쓰여 있는 문구에도 모차르트가 유럽의 귀족들을 매료하던 그때, 제퍼슨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던 그때도 이 숲은 이 자리에 있었다... 고 쓰여 있다.


태평양에서 오는 습기 덕분에, 매우 건조한 기후의 공원 동쪽과 사뭇 다른 나무들이 자란다. 숲을 신비롭게 보이게 하는 이끼들이 무성한 숲에서 cedar tree(향나무)의 향기를 음미하며 걸으니, 에메랄드빛 빙하호수가 나타난다. 
 
젊은 애들이 넘치는 팔 힘으로 물수제비를 기막히게 뜨고, 차갑다고 소리 지르면서도 그 찬물에서 인어처럼 수영도 하고, '흐르는 강물처럼'의 영화 속 브래드 피트처럼 Fly fishing도 하는 걸 바라보며 젊음이 너무 아름답다고 느끼면서, 저 이쁜 애들이 총알받이가 되는 게 전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소리 들으며 전설의 고향 같은 숲을 걷고 시원한 호숫가에서 점심 먹으며 마냥 있어도 좋을듯한 하이킹을 마치고, 계곡의 피크닉 테이블에서 시원한 맥주 한잔과 과일로 더워진 몸을 식힌다.
 

 
오후반으로는, 드디어 활짝 열린 Going to the sun road로 공원의 동서를 가로지른다. 여기 온 이후 매일 이 길을 오르는데, 눈에 익다 보니 처음에 와락 덮쳐오던 두려움이 가라앉고 오늘에야 이 아름다운 길을 감상해본다.
 

 

로마제국이 닦은 길은, 병사들을 신속히 움직이기 위해서 닦은, audacious(무례한) 한 길이라고 표현한 글을 읽었는데, 젊은 나라 미국이 닦은 이 아름다운 길엔 자연을 향한 절절한 사랑과 경배가 펼쳐있다고 느껴진다. 국립공원의 정신 등, 자연을 자연으로 지키고 싶어 하는 열망은, 이 나라가 세워지며 패자로 떨어진 인디언들의 정신에서 유래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원주민들과 부딪히고 싸우는 사이에 그들의 자연을 향한 경외와 사랑이 이 땅에 와서 사는 유럽인들에게 스며들 수 있었을 것 같다. 
 

 
이 공원의 동쪽에서 조금 지내보고, 오늘 이 길을 음미하며, 이곳은 밴프의 예고편이라고 말한 것에 깊은 반성을 철저히 하고 있다. 밴프에는 Going to the Sun road가 없지 않은가.


야생화가 잔뜩 피어있고 weeping wall(눈물의 벽)이라고 부르는 물이 좔좔 떨어지는 바위는 눈앞에 있는 풍경이고, 큰 그림으로 바라보면 태양으로 가는 길은 산을 타고 굽이굽이 함께 돌아가며 완만한 경사로 신비롭고 경이로운 풍경에 묻어있고 녹아있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산불로 타버린 St. Mary 호숫가의 잔해를 보며, 레인저들에게 들은 대로 새롭게 형성될 젊은 숲을 꿈꾸며, 성모 마리아라는 이름에 걸맞은 여성적이고 우아하고 포근한 호수를 본다. 바로 옆에서 1주일 살아도 산불 때문에 못 보게 하던 호수를 이제야 보게 되니 더욱더 귀하게 보인다. 
 

 

다시 서쪽으로 돌아오며, 엊그제 사나운 날씨에 쪼들려서 마음껏 못 본 야생화 꽃동산을 따스한 햇볕 아래 다시 보고 싶어서 Logan pass에 갔다. 꽃동산으로 거의 뛰다시피 달려 올라갔더니... 아, 찬란했던 꽃 잔치가 그 사나운 비바람에 파장이 되어 버렸다. 내가 다시 만나주길 기다려 주는 건 아무것도 없는 거다. 추운데 끌고 다닌다고 투덜대며 본 그날의 잔치를 좀 더 잘 볼 것을 좀 춥다고, 좀 덥다고 호들갑으로 초치는 건 자연에 대한 예의가 아닌 거다.

 


▲야생 염소들은 절벽에서 산다.
 
Boot camp(군사 훈련소) 다녀오면 군기가 들어가서 흐물거리던 인간에게 각이 서듯, 이 긴 여행의 끝에 인내가 쌓이고 영혼이 깊어지고 마음이 넓어질 수 있다면... 하고 바라는 건, 공부 쪼금 한 다음에 시험성적은 아주 그럴듯하길 늘 바라던 학생 때의 마음과 별로 다르지 않긴 하다.

 

Day-32, 재충전의 날 
 
아침에 일어나니 50도의 쌀쌀한 날이다. 따끈한 누룽지가 당기는 아침이다. 남편이 그동안 갈고닦은 Know how로 순식간에 장작불 피워 올리고 부지런히 아침을 차려서 먹는다. 옆집에 입주한 캘리포니아에서 온 커플 Terry와 Carol에게도 국립공원 선교회 예배를 얘기해줬더니 너무 기뻐하며 함께 하겠다고 한다.


60대의 은퇴한 부부이다. Carol은 40년을 미국에 살았다는 데도 진한 영국억양으로 말한다.  아직도 레깅스를 이쁘게 입고 남편을 늘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남편은 어린소년같은  천진한 미소를 가진 연인 같은 부부이다. 5년 전부터 전도 폭발에 소명 받아 열정적으로 전도 다니고, 입만 열면 예수님 얘기를 하고 싶은 종달새 같은 할머니... 미국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고 부러워하는 British accent(영국식 영어)도 전도하는데 좋은 무기가 될 거 같다.

 

8시 30분, 아름다운 돌들 사이로 맑은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숲속에 자리 잡은 노천극장의 예배 장소에 가니, 대학생인 에밀리와 신학생인 조사이아가 우릴 맞아준다. 구름 기름 불기둥으로 임재하며 함께 하시는데도 하나님을 따르고 순종하는 것이 여전히 어려웠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기보다 세속의 약속과 계산으로 앞날을 바라보고 계획하고 있는 모습을 돌아보자는 에밀리의 메시지. 
 
예배 후에는, 여기서 20마일 떨어진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자라고, 이 시골이 너무 싫어서 대도시로 나가 살다가 내 나이 정도인듯한데 일찍 은퇴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사는 여자와 오랜 친교를 나눈다.

 

그 여자는 주일마다 이 공원에 와서 예배드리고, 예배 후엔 낚시도 하면서 이 거대한 공원이 자기 앞마당처럼 놀고 있다. 겨울엔 스키 타고 여름엔 이 공원에서 하이킹하고 낚시하며 살아서인가 차림새도 젊지만, 얼굴은 30대로 보인다. 자기 친척과 어린 날의 친구들이 사는 인구 이천여 명의 시골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은 축복인 것 같다. 그녀의 할아버지가 1905년에 포장마차를 타고 여기 와서 정착한 농부였고, 아버지는 전기공이었다고 한다.

 


 

해가 높아지자 다시 날씨가 따스해지고, 우리는 동네 빨래터에 와서 빨래하면서 근처 캐나다 visitor center에서 충전이 필요한 휴대폰과 컴퓨터, 카메라 등을 충전도 하고 와이파이도 맘껏 사용하고 있다. 친절한 캐나다에 가서는 달러 좀 쓰고 와야겠다. 원래는 밴프에서도 캠핑해 보고 싶어서 다시 가려고 시작된 길이지만 4주 동안 노숙하고 더 할 수 있을까 염려되어 마지막 방문지인 캐나다 밴프엔 리조트를 예약해 놨으니 여기 와서 좀 비비적대도 덜 미안하다. 
 
먼지가 많은 건조한 땅에서 지내고, 가져온 옷가지가 빈약한지라 집에서보다 더 자주 많은 빨래를 해야 한다. 사람도 전기 기기도 모두 재충전이 필요한 날이다.

 

캠프 호스트 아줌마가 내 꽃바구니를 염려하며 사슴이 와서 먹지 않게 잘 간수하라길래, 사슴도 없는데 시시콜콜...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 평화롭고 쾌적한 캠프에서 점심 먹는데, 사슴 가족들이 이웃집에서 풀을 뜯고 있다. 얼른 일어나서 내 꽃바구니 감추고 먹던 점심을 먹고, 걔들이 사라진 거 보고 바구니를 양지바른 곳에 갖다 논다. Yellowstone에서 추위에 쩔어서 꽃을 못 피우고 요즘 재활 중인데 사슴의 밥이 되면, 들고 나선 내가 너무 미안하다. 
 
맥주 한잔에, 토마토 썰어 넣고 구운 Grilled cheese sandwich로 점심 먹고, 오후반으로 Mc Donald 호수로 운전해 간다. '태양으로 가는 길' 11마일 지점에 자리한 호숫가에, 101년 전에 지어져 유적지로 지정된 호텔이 있다. 아름드리 Cedar tree로 지어진 호텔 로비엔 그 당시 트로피처럼 사냥한 온갖 동물들의 박제와 모피로 장식돼 있고, 인디언들의 테마로 장식된 샹들리에 등 이제 다시 볼 수 없을 미국만의 rustic deco가 흘러가 버린 시대를 향한 향수를 자아낸다.

 


 

로비에 있는 피아노는 지나가는 사람은 누구나 쳐도 된다. 할머니가 연주하는 지바고의 Lara's theme에 맞춰서 춤추는 아빠와 어린 딸,  YMCA 노래를 부르며 맘대로 연주하는 앙증맞은 아기... 난 허클베리 마가리타 홀짝이며 이 여유로운 미국의 풍경 속에서 전혀 이방인으로 느끼지 않으면서 한가한 저녁을 보낸다.
 

 

호숫가엔 많은 사람이 나와서 여유론 시간을 보내고, 우리도 하염없이 망중한을 즐기는 안식일의 저녁을 보낸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스타일의 하루다.
 

 

Day-33,  “I am in love with Montana” 존 스타인벡
 
어제저녁 아직도 높은 해가 하루를 접기 아쉽게 해서, 오늘 가보려던 Pole bridge에 가봤다. 비포장도로를 8마일은 달려야 나오는 깊숙한 몬태나를 그곳에서 만난다. Outhouse라고 부르는 재래식 화장실, 60년대에 보던 TV 안테나, 소박한 통나무집 몇 채로 작은 마을을 이루고 하이커들을 상대하는 상점과 카페가 있는 미니타운...

 

더 번화한 west Glacier에서도 못 본 Bakery가 있어서 우리 동네 두 배 값을 치르고 아침에 커피랑 먹을 pastry 사서 오늘 아침에 먹으니 매우 고급스럽고 맛있다. Bakery 점원이 동양 청년이라 이런 몬태나 오지에서 만날 얼굴이 아닌지라 어디서 왔냐니까 플로리다에서 여름 알바로 와있다고 한다. 


여기서도 멋진 하이킹 트레일이 시작되는 곳이지만 너무 한적해서 우린 이 마을을 와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오는 길 외진 곳에, 도시 사람들이 꿈꾸는 한적한 몬태나 ranch 빌려주는 곳들도 있는데 다 '빈방 없음!'이라고 쓰여있다. 
 

 
오늘은 예배 때 만난 여자가 산다는 Columbia falls와 몬태나 서북부에서 제일 큰 도시이며 Glacier national park의 관문인 공항을 품고 있는 인구 9만의 대형도시, Kalispell로 관광 나간다. Kalispell은 인디언말로 '호숫가의 평지'라는 뜻이라고 한다. 근접한 작은 마을 Columbia fall에서, 나를 너무 행복하게 하는 이쁜 꽃가게를 만나 우리 집 정원을 어떻게 꾸밀지 아이디어도 얻고, 가져다 놓을 이쁜 액세서리도 산다. 찬란한 득템의 기쁨!
 

 

 

유서깊은 Kalispell의 historic downtown에 가서는 흥미로운 가게마다 하나하나 다 들여다보며 이런저런 쇼핑을 깊숙하게 즐긴다. 시고니 위버 같이 생긴 가게 주인도 있어서, 너 그 배우 닮았다고 하니, 그런 얘기 종종 듣는다고 한다. Local artist의 사진 작품과 달력 등을 사니, 뱃속부터 뿌듯해 오는 소유의 뿌듯함.
 

 

존 스타인벡이 '몬태나와 사랑에 빠졌다'고 쓴 문구를 새겨넣은 티셔츠를 보고,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나올 거 같아서 티셔츠를 즐겨 입지 않지만 사버리고 만다. 시간이 멈춘듯한 땅, 몬태나를 만나는 지금 내 마음을 표현해준 노벨상 수상작가의 강한 흡입력이다. 존 스타인벡이 애견 찰리와 미국을 자동차로 돌며 쓴 기행문을 친구 아버님이 오래전에 번역 출판하셨는데, 고인이 되신 그분의 작품을 재출판하는 잔치 자리에 초대받아 얻어온 책을 감명 깊게 읽은 기억도 나서 더 뭉클했나 보다.

 

 


▲이 동네는 버거킹 건물도 내가 부러워하는 이쁜 돌로 지은 건물이다. 

 
이곳에 특히 많은 골동품 가게에도 들어가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옛사람들의 흔적을 음미하고 급기야 몬태나 역사박물관으로 가서, 이 척박하고 추운 곳으로 이주해온 사람들의 얘기와 인디언들과 교류하고 싸운 얘기들을 읽는다.
 

 

미국의 정신 속에 깊이 뿌리박힌 자연에 대한 사랑과 보존에 대한 열정은, 이 나라가 먹고살 만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고, 싸우면서 함께 해온 인디언들의 자연 존중, 보존의 정신에서 근거하고 있다는 확인을 받는다. 


이곳에서 들고 가고 싶은 것 중 하나, 오래된 마차 바퀴도 Columbia falls의 멋진 골동품 가게에서 살 수 있었다. 내가 원하는 바로 그 크기의 잘생긴 바퀴를 차에 싣고, 집에 가져다 놓을 생각을 하니 뿌듯하기 짝이 없다. 그 가게는 아버지는 금발이고 엄마는 한국 사람이라는 억척스러운 한국계 혼혈 여인이 주인이다. Rustic furniture를 직접 만들기도 한다는데 가게 시작한 지 6주 되었다고 한다. 잘되길 바란다고 축복해 준다.


오늘은, 10시까지도 여명이 있어서 못 보고 갈뻔한 몬태나의 별들을 보고 말 거다. 그러려면 12시 이후까지 깨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하루종일 쇼핑 다니고 그럴 수 있을까 모르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