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밤
사는 건 늘 그래
조금 올라갔나 싶으면 다시
곱절로 내려가는 생
나만 그러하겠나 어디
가속 붙는 내리막길은 누구나
반기지 않아도 맞닥뜨리게 되어있지
사돈댁 바깥양반이
출가한 딸에게 예전 물려준 빚
돌고 돌아 내 발목 잡았어도 그만이네
며느리는 애당초 죄가 없던 것이다
신용이 불량이라고 남들이 애써 전해도
네 신용은 우리가 보증하면 그뿐
신용 찾아 살만해진 게 언제 적 얘기라고
그새 짐 다시 지게 되어 딱했는지
보름달 기운 빌어 품 넉넉하게 채우라
친구가 덕담을 건네주더라
순전하게 어제 아침처럼 웃다 보면
세상 굉음 견딜 수도 있지 않겠나
만취한 달 쉼 없이 굴러간다.
풀각시
어제 정답게 나누던 말이
오늘 비수가 되어 찔렀어도 그냥
그녀의 단 몇 마디에
한 줌 머릿속 첩첩 쟁여온
배움을 전부 비웠대도 다만 그냥
너를 사랑했고
나를 사랑했으나
지금 네 사랑과 내 사랑은 무용지물
서로를 잃는 것은
춥고 떨리고 배고픈 일이지만
태양이 머리 위를 지나도 그만
비 내려도 이제는 그만이다
안개처럼 지우고 하얗게 덮고
나는 나로 너는 너로 살면 그뿐
꽃잎 밟고 서성이는 야속한 발자국에
봉숭아꽃잎처럼 으스러진 풀각시
빈 들에서 홀로
바람 따라 울다가 웃다가
시든 하루 끌어안고 엎드렸다.
말자씨
시들어 떨어진 잎은
가지에 다시 매달아도 소용없다
이별 그 후
만나자는 마뜩잖은 기별
시한 지난 인연은 식어버린 불이다
살 비비며 숨 쉬고 먹고 잠잘 때
죽도록 사랑했어야 하는 거다
이익 좇는 눈과 혀를 버렸어야지
먼지 털어 잘 사용할 듯
계산하는 심정이야 간절하겠지만
손안에 들면 다시 밀어낼 건 뻔한 수순
깨진 그릇은 붙여 사용하지 않는 법이다
꺾어진 골목 끝처럼 예측할 수 없는 사람
한밤중 닮은 자는 절대 피할 일이지
언덕배기 묵정밭 고달파도
첩첩산중 홀로 거두며 사는 게 답이다
햇살에도 속지 말자
호미 쥔 손에 힘주는 말자씨.
하 은 프로필
시인·수필가
계간 스토리문학 편집위원
사단법인 한국문인협회포천시지부 이사
사단법인 우리詩진흥회 회원
시섬문인협회 이사
현대문학사조문인협회 회원
문학공원 동인
메일 : haeun5709@daum.net
시집
『달맞이꽃』
『다시 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