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일제 강점시 전쟁 등 참혹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어떻게 경제, 문화 등 여러 부문에서 세계 중심 국가의 반열에 우뚝 서게 됐는가
지역에 있는 대학의 강의를 맡으면 아침 5시대에 버스를 타는 경우가 많다.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분을 만나게 된다. 장사하는 분, 건축 일을 하는 분, 미화 일을 하는 분, 원거리 출퇴근하는 직장인, 학생 등 우리 사회의 역동적인 새벽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6시가 되면 새벽 지하철이 만원인 경우가 있다.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든 분이 이들이 아닌가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침 일찍 새벽을 여는 곳으로는 동대문 의류상가, 남대문 시장을 우선 꼽을 수 있다. 밤새 불야성인 시장이다. 언제가 하루의 끝인지, 시작인지 도무지 헷갈린다. 전국 각지의 소매상들이 관광버스로 도착하여 물건 구매를 시작하는 때가 하루의 시작이다. 그들이 도매상에서 물건을 사들인 후 해장국 한 그릇을 들고, 버스에 올라 출발하면 대충 아침 장은 끝난다. 가락동 농수산시장, 노량진 수산시장 등은 거의 24시간 개장 중이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부지런히 살아 움직이는 곳,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곳, 정직하고 소박하게 땀 흘리며 사는 모습을 보면 삶의 의미를 더욱 깊이 있고 진정성 있게 느끼고 생각하게 된다.
한국은행은 2025년 3월 5일, '2024년 4분기 및 연간 국민소득(잠정)', 즉 1인당 GNI를 3만 6천여 달러로 발표했다. 최고였던 2021년과 비교하면 좀 하락한 수치이다. 한국은행은 "인구 5천만 명 이상 국가끼리 비교하면 1인당 GNI 규모가 우리보다 많은 나라는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라고 분석했다. 일본, 대만도 우리보다 높지는 않은 것으로 발표했다. GNI가 경제 부분의 한 가지 통계이기는 하지만 대한민국의 세계적 위상을 보여주는 주요한 수치라고 생각한다.
세계인들은 동북아시아의 귀퉁이에 자리한 분단국가 대한민국이 일제 35년, 한국전쟁 등 참혹한 시련을 겪으며 경제뿐 아니라 문화 등 여러 부문에서 어떻게 세계의 중심 국가 반열에 우뚝 서게 되었는지 궁금해한다.
필자는 지리학, 역사학, 정치학, 사회학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한국어를 사용하며 한반도를 중심으로 거주하고 있는 한민족·조선민족(韓民族·朝鮮民族, 영어: Koreans)이 세운 대한민국이 오늘의 세계 속의 위상을 갖게 된 저력을 ‘인문지리, 자연환경, 지정학적 단점’을 극복하며 살아온 삶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전 국토의 70%가 산인 지형적 특성
한반도는 국토의 7할 정도가 산악 지형이다. 경작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식량을 자급자족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산지를 개간하는 등의 방법으로 경작지를 넓혀 식량을 더 확보하려 했다. 화전민은 늘어가고 삼림 지역은 줄어만 갔다. 그리고 우리 조상은 고향 땅에서는 먹고 살기가 힘들어 대한제국 말기에서 일제시대에는 정든 고향을 떠나 만주, 연해주 등으로 떠나갔다.
옛날 농사 위주의 산업구조이던 시절, 농촌에는 ‘비농가(非農家)’ ‘무농가(無農家)’란 말이 있었다. 땅 없어 농사짓지 못하는 이를 지칭하는 말이다. “송곳 하나 꽂을 자리 없다”라는 말은 땅 한 평 없어 농사짓지 못하는 이들의 서러움을 일컫는 말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속담이 있다. 경작할 땅이 없으니 무엇이든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일해서 식구들의 호구지책을 마련해야만 했다. 설사 땅이 좀 있어도 아주 좁거나 소작이니 죽도록 일해도 호구지책이 어려웠다. 현대에 들어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한 서해안 간척사업, 새만금 사업, 영종도 공항 건설 등은 우리의 불리한 지리적 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피나는 노력의 일환이 아닌가 생각한다.
또한 먹거리가 될 만한 것은 모두 식량으로 만들고 저장하고 가공하여 배를 채워야만 했다. 곡식은 물론이고 들과 산, 바다에 나는 모든 식물, 열매, 뿌리, 껍질 등까지 훌륭한 먹거리로 만들었다. 심지어는 독성이 있는 버섯, 식물, 뿌리 등까지 독을 없애는 소위 법제라는 과정을 거쳐 먹거리로 사용하였다. 우리는 중국 다음으로 먹거리가 다양한 나라가 아닌가 생각한다.
아무튼 우리 민족은 먹을 수 있는 모든 걸 먹음으로써 생존했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거나, ’이 설움, 저 설움 다 해도 배고픈 설움이 제일‘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는 밥에는 진심이었다. 경작지가 부족한 지형적 여건을 근면하고, 성실하고, 지혜롭고, 집요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며 극복했다. 그것이 우리의 발전 동력이 되었다는 생각이다.
동아시아 대륙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최고의 거점, 한반도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동아시아 대륙에서 태평양으로, 태평양에서 유라시아 대륙으로 진출하는 데에 절대적 교량 역할을 하였다. 러시아가 얼지 않는 바다, 즉 부동항을 찾아서 태평양으로 나아갈 수 있고, 일본, 미국, 영국, 프랑스가 이념, 경제 등의 대척점에 있는 중국, 러시아에 은밀하게 접근하여 목에 칼을 들이댈 수 있는 최고의 거점이 한반도이다. 그리고 한반도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고대 국가로부터 현재까지 대륙에서 해양으로 나아가려는 세력과 해양에서 대륙으로 진입하려는 세력이 서로 대결하는 강대국들의 각축장이자 전쟁터가 되곤 했다.
고조선 시대 한사군을 설치한 한나라, 고구려 백제를 멸한 다음 신라마저 삼키려 한 당나라, 끊임없이 고려를 공격하는 대륙의 여진족과 거란족과 남쪽 해양의 왜구, 그리고 고려를 강화도까지 밀어붙이며 일본까지 정벌하려 한 몽골 즉 원나라, 조선시대의 임진왜란, 병자호란, 그리고 일제 35년이 위와 같은 역사적 증거이다.
이러한 역사적 비극은 우리 근현대사에서도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한반도가 남북으로 나뉜 이유, 한국전쟁이 일어난 이유를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한반도를 둘러싼 핵보유국 간의 갈등, 대한민국과 북한, 미국의 트럼프, 중국의 시진핑, 러시아의 푸틴 간의 눈 터지는 외교전이 극동 아시아의 조그만 귀퉁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글로벌 외교의 현실이다.
우리 민족은 다른 나라를 침범할 수 있는 국력이 없었고 자존하기에도 미약했다. 그래서 늘 생존이 최대 목표였다. 어떤 학자는 우리 민족은 어려울 때 끈기 있게 지혜와 힘을 모아 방어하여 강인한 불사조 정신을 형성하였고, 강대국들의 끊임없는 각축과 힘의 역학 관계 속에서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유연하게 대처하면서 민족의 존속과 국가의 생존, 자주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 속에서 나라를 잃은 경우는 단 한 번뿐이라고 말하며 강인한 생존력. 자주성을 주장하며 우리의 긍정적 민족정신을 찾으려 한다. 이러한 역사 속에서 백성들의 유일한 희망은 생명을 보존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DNA 속에, 아니 뼛속까지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라는 속담처럼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의 끈을 놓치않는 끈질김, 악착같음을 갖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사계절이 뚜렷하고 겨울이 긴 기후의 특성
지금까지 우리는 학교 등에서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의 기후를 살기 좋으며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제공하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다양한 자연과 기후를 체험할 수 있는 최고의 기후라고 배웠다. 그러나 이 사계절이라는 기후적 환경은 계절마다 의식주를 달리 마련해야 하는 생활의 측면, 삶의 편의성,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장점보다 단점과 어려움이 더 많다는 생각이다.
농작물을 경작할 수 있는 기간이라야 늦은 봄에서 이른 가을 정도이다.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벼농사를 이모작 삼모작 하여 많은 수확량을 올리는 것과 비교하면 생산적 측면에서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여건이다. 그리고 그 나라에는 사시사철 산림 속에 먹거리가 자라고 있어 굶지 않을 정도의 먹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부러운 환경이다.
우리는 기나긴 혹한기,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에 대비하여 식량 등 먹거리를 준비하고 저장해야 한다. 지혜와 피나는(?) 노력이 필요했다. 변화하는 계절의 기후에 적합한 음식을 섭취해야 하므로 다양한 음식을 마련하고, 많은 먹거리를 준비해야 한다. 조상들은 우리 땅과 바다에 생존하는 거의 모든 식물, 동물을 식재료로 활용했다. 또 계절마다 옷을 달리 입어야 하므로 그것에 드는 노력과 비용 또한 만만치 않았다.
의류 문화의 다양성, 창의성 또한 사계절이 있는 기후 덕이라는 생각이다. 춘하추동에 따라 주거환경 또한 달리 마련하여야 하니 그를 위한 노력과 비용, 소위 감가상각비(?) 등도 만만치 않았다.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에 맞게 의식주를 마련하여 살아온 우리 조상의 노력과 지혜와 슬기로움, 창의성, 과학성 등이 존경스럽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자원이 비교적 빈곤한 국토
부존자원에 따라 나라의 흥망이 결정된다는 말이 있다. 부존자원의 활용이 극대화된 현대에 더욱 통용되는 말이다. 부존자원은 지하 광물이나 에너지 자원을 이르는 말로 대표적인 자원이 석유, 석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부존자원뿐 아니라 산림자원, 수자원, 관광자원 등도 변변치 않다. 주요한 자원을 대부분 수입해서 우수한 기술력 등 두뇌를 활용하여 재가공한 제품, 이를테면 엄청난 부가 가치가 있는 반도체, 전자, IT, 자동차, 조선, 철강, 방위산업 제품을 만들어 다시 수출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 기업이 큰 부를 축적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세계 수출입 시장 점유율은 10위 이내이다. 기적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것이다.
서재원 교수
. 창수초등학교, 포천중, 포천일고, 서울대 졸업
. 한국방송 KBS 편성국장, 편성센터장(편성책임자)
. 차의과학대학교 교양교육원장, 부총장
. 포천중·일고 총동문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