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순이네 집에 도착하니 검둥이가 반갑게 꼬리를 흔든다. 정순이 아버지가 활쏘기 대회에서 부상으로 받은 갓난쟁이 송아지가 반가운지 ‘음메’ 하며 울어댄다. 미순이가 부엌에서 버섯을 덜어서 갖고 나와 민호에게 슬며시 건네준다.
월요일 아침이다.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다. 아이들은 오리 정도 떨어진 초등학교에 등교해야 한다. 민호 동네에는 우산 있는 집이 거의 없다. 비가 오면, 아이들은 비닐 비료 포대 윗부분을 잘라 마치 고깔처럼 만들어 머리에 쓰고, 몸은 대충 반 정도 가리고 학교에 간다. 책보는 비닐로 둘둘 말아서 남자아이는 어깨에, 여자아이는 허리에, 둘러매거나 차고 충주 비료 비닐을 쓴 채 줄지어 포대처럼 뒤뚱뒤뚱 학교에 간다. 동네 강아지들은 비를 맞으며 우스운 모습으로 학교 가는 아이들이 뭐가 그리 이상한지 꼬리를 흔들며 뒤를 따른다.
학교 가는 소로를 따라 옆으로 개울이 흐르고 있다. 개울 흐르는 방향과 학교 가는 방향은 같다. 하류로 가면 갈수록 개울 물이 엄청나게 불어난다. 개울은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점에서 다른 곳에서 흘러내리는 물과 만나 큰 하천을 만들며 한탄강 지류가 된다. 그 하천을 건너야만 학교에 갈 수 있다. 아이들 마음이 점점 불안해진다. 학교 가는 징검다리가 물에 잠겼을 가능성이 크다.
아니나 다를까, 가까이 가니 흙탕물이 징검다리를 몽땅 삼키고 거세게 넘쳐흐른다. 동네 6학년 형과 민호를 비롯한 아이들은 겁에 질려 수군거리며 머리를 짜낸다. “할 수 없지. 얘들아, 저 개울 아래쪽으로 건너가자!”
형의 말에 따라 민호와 아이들이 뒤를 따른다. 비교적 폭이 넓어 건너기 쉬운 개울 쪽으로 가려면, 몸채 정도 크기의 바위와 싸리나무, 딸기나무, 억새 등이 우거진 개울 둔덕 숲을 헤치고, 둑을 넘어야 한다. 세차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험한 길을 걸어 개울 아래에 간신히 도착했다.
폭이 넓어 깊지 않고, 잔잔히 흘러 비교적 건너기 쉬운 곳이다. 형의 지시에 따라 사내아이들은 바지를 벗고, 여자아이는 치마를 걷어 올린다. 아이들은 머리에 쓰고 있는 비료 포대 우비에 책보와 고무신을 싼 채 목에 걸고 건널 예정이다.
그때 6학년 형이 정순이에게 책보를 달라고 한다. 자신의 책보와 정순이의 책보를 함께 비닐 포대로 싸서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는 정순이의 손을 잡는다. 그리고 조심조심 함께 개울에 발을 디딘다. 민호는 체력이 약한 정순이를 돕는 형이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형의 뒤를 따라 모두가 냇물에 발을 내딛고 몸을 물 흐름에 어느 정도 맡긴 채 대각선 아래로 안전하게 내를 건너기 시작한다.
내를 건너며 터득한 지혜
여름 장마에 거세게 흐르는 냇물을 건너본 사람은 잘 안다. 물살에 몸을 맡기고 대각선 아래로 건너는 것이 얼마나 안전하고 쉬운 일인지...... 물의 흐름에 역행하여 위로 건너거나, 가깝다고 직선으로 잘못 건너면,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또 강물이 모여 소용돌이가 일어나거나 바위를 휘감아 떨어지는 곳에는 가까이 가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그럴 때는 물길을 관망하다 안전하게 건널 방도를 찾으면 된다. 신중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인내하지 못하고, 무슨 수를 내려고 촐랑대거나 만용으로 거친 물에 몸을 맡기면, 안전을 보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물이 허벅지를 넘지 않아서 다행이다. 흙탕물과 함께 굴러 떠내려오는 돌멩이가 무릎을 세차게 두들긴다. 돌에 부딪는 다리의 아픔과 세찬 흙탕물의 힘을 견디며 물살을 가르고 하천 가운데를 넘어선다. 어려움을 무릅쓰고 붉은 물살을 헤치며 내를 건너려면, 강한 체력과 용기와 판단력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두려움을 잊고 씩씩하게 내를 건넌다.
건너편 달맞이꽃, 싸리꽃이 아이들을 반긴다. 모두가 내를 건너니, 선생님이 마중 나와 있다. 교문에 들어서니 친구들이 반갑게 맞는다.
4교시를 마칠 때쯤이었다. 교감 선생님이 교실을 다니며 강 지류인 개울 건너 동네에 사는 아이들을 복도에 불러 모은다. 홍수로 개울이 범람하고 있으니, 수업을 중단하고 빨리 집으로 가라고 하신다. 십여 명 아이들은 ‘수업을 그만해도 좋다’는 교감 선생님 말씀에 일제히 환호성을 지른다.
아이들이 개천가에 다다르니 동네 어른들이 기다리고 있다. 민호 아버지도 기다리신다. 일태와 정순이는 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래서 민호 아버지가 민호와 일태, 정순이를 모두 차례차례 업어 개울을 건네주었다. 어렵게 건너왔던 개울을 등에 업혀 편하게 건너며 민호는 아버지가 고맙다고 생각했다. 일태와 정순이 또한 마찬가지다.
아이들의 ‘뒷동산 버섯 따기’
집에 돌아오니 장에 가신 엄마가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다. 아이가 점심을 먹고 나니, 비가 멈추고, 하늘이 훤해 온다. 마루에 앉아 하늘 기색만 살피는 민호를 보고 아버지가 말씀하신다.
“비가 많이 왔으니, 뒷산에 버섯이 꽤 솟았을 것 같구나. 이따 엄마가 오시면, 버섯 고추장찌개 끓여 먹을 수 있도록 버섯을 따오거라. 항아리 버섯은 화롯불에 구워 주마.”
숲에 버섯이 돋기 시작하는 7월 말에서 8월 중순이 되면, 엄마는 가끔 아침 반찬거리가 없을 때 일찍 민호를 들깨워서 소위‘버섯 채취’ 명령을 내리신다. 밤에 비가 내린 날이면, 뒷산에 버섯이 많이 솟아 있다. 고추장찌개로는 버섯 호박 찌개만한 게 없다.
오늘은 빈둥대는 민호를 본 아버지께서 버섯 채취 명령을 내리신 것이다. 산길에 오르니 비가 개서 그런지 앙증맞은 다람쥐 한 마리가 나무 위를 오간다. 빗방울이 나뭇잎에서 ‘후드둑, 후드둑’ 떨어지며 아이 얼굴과 옷을 적신다. 숲 사이로 하늘빛이 훤하게 보인다. 기분이 상쾌하다. 민호는 버섯이 나는 비밀의 장소로 향한다. 그런데 아뿔싸. 그곳에 아랫집 정순이와 미순이가 먼저 와 있다. 낭패다!
뒷산에는 싸리버섯, 기와버섯, 항아리버섯, 참나무버섯, 꾀꼬리버섯, 느타리버섯 그리고 드물게 능이, 송이버섯도 솟는다. 버섯이란 놈들은 각각 매년 자라는 곳에서만 자라는 특성이 있다. 그런데 민호와 아랫집 정순이, 미순이 모두가 ‘버섯이 나는 그 비밀의 장소’를 함께 알고 있다. 미리 버섯을 모두 땄으니,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없을 게 뻔하다.
고운 동심을 나누고 추억의 여름이 지나갔다
두 계집아이 바가지에는 버섯이 그들먹하다. 언제 왔니? 민호가 다가서며 떨떠름하게 물으니, 정순이 미순이는 미안했던지, ‘좀 일찍 왔어.’ 하며 얼버무린다. 엄마가 장사하러 나가시며 찌개 끓이게 버섯 따놓으라고 하셨는데..... 민호 말에 정순이는 ‘우리 버섯 많이 땄어. 좀 덜어 줄게!’ 곰살맞게 대꾸한다. 아까 학교에서 내를 건널 때 민호 아버지 등에 업힌 게 미안하고 고마워서 저러는가 싶다.
정순이 아버지는 올봄에 돌아가셨다. 그래서 엄마가 광주리장사를 해서 먹고산다. 여러 동네에 다니며 방물장사를 하러 다니시는데 여러 날이 지나서 집에 오실 적이 많다. 그래서 아이끼리만 생활하는 날이 많다.
정순이네 집에 도착하니 검둥이가 반갑게 꼬리를 흔든다. 돌아가신 정순이 아버지가 활쏘기 대회에서 부상으로 받은 갓난쟁이 송아지가 반가운지 ‘음메’ 하며 울어댄다. 미순이가 부엌에서 버섯을 덜어서 갖고 나와 민호에게 슬며시 건네준다. 큼지막한 싸리버섯, 항아리버섯, 느타리버섯 등. 양이 꽤 많다. 이 정도면 아버지께 체면이 설 것이다. 정순이, 미순이가 고맙다.
민호는 송아지에게 이유 없이 다가가서 입과 코 등 얼굴을 만지다가 조그만 손으로 목덜미를 긁어준다. 시원한지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살갑게 혀를 내밀며 입과 코를 들이대는 송아지! 아는 척을 하는 듯하다.
비 오는 여름날의 오늘 하루는 아이들 모두에게 버거웠다. 그러나 어려움을 이겨 나가는 지혜와 강인한 인내심을 터득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함께하는 동심과 선생님, 어른들의 따뜻한 정을 느꼈을 것이다. 그해 여름은 아이들에게 큰 추억을 선사하고, 생명의 힘을 길러주는 의미 있는 계절이 되어 지나가고 있었다.

서재원
. 창수초등학교, 포천중, 포천일고, 서울대 졸업
. 전 한국방송 KBS 편성국장, 편성센터장(편성책임자)
· 차의과학대학교 교양교육원장, 부총장
· 포천중·일고 총동문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