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나오지 마! 오늘은 내가 아침 준비할 거야!”
아침 드라마가 끝나갈 무렵 방문이 살짝 열렸다.
“엄마 이제 나와도 돼!”
소고기를 듬뿍 넣어 끓인 미역국과 검정콩을 넣은 밥, 노릇하게 부친 호박전에 조기도 두 마리 구워 제법 그럴듯하게 생일상을 차려놓았다. 미역국도 내 입맛에 꼭 맞게 푹 익혀서 목 넘김이 부드러웠다. 딸의 서툰 솜씨로 차린 밥상에 마음이 찡하면서도 행복한 미소가 저절로 지어진 순간, 어린 시절에 엄마가 끓여주신 미역국 냄새가 그리워졌다.
딸만 낳았다고 금줄까지 걷어치운 아버지라, 줄줄이 딸만 넷을 낳아 서러운 어머니는 다섯 번째 산고를 홀로 치르셨다. 깃난아기의 치솟는 오줌발에 감격의 눈물을 훔치며 손수 탯줄을 자르신 어머니! 아기 울음소리 듣고 달려온 아버지는 기쁨에 넘쳐 집에서 기르던 장닭의 목을 비틀었다.
딸 낳을 땐 보리쌀 갈아서 씻은 뿌연 물에 미역국 끓여주더니, 아들 낳았다고 처음으로 닭고기를 넣어 끓인 미역국을 대접받으니, 응어리진 씨앗 설움도 눈 녹듯 사라지셨단다. 그 후로 엄마는 귀한 날이면 기르던 닭을 잡아 미역국을 끓이셨다.
매년 봄이 되면 마당 가장자리에 노란 병아리 어리를 만들었고, 봄부터 키운 닭에서 얻은 달걀은 가끔 계란찜을 맛보는 호사를 누리게 했다. 늦가을부터 유정란을 모으고 나면, 겨울철 내 생일엔 항상 닭 미역국을 끓이는 구수한 냄새가 마당에 가득했다.
엄마의 마당에서 키운 토종닭을 잡아 가마솥에 푹 고우면 국물에 구수한 냄새가 우러날 즈음, 고기를 건져내고 불린 미역을 넣어 푹 끓인다. 노르스름하게 우러난 닭 미역국에 하얀 쌀밥 한 그릇 말아서 후루룩 먹으면 몸도 풀리고 속도 든든해졌다.
추운 겨울 내 생일날 아침이면 닭 삶은 냄새가 아침을 가득 채우고, 펄펄 끓은 가마솥 뚜껑을 열면 허연 김이 지붕 위를 채웠다. 생일 주인공이라 아홉 식구에 동생들 몰래 닭고기 살을 발라 국위에 듬뿍 올려주신 엄마의 따뜻한 손맛은 잊을 수가 없다. 없는 살림에서 생일날만큼은 귀하게 대접해 준 엄마의 사랑은 지금까지 삶의 큰 버팀목이 되었으니 말이다.
결혼하고 첫아이를 낳았을 때 나는 엄마의 미역국 냄새가 참 그리웠다. 삼칠일 몸조리가 끝날 무렵, 엄마는 아홉 시간 기차를 타고 콩이며 참기름을 머리에 이고 집에서 키운 씨암탉은 보자기에 묶어오셨다. 사돈댁 눈치에 하루도 머물지 못하고, 닭만 놓고 내려가신 엄마! 시어머니는 동네 닭집에 손질을 부탁해서 닭볶음탕을 시댁 밥상 위에 올렸다. 엄마는 닭 미역국을 딸에게 먹이고 싶었을 텐데. 그날 나는 엄마의 닭 미역국이 너무나 그리웠다.
세월이 흐른 후, 나이 드신 엄마는 이제 닭을 키우지 못하셨다. 맛 좋고 구수한 엄마의 닭 미역국도 더 이상 구경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젠 생일날에 비싼 소고기를 넣은 미역국을 끓인다. 소고기를 익히고 불린 미역을 넣어 푹 끓이면, 딸들은 ‘엄마의 미역국은 깊은 맛이 있어 좋아, 최고 맛있어요!’라며 좋아한다. 입맛도 대물림이 되어 딸들도 제법 비슷하게 미역국을 끓여 낸다.
어느 해 생일날, 엄마의 닭 미역국이 그리워 토종닭 한 마리를 사다 끓였는데, 국물은 그때 그 맛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 엄마의 손맛과 정성이 담긴 닭 미역국은 잊을 수 없는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나에게 닭 미역국은 엄마의 사랑이었고, 가슴 따뜻한 그리움이다. 좋은 음식 맛있는 음식이 넘쳐나는 지금은 돈만 주면 뭐든지 살 수 있지만, 음식의 귀함이 잊히는 것이 안타깝다. ‘우리 엄마의 닭 미역국’처럼 정성과 마음이 들어간 음식은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고 힘든 삶을 견디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나는 생일날이면 “생일 축하해”라는 말보다 먼저 “미역국 먹었어?”라고 묻는다. 토종닭 국물처럼 진한 엄마의 사랑을 먹고, 미역줄기처럼 질긴 엄마의 탯줄 속에서 자란 나는 아직도 울 엄마의 심장 소리가 듣고 싶다.

박선영
아호 : 초연
현)책놀이 교육사
- 2018년 대한문학세계 문예지 여름호 등단
- 2018년 대한문학세계 시 부문 신인상
- 2022년 포천사랑백일장대회 운문 부분 장려상
- 2023년 제36회 반월문화제 시 부문 우수상
- 포천문예대학 제16기 시, 소설, 수필 과정 수료
- 포천문인협회 정회원
- 포천예총 시화전 다수 전시
- 포천문예대학전집 시, 수필 다수 수록
- 포천문학전집 시, 수필 다수 수록
- 포천소식지 시 수록
- 2018년 국회의원 표창장
- 2022년 포천시의회 의장 표창장
- 2025년 포천시장 자랑스러운 시민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