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닭들의 힘든 겨우살이
“꼬꼬댁 꼭꼭”
한밤중 닭 우는 소리가 요란스럽다.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저놈 잡아라!”고함치며 옆문을 걷어차고 맨발로 뛰어나가는 아버지. 닭장 방향이다.
자다 깬 어린 민호,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무슨 일이지, 온몸에 소름이 돋고,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엄마 품에 안긴다.
“아마 살쾡이가 내려왔나 보구나. 아버지께서 갔으니 이제 아무 일도 없을거야.”
작년 겨울 일이 생각났다. 그때도 살쾡이가 내려와 툇마루 밑에서 잠자던 검둥이를 물어가려던 것을 아버지가 쫓았다. 검둥이는 겁에 질려 ‘끼이잉 낑낑’ 비명소리를 내며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시골에서는 삵쾡이를 호랑이 새끼라고 부르기도 한다. 얼룩무늬의 살쾡이는 무섭고 영리하다. 눈이 오고, 추위가 닥쳐 산과 들이 온통 꽁꽁 얼어버리면, 살쾡이는 물론 족제비, 멧돼지, 오소리, 너구리 등과 같은 짐승들은 산과 들에서만은 먹이를 모두 구할 수 없다.
그래서 밤이면 허기진 배를 채우려 마을로 내려오곤 한다. 추수하다 남겨놓은 이삭을 주워 먹거나 사람들이 저장해 놓은 곡식, 고구마, 감자, 푸성귀 등을 훔쳐 먹거나, 큰 짐승은 가끔 닭이나 개 같은 가축을 먹잇감으로 물어간다.
그래서 민호네는 한겨울에는 닭을 천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우리에 가두어 놓고 등겨나 싸라기, 무나 배추, 시래기, 음식 찌꺼기 등을 먹이로 주어 길렀다. 그러다 보니 먹을 것이 부실하고, 운동도 부족한 편이다. 그래서알도 잘 낳지 않는다.
화창하고 따뜻한 날이면 낮에 몇 시간 동안 나들이를 허락한다. 닭들은 좋겠지만, 민호는 할 일이 많이 생겨 귀찮다. “민호야, 닭장 모이통에 먹이 주고, 닭들을 불러들여야 한다.” 저녁 무렵, 엄마 말씀에 민호는 먹이를 주고 나서 ‘구-구-구-’ 닭들을 모두 불러 모은다.
봄날, 아이들의 나들이
겨울이 끝나 봄이 되니 닭들의 감옥살이가 끝났다. 우수 경칩도 지난 4월 날씨 좋은 어느 날, 두엄더미 텃밭 앞마당을 돌아다니는 닭을 가리키는 엄마. “겨우내 우리에 갇혀 지내서 비쩍 마른 게 안 되었다! 알을 낳아야 할텐데...... 논에 우렁이와 개구리가 나왔을 거야, 잡아다 닭 모이로 주면 좋겠는데. 민호야 그렇지 않니? 알 많이 낳으면, 새 고무신 사줄게!”
은근한 엄마 명령이다. 우렁이, 개구리를 넉넉히 잡아서 닭 먹이로 주고, 좀 남겨서 우렁이 무침, 개구리 뒷다리 소금구이를 해달라고 해야지 생각한다.
군말 없이 채비를 갖춘다. 아니 채비랄 것도 없다. 커다란 노란 주전자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명수네 집으로 부리나케 달려간다. 친구 명수와 함께 출동할 생각이다. "개구리 우렁이 잡으러 가자!” 하릴없던 명수가 얼씨구나 따라나선다.
산과 들은 온통 봄으로 꽉 차 있었다. 써레질을 위해 물을 잔뜩 채운 논에는 개구리알이 듬성듬성 보이고, 우렁이가 머리를 쏙 내밀고 있다. 진흙 속에서 겨울잠을 자던 우렁이와 개구리는 기온이 높아져 수온이 따뜻하게 오르면 잠에서 깨어나 수중 먹이 활동을 시작한다.
“우와, 엄청난 새다!”
흰 날개에 검은 깃이 멋들어진 우람한 황새다.
새는 흰머리를 두리번거리고
가끔 ‘딱딱’,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굵고 긴 부리로 무논 속을 연신 쪼아대며
먹이 사냥을 시작한다.
아이들이 써레질을 하지 않은 논에 들어가서 우렁이를 줍기 시작한다. 햇볕이 따뜻한 한낮이면, 체온을 높이기 위해서 개구리는 물속에서 논둑으로 올라와 햇볕을 쪼인다. 그러다 사람 인기척이 있으면 다시 물로‘퐁당’ 뛰어들어 진흙 속에 숨는다.
흙탕물이 가라앉고 물이 맑아지면, 논바닥 진흙에는 개구리가 숨은 볼록한 흔적이 생긴다. 개구리가 물로 뛰어들 때 주의를 집중하여 잘 보아서 그 흔적을 찾아내야 한다. 볼록한 부분을 손으로 덥쳐 개구리를 잡는다. 이제 아이들은 우렁이와 개구리를 꽤 많이 잡아 주전자에 채웠다. 그들먹하게 느껴진다.
논둑 옆 바위에 걸터앉아 있던 민호가 개구리알이 소복하게 떠 있는 물속을 가리키며 소리친다.
“명수야, 저기 진흙 속에 개구리가 있다. 빨리 잡자!”
근처의 명수가 물속 진흙이 볼록 솟은 곳으로 살금살금 다가간다. 손으로 ‘확’ 움켜쥐는 순간, 손아귀 느낌이 거칠거칠하고 서늘하다.
“악! 무자치다.”
명수 손에 어린 무자치 한 마리가 있다. 비명을 지르며 그놈을 순식간에 논바닥에 내동댕이친다. 논바닥 볼록 솟은 진흙 속에는 개구리 아닌 물뱀이 똬리를 틀고 숨어 있었다.
갑자기 민호는 오늘 운수가 좋으면 황새 구경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수야, 우리 황새 구경하러 능안골에 갈래?”
황새는 봄이 되면 너럭바위 골짜기에 둥지를 틀어 새끼를 키우는데, 능안골에서 먹이를 잡아 새끼에게 먹이를 준다는 어른들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황새와 만나다
아이들이 논두렁에서 재미난 놀거리 볼거리를 찾아서 어슬렁거리며 능안골로 향하였다. 봄이면 황새가 나타난다고 하는 능안골로 가는 길가에는 봄꽃과 봄나물이 잔뜩이다. 제비꽃, 꽃다지, 냉이꽃, 민들레꽃, 조팝나무꽃, 할미꽃, 엉겅퀴꽃, 클로버꽃 등이 피어 있고, 돌나물, 조갑지 나물, 돌미나리 등 나물이 지천이다.
능안골 논둑에 앉아 상큼한 오이풀 내음과 분 냄새보다 짙은 찔레꽃 향기에 취해서 머리를 꾸벅이며 졸고 있던 민호가 고개를 든다.
“명수야, 오늘 황새를 볼 수 있을까? 보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하는데, 꼭 보았으면 좋겠다.”
그때 갑자기, 푸르른 상공에서 바람을 가르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소리 나는 곳을 좇아 눈을 들어 보니 아이보다 훨씬 더 큰 몸체의 새가 하얀 날개를 펼치고 서서히 활강하여 능안골 논 위에 곧고 긴 검붉은 다리로 착륙하고 있었다.
“우와, 엄청난 새다!”
흰 날개에 검은 깃이 멋들어진 우람한 황새다. 새는 흰머리를 두리번거리고 가끔 ‘딱딱’,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굵고 긴 부리로 무논 속을 연신 쪼아대며 먹이 사냥을 시작한다. 아이들은 이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자태에 압도되어 얼이 나간 듯 쳐다만 보고 있다. 하염없이 쳐다만 보던 민호가 정신을 차리며 소리친다.
“진짜 황새다!”
황새는 ‘새 중에 새’로 운이 좋아야만 볼 수 있는 귀한 새이고, 동네 어른들은 보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길조(吉鳥)’라고 한다.
이날 황새의 능안골 나들이 모습은 아이들 깊은 기억의 공간 속에 마치 신과도 같은 위엄과 품격, 그리고 강한 힘을 가진 존재로 자리 잡은 채 일생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능안골은 황새골로 일컬어지고 있다.
텃새로서 우리 농촌에서 볼 수 있던 황새와 혼동하기 쉬운 ‘두루미’는 비슷한 모습으로 ‘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두루미는 겨울 철새로 우리나라에서 번식하지 않고, 무리를 지어 집단으로 서식한다. 전체적으로 흰색으로 목과 둘째날개깃은 검고, 다리는 흑회색, 부리는 탁한 노란색, 정수리에는 붉은색으로 드러난 피부가 있다. 매우 사회적인 동물로, 일부일처제의 습성을 가진다.
에필로그
명수는 얼마 되지 않아 엄마가 돌아가셨다. 봄 채소를 팔러 가던 중 미군 군부대 훈련 차량에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아버지는 위로금 조로 조금 받은 돈으로 땅을 좀 사고 새장가를 들었다.
명수는 계모 밑에서 3학년까지 다니다, 당시 국민학교의 소위 월사금이라고 하는 학비를 내지 못하여 중도 하차하였다. 그 후, 계모 구박과 힘든 농사일을 견디지 못해 어느 날 하루 종일 굶은 채 걸어 먼 친척이 있다는 서울 영등포에 가서 상가 점원이 되었다. 그리고 황새처럼 강하고 억척같은 삶을 살아 행복한 일가를 이루었다.

서재원
. 창수초등학교, 포천중, 포천일고, 서울대 졸업
. 전 한국방송 KBS 편성국장, 편성센터장(편성책임자)
차의과학대학교 교양교육원장, 부총장
포천중·일고 총동문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