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김은성 작가. 워싱턴 디시를 둘러보는 관광코스에 꼭 포함되는 장소 중 하나는 알링턴 국립묘지이다. 포토맥강을 건너면 바로 만나는 버지니아주 영토에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물론, 그리스 부자에게 시집갔던 영부인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그리고 무명 용사들에 이르기까지 국가에 봉사한 많은 역사적 인물들이 묻혀있는 곳이다. 재클린 오나시스가 첫 남편 케네디 대통령 옆에 잠들 수 있게 해준 것은, 나이 많은 그리스 부자에게 시집가 버렸을 때 국민들이 느꼈던 섭섭함보다는, 나라를 위해 일하던 남편을 총탄에 잃은 사실에 무게를 두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워싱턴 디시 중심부에서, 국립묘지가 있는 버지니아주 방향을 향해 가다 보면, 도시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의 아름다운 언덕 위에 네오 클래식으로 지어진 하얀 저택이 보인다. 이 저택은, 남북전쟁 때 남군의 가장 존경받는 장군이었던 로버트 리 장군의 소유였다. ▲알링턴 국립묘지. 남북전쟁 당시 남군의 가장 존경받는 장군이었던 로버트 리 장군의 소유였다. 조지 워싱턴 대통령의 부인, 마사 워싱턴의 전남편 소생인 아들 John Parke Custis이 산 농지 1,100에이커에 그의 아들
필자 석인호. 그때였다. 조금 안쪽에 타고 있던 할머니 한 분이 조용한 소리로 말했다. “나는 바쁘지 않으니 내렸다가 다음번에 타야겠네.” 그러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 할머니에게 쏠렸다. 키는 작았지만 단정한 차림새에다 가볍게 웨이브 진 흰 머리카락이 뭔가 모를 기품이 느껴졌다. 할머니는 문 쪽의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면서 비집고 내리셨다. 그 사이 그 아가씨와 문 쪽에 섰던 청년 둘이 잠깐 내렸다가 냉큼 다시 올라탔다. 나는 속으로 ‘뭐 이런 맹랑한 애들이 다 있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문이 닫히고 승강기는 지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며칠 전 지하철 5호선 신금호역에서 정말 예의를 모르는 젊은 여자를 보았다. 그 여자의 얼굴 가죽 두께는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그렇게 경우 없음에 놀랐다. 아무리 급하게 열차를 타야 할 상황이라도 그렇게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그 여자를 보니 6년 전 10월 어느 날 똑같은 일을 겪고 다른 매체에 기고한 글이 생각났다. 그 때에 썼던 글을 전재해 며칠 전의 심정을 밝히고 싶다. 다음 글의 상황과 며칠 전의 상황이 똑같이 닮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지하철을 탈 때 나는 노
▲필자 김은성. Day-41, Icefields와의 해후 그리고 작별 이곳에서 허락된 마지막 날, Canadian Rocky 여행의 하이라이트를 재조명해본다. 어젯밤의 폭우로 말끔하게 세수하고 그 찬란한 미모를 구름 사이에서 훤하게 드러낸 캐나다 로키를 보며, 빙하라고 부르기에도 너무 방대하고 넓게 퍼져서 icefield(얼음 벌판)라고 부르는 고대의 얼음덩이들이 즐비한 길, 캐나다의 자랑거리, Icefields parkway를 달린다. 가는 길에, 이곳에 수다한 아름다운 호수 중 하나. Bow lake에 잠시 서서 귀여운 기념품을 발견하고 구입하려는 순간, 신용카드가 없어진 걸 알게 된다. 숙소로 돌아가 확인하고 없으면 분실 신고하자고 하니, 남편은 '오늘 놀 거 다 놀고 돌아가서 확인할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며 잊으라고 한다. 조바심이 났지만, 그 말도 맞는 듯 해서 잊으려고 엄청 노력하기도 전에, 말도 안 되게 잘생긴 로키산맥의 미모에 정신이 빼앗겨 금방 잊는다. 빙하에 매료된 남편이 제일 행복해 하며 8시간 운전을 즐겁게 해낸 건 좋은데 너무 신나게 달려서 재스퍼 가는 길목에서, 캐나다 경찰에게 속도위반 딱지도 선물받는다. 벌금 액수가 기둥뿌리 뽑힌
▲포천좋은신문 창간 때부터 칼럼을 연재해 온 임후남 시인이 최근에 산문집 '나는 괜찮아지고 있습니다'를 펴냈다. 이 책은 저자가 시골책방을 하면서 직접 겪고 느낀 이야기들을 담았는데, 작가 특유의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문체가 독자들에게 잔잔하지만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가끔 트럭을 타고 오는 할아버지가 계시다. 이런 비밀스러운 곳을 당신이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휴식이 된다는 분. 처음에는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키고 내 책장에서 낡은 책 한 권을 보다 가셨다. 어느 날 말씀하셨다. “나, 그냥 믹스커피 주면 안 돼요? 통 쓰기만 해서.” 그래서 믹스커피를 드렸다. 우리 카페에 믹스커피가 있는 이유다. 처음에는 3천원을 받았다. 그러다 어느 날 책을 한 권 사셨다. 내 책 <시골책방입니다>였다. 이후 오실 때마다 책을 한 권씩 구입하셨다. 당연히 믹스커피는 서비스가 됐다. 며칠 전 새로 나온 나의 <나는 이제 괜찮아지고 있습니다>를 사 갖고 가셨다. 그리고 긴 문자가 왔다. 참 좋은 날씨입니다. 코로나 백신 접종을 기다리며 <나는 이제 괜찮아지고 있습니다>와 함께하는 시간이 감사합니다. 번뇌로부터 보호받는 느낌입니다. 소중한 시
지난 5월 어버이날에 부인이 희한한 사실을 발견하면서 사달이 벌어졌다. 그날 아침 아들이 보내온 카카오톡 메시지를 확인하다가 며느리가 대화방에서 빠져나간 것을 발견한 것이다. 부인은 이를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직접 며느리에게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부인은 며느리를 다시 대화 방에 초대하고 기지를 발휘해 “아가, 너 전화기 새로 바꾸었니? 네가 대화방에서 나갔다는 메시지가 떴네”라고 문자를 보냈다고 했다. 그러다가 나중에 보니 며느리가 또다시 대화방에서 퇴장해 버렸더란다. 얼마 전 친구가 찾아와 함께 술을 마셨다. 그는 현재 대학교에서 소통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그는 입담이 좋아 친구들 사이에 인기가 아주 좋다. 그와 함께 있으면 모두가 자연스레 즐거움에 빨려든다. 그런데 이날 그의 표정엔 평소와 달리 뭔가 난처한 일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술잔이 몇 잔 오간 후 그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의 알 수 없는 행동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고 했다. TV 방송국 프로듀서 출신인 그는 특유의 입담과 친화력 때문에 대인관계가 매우 원만하다. 그런 그가 자기 집안일로 속을 썩인다니 얼른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학 시절 사귄 여자 친구와 결혼한 그
▲필자 김은성 작가. Day-37, Yoho 국립공원 대충 보기 Banff라고 하면 이 근처 5개 국립공원을 합쳐서 통용되는 유명관광지라고 보면 된다. 제일 유명한 Banff와 Jasper는 3년 전에 하루에 10마일 정도 발품 팔며 꼭 봐야 하는 곳을 거의 섭렵했고, Waterton은 몬태나에서 국경 넘나들며 진도 떼었으니, Waterton에서 하이킹할 때 만난 캐나다 노부부들이 추천한 나머지 두 공원, British Columbia 주에 속하지만, 앨버타주에 위치한 Banff와 붙어있는 Yoho와 Kootenay 국립공원을 보고 갈 생각이다. 아침에, 느긋하게 준비하고, resort에서 숙식하는 휴양객답게 11시에나 슬슬 행동 개시다. 일기예보대로 비가 줄줄 내리는데, 처음 이곳에 왔다면 낭패다... 싶을 깜깜하게 흐린 하늘과 비 오는 밴프가, 두 번째 오니 이런 날씨의 경치도 보게 되는 기쁨이 된다. 인접해 있는 British Columbia 주로 넘어가 Yoho로 가는 길도 화려한 로키의 파노라마가 계속되고, 인구 167명이라는 작은 마을 Field로 들어서니, 샤모니 계곡에 있던 시골 마을같이 이쁘게 꾸며놓고 장작도 줄 맞추어 쌓아놓았다. 모든 집이
미국 워싱턴에 거주하고 있는 필자 김은성은 현재 본지에 '미국 대륙횡단 여행기'를 절찬리에 연재 중인 작가다. 그가 수년 전, 한 달 이상을 자동차로 미 대륙을 횡단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사진과 함께 담백한 글로 써내려간 여행기는 현재 코로나로 해외 여행을 꿈도 못 꾸는 우리들에게 커다란 위안과 함께 대리만족을 주고 있다. 본지는 필자에게 2회 정도 남은 '미국 대륙횡단 여행기'를 잠시 중단하고, 2020년 봄 지구를 뒤덮어 버린 팬데믹과 백신 개발 이후 미국 사회의 새로운 변화의 물결에 대한 글을 요청했다. 평생 의료계에서 근무해온 그의 직접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실제로 피부에 와닿는 '백신 접종 이후 미국 이야기'에서 그는 "어두운 터널 속에서 빛의 속도로 세상에 나와준 백신이 우리에게 소소하지만 소중한 일상을 되돌려주고 있는 중"이라고 진단했다. 지난 1년간 미국의 코비드 사망자 수는 제주도 인구와 비슷한 60여만 명, 인구 대비해서 남한 인구로 계산한다면 대한민국에서 10만 명이 사망한 거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숫자다. (미국 인구 3억, 남한 인구 5천만에 비례) 코비드로 순직한 간호사(RN)의 숫자도 400명에 달한다. 그 밖의 의료인들의
Day-34, 몬태나에서의 마지막 날 어젯밤엔 별똥별이 쏟아지는 날이라고 해서 오밤중까지 안 자고 버티려 했으나 10시부터 비가 내린다. 이곳의 비는 텐트 지붕에서 후드득 소리를 꽤 오래 내면서 내려도, 아침에 일어나면 땅이 여전히 보송보송한 인색한 비다. 그래도 구름으로 하늘을 덮으니 별을 볼 수가 없고, 그냥 잠든 게 억울해서 새벽 두어 시쯤 밖에 나가보니 비는 그쳤어도 별이 총총하진 않다. 어제 집어온 mountain goat 꽃바구니가 나뿐 아니라 오가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준다. 요즘 재활 중이라 꽃이 달리지 않은 내 꽃들도, 오가는 사람들이 이뻐해 준다. 우리 동네 셰넌도어에는 꽃바구니 데리고 캠핑오는 사람들도 종종 보는데, 여긴 먼 곳에서 오는 사람들이 주를 이르니 나처럼 극성맞게 꽃 들고 온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오늘은 묵직한 사랑으로 내 안에 자리 잡고 앉은 몬태나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Logan pass에서 Highland trail과 continental divide까지 올라갔다 온 남편은, 이제 다른 트레일이 시시해졌는지 별로 연연해하지 않고, 역사박물관에서 공부한 지식에 따라 Flathead Indian reservation과 미
“아니, 그게 말이 됩니까? 못 믿을 게 따로 있지!” “왜 말이 안 됩니까? 짐을 다 내가야 돈 드리는 게 맞지요!” “그렇게만 고집하면 안 되지요. 입장 바꾸어 생각해 보세요.” 손녀를 돌봐주기 위해 2년 전 딸네 집 근처로 전세를 얻어 왔었다. 계약이 만료돼 주인이 비워달라고 했다. 그래서 며칠 전 이사를 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 부부는 지금까지 겪은 적이 없었던 일들로 심한 마음고생을 했다. 그 당혹감은 말할 수 없이 컸다. 같은 사안을 두고 생각과 행동이 그렇게도 다를 수 있음에 놀랐다. 가히 절벽에다 대고 얘기하는 기분이었다. 전세 계약 기간이 석 달쯤 남았던 어느 날 집주인 여자가 연락했다. 우리도 계약연장 여부를 물어보려던 참이라 잘 됐다 싶었다. 그러나 주인 여자는 연장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새집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그 여자는 우리더러 계약 기간 만료 후 3개월만 더 살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자기네가 사는 집의 계약 기간이 우리의 계약 기간 만료일보다 3개월쯤 뒤라는 것이다. 참말로 자기들 생각만 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그렇게는 할 수 없으니 차질 없이 전세
모름지기 사람에게는 사람값이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어린이가 아닌 어른에게는 어른에 해당하는 만큼의 어른 값도 있지 않겠는가. 어른이기가 버거운 까닭은 그 어른값을 다하고 있지 못한 까닭은 아닐까. 그 때문에 '어쩌다 어른'임을 겁내는 것은 아닌지. 시간이 날 때 방송 프로를 돌리다 보니 한 번은 눈에 띄는 제목이 있어 유념해 본 일이 있다. '어쩌다 어른'이라는 공개방송 형식의 1인 토크 프로다. 이즈음의 방송 프로를 보면 한 마디로 수준 미달이랄까,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공중파니, 종편, 케이블방송 등으로 방송국은 수도 없이 늘어났는데 채널마다 똑같은 연예인, 혹은 똑같은 패널들이 나와 온통 먹고 놀고 수다 떨기가 극악을 부리며 경쟁한다. 수다 떨기의 질도 갈수록 저질이다. 방송이 이래도 되는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그런데 내가 지금 하고 싶은 얘기는 방송에 대한 이야기, 혹은 그 내용에 대한 것이 아니라 '어쩌다 어른'이란 제목이 던져주는 포괄적 사고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한 미팅에서의 일이다. 나이 차가 다소 있는 선후배 전직 직장 동료들이 구성원이다. 미팅에선 언제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 건강 얘기들이 흔한 화제로 오른다. 그런데 그날
Day-31, 태양으로 가는 길 오늘은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아늑한 텐트에서 부스스 일어나면 되는 좋은 날이다. 아침으론 집에서 눌려온 누룽지 팔팔 끓여서 아직 멀쩡하게 남은 밑반찬과 먹어준다. 10시 반쯤 느긋하게 집을 나선다. 햇볕이 따스하다. '태양으로 가는 길'을 조금 운전해가서 이 공원에서 손꼽는 5마일짜리 트레일, Avalanche lake로 향한다. 맘 좋은 미국 정부에서 이 멋진 숲의 입구 0.8마일에 마루를 깔아서 휠체어 탄 사람도, 멋진 숲을 즐기고 제일 이쁜 계곡의 물줄기를 볼 수 있게 해놨다. 2.5마일, 수백 년에서 천 년 이상된 향나무와 Hemlock이 주를 이루는 신비로운 숲길을 따라 걷는다. 내가 없던 날들을 이 자리에서 지켜왔고 내가 없는 날에도 이 자리에 서 있을 나무와 바위들을 보고 느끼며,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으나 존재하는 시간이 형체를 갖고 그 숲에 존재한다는 생각이 스친다. 숲에 쓰여 있는 문구에도 모차르트가 유럽의 귀족들을 매료하던 그때, 제퍼슨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던 그때도 이 숲은 이 자리에 있었다... 고 쓰여 있다. 태평양에서 오는 습기 덕분에, 매우 건조한 기후의 공원 동쪽과 사뭇 다른 나무들이 자란다.
▲박윤국 포천시장이 무대 밑에서 휠체어에 앉아 있는 장애인 인권강사 김대준 씨에게 상장을 전달한 뒤 격려하고 있다. ▲손세화 시의장이 "장애인이 주인공이 장애인의 날에 주인공을 무대에 오르지 못하게 해서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나라에서는 1981년부터 이날을 '장애인의 날'로 정하고 매년 기념행사를 해왔다. 올해로 벌써 41회째다.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로 정한 것은 4월이 1년 중 모든 만물이 소생하는 달이어서 장애인의 재활 의지를 부각할 수 있다는 데 큰 의미를 둔 것이고, 20일은 다수의 기념일과 중복을 피해서 이날로 정했다고 했다. 매년 '장애인의 날'이 되면 각 시도와 지방자치 단체에서는 장애인들을 위한 각종 기념식을 준비한다. 기념식은 장애인 인권선언문 낭독과 장애인 복지유공자 포상, 장애인 극복상 시상, 축하공연 등으로 진행된다. 또 이날을 전후해 약 일주일간을 '장애인 주간'으로 정하고 여러 가시 행사를 벌인다. 포천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코로나 시기와 겹쳐 많은 사람을 초대하거나 요란하지는 않았으나, 이날 군내면 반월아트홀 대강당에서는 포천시가 주최하고 포천시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장애인분과에서 주관하는
동네 할아버지들이 책방에 오는 게 나는 참 좋다. 평생 농사만 짓고 산 그분들이 서점을 갔던 적은 먼 옛날일 것이다. 카페야 어쩌다 도시 사는 자식들이 와서 모시고 갈 수는 있지만, 서점이라는 곳을, 더욱이 이런 작은 책방을 모시고 갈 일은 없을 것이다. 한가로운 시골책방의 어느 봄날. 할아버지 세 분이 들어왔다. 막걸리를 한 잔씩 걸쳐 모두 얼굴이 불콰했다. 이곳에서 자라고 평생 이곳을 떠나본 적이 없는 어른들이었다. 한 분은 언젠가 한 번 동창회를 마치고 책방에 들러 차 한 잔씩을 하고 돌아갔고, 한 분은 딸과 손주들을 데리고 온 분들이었다. 처음에는 한 분만 들어왔다. 다른 두 분과 달리 얼굴이 낯설었다. 시골책방에 불콰한 얼굴로 들어온 할아버지를 보고 나도 모르게 경계심이 생겼다. 코로나 19로 방명록 작성이 필수라 먼저 작성을 부탁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난 글씨 몰라. 좀 이따 글씨 잘 쓰는 사람 올 테니 그 사람보고 쓰라고 하면 돼.” 그제야 나는 일행이 있다는 걸 알았다. 잠시 후 글씨를 잘 쓴다는 할아버지와 다른 한 분이 같이 들어왔다. 낯이 익은 분들이었다. 비로소 경계심이 확 풀렸다. “아무거나 그냥 주셔. 맛있는
Day-28, Dream catcher Nomad(유목민)로 살던 인디언들처럼 수요일은 우리가 이동하는 날이다. Glacier park의 동쪽에 터 잡고 산불에 막혀 그쪽에서만 놀다가 예정에 맞추어 서쪽으로 이동한다. 관통하는 도로가 아직도 산불로 막혀서 공원 밖으로 돌아서 두시간 반 걸려서 간다. 공원 밖의 동쪽 벌판은 Blackfeet Indian reservation(인디언 보호구역)이고 우리가 방문했던 Browning은 그 중심지에 속한다. 몬태나주에서 발행한 관광가이드에서 추천한 Blackfeet trading post(서부시대엔 상점을 이렇게 불렀다)에 가서 인디언들이 만든 Dream catcher 귀걸이를 사서 걸었더니 마을에서 만나는 인디언들이, 자기들 물건인 줄 알아보고 이쁘다며 자화자찬이다. 인디언들만 사는 동네에 있는, 입장료 5불 받는 인디언 뮤지엄에 가니, 인디언들의 의식주 artifact(유물)가 많이 전시되어 있다. 16세기까진 미대륙에 말이 없어서 에스키모처럼 개들하고 살며 사냥도 하고 이동도 하며 살다가, Spaniards(스페인 정복자들)가 유럽에서 들여온 말들이 도망 나와 야생마가 되고 그 말들을 길들여 타고 다니게 되며 인
Day-24, 8월 초하루는 이웃 나라 캐나다에서 오늘은 아침 7시 반에 타국을 향해 달리며 얼굴에 분칠도 하고, 호텔 커피숍에서 산 라떼도 홀짝이며 분주한 하루를 연다. 40여 분 먼지 나는 한적한 오지 같은 몬태나 땅을 달려 캐나다의 Alberta 주로 들어섰다. 여권 보여주고 통과한 산길을 1시간쯤 더 달려 캐나다 영토에 속하는 Glacier park에 도착했다. 미국에선 평생권을 끊어서 공짜로 드나들었는데, 입장료로 16불을 내고 캐나다 국립공원에 들어서니 영어와 프랑스어가 같이 쓰여 있는 표지판과, mile 대신 kilometer를 사용하는 등 여긴 딴 나라인 것이 맞다. Visitor center에서 추천한 가벼운 하이킹으로 5마일짜리 산정호수에 오르며 아침 운동을 했다. 내가 들꽃을 보면 이성이 마비되듯이, 남편은 빙하에 열광한다. 수천 년 전에 얼음이 되어 오늘 존재하는 H2O의 거대한 실체가 신비로운 건 나도 이하 동문이다. 우리가 올라가서 바라본 빙하들은 미국 영토에 속한 것들이고, 이 공원 캐나다 땅엔 빙하가 더는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1800년대 말 150개이던 빙하가 25개 남았고, 2020년엔 다 녹아버릴 거라고 하니, 한시적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