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 문학산책

詩 '그대의 세상' 外 2편

詩人 이병찬 · 대진대 명예교수, 포천문인협회회원

글쓰기를 좋아하시는 포천 분들이라면 누구나 '포천 문학 산책' 란에 시와 산문, 수필 등을 자유롭게 발표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쓴 작품을 독자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포천 문학 산책'에 문학을 사랑하시는 분들의 큰 호응을 부탁합니다. 

 

이번 주는 대진대 명예교수이며 포천문인협회 회원인 위천(爲川) 이병천 작가의 詩 '그대의 세상'과 '별자리 순례', '편광(偏光)' 등 세 편의 시를 게재합니다. 이병찬 교수는 현재 포천문화원 포천학연구소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시인 이병찬 교수.

 

 

그대의 세상

 

 

이슬도 눈을 감은 새벽

당신은 찬이슬을 밟으며

내게로 왔다

 

맨발에 이슬이 묻어 있었고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얼굴에

얕은 옷 사이로

오돌오돌 소름이 돋아있었다

 

웬 일이냐

왜 맨발이냐

왜 새벽이냐

 

묻지 않았다

 

내가 내민 따뜻한 자스민 차를 마시며

그대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리고 낮게 속삭였다

 

이게 내 세상이에요

내 세상은 이래요

당신들의 세상은 어떤가요?

 

 

 

 

별자리 순례

 

 

아주 옛날 작은 소년이 오리온자리를 올려다봤다

때때로 길을 잃었을 때 북극성을 찾았고

투쟁하고 역행할 때 양자리를 품었고

뜨거운 가슴으로

목성을 안았다

 

청년기엔 가장 밝은 개밥바라기의 샛별인 금성을 찾았다

믿었던 금성이 황소자리로 이동하며 길을 잃었을 땐

화성을 찾아 집으로 들어갔고

쌍둥이자리를 만나 목표를 달성했다

 

생각하고 신중을 기할 땐 게자리를

중요한 사람을 만날 땐 처녀자리를 더듬었다

 

태양이 가장 높이 뜨는 여름엔 오르페우스 와 에우리디케를 만나

하프를 연주했다

때때로 뜨거운 여름

직녀별인 거문고자리를 만나

죽음과 같은 사랑도 했고

견우별인 독수리자리를 만나 아픈 이별을 해야만 했다

 

가을에 길을 찾을 땐 페르세우스가 돼 안드로메다의 포로가 됐다.

천징자리 전갈자리 사수자리 염소자리에서

다시 힘을 키웠고

 

겨울엔 북두칠성과 용자리를 올려다보며 추위를 참았다

 

때때로 헤르메스가 준 날개로 미지를 여행했고

몸집이 불고 키가 크면서 카시오페이아와

세페우스와 기린자리와 친구가 됐다

 

마음이 달뜬 때는 물병자리를 찾아

물고기자리와 양자리를 품기도 했다

 

때때로 고민하고 역행하며

쌍둥이자리와 황소자리도 만났다

 

별이 뜬 하늘에서 수많은 별들과 조우했고

다시 처음 본 오리온자리 밑에 섰다

 

그렇게 작은 소년은 하늘의 별자리들을 품에 안았고

이제 오리온자리가 방향을 바꿔도 길을 잃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

오늘 따라 북극성이 유난히 밝다

 

 

 

 

편광(偏光)

 

 

세상 모든 것들이 잠든 고요한 밤

눈을 떴다

 

어둠으로 장식한 거실에

발광(發光)하는 작은 빛의 조각들

콘센트의 인위적인 빛들이

생각마저 단절시킨다

 

순수의 색채를 찾아 거실 창 앞에 섰다

수많은 시간들이 뇌리를 친다

절망 속에서 희망의 끈을 만든 시간들

그 끈을 다시 풀어야 했던 아린 세월들

때때로 무(無)라고 고개를 젓던 시간의 조각들

사랑을 만나 빛나던 삶의 화려한 편린들

모두 뜨거운 차에 담았다

 

산다는 건 그런 거라고

별 거 아니라고

혼돈 속에서 길을 찾는 거라고

세월은 먼지의 편광(偏光) 같고

선택의 연속뿐이라고

길을 아는 것과 길을 가는 것은 다르다고

 

그 어떤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무언가를 다시 찾아야 하는데

까만 어둠뿐

생각이 나지않는다

뜨거웠던 차는 이미 식어버렸다

 

새벽이 눈을 뜨고 기지개를 켜는지

북쪽의 여명이 붉다

 

 

시인 이병찬

아호 위천(爲川)

대진대학교 한국어문학과 명예교수

포천문화원 포천학연구소장

포천문화재단 이사

동농이해조선생기념사업회 회장

포천문인협회 회원